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의사리(衣賜履)
211년 정월, 한헌제 유협이 조서를 내려, 조조의 세자 조비를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에 임명하고, 관속(官屬)을 둘 수 있게 해서, 승상 조조의 부수(副手)로서의 역할을 하게 한다. 부승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통하여, 필자는 이전에 판단한 바 있다. 조조는 이미 조비를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한 것이다)
부승상으로서, 개부(開府)도 할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태자의 지위는 조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조식이 급속히 부상하여, 조비에게 큰 위협이 된다. 사서에 따르면 조조는 성격이 기민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재능이 특출났고, 민첩하며 지혜가 많아, 조조가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조식의 재능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당시 한단순(邯鄲淳)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박학다식한 것으로 유명했다. 초평연간(190-193), 한단순은 장안에서 형주로 피난간다. 조조는 일찌감치 그의 명성을 들었다. 남하하여 형주를 토벌할 때, 사람을 보내 그를 부른다. 그와 얘기를 나누어본 조조는 그가 진정한 학식을 지니고 있고, 허명을 얻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조조는 그를 극히 존중한다. 조비, 조식 형제도 학술계에서 활약했으니 한단순의 명성을 알고 있었다. 형제는 부친에게 신청을 한다. 한단순을 자신의 곁에 둘 수 있게 해달라고. 조조는 아마도 이런 학문은 조식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는지, 한단순을 조식에게 보낸다.
한단순을 보고는 조식이 아주 기뻐한다. 공손하게 자리에 앉기를 청했지만, 애기를 먼저 시작하지는 않았다. 당시 날씨가 더워서, 조식은 밖으로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나서 다시 분을 바른다. 그 후에 한단순의 앞에 앉아서 자신의 재능을 뽐낸다.
조식은 머리에 관을 쓰지도 않았고, 팔도 드러내서 먼저 호인(胡人)의 춤을 보여준다. 이어서, 도환(跳丸, 弄丸이라고도 부르며 두 손으로 약간의 구슬을 연이어 받아내는 것이다. 하나는 손에 쥐고 하나는 공중에 떠있는 것이다)을 보여주었다.
한단순이 구슬을 몇개나 돌리는지 다 헤아려보기도 전에, 조식은 도환을 끝내고, 무검(舞劍)을 선보인다. 춤을 아주 잘 추었고, 검화(劍花)를 만들어내고는 바로 멈추었다. 그 다음에는 입을 열어 토크쇼를 시작한다. 일사천리로 말을 이어갔다. 한단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식은 말을 마치고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는 자세를 잡으면서 한단순에게 묻는다: 한단선생 어떻습니까?
한단순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식은 내실로 들어가서 잠시 후에 옷을 갈아입고 나와 한단순과 학술문제를 나누기 시작했다. 개략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이다:
천지우주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混元造化之端)
만사만물의 기원과 변화(品物區別之意)
복희이래 성현명신열사에 대한 평가
고금의 우수한 문장과 시부의 암송
관료로서 주의해야할 약간의 문제
행군전투시 적군과 아군의 강약, 승부지세의 변화
그의 말을 듣고 한단순은 눈을 크게 뜨고, 벌린 입도 다물지 못했다. 그때 짝짝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식이 박수를 쳐서 하인을 부른 것이다. 그리고 술을 가져오고 고기도 올려라라는 말을 듣는다.
주방에서 술과 고기를 가져와 올린다. 사서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술과 고기가 도착했을 때, "좌석묵연(坐席默然), 무여항자(無與伉者)"(좌석은 침묵이 흘렀고, 짝이 될만한 자가 없었다)
('좌석묵연, 무여항자'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첫째는 한단순이외에 다른 손님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조식의 빠른 템포를 따라가지 못해서 아무도 끼어들지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오직 한단순 한 명밖에 없었는데, 계속 말도 한마디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원래는 한두마디 응대해야 하지만, 조식의 기세가 너무 대단해서, 도저히 무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식은 이 정도로 엄청났던 것이다!
태양이 질 때쯤, 한단순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부터 한단순은 스스로의 재주를 자랑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오직 조식에 대한 얘기만 했다. 그의 재능에 감탄했고, 조식을 '하늘이 내린 사람(天人)'이라고 불렀다. 당시 조조는 아직 태자를 정식으로 세우지 않았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수시로 조식을 태자로 세울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한단순은 기회만 있으면 조조에게 조식의 재능을 칭찬했다.
(한단순이 그저 허명을 얻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삼국지.왕랑전> 배송지 주인 <세어>에 이런 내용이 있다.....동우, 가홍, 한단순, 설하, 외희, 소림, 악양등 7명이 유종(儒宗)이다
<삼국지.유소전> 배송지 주인 <문장서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초기에, 한단순, 위기 및 위탄이 서예를 잘해서, 유명했다.
<삼국지.관녕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호소는 예서를 잘 써서, 종요, 한단순, 위기, 위탄과 나란히 이름을 떨쳤다.
이를 보면, 한단순은 당시에 공인된 서예의 대가일 뿐아니라, 당시의 7명의 유학의 종사급 인물중 하나이다. 이런 인물이 조식의 앞에서 말한마디 하지 못하고 나왔다니. 이를 보면 조식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제로 돌아와서, 태자를 뽑는 것은 쇼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장면에서 노래를 잘 하는지 아닌지, 유머스럽게 하는지 아닌지, 춤사위가 뛰어난지 아닌지, 일곱걸음내에 시를 짓는지 아닌지같은 재능만으로는 태자에 오를 수가 없다.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없을 뿐아니라, 어떤 때는 부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귀한 출신으로 태어나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왕왕 고독하다: 바꾸어 말하면, 너를 받쳐주는 사람이 없게 된다. 너에게는 팀이 없다.
조식이 재능을 드러내고 있을 때, 조비는 무엇을 했을까? 몇 가지 일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전주(田疇)라는 사람이 있다. 이전에 적지 않은 공로를 세웄다. 조조가 그에게 작위를 내리려 할 때, 전주는 죽어라 받지 않았다. 208년이 되어, 조조는 다시 전주를 떠올린다. 그래서 그에게 작위를 내리고자 했다. 만일 네가 작위를 받지 않으면 너의 뜻은 지키는 것이 되지만, 국가의 법도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원래 주려고 했던 작위를 그에게 내리려 한다. 그러나 전주는 상소를 올려 받지 않겠다고 한다. 윗사람이 작위를 주겠다는데 죽어라 받지 않겠다고 하다니 이는 조직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련부서에서 전주를 탄핵한다:
"전주 이 자는 스스로 청고하다고 여겨서, 성인의 큰 도리를 위배하면서, 자신의 명절을 세우는 것만 신경쓴다. 마땅히 그의 직위를 박탈하고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조조는 조비와 대신들에게 이 일을 논의하게 시킨다. 조비는 전주의 거동은 이전에 초나라의 영윤 자문이 봉록은 사양한 것이나, 신포서가 상을 받지 않겠다고 도망친 것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니 억지로 주려고 하지 말고, 그의 절조(節操)를 칭찬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상서 순욱, 사례교위 종요도 전주의 사양을 윤허해야 한다고 했다. 조조는 다시 몇번 노력했지만, 전주는 끝까지 작위를 받지 않았다.
(이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지만, 우리가 주의하여야할 것은 조비가 문제를 처리할 때의 태도이다. 순욱과 종요는 조씨정권의 핵심인물이다. 그들과 조비의 견해가 일치한다. 각도를 바꾸어 놓고 말하자면 그들은 조비의 편에 선 것이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네가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너의 팀, 너의 지지자, 너희들이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가 비로소 문제의 관건이다.
초나라의 영윤과 신포서에 대하여는 각자 알아서 찾아보기 바란다.
212년, 조조가 관중을 정벌하러 나섰을 때, 조비를 업성에 남겨서 지키게 한다. 하간사람 전은, 소백이 반란을 일으키고, 유주, 기주의 백성을 선동하여 혼란이 일어났다. 조비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토벌하고자 한다. 그러나 공조 상림이 말한다:
북방의 관민은 안정을 좋아하고, 혼란을 싫어합니다. 그들이 조정에 귀순한지 이미 오래 되었으며, 법을 지키는 자들이 다수입니다. 전은, 소백과 같은 자들은 그저 개나 양이 모여있는 것에 불과하니, 그다지 큰 혼란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대군이 외부에 나가 있고(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마초, 한수등을 정벌하러 나가 있었다), 외부에 강적이 있습니다(유비, 손권등을 가리킬 것이다). 장군은 업성을 지키고 있으니 천하의 안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경솔하게 군대를 이끌고 토벌에 나서게 되면 설사 평정하더라도 위무를 드러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조는 장군 가신을 보내 전은, 소백으로 하여금 평정하게 한다. 금방 평정된다.(조조도 조인을 평정하도록 보냈다). 반군은 마지막에 1천여명이 남았고, 투항하겠다고 한다. 조비는 사람들과 투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논의한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조가 이전에 명령을 내린 바 있는데, 포위된 후에 투항한 자들은 모조리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정욱이 반대한다: 투항한 사람을 주살하는 것은 전란시기에 취한 일종의 임기응변적인 전략이다. 나중에 투항한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천하에 하루빨리 귀순하도록 알리기 위한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게 되었을 때는 투항해봐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지금 천하는 기본적으로 평정되어 있고, 사건도 우리나라의 경내에서 일어났다. 그들을 죽여봐야 위하작용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투항하면 죽인다는 이미지를 주게 된다. 신의 생각으로 더 이상 살륙하면 안됩니다, 만일 반드시 죽여야겠다면 먼저 조조에게 보고한 후에 하십시오.
사람들은 다시 말한다. 군사적인 일은 혼자서 결정하면 되는 것이지 보고하여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다.
정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조비는 내실로 돌아간 후 따로 정욱을 부른다. 혹시 하시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정욱이 말한다.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긴급상황인 경우, 생사존망이 걸린 경우에는 반드시 순식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들 반란군은 모두 가신장군의 수중에 있습니다. 며칠간 더 살려두더라고 천하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단지 며칠 더 먹이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노신은 장군이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비는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정욱의 말을 따르겠다.
조비는 사람을 보내 조조에게 보고한다. 조조는 과연 사면하고 죽이지 말라고 지시한다. 조조는 나중에 이 일을 정욱이 건의했다는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며 말했다. 정국, 그대는 군사전략에 밝을 뿐아니라, 부자간의 관계를 잘 처리하는데도 뛰어나구나.
(전은, 소백의 반란을 대처하는데서 조비는 아주 적절하게 행동했다. 그가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듣고, 정확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군주로서 필요한 자질이고, 태도이다. 조비가 스스로 투항한 병졸을 살려주지 않고, 조조에게 보고하여 지시를 받은 것은 아주 정확했다고 본다. 이는 부친에게 한 가지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아들은 영원히 부친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조조는 업성에 돌아온 후 정욱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조조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정욱이 뭐라고 했는가. 노신은 장군이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길 바랍니다. 부친의 말을 들으십시오. 이 일을 통해서, 정욱도 조비를 지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분들은 아마도 필자의 이런 판단이 너무 지나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몇 가지 작은 사례를 가지고, 조비, 조식이 같은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기로 하자.
한번은 조조가 조비와 조식에게 각각 업성의 한 성문을 나가라고 하고, 다시 비밀리에 성문에 지시를 내려 두 사람을 내보내지 말도록 지시한다. 조비가 성문에 도착하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부친에게 돌아와서 보고한다. 그러나 조식은 양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만일 성문의 수비장수가 내보내주지 않으면, 왕명을 받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성문의 수비장수의 목을 베라고. 조식은 그의 의견을 듣는다.
이 일에 대하여 조조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사서에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필자의 이해로, 조비는 안정적이고, 제도에 따라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니, 후사를 맡겨도 안심이 된다; 조식은 총명하고, 기민하며, 수시로 규정에 따르지 않고 일을 과감하게 처리한다. 아마도 업성을 지키던 사람이 조식이었다면, 아마도 투항한 병사들을 죽였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조조의 명에 맞추어 처리한 것이지만, 실제로 조조는 자신에게 맞선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규정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생활에서나 업무에서 많은 경우 이처럼 규정에 따라 일처리하는 것은 사람을 열불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 농약을 먹고 자살한 화물트럭기사라든지...그를 자살에 이르게한 업무인원은 규정을 위반했던가? 아니다. 그저 열불이 날 뿐이다.
조비는 사람을 보내 태중대부 가후(賈詡)에게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방법을 묻는다. 가후는 이렇게 말한다:
"원컨대 장군께서 덕성(德性)과 기도(氣度)를 보여주십시오. 직접 가서 미천한 사람이 하는 일을 하시고, 아침저녁으로 싫증내지 말고 하십시오, 아들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법도를 어기지 마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조비는 가후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깊이 자신을 갈고닦았다.
(이 장면에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첫째, 가후는 조비에게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얘기했다. 이걸 그저 상투적인 말이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무슨 덕성을 보인다든지, 직접 가서 하라든지, 싫증을 내지말고 열심히 하라든지 이런 말들이야 말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점이 있다. 절대로 아들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법도를 어기지 말라고 했다. 이것이 가후가 한 건의의 핵심이다. 이는 정욱이 조비에게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고, 부친이 어떻게 결정했을지에 따라 결정하라고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둘째,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가후와 조비의 관계이다. 직접 어떻게 하면 태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까지 자문받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조비의 인간관계와 교류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고, 조식과는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식의 교류관계는 어떠했을까?
조조는 자신의 몇몇 아들을 위하여 뽑아준 관리의 기준은 아주 높았다. 형옹(邢顒)을 조식의 가승(家丞)으로 임명한다(동한때, 제후로 식읍 천호이상이면, 2명의 간부를 보내어 집안일을 처리하게 했다. 한명은 가승이고 다른 한명은 서자(庶子)이다. 천호가 되지 않으면 가승은 보내지 않는다). 형옹이라는 사람은 성격이 고집있고 원리원칙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의규범에 따라 조식을 구속했고, 전혀 양보라곤 몰랐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러나, 서자인 유정(劉楨)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문체가 화려했다. 조식은 그를 아주 좋아했다.
(유정은 건안칠자의 한명이다. 글을 당연히 잘 썼다. 건안칠자는 공융, 진림, 왕찬, 서간, 완우, 응양, 유정이다. 대체로 건안시기에 '삼조'를 제외하고 문학적 성취가 뛰어난 인물들이다. 우리가 주의해야할 점은 건안칠자의 문학적 성취는 대단하지만, 관리로서 두드러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조조는 자신이 대시인이고 대문장가이지만, 관리로 기용할 때는 그다지 문장실력은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정은 조식에게 이런 서신을 써서 보냈다:
가승 형옹은 북방의 영웅인물이다. 어려서부터 고상한 절개를 지녔고 성정이 고원(高遠)하다. 담백한 것을 좋아하고 말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이치를 담은 말을 한다. 그는 진정한 아사(雅士)이다. 나 유정은 그와 비교할 수가 없다. 그와 좌우에서 당신을 모실 자격이 못된다. 다만, 내가 받은 대우는 격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형옹에 대하여는 소홀히 하고 태만히 했다. 나는 사람들이 뒤에서 씹을까봐 우려된다. 당신은 불초한 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현명한 자는 보고도 본체만체한다고. 그저 봄날에 꽃을 딸 줄이나 알지, 아예 가을에 과실을 거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그저 서자에 대하여만 잘 대해주고, 가승에 대하여는 냉담하게 대한다고. 이렇게 되면 당신이 비방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은 모두 나의 죄이다. 그래서 전전반측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조식은 유정의 서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사서에 기록이 없다. 다만, 나는 책임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재능이 넘치던 조식은 유정의 말을 그저 귓등으로 흘려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개략 217년 혹은 약간 전에 두 형제의 싸움은 더 거칠어진다.
'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 > 역사인물 (조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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