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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청 중기)

옹정제는 왜 한족신하 장정옥(張廷玉)을 중용했을까?

by 중은우시 2021. 10. 12.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청나라역사상 옹정제는 냉면황제(冷面皇帝)로 유명하다. 그는 여러 형제들과의 후계자쟁탈전에서 승리했고, 겉으로는 원한을 잊어버린 것처럼 모두에게 관직을 올려주고, 상을 하사했지만, 나중에 형제들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심지어 당시 그의 등극을 도와주었던 공신들마저도 제거해버린다. 역사상 옹정제에 대한 기록은 가혹(苛刻), 예지(睿智), 지인선용(知人善用)등의 내용이 많다. 대신들 중 누구를 제거했는지에 대하여는 의혹을 품게 된다. 다 같은 공신인데 왜 연갱요(年羹堯)와 룽커둬(隆科多)는 제거하고, 장정옥은 중용했을까?

 

먼저, 연갱요를 얘기해보자. 그의 죽음에 관하여 어떤 사람은 옹정제가 그의 공로가 너무 커서 주군을 뒤덮을 정도여서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역량을 한껏 이용한 후에 황위가 안정되자 토사구팽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총애를 믿고 교만하여, 마구잡이로 횡행하여 '혈세강하진(血洗江夏鎭)'같은 참극을 만들어내서 살신지화를 부른 것이라고 한다. 이런 두 가지 가능성은 모두 존재한다. 청나라의 중신으로서 중병을 장악하고 변방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만일 그가 자신의 분수를 지켰다면, 옹정제가 그를 죽여 자신의 날개를 잘랐을 리가 없다. 

 

연갱요와 비교하면 룽커둬의 죽음은 약간 문아(文雅)하다. 그는 스스로 옹정제의 즉위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그리고 자신은 황제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조정에서의 지위는 아주 높았고, 자신의 일당을 모아서 권력을 농단했다. 비록 옹정제가 여러번 용서해 주었지만, 그는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마침내 황제는 그의 가산을 몰수하고 연금시킨다. 결국은 연금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두 사람과 비교하면, 장정옥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옹정제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첫째, 일당을 만들지 않았다. 황제에 있어서, 가장 꺼리는 것은 누군가 자신의 황위를 노리는 것이다. 비록 신하들은 모두 황제를 위해 일하지만, 그들에게 나눠준 권력이 커진 후에는 누구든지 득촌진척의 더욱 큰 이익을 꾀하게 되는 법이다. 이렇게 발전하면 언젠가 황제의 권세에 위협이 된다. 그리하여 황제는 친척의 정도 고려하지 않고 룽커둬를 연금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나 장정옥은 훨씬 기민했다. 그는 누가 황제가 되는지는 신경쓰지 않고, 굳이 머리를 써서 줄을 서지 않았다. 그는 조정에 여러 해동안 있으면서, 강희제의 아래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일을 했다. 조정대신들과 지나치게 많이 접촉하지도 않았다. 이는 공연한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스스로 깨끗하게 행동하는 것에 옹정제와같이 의심이 많은 황제도 안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즉위후에 장정옥을 발탁하게 된다. 

 

둘째, 능력이 뛰어났다. 옹정제가 사람을 쓸 때는 학식과 능력을 중시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편견도 있었다. 그는 과거출신의 신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속뜻을 감추는데 능하고, 서로 비호하며, 쉽게 당파를 결성하여 통제하기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장정옥의 한차례 경력은 옹정제를 더욱 안심하게 만들었다. 장정옥은 26살때 회시에 참가하는데, 부친이 그때 과거시험총재관을 맡고 있어서, 피혐(避嫌)을 위하여 그를 과거에 참가하지 못하게 한다. 여러해 후에 비로소 그는 과거에 급제한다. 이를 보면 장정옥의 집안교육이 아주 엄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옹정제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정옥 본인의 능력과 업무처리수준은 확실히 출중했다.

 

옹정제가 즉위했을 때, 각 부문을 살펴보며 능력이 있는 대신들을 발탁했다. 이때 장정옥이 그의 눈에 들었다. 그는 황제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했고,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논리는 분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금방 발탁된다. 옹정4년때, 호부상서가 되고 그후에 계속 옹정제의 곁에 머문다. 그는 황제가 가장 믿고 일을 맡기는 비서가 된 것이다.

 

옹정제같은 인물에게 중용되려면 반드시 보통사람보다 몇백배 노력해야 한다. 황제는 업무처리때 아주 자세하고 진지하기 때문에, 자주 밤을 새워가면서 상소문을 읽는다. 그래서 매일 오랜 시간을 들여서 업무를 보았다. 황제의 비서인 장정옥도 자주 황제로부터 궁중에 남아서 당직을 서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이많은 노신은 거기에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따랐다.

 

그리하여, 장정옥은 청나라역사상 유일하게 한족으로서 태묘(太廟)에 위패가 모셔진 한족신하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