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곡추세(智谷趨勢)
"죽을 수도 없고, 멀리 시집갈 수도 없고, 돈을 벌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오직 나뿐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틀간 한 북경대야(北京大爺)가 인기검색어에 올랐다. 그와 아내는 모두 병석에 누워 있고, 딸이 고용한 보모는 반년동안 벌써 스무번이나 욕을 해서 쫓아버렸다.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화를 잘 내는 성격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병을 앓으면서, 감정기복이 심해졌고, 보모에게 매달 6천위안의 급여를 지급해야 하고, 또한 딸이 자신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되다보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시도 때도없이 운다. 그녀는 죽어라 걷는 것과 밥하는 것을 해서 딸의 부담을 경감시켜주려고 하지만 그녀는 해내질 못하고, 오히려 딸에게 골치거리만 더하고 있다.
엉망진창인 집안에서, 나는 여리고 어린 90후(90년대생)의 딸을 보았다. 그들의 유일한 딸 제첸(杰茜)이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는 울 수 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눈물 한방울도 흘릴 수가 없다.
팬데믹기간동안 병원은 3시부터 4시사이에만 면회가 허용되었다. 부모는 당시에 한 사람은 2층에 입원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11층에 입원해 있어서, 제첸은 반드시 1시간내에 두 사람을 모두 만나보아야 했었다.
이런 생활에 그녀는 거의 온몸이 마비될 지경이다.
최근 반년간 며칠에 한번씩 보모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녀의 집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집안상황을 다음 번 보모에게 인수인계하겠다는 것이다.
부친이 먹는 약은 그녀가 반드시 챙겨주어야 했다. 모든 약의 먹는 횟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그녀는 작은 합에 나누어담아야 하는데 최소한 1시간은 걸린다.
그녀는 직장상사에게 휴가를 신청하는 것도 이제 미안해서 더이상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다. 그리고 급여도 포기할 수 없다.
독생자녀정책하에 중국에서 1980년부터 2016년까지 1.76명의 독생자녀가 탄생했다. 지금 이 숫자는 거의 2억명에 가까워졌다.
이 2억명의 고통이 마침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마치 '천선지자(天選之子)'처럼 일찌기 총애를 받았는데,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그들의 집때문이고, 다른 사람때문은 아니다.
1. 이 세대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중년에 들어선다.
예전에 각 대형매체에서 독생자녀를 보도할 때, 핵심단어는 닉애(溺愛, 지나치게 애정을 퍼붓는 것), 교종(嬌縱, 자기마음대로 하는 것), 자사(自私, 이기적인 것)등이었다. 그들은 확실히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지만, 어려서부터 압력은 컸다.
온 가족의 정력이 모두 그들에게 쏟아지다보니, 집안에 사탕이 한 개 있으면 반드시 그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가장은 자녀에 대한 모든 기대를 한 아이에게 쏟았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형제자매와의 다툼도 없고, 특별히 친한 친구도 없으며, 매일 공부와 오락을 즐겼다. 아주 단순하게 생활했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사회에 적응하기도 전에, 독생자녀들은 무더기로 중년에 끌려들어간다.
올해 초 한 사람이 글을 올려 이렇게 울며 호소했다: "우리 이 독생자녀세대는 항상 스스로 어른이 되지 않았으니, 부모가 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2019년에 임신을 했는데, 그때 모친이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래서 와서 그녀를 돌봐줄 수 없었다.
마음 속으로 힘들었지만, 그녀는 아이를 생각하여 억지로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 애썼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녀가 이런 생각도 했다. 혹시 친가와 외가에서 서로 아이를 데려가서 보겠다고 하면 어쩌지.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모친은 병석에 누워 있어서 아이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시어머니는 고혈압이었다. 그녀는 졸지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나중에 시어머니의 고혈압이 약간 좋아져서 아이를 맡기는 일은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부친이 당뇨병으로 입원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담담하게 대응했다. 부친을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고, 병원에 입원해있는 부친을 돌보았다. 아무런 원망없이.
아이가 어른이 되든 말든, 부모는 이미 늙었다.
최초의 독생자녀는 이미 40세가 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그들의 중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왔다.
시원시원하던 모친은 상자 속에 건강식품을 가득 넣어두고 있다. 유비무환이라고 하면서; 생선과 고기를 좋아하던 부친은 죽을 먹는 것이 이미 습관화되었다. 그것은 모두 두 사람이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것들이다.
그들은 계속 전화를 걸어온다.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직장에서 회의중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단지 푸념을 늘어놓기 위해서 매일 반드시 그들의 푸념을 한번은 들어주어야 한다.
부모의 신체상의 지표가 모두 쇠퇴한다. 누가 평생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매일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위층에 사는 장씨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의 딸은 외지에서 일하고 있어서, 돌아오지 못했다."
"네가 어렸을 때 같이 놀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심장병에 걸렸다. 네가 시간내서 한번 가봐라."
독생자녀들은 마음 속을 '덜컹'한다. 우리는 인생의 중간을 걸어가고 있는데, 부모는 이미 종점에 가까워졌다.
조그마한 사건 하나도 모두 낙타를 쓰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 한 가족을 지탱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네티즌 심해어자장과 그녀의 남편의 월수입은 1만여위안이다. 집안의 노인들은 아직 몸이 건강하다. 그녀가 내놓는 집안의 가계수지는 전율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정저우에서 일하고 있는데, 주택임대료가 1,900위안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너무나 갖고 싶어서 지방도시에 주택을 샀고, 매달 3,300위안의 주택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이것과 건물관리비, 주차비, 난방비를 합치면 매달 5,900위안이 든다.
자동차대출금상환, 기름값, 거기다 가끔 타이어교체까지 합치면 매달 5,730위안이 든다.
아이의 분유값, 기저귀, 완구, 부식값이 1,680위안이다.
생활에서 필요한 채소, 일용품, 의복, 외식등에 매달 4,100위안이다..
아무런 오락활동을 하지 않고, 낭비는 하지 않는데도 그녀의 집은 매달 최소 17,410위안이 든다. 매달 거의 남는게 없다.
병이 든다거나, 돌연 해고당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이런 수입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금년 전3분기 국민경제운행데이타를 보면, 주민들의 평균가처분소득은 26,265위안이다. 매월 평균 3,000위안가량이다.
여기는 그들의 소비만 적은 것이고, 다른 너무나 많은 일들은 거론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부모가 몸을 움직이기 불편해지면, 도우미를 청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한달에 5,6천위안의 돈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하물며 직장에서 근무하는 독생자녀의 한달 수입이 그 도우미의 급여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양로원에 가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한달에 최소한 3,500위안 내지 7,500위안이 든다. 그것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2,3년이 지나도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기르는 돈은 최초의 기저귀, 분유값만이 아니다.
18살이전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과외를 받게 하고, 먹고 입고 쓰는데만도 수십만위안이 든다.
만일 다시 아이의 안목을 넓혀주기 위해 관광이라도 간다면 적지 않은 비용이 추가로 든다.
<인민일보>가 인터뷰한 도시시공인원에 따르면 그가 하청받는 시공프로젝트는 평방미터당 8위안이다. 여기서 다시 나누게 되면 인건비가 평방미터당 3.5위안이고, 재료비가 3.5위안이다. 순수한 이익은 1위안이 되지 않는다.
특히 하청을 받지 못할 때는 의식주행이 아주 어려워진다.
그는 차를 사고 싶지만, 차의 운영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한 노동자친구가 감기로 인해 폐렴이 걸렸는데, 병원이 십여일 입원해야 했다. 외지에서 진료한 것이므로 보험대상이 아니어서, 한꺼번에 4,5천위안을 써야만 했다.
보통 사람의 생활은 모두 겁후여생(劫後餘生)이다.
이렇게 죽어라 돈을 버는 사람들은 무슨 재물을 탐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과 가족에게 비를 피할 수 있는 집 하나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형제자매가 있으면 서로 도와서 분담할 수 있다. 그러나 독생자녀는 오직 자신 하나뿐이다.
이건 그들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짊어져야할 책임이다.
3. 독생자녀의 생활. 진퇴양난.
이 세대의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심지어 돈과도 무관하다.
8월 8일 저녁, 허베이 한단의 장씨성의 노인이 구타를 당해 눈이 퉁퉁 붓고, 귀에서 피가 났다. 그리고 구토와 어지럼증을 느꼈다.
원인은 전날 양로원에서 모기향을 나눠주는데 그에게는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직원에게 모기향을 달라고 했다가 이런 결과를 맞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도우미를 집안으로 부른다. 그러나 도우미는 심지어 노인의 옷에서 돈을 훔쳐가기까지 한다.
독생자녀로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인들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뉴스를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항상 생각하게 된다: "만일 우리 부모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친자식처럼 전심전력을 다해서 돌봐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우미가 아무리 일을 잘하고, 전문적이라도, <기파설>의 변수가 한 말처럼, 어렸을 때 유치원의 선생님이 아무리 전문적이어도 그래도 부모님과 같이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아마도 결심을 하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를 양로원에 보내라!"
그러나 알아야할 것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너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런데 가장 너를 필요로 할 때 그들은 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집안에 모시고 있는 것이 그들을 잘 돌보는 것일까?
베이징의 양씨아주머니는 딸의 집에 들어가 살고 있다. 그러나 항상 남의 집에 있다는 느낌이다. 생활도 익숙한 생활이 아니고, 이웃도 낯익은 이웃이 아니다.
마이크로웨이브에 있는 십여개의 버튼중 그녀는 어느 것을 눌러야할 지도 모른다.
딸의 집에 있는 화장실은 고향집의 변소와 다르다. 양씨아주머니는 할 수 없이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쇼핑센터의 화장실로 향한다.
낯선 환경에 그들은 점점 위축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기꾼의 안부를 묻는 몇 마디에도 그들은 안위를 느끼게 되어, 돈을 넘겨주게 된다. 왜냐하면 친자식은 그렇게 따뜻한 말을 잘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생자녀들의 가장 큰 마음의 고통이다: 그들은 자책하지만, 바꿀 수가 없다. 그들은 피로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일을 하면 가족들과 같이 지낼 수가 없고, 일을 포기하면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가 없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그들은 현재까지 왔다. 진퇴양난의 곤경이다.
서서히 중년으로 접어드는 그들은 이미 독생자녀의 쓴맛을 충분히 보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아이는 절대 독생자녀로 만들지 않겠다고.
현재는 한 가족이 살아가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 하나를 기르는 것만도 힘들다. 어떤 사람은 아이가 병이 들어 휴가를 보내던 중에 직장에서 쫓겨났다. 만일 둘째, 셋째까지 있다면 모두 돈이 필요하고, 같이 있어주어야 한다...
무엇을 가지고 그들을 먹여살릴 것인가. 독생자녀의 세대에게 그것은 아직도 미지수이다.
04. 댓글
어느 독자의 댓글이다.
"나는 언젠가 아이가 더욱 노력해도 더 나은 생활을 할 수없게 될까봐 두렵다.
나는 언젠가 아무리 효성을 다해도 부모의 적막을 어쩔 수 없게 될까봐 두렵다.
나는 언젠가 내가 노력한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될까봐 두렵다.
나는 독생자녀이다. 중년위기는 헛말이 아니다.
업무경쟁에서 도태되고, 아이의 교육, 부모의 양로, 나의 시간에서 나 자신에게 남겨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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