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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미디어

런중핑(任仲平): 환구시보 후시진(胡錫進) 후임자...

by 중은우시 2021. 12. 15.

글: 신당인(新唐人)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고위층의 인사교체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홍콩매체에 따르면 총편집 후시진은 은퇴하여 물러날 것이고, <환구시보>에 사장직을 신설할 것이며, 중국관영매체 <인민일보> 평론부 부주임 판정웨이(范正偉)가 맡을 것이라고 한다.

 

홍콩매체인 <성도일보(星島日報)>는 12월 15일 소식통을 인용하여 이렇게 보도했다: 중곡의 후설(喉舌) <환구시보>는 <인민일보>의 관할에 속하며, 오랫동안 총편집 후시진이 관장해왔다. 후시진은 현재 61세로, 이미 60세의 은퇴연령을 넘겼다. <인민일보> 국제부 부주임 우치민(吳綺敏)이 <환구시보> 총편집인 직위를 넘겨받을 것이라고 하며, 우치민은 이미 <환구시보>에 진입한지 몇달 되었고, 후시진에게 인수인계받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치민은 베이징사람이고 1991년 <인민일보> 국제부에 입사하여 일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환구시보>는 앞으로 사장직을 신설할 것이고 중국의 정치성향을 강화할 것이며, 중공중앙기관지 <인민일보> 평론부 부주임 판정웨이가 맡을 것이라고 한다.

 

판정웨이는 1980년 샨시(陝西)에서 출생했고, 2006년이후 오랫동안 인민일보 평론부에서 일해왔다. <인민일보> "런중핑(任仲平)" 사론(社論)의 중요구성원중 한 명이다. "런중핑"은 "인민일보중요평론(人民日報重要評論)"의 인,중,평과 같은 발음의 글자이다. 판정웨이는 여러 차례 중공중앙의 중요한 활동을 보도한 바 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후시진은 1960년 4월 7일생으로 필명은 단인평(單仁平)이고 베이징사람이다.

 

1982년 후시진은 중국군대의 남경국제관계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북경외국어대학에서 러시아문학 석사학위를 받는다. 1989년, 군인 및 학생신분의 후시진은 6.4천안문학생운동현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진압작전전에 '적시에' 떠난다.

 

1996년부터, 후시진은 <환구시보> 부총편집인을 맡았고, 2005년부터 총편집인이 된다.

 

일찌기 중공당내매체에서 일했던 전 봉황망 시정기자 장전위(張眞瑜)는 <간중국>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후시진이 매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 <환구시보>가 국내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신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원래 대외선의 일부로서 국내매체에 비하여 더욱 많은 외국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는 좌파이고, 좌파에 의지하여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장전위는 이렇게 말한다. 환구시보가 가장 잘하는 것 혹은 주업으로 삼는 매체내용은 "컨텐츠 수출의 내수전환"이다. 그는 여러 해외뉴스의 글을 종합하여 자체적으로 가공한 후 '스타일을 전환시켜' 중공에 유리한 내용으로 만들어 보도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관용수법이다.

 

네티즌들이 후시진을 "후조반(胡叼盤, 조반은 개가 프리스비를 받아무는 것을 말한다)"이라고 부르게된 내력을 장전위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단지 당을 위해 보도할 뿐 진상을 보도하지 않는다. 이건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는 항상 공산당에 아부하고 항상 공산당을 위하여 말을 맞춰준다. 이것이 바로 그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