본문 바로가기
중국의 정치/중국의 지방정부

충칭(重慶)의 심상찮은 인사변동: 소위 '시진핑사돈'까지 좌천되다.

by 중은우시 2022. 1. 5.

글: 정중원(鄭中原)

 

중공20대를 앞두고 권력투쟁이 가열되고 있다. 보시라이와 쑨정차이 두 시위서기가 전후로 낙마한 직할시 충칭에서 아마도 다시 한번 중남해를 머리아프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진 듯하다. 최근 원래 앞날이 창창할 것으로 여겨지던 충칭시장 탕량즈(唐良智)가 안후이성의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원래 탕량즈는 외부에 '시진핑사돈'으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충칭의 고위층중 돌연 3명이 떠나다.

 

2021년 12월 30일, 후헝화(胡衡華)가 충칭시 대리시장에 임명된다. 전시장 탕량즈는 안후이성 정협당조서기로 옮겨갔다. 이는 탕량즈가 시장에서 면직되고, 왕푸(王賦)가 충칭시위상위, 부시장의 직무에서 면직된지 겨우 5일만의 일이다.

 

왕푸는 이미 12월 27일 깐쑤성 기율검사위서기로 옮겨갔다. 그외에 충칭시위상위, 시위기율검사위서기, 시감찰위원회주석인 무홍위(穆紅玉)는 12월 7일 이미 베이징으로 돌아가서, 중앙기율검사위와 국가감독위원회의 주최고인민법원 기검감찰조 조장을 맡은 것이 확인되었다. 현재 충칭의 기율검사위서기직은 아직 비어 있다.

 

이렇게 보면, 충칭은 1달만에 3명의 성위급 고위층을 내보냈다. 변동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배후에는 무슨 원인이 있을까?

 

충칭시 부시장 왕푸가 깐쑤로 간 것은 동급으로 이동한 것이니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충칭에 온지 3년된 무홍위가 베이징으로 돌아간 것은 아마도 무슨 비밀임무를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탕량즈는 사전에 변동의 조짐이 전혀 없어 조금 이상하다. 기실 그는 후임 충칭시장 후헝화보다 겨우 3살이 많을 뿐이다.

 

탕량즈가 지금 안후이성 정협당조서기를 맡았으니, 관례대로라면 얼마 후 65세인 안후이성 정협주석 장창얼(張昌爾)의 직위를 물려받을 것이다. 충칭시장이라는 실권이 있는 직위와 비교하면, 안후이성정협주석이라는 직은 2선의 한직이다. 그래서 비록 동일한 정성부급(正省部級, 성장,장관급)간의 자리이동이지만 좌천의 의미가 아주 분명하다.

 

중국 관료사회의 인사변동의 배후에는 모두 권력투쟁이 있다. 단지 모두 암상조작할 뿐이다. 외부에서는 일시에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은 탕량즈가 전 충칭시위서기 쑨정차이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추측하거나, 혹은 현임 충칭시위서기 천민얼과 불화가 있기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제3의 가능성은 없을까?

 

탕량즈가 면직되기 9일전에 천민얼은 덩후이린(鄧恢林)을 '유독(流毒)'으로 승급시켰다.

 

탕량즈는 2017년 4월 쓰촨 청두시위서기에서 충칭으로 왔다. 전후로 시위부서기, 시장등 직위를 맡았다. 시진핑이 저장에 있을 때의 부하이며, '지강신군(之江新軍)'의 대표인물인 천민얼은 2017년 7월, 쑨정차이가 충칭시위서기의 직위에서 면직될 때, 충칭을 넘겨받았고, 탕량즈와 4년간이나 함께 일해 왔다.

 

충칭은 중국관료사회에서 극히 위험한 지방이다. 보시라이와 쑨정차이 두 기의 충칭시위서기는 낙마후 모두 '야심가'로 규정되어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보시라이시기의 충칭시 부시장, 공안국장 왕리쥔은 청두미국영사관으로 망명하려다가 실패한 후 15년형을 받았다. 왕리쥔 이전의 공안국장인 주밍궈(朱明國)는 이미 광동성 정협주석의 자리에서 낙마했다. 왕리쥔이후 허팅(何挺), 덩후이린 두 공안국장도 연이어 조사받고 낙마했다. 게다가 충칭시위 부서기 런쉐펑(任學鋒)은 2019년 10월 4중전회가 폐막되는 날, 회의가 열리는 징시호텔(京西賓館)에서 투신자살했다. 외부에서는 항상 충칭시 관료사회의 흉험함은 마치 '저주'를 받은 것같다. 충칭관료사회는 '만인갱(萬人坑)'이라고 불리고 있다.

 

천민얼이 2017년 충칭으로 간것은 속칭 "구급대원"이다. 시진핑이 천민얼에게 맡긴 가장 중요한 임무는 보시라이, 왕리쥔의 "여독(餘毒)"과 쑨정차이의 "악랄한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다. 과거 4년간, 천민얼은 그렇게 했다. 계속 반복하여 "쑨진차이의 악랄한 영향과 보시라이, 왕리쥔의 유독(流毒)을 견결히 숙청한다"고 말해왔다.

 

관료경력을 보면 탕량즈를 보시라이, 쑨정차이와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어쨌든 탕량즈는 쑨정차이와 겨우 몇달간 같이 일했을 뿐이다.

 

주목할 점은 탕량즈가 면직되기 9일전인 2021년 12월 16일, 천민얼이 주재하는 충칭시위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처음으로 전 부시장, 공안국장 덩후이린사건을 "유독"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관영매체보도에 따르면, 천민얼은 회의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덩후이린 유독의 영향을 쑨정차이의 악랄한 영향과 보시라이, 왕리쥔의 유독과 결합시켜 중시하고 숙청해야 한다."

 

2021년 2월하순에서 3월초까지, 천민얼은 두번에 걸쳐 충칭의 관련회의에서 덩후이린사건을 언급한 바 있다. 그때 썼던 용어는 모두 "악랄한 영향을 전면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쑨정차이와 같은 급이었다. 그러나, 보시라이, 왕리쥔에 대하여는 계속 '유독'이라고 표현해 왔다.

 

덩후이린을 '유독'으로 승급시킨 것은 당국에서 덩후이린사건이 충칭의 정계에 미친 영향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했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더욱 고위층의 관리가 관여되었다는 말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충칭시장교체, 심지어 부시장 왕푸의 전보, 기율검사위서기가 같은달 베이징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하여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탕량즈는 덩후이린의 '후베이방(湖北幇)'에 연루되었는가?

 

2020년 6월 14일 낙마한 충칭시 부시장, 공안국장 덩후이린은 1965년 3월생이다. 후베이 우한 사람이다. 그는 후베이성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일찌기 후베이성 경제위원회 판공실주임, 경제위원회 부주임을 지냈다. 2009년 7월 이창시 부시장이 된다. 2010년 10월, 이창시위상위, 정법위서기, 시공안국장이 된다. 2014년 10월, 후베이성 공안청 부청장으로 승진한다. 2015년 6월, 덩후이린은 중앙정법위로 전보되고, 2달후, 덩후이린은 중앙정법위 판공실주임이 되며 동시에 반분열지도협조실 책임자를 겸한다. 2017년 7월, 허팅이 충칭시 부시장, 공안국장에서 면직되고, 덩후이린이 후임으로 간다. 2020년 6월 덩후이린은 조사를 받는다.

 

1960년 6월생인 탕량즈는 후베이 홍후(洪湖) 사람이다. 2007년 6월부터 샹판시위부서기, 대리시장, 시장, 샹판시위서기를 지낸다. 2011년 1월, 우한시위부서기, 대리시장이 되고 2월에는 우한시장이 된다. 2014년 2월 쓰촨성 청두시위서기로 옮겨가고, 2017년 충칭으로 옮겨갔다.

 

두 사람의 이력을 비교하면, 탕량즈와 덩후이린은 모두 후베이의 중요관리였다. 나중에 충칭에서 다시 3년간 같이 일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두 사람 모두 후베이사람이라는 것이다.

 

중공의 당내에는 역대이래로 서로 다른 파벌이 존재했다. 그중 관료경력으로 나누거나 관적을 근거로 나누는 지방방파가 근 사십년간 관료사회에서 횡행했다. 시진핑이 취임한 후, 지방방파는 금기가 되었고, 당국은 이를 '소집단', '방파결성'의 죄명으로 강력하게 타격했다. 

 

2021년 1월 정부의 덩후이린문제에 대한 성격규정을 보면, "'양개유호'(시핵심과 중앙집중통일영도를 유호하는 것)를 위배하여, 당내 소집단에 참여하고, 정치자본을 획득하고자 하고, 정치투기에 열중하여, 당중앙의 대정방침에 대하여 망의(妄議)했다"는 것이다. 

 

2020년이래, 이미 낙마한 여러 공안계통의 거물들은 소집단활동을 했다고 규정된다. 그중 전 상하이시공안국장 공다오안, 전 충칭시공안국장 덩후이린은 모두 후베이출신이다. 일찌기 덩후이린이 '국가지도자'에 대하여 불충한 일을 꾀한 장쑤성 공안청 형경총대 총대장 뤄원진도 후베이사람이다.

 

그렇다면 탕량즈는 덩후이린의 '소집단'에 가담하여 '후베이방'을 결성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는 덩후이린의 '불법'활동을 최소한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단지 가능성만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정부도 그런 내막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탕량즈는 '시진핑사돈'으로 알려졌었다.

 

재미있는 것은 시진핑에 의해 좌천된 탕량즈가 일찌기 '시진핑의 사돈'이라고 널리 알려졌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시진핑사돈', '시진핑준사돈'을 찾아보면, 바로 탕량즈가 나온다.

 

이 소문은 2019년 해외의 매체에서 폭로한 것인데, 당시 탕량즈의 아들과 시진핑의 딸 시밍저(習明澤)가 연애중이라는 것이었다. 탕량즈는 시진핑의 준사돈이 된 것이다. 그런데 금년에 다시 시밍저가 이미 루홍펑(盧洪峰)이라는 저장의 해외유학파와 결혼했다는 소문이 나왔다. 몇년전에도 시밍저가 산이중공(三一重工)의 후계자 량예중(梁冶中)과 연애중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런 중남해의 권력귀족핵심을 둘러싼 남녀관계뉴스는 아마도 내부투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쩡칭홍의 특무들이 해외매체에 퍼트리기 좋아한다. 그러니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탕량즈는 원래 충칭시위서기로 승진해서 정치국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돌연 좌천되다니. 이것이 바로 진실한 중국밀실정치의 힘겨루기결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