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사민(陳思敏)
12월 2일 중공의 당매체 <환구시보>의 주편(主編) 후시진의 '혼외자' 스캔들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실명으로 이를 공개한 인물은 바로 <환구시보>의 부주편(副主編) 돤징타오(段靜濤)이다.
후시진은 <환구시보>의 문화선전분야를 장악해왔고, 돤징타오는 부총편집인인 동시에 광고부주임을 맡아왔고, <환구시보>의 돈주머니를 20년간 관리해 왔다. 쌍방은 모두 뒷배경이 있다. 그외에 체제내에서 하급이 상급을 고발한다는 것은 특히 후시진처럼 지명도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고발한다는 것은 까닥 잘못하면 먼저 다칠 수 있는 일이다. 돤징타오는 그럼에도 직접 중앙기율검사위 사이트에 고발내용을 올려서 일반에 공개해 버렸다. 이는 돤징타오의 이번 고발은 그녀 혼자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뒷배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시진의 해명성명에서는 돤징타오가 승진되지 못하자 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소식도 전했다. 돤징타오가 그를 협박하기 시작한 시간은 '개략 3,4년전이며, 돤징타오가 중앙당교로 가서 학습을 하고나서 돌아온 후, 사내에서 사람들에게 후시진은 곧 환구시보를 떠날 것이며, 그녀가 환구시보 총편집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판단해보면, 돤징타오가 당시 중앙당교에서 학습할 때, 당교 교장은 바로 현임 중앙당교 교장이며 중앙조직부 부장인 천시(陳希)이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천시는 시진핑의 심복이다. 이렇게 보면, 돤징타오의 고발은 후시진이 말하는 것처럼 정신병자의 헛소리가 아니라, 상당한 내막이 있는 것이다.
시간적인 요소를 보자면, 한 가지 사건이 관련있을 듯하다. <신경보>는 11월 23일 돌연 글을 실어 '건정학자(鍵政學者)' 리이(李毅)가 10월 한 논단에서 웃으면서 말한 "중국에서 신종코로나에 감염되어 4천명이 죽더라도, 그것은 한명도 안죽은 것이나 같다"는 말을 질책했다. 11월 24일 리이는 연이어 글을 쓰고, 3건의 영상을 올려 <신경보>를 공격한다. 11월 30일을 전후하여, 인터넷에는 <리이, 쓰마난(司馬南), 진찬룽(金燦榮)의 배후: 민족주의상업화의 부침>이라는 글이 올라온다. 12월 2일 후시진이 고발받은 날, 이 글에는 '수정버전'이 올라온다. 후시진의 이름도 이들 좌파거물과 나란히 오른 것이다. <리이, 진찬룽, 쓰마난, 후시진 애국사업 배후의 자본강호>, <진찬룽, 후시진등 '오절(五絶)'배후의 조타수: 애국상업화의 금전유희>등등 제목은 다르나, 내용은 대동소이한 글들이 올라왔다.
관련 글에서는 주로 소위 "애국, 반미조회사업"은 이미 산업체인이 되었고, 그 배후의 자본조작이 있다고 폭로한다. 리이등의 웨이신계정을 운영하는 회사의 주요투자자는 라오진(饒謹, 쓰웨(四月, anti-CNN.com)사이트의 창업자, 사이트의 비지니스모델은 서방을 반박하고, 네티즌의 애국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한다는 것이다)이다. 라오진과 쓰웨사이트의 자금주는 리스모(李世默, 널리 알려진 신분은 관찰자망(guancha.cn)의 창업자. 이 사이트는 고급버전의 쓰웨사이트라고 말해진다)이다. 후시진의 웨이신계정의 운영주체는 상하이더이(得已)문화전파공사이다. 이 회사는 양양문화(漾漾文化)의 100%자회사이다. 주요투자자는 역시 리스모이다. 리스코의 핵심배경에 대하여 글에서 청웨이자본(成爲資本, Chengwei Capital)의 창업자라고만 언급했다.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리스모가 성공한 것은 주로 그가 펑보(馮波)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중공을 위하여 화장하는데 고수이며, 서방인사들의 입맛에도 맞았다. 1999년, 리스모는 상하이로 돌아오고, 펑보가 돈을 낸다. 펑보와 리스모 두 사람은 '청웨이자본'을 관리한다. 이때부터 펑보의 가이드하에 청웨이자본은 중국인터넷의 초기투자자가 된다. 그리고 관찰자사이트도 창업한다.
리스모는 기껏해야 막전인물이고, 리스모의 막후인물은 펑보이다. 그러나 고급PE권내에서 자본큰손형제인 펑타오(馮濤), 펑보는 마찬가지로 막전인물이고, 막후인물은 장멘헝(江綿恒)의 상하이렌허투자(上海聯和投資)이다. 펑씨형제는 펑즈쥔(馮之浚)의 아들인데, 펑즈쥔은 상하이의 사회과학계에서 활약했다. 한때는 민맹 전국상무부주석을 지냈고, 펑즈쥔은 장쩌민과 사적인 교분도 두텁다. 나중에 장멘헝이 주도하여 상하이롄촹(上海聯創)과 베이징롄촹처위안(北京聯創策源)을 설립할 때, 펑보는 롄창처위안의 창업파트너가 되고, 펑타오는 장민헝의 요청으로 상하이롄촹투자(현재 상하이용쉔창투로 명칭이 바뀌었음)의 총재가 된다.
펑씨형제의 성공사는 최근에 내막이 들춰진 바 있다. 시진핑이 취임하여 반부패를 벌인 후, 특히 칭하이(靑海)성위의 전 상위이자 시닝시(西寧市) 전서기 마오샤오빙(毛小兵)과 저우용캉(周永康)의 석유계가 초토화된 이후이다.
2013년 9월 저우용캉의 석유계는 반부패의 폭풍 속에 휘말렸다. 석유계의 20개가 넘는 기업이 관련되고, 그중 안동석유(安東石油, Anton Oil)의 오너인 뤄린(羅林)은 원래 중석유(中石油, 페트로차이나)의 경영진이었다. 안동석유의 성공은 90년대말 신장(新疆)에서 시작하여, 두바이에 국제본사를 설립하고, 이라크에서 여러 투자를 했으며, 홍콩에 상장했다. 비록 지명도가 높지는 않지만, 안동석유는 중국최대의 민영유전기술용역업체이다. 펑보가 주재한 청웨이자본은 안동석유의 최대주주이다.
2014년 마오샤오빙이 조사를 받으면서, 매체는 마오샤오빙사건에서 10년전의 일을 끄집어내어 <서부광업IPO: PE부패의 더러운 파티>를 싣는다. 국내외의 투자은행, 사모기금이 언급되는데 거기에는 2004년에 일찌감치 지분투자했던 장멘헝의 상하이롄허투자 산하의 펑타오가 관리하는 PE도 포함된다. 여기서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칭하이성의 중대한 국유자산유실을 마오샤오빙이 혼자서 처리했을 수는 없다. 서부광업이 문제를 지닌채로 상장할 수 있는 핵심시기에 칭하이성위서기는 바로 자오러지(趙樂際)이다.
또 한가지를 언급하자면, 자오러지는 19대이전에 한때 시진핑 진영의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장쩌민부자와 관련된 펑보가 불러온 리스모는 2013년 6월 TED글로벌대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중공중앙조직부의 존재는 현명하고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장한다". 중공의 일관된 원칙은 업적을 얘기할 때는 공로를 '당중앙 혹은 당주석 혹은 총서기의 영도'로 돌려야 한다. 그러나, 리스모는 중공이 성공한 공로를 모조리 중앙조직부로 돌렸다. 그리고 당시 중앙조직부장은 바로 자오러지였다.
리스모가 주재하고 청웨이자본이 출자한 관찰자사이트의 공개된 정보를 보면, 보시라이가 잘 나갈 때는 '충칭모델'을 극력 선전했고,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에도 수시로 장쩌민의 '정치적업적'을 언급하여 암중으로 시진핑을 깍아내리곤 했다.
깊이 숨어있는 자본이 층층의 통제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좌파거물, 전랑산업체인을 통제할 수 있다. 네티즌의 말을 빌리면, "월급여 3천위안인 사람은 반미하고, 월급여 3만위안인 사람은 미국을 여행하고, 월급여 삼십만위안인 사람은 미국으로 가며, 월급여 삼백만위안인 사람은 월급여3천위안인 사람을 교육시켜 반미한다."
후시진을 얘기하자면, 그의 웨이신계정을 이용한 마케팅의 조회수는 100만+팬이다. 업계내의 평균데이타로 계산하면, 개별광고가치는 20만 내지 30만위안이다. 계정가치는 2000만위안을 넘는다. 즉 후시진의 현재 몸값은 최소 2000만위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후시진이 환구시보에서 20년간 일한 급여를 합친 것보다 몇배는 많다. 후시진같은 좌파거물은 명리를 다 얻었다. 그들의 많은 언론은 현집권자인 시진핑에게 '고급흑' '저급홍'의 역작용도 나타났다. 예를 들면, 리이가 말한 것처럼 4천명이 죽은 것은 안죽은 것과 같다든지. 후시진의 천개핵탄두론같은 것이 그것이다.
후시진의 현재 처지는 루이청강(芮成鋼), 루웨이(魯煒)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후시진이 공개적으로 처분을 받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더 이상 고위층의 총애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후시진사건은 시진핑-장쩌민의 투쟁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때 후시진의 스캔들이 터져나온 것은 고산진호(敲山震虎)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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