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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조)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I): 조비 vs 조식

by 중은우시 2021. 10. 20.

글: 의사리(衣賜履)

 

조식의 곁에는 주로 3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의 정의(丁儀), 한명은 정이(丁廙)로 둘은 형제간이다; 그리고 또 한명은 총명하기 그지없는 양수(楊修)이다.

 

정씨형제의 부친은 정충(丁冲)으로, 패군(沛郡, 안휘성 회북시) 사람이다. 일찌감치 조조와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 정충은 조조가 한헌제 유협을 맞이하여 '천자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조조는 정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가 재능과 학문이 뛰어나다는 것은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하고, 조비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때 조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부친! 제 생각에 비록 남재여모(男才女貌), 즉 남자는 재주가 뛰어나야 하고, 여자는 미모가 뛰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여자들도 남자의 용모에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정의라는 사람은 여러 방면에서 다 좋고, 재능도 확실히 뛰어납니다. 그러나, 그는 한쪽 눈이 멀었습니다. 아끼는 딸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 차라리 복파장군 하후돈(夏侯惇)의 아들 하후무(夏侯楙)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조조는 조비의 의견을 따른다. 나중에 조조는 정의를 승상부의 관리로 임명하는데, 직접 만나보니 정의는 확실히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조조가 어떤 때는 말이 싼 편이다. 그래서 정의의 앞에서 탄식을 하며 말한다:

 

"정의. 자네는 너무 우수하구나 이런 간부라면 두 눈이 모두 멀었다고 하더라도 딸을 시집보냈을텐데, 하물며 눈 하나만 먼 것이 아닌가. 조비 그 녀석이 나를 속였구나..."

 

정의는 조조의 사위가 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긴다. 아마도 조비가 눈앞에 있었다면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어 정의는 조식의 편에 서게 된다. 나중에 조조는 수시로 조식을 태자로 세우고 싶다는 뜻을 말했고, 그때마다 정의는 조식의 재능을 극찬한다.

 

정이는 정의의 동생이다. 박학다식하여, 천상천하, 고금중외에 그가 모르는 것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정이는 조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임치후(臨菑候, 214년 조식은 임치후에 봉해진다)는 천성이 인효하고 자연스럽게 그것이 나옵니다.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 누구도 그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박학다식하며 문학이 절륜하다. 당금천하의 현재군자(賢才君子)는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그를 따르고자 합니다. 심지어 그를 위해 죽으려 합니다. 임치후는 하늘이 위나라에 내린 인물입니다. 그는 반드시 위나라의 복이 끊어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조조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이 아들을 좋아한다. 그가 어찌 네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단 말이냐. 내가 만일 그를 후계자로 세우겠다면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정이가 말한다:

 

국가의 흥망성쇠, 천하의 존망은 우매하고 천박한 자가 예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듣기로 신하를 아는 것은 군주만한 사람이 없고, 아들을 아는 것은 부친만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군주로서 명달혼외(明達昏聵)하든, 부친으로서 현능우매(賢能愚昧)하든 모두 신하와 아들을 잘 알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런 인식은 한 가지 일이나 한 가지 사물로서 하루 아침이나 하루 저녁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공께서는 여러 해동안 아들들에 대하여 성인의 학문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공께서 임치후를 후계자로 삼으시겠다면 그것은 위로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의 뜻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비록 결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지겠지만, 그것은 천추만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소신은 도끼로 죽임을 당하는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생각하는 바를 모두 말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역사기록에 따르면, 조조는 그의 말을 들은 후 "깊이 받아들었다"고 한다.

 

조조는 도대체 조식을 세워야 하는가 조비를 세워야 하는가를 놓고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밀함(密函)의 방식으로 신하들의 의견을 물어본다.

 

상서 최염(崔琰)은 공개적으로 대답했다:

춘추의 의리대로 마땅히 장자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오관장 조비는 인후하고, 충효하며, 총명하니, 당연히 그가 후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의 생각은 죽어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조식은 최염의 형의 사위이다. 그런데도 최염은 공개적으로 조비를 지지했다. 그러니 그의 말의 무게는 남다르다)

 

상서복야(尙書僕射) 모개(毛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마전에 원소가 장자 원담(袁譚)을 세울지 아니면 작은아들 원상(袁尙)을 세울지를 놓고 잘 처리하지 못하여, 결국 종족과 국토가 전부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같은 신하로서는 장자를 버리고 어린아들을 세우는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모개의 뜻은 장자를 버리고 어린아들을 세우는 것은 아예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한번은 조조가 모개의 등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나의 주창(周昌)이다. 옛날 유방이 태자 유영을 폐하고, 조왕 유여의를 태자로 삼으려 할 때, 주창이 극력 반대하였는데, 거의 유방과 죽기살기로 싸울려고할 정도였다)

 

하루는 조조가 사람들을 모두 물러나라고 하고, 단독으로 가후에게 묻는다. 가후는 마치 조조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수염만 쓸면서 고개를 기울여 하늘만 쳐다보았다.

조조는 약간 기분이 상해서 말한다: 가후. 내가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너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구나 도대체 뭘하는 거냐. 

가후는 마치 돌연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말했다. 아, 저는 금방 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조가 묻는다. 뭘 생각했다는 건가.

가후는 말한다. 저는 원본초(袁本初, 원소), 유경승(劉景昇, 유표) 부자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가후의 뜻은 원소와 유표가 나중에 패망하게 된 것은 모두 장남을 버리고 어린아들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가후는 절대로 뺀질이이다. 그는 조조에게 누구를 후계자로 삼으면 좋을지를 직접 얘기하지 않고, 원소, 유표가 장남을 버리고 어린아들을 세우려다가 망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그런 일도 있었는데,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조조는 다시 형옹에게 묻는다. 형옹은 말한다: 서자로 적자를 대체하는 것은 역대의 금기입니다. 전하께서는 자세히 고려해 주십시오.

 

(앞에서 우리는 얘기한 바 있다. 이 형옹은 조식의 가승이다. 항상 예법제도를 가지고 조식을 구속하였기 때문에 조식이 아주 싫어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긴장되었다. 형옹은 나중에 승상부로 옮겨서 일한다. 조식이 형옹에게 불경했다가 이번에 그 댓가를 아주 크게 치른 셈이다.

 

조비는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크게 긴장했다. 승상주부 양수와 정의, 정이 형제가 조식을 위해 계책을 계속하여 내는 것을 보고는 마음 속으로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비는 조용히 조가현(朝歌縣)의 현장으로 있는 오질(吳質)을 낡은 대나무상자에 숨겨 수레로 집안까지 불러와 그와 대책을 논의한다.

 

이 일을 어찌된 일인지 양수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즉시 조조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조조는 조사하도록 시키지 않았다. 조비는 이 일을 알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오질에게 말한다. 그러자 오질이 말했다:

뭐 큰 일도 아닙니다. 내일 다시 대나무상자를 집안으로 옮기십시오. 그리고 상자안에는 비단 몇 필을 넣어두십시오. 그러면 양수는 반드시 보고할 것이고, 대왕은 반드시 조사시킬 것입니다. 양수가 무고한 것이라고 대왕이 알게 되면 그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연 이번에는 조조가 사람을 보내어 조사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조조는 양수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조식이 양수와 교류하는 것은 조비가 조조에게 고발할까봐 겁내지 않았는데, 왜 조비가 오질과 교류하는 것은 겁을 냈을까? 필자의 이해로 그 당시 정식 경우, 예를 들어, 회의라든지, 출근이라든지 그럴 때는 교류할 수 있다. 다만 사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을 것이다. 조식이 양수등과 상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모두 업성에 있고, 승상부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적으로 교류하는 증거를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질은 다르다. 그는 조가현의 현장, 즉 지방관이다. 조가는 업성에서 개략 백여리 떨어져 있다. 비록 그리 멀지는 않지만, 상급의 명령이 없이는 임지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자체로 중죄이다. 만일 붙잡혀서 조비와 태자가 되는 일에 대해서 밀모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죽을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래서 양수는 오질을 고발한 것이고, 오질은 양수를 고발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일이 정말 발생했던 일이라면, 아마도 조비의 팀에서 조식의 팀에 판 함정일 것이다. 총명한 양수가 걸려든 것이고.)

 

한번은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출정을 했다. 조비와 조식은 같이 길가에 서서 배웅했다. 조식은 조조의 공덕을 칭송하는데,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멋진 문장이었고, 사람들은 감탄해 마지 않는다. 조조도 크게 만족했다. 조비도 문학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말재주는 조식에 못미쳤다. 그래서 조식이 말재주를 뽐내는 것을 보자 우울해진다.

이때 다시 오질이 귓속말로 조비에게 말한다:

위왕이 곧 길을 떠날 텐데 무슨 시나 쓰고 있단 말입니까? 울어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까? 묵묵히 눈물을 흘리면서 배웅하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대왕이 그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조조가 길을 떠날 때 조비는 절을 하면서 눈물을 철철 흘렸다. 부자간의 정이 깊은 것처럼. 너무 오열하여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조조와 부하들은 모두 조식이 금방 했던 화려한 배웅연설은 잊어버렸고, 조비의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려버리게 된다. 모두 이런 생각을 한다. 조식의 글은 확실히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부친에 대한 깊은 감정은 조비와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사서의 기록은 너무 간략하다. 우리는 굳이 오질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는지는 따지지 말기로 하자)

 

여러번의 겨루기에서 조비는 조식을 완전히 눌러버린다. 그런데, 재능이 뛰어난 조식은 다시 멍청한 일을 하나 저지르게 된다.

 

하루는, 조식이 공거령(公車令)에게 사마문(司馬門)을 열게 하고는 마차를 몰아 치도(馳道)의 중간을 달렸다. 조조가 그 말을 들은 후 대노한다. 그리고 공거령을 참형에 처한다. 그후 제후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더욱 엄격해지고, 조식에 대한 총애는 점점 식어간다.

 

<삼국지.조식전> 배송지의 주인 <위무고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조조가 일찌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생각에 아들들 중에서 조식이 가장 잘 대사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조식이 사적으로 나다니면서 사마문을 열고 금문까지 간 것을 보고 내 눈이 삐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후에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제후장사, 및 다른 간부들은 왜 내가 출정할 때 반드시 제후를 데려가는지 아는가? 조식이 사마문을 함부로 연 후로 나는 제후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외출하면, 이런 자들이 마음대로 행동할 것이 겁난다. 그래서 아예 내가 데려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은 누구를 믿어야할지 모르겠다.

 

(이 일은 <삼국지.조식전>에 나온다. 겉으로 보면 이 일은 조비가 태자에 오른 후에 일어난 것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 일은 분명 조비가 태자에 오르기 전에 일어난 것같다.

독자들은 아마도 조조가 이렇게 크게 화를 내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같다. 조식은 그저 치도를 한번 달린 것뿐이지 않은가. 사마문을 한번 지나간 것뿐이지 않은가. 그게 무슨 큰 일인가.

기실 조식은 큰 금기를 범한 것이다.

치도에 관하여 간략히 소개하면 이러하다: 치도는 당시의 고속도로이다. 진나라때 함양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가는 치도를 만들었다. 교통망이 이미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사료기재에 따르면, 가장 정규의 치도는 노면의 너비가 69미터로 현재의 기준으로 하면 12대의 트럭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다. 치도의 중간에는 수목으로 구분하여 3장너비(6.9미터)의 노면이 있다. 이는 황제가 수레를 타고 가는 전용도로이다. 다른 누구도 다른 어느 마차도 사용할 수 없다.

치도의 중간은 황제의 어도이기 때문에 치도를 가로지르는 것은 아주 골치아프다. 사료에 따르면, 한성제 유오가 태자로 있을 때, 부친 한원제 유석이 긴급히 오라고 했다. 유오는 비록 태자이지만, 감히 치도를 가로지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서 갔다. 그후 한원제는 명을 내려 태자는 치도를 가로지를 수 있도록 한다고 명한다.

공거령은 공거사마령(公車司馬令)의 약칭이다. 위위(衛尉)의 지휘를 받으며 황궁의 사마문(남궐문)을 관장한다.

이제 우리는 잘 알았을 것이다. 조식이 사마문으로 나갔는데, 그의 신분이라면 당연히 측문으로 나가야 한다. 다만 그가 공거령에게 사마문의 정문을 열게 하고, 다시 수레를 타고 치도를 달렸는데, 이는 황제 혹은 조조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운데 길로 마차를 달리는 것은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조조의 분노를 샀고, 이 일로 조조는 조식에게 크게 실망한다. 재수나쁜 공거령만 참형을 당했을 뿐이다.

규정대로라면 태자는 개략 전용도로로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조식은 태자도 아니다. 사마문을 통과하고 치도를 달린 것은 그 자신이 이미 태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식이 죽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외에 사서기록을 보면, 이 일은 업성에서 발생했다. 즉, 조조는 황성의 규격에 따라 업성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사서에 따르면, 조식은 일처리를 마음대로 했으며, 언행을 함부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비는 권모술수를 쓰고 솔직한 심정은 감추었으며, 스스로를 좋게 포장했다고 한다. 궁중의 사람들과 조조의 부하들은 대부분 조비에 대하여 좋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217년 조조는 마침내 조비를 태자로 세운다.

 

(조비, 조식이 태자의 자리를 다툰 과정을 보면, 쌍방은 각각 장점이 있고, 투쟁도 상당히 흉험했으며, 결국 조비가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식과 조비의 태자쟁탈전은 마치 견자단과 타이슨이 싸운 것과 같다. 근본적으로 같은 체급이 아닌 것이다. 내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증거가 있다)

 

<삼국지. 문제기> 배송지 주인 <위략>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조조가 당시 태자를 세우지 않았는데, 태자(조비를 가리킴)는 스스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즉, 부친이 태자로 세워주지 않는 점에 대하여 조비는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스스로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이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무제 유철의 장남 유거는 30여년간 태자로 있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돌연 무고지화가 일어나고, 유거의 가족은 거의 참초제근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확정이 되기 전까지, 누구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약간 걱정하고, 약간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조조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온다.

첫째, 조비는 재능이 있었다. 문무에 모두 능했다. 그래서 '삼조'로 나란히 불릴 정도니 수준은 말할 것도 없다. 단지 부친 조조, 동생 조식만큼 그렇게 빛난 것이 아닐 뿐이다. 태자를 뽑는 것은 무슨 박사를 뽑는 것이 아니다. 

둘째, 조비의 행정능력은 조식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전에 말한 것처럼 조조는 계속 조비를 키워왔다. 조비는 독자적으로 적지 않은 업무를 처리했고, 모두 조조를 만족시켰다.

셋째, 조비는 강력한 친우단(親友團)이 있었다. 이 점은 심지어 앞의 두 가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방이 태자 유영을 폐위시키고 조왕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했을 때, 여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만 주창을 위시한 신하들이 막아주었다. 이 일 때문에 여후는 주창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비교를 하지 않으면 상처가 없다.

 

우리는 사서의 기록을 보자. 조식의 주위에 있는 사람은 총명한 양수, 정씨형제, 공부에 뛰어난 한단순, 그리고 양준(楊俊)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다. 조조는 양준에게 물어본 바 있다. 조비, 조식중 누가 우수한지를 양준은 비록 두 공자가 모두 훌륭하다고 말했지만, 마지막에는 그래도 조식이 조금 더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량급의 인물들은 그의 곁에 아무도 없다.

 

조비의 친우단은 전혀 다르다. 

앞에서 말한 모개, 최염, 가후, 형옹등은 모두 최고의 인재들이다. 모두 조조가 믿는 국가의 동량이다. 형옹은 나중에 태자소부, 태부, 시중, 상서복야, 사례교위, 구경의 으뜸인 태상에 오른다.

조비를 타이슨에 비유했는데, 겨우 이 정도에 그칠 수는 없다. 사료를 뒤져보면 조조를 지지한 사람들이 많다.

 

하후돈: 조조가 딸을 정의에게 시집보내려 할 때, 조비는 조조에게 하후돈의 아들 하우무에게 시집보내도록 권한다. 그래서 조비는 정의에게 원한을 산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조비와 하후돈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 것이다. 하후돈이 어떤 인물인가. 그가 조비를 지지한다면 그 무게는 남다르다.

 

환계(桓階): 당시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죽기살기로 싸울 때, 원소의 맹우이자, 형주목인 유표는 군대를 파견하여 지원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장사태수 장선(張羨)이 반란을 일으켜, 유표가 장선을 토벌하러 갔기 때문이다. 장선을 진압한 후에는 원소가 이미 패배했다. 장선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 환계때문이다. 그래서 조조는 형주로 남하했을 때 즉시 환계를 중용한다. <삼국지. 환계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태자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임치후 조식이 조조의 총애를 받았다. 환계는 조조에게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면서 조비의 장점을 얘기하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조비는 대왕의 모든 아들들 중에서 가장 인덕이 있고, 관후하고, 활달하며, 절제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천하가 다 압니다. 그리고 조비는 장남입니다. 대왕이 나에게 조식을 태자로 세울만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저를 미혹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조조는 환계의 말을 듣고 그의 뜻이 굳은 것을 알았고, 더욱 그를 중용하게 된다.

 

위진(衛臻). <삼국지. 위진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처음에 조조는 태자를 세우지 않았다. 조식을 세우려고 생각했다. 정의등은 조식의 편을 들게 하기 위해 위진에게 연락한다. 위진은 대의를 내세워 거절한다. 위진은 나중에 위나라의 사공, 사도에 오른다.

 

이상은 정사에서 찾아낸 사람들이다. 명확히 기재되어 있고, 조비를 확실하게 지지하고 조식에 반대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우리는 먼저 조비의 성격특징부터 얘기해야 한다. "나를 반대한 적이 있는 자는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

예를 들어 조식을 지지했던 그 몇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양수: 조비가 죽이기 전에 조조가 먼저 죽였다.

정의형제: 조비가 왕위에 오른 후, 구실을 찾아서 정의, 정이형제 및 정씨집안의 남자들은 모조리 죽여버린다.

양준: 황초3년(222년), 조비는 양준을 감옥에 넣는다. 상서복야 사마의, 상시 왕상, 순위등이 양준을 용서하도록 청하며 머리를 땅에 찍어 피가 흥건했다. 그러나 조비는 허락하지 않았다. 양준은 말한다: 나는 나의 죄를 안다. 그리고 자살한다. 양준이 무슨 죄를 안다는 것인가. 앞에서 조비가 조식만 못하다고 조조에게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한단순: 조비가 황제를 칭한 후, 한단순은 박사, 급사중이었다. 한단순은 천여자의 <투호부>를 지어 조비에게 올린다. 조비는 문장이 괜찮다고 여겨 비단 천필을 하사한다. 투호는 고대 사대부들이 연회를 열 때 했던 놀이이다. 조비도 그저 글벌레인 그는 그다지 문제삼지 않고 그냥 살려준다.

 

조식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이런 최후를 맞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조비가 중용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를 지지했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최소한 조식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몇명을 골라보면,

 

조인: 조비의 동생 조창이 오환을 정벌할 때, 조비는 당시 태자였다. 조창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대장이 되려면 마땅히 법도를 지켜야 한다. 너는 마땅히 정남장군 조인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조비가 위왕을 계승한 후, 조인을 거기장군, 도독형주, 양주, 익주제군사로 삼고 진후에 봉하며 식읍 이천호를 추가해 주었고 이전의 것까지 합치면 3500호가 된다.

 

종요: 이 사람은 위나라의 중신이다. 위나라의 상국을 지낸다. 조비가 태자로 있을 때, 그에게 오숙부(五熟釜, 오숙부는 취사도구이다. 안에 오격으로 나뉘어 있어 동시에 서로 다른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 현재의 원앙훠궈의 조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를 하사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어혁유위(於赫有魏), 작한번보(作漢藩輔). 궐상유종(厥相惟鍾), 실간심려(實幹心膂), 정공숙야(靖恭夙夜), 비황안처(匪遑安處). 백료사사(百寮師師), 해자도구(楷玆度矩)

대체적인 뜻은 이러하다: 당당한 위나라는 한나라의 병풍이다. 상국이 될 수 있는 것은 종요뿐이다. 그는 바로 위나라의 심장이고 척추이다. 밤새도록 공경하며 어떻게 해야 편안하게 처할지를 모른다. 당신은 백관의 우두머리이고, 이곳에 적어서 많은 사람들의 모범으로 삼는다.

조비와 종요의 관계는 보통으로 좋은 것이 아니었던 것같다.

 

허저: 조비가 황제에 오른 후, 허저를 만세정후에 봉하고, 무위장군, 도독중군숙위금병으로 삼는다. 아주 가까웠다.

 

진군(陳群): 조비가 태자로 있을 때, 진군을 상당히 존경하여, 친구의 예로 대한다. 자주 공자의 말을 빌어 진군을 칭찬했다. "나에게도 안회가 있어, 제자들과 나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 그 말에 숨은 의미는 진군이 있어서, 그의 친구가 더욱 많아졌다는 것이다. 진군은 위나라의 삼공에 오른다.

 

진교(陳矯): 조조가 한중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낙양에서 사망한다. 업성에 남아 있던 간부들은 예제에 따라 조비가 위왕을 승계하려면 반드시 황제의 조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진교가 말한다: "위왕이 업성의 바깥에서 사망하여 천하가 불안해 하고 있다. 태자 조비는 마땅히 하루빨리 슬픔을 거두고 즉위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원근을 다독여야 한다. 하물며 위왕의 아끼는 아들이 곁에 있는데, 만일 형제간에 사변이라도 일어나면 국가가 위험해질 것이다."

진교의 말이 무슨 뜻인가? 조조가 낙양에서 죽었는데, 조비가 즉시 왕위를 승계하지 않으면, 조식이 조조의 곁에 있으니, 만일 위왕의 조서를 위조한다면 천하가 대란에 빠질 것이고 위나라는 끝장이라는 것이다.

진교는 위나라의 삼공에 오른다.

 

(이 일은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있다. 조조가 한중에서 회군할 때, 낙양에 도착한 후, 중병을 앓는다. 급히 조창을 불렀다. 그러나 조창이 낙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조조는 죽고 만다. <삼국지.조창전. 배송지 주인 <위략>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조창이 낙양에 도착한 후 조식에게 물었다. 부친이 나를 불렀는데 너를 위왕으로 세우기 위한 것이었는가. 조식은 말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 너는 원소의 형제가 그렇게 해서 망한 것을 모르느냐.)

 

이들은 모두 조조, 조비의 중용을 받는다. 그러므로, 필자의 판단에 이들은 모두 조비를 지지했다. 최소한 조식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럼 다시 쌍방의 역량을 비교해보자:

 

조식측: 양수, 정의, 정이, 양준, 한단순

조비측: 최염, 모개, 형옹, 가우, 정욱, 하후돈, 환개, 위진. 개략 포함시킬 수 있는 인물로 조인, 종요, 허저, 진군, 진교.

그리고 아이디어를 냈던 오질은 이들과 비교하면 같은 등급이 아니다.

 

양측을 비교해보면, 조식과 조비의 싸움은 견자단과 타이슨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만 해도 조식을 많이 띄워준 것이다. 차라리 기공사기꾼과 타이슨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폭탄을 아직 터트리지 않았다.

 

모두 기억하는가? 제1회에서 말한 조왕 조간. 조간이 3살때, 모친이 죽었다. 조간이 5살 때, 조조의 병이 위중해진다. 임종전에 조간을 조조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조비는 조간에게 아주 잘 대해주었다. 이 동생이 자신을 아빠라고 부를 정도였다. 조비가 죽을 때, 다시 조간을 자신의 아들 조예에게 부탁한다.

 

조비는 왜 조간에게 이렇게 잘해 주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조간의 모친이 태조(조조)의 총애를 받았는데, 문제(조비)가 후계자가 되는데 조간의 모친이 힘을 썼다"

 

조조가 태자가 되고자 할 때 마침 조간의 모친이 가장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조비를 위해 좋은 말을 조조에게 많이 해주었다. 조비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아들을 잘 돌봐준 것을 보면 그녀가 큰 힘을 보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조는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조비는 조간의 모친에게 빚진 것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조조는 조간을 그에게 부탁하고 안심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머리 속에서 하나의 화면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조비, 조식형제가 천하의 대세를 논할 때, 조비는 화제를 바꾸어 이렇게 말한다:

"형제여, 네가 비록 말재주는 뛰어나지만, 조정의 대신은 모두 나의 사람이다. 부친의 후궁도 나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큰형이다. 조식! 네가 뭘 가지고 나와 싸울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