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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화웨이사건

멍완저우 어린 시절의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21. 10. 10.

글: 체육노사(體育老師)

 

5살짜리 멍완저우는 청두(成都)에서 두윈(都勻)으로 보내어진다. 이는 고의적인 궁양(窮養, 가난으로 고생하게 기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딸은 부양(富養)해야 한다고 말한다. 홍색공주로 태어난 멍쥔(孟軍)은 왜 자신의 딸을 '궁양'한 것일까? 보통사람들이 의심하는대로 멍쥔이 멍완저우의 친엄마가 맞기는 한 것일까?

 

현재 찾아볼 수 있는 자료에 따르면, 멍쥔이 멍완저우의 친모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왜 딸을 '궁양'했는지, 무슨 남모르는 비밀이 있지 않다면 무슨 다른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홍색중국의 일들은 실로 천방야담(天方夜譚)이라 할 만하다. 우리같은 소민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홍색공주의 숨은 비밀을 우리가 어찌 알아낼 수 있을까? 이 글은 그저 멍완저우가 어릴 때 '궁양'당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쓰촨(四川)은 천부지국(天府之國)이다. 토지는 비옥하고 물자는 풍부하다. 청두는 쓰촨성의 성회도시로 대평원이며, 천부지국의 보배이다. 그러나 꾸이저우(貴州)는 역대이래로 귀양가던 곳이다. 하늘은 삼일이상 맑은 날이 없고, 땅에는 편평한 곳이 3치가 넘지 않으며, 사람은 삼푼의 은자를 가진 사람이 없는 야랑국이다. 성회도시는 꾸이양이다. 지금도 여전히 전국에서 부채율이 가장 높고, 퇴직금이 가장 적으며, 가장 가난한 도시이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멍완저우는 화웨이의 창업자 겸 CEO인 런정페이의 딸이다. 런정페이는 쓰촨성 부성장 멍동보(孟東波)의 데릴사위이다. 자료에 따르면, 멍완저우는 청두에서 출생했다. 부성장의 외손녀인 그녀는 당연히 성정부관사에서 편안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양변기도 사용하면서(당시 가난했던 꾸이저우성정부의 관사에도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멍완저우는 소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합쳐서 최소한 12년을 두윈에서 생활했다. 성회도시 꾸이양에 비하면 생활여건이 무척 차이나는 소도시이다. 본인은 1970년 5월 화산군간농장에서 이 소도시로 전근을 간 바 있다. 1979년 8월에 그곳을 떠났다. 9년 3개월간 거기에서 체육선생을 지냈고, 방역원도 지내서, 이 소도시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두윈은 작다. 담배 1개비를 피우면서 도시를 끝에서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두윈은 가난하다. 보장되는 것은 매월 식량과 1인당 식용유 3,4량, 가죽이 붙은 고기 반근이다. 채소와 달걀등 부식품은 성주변의 농촌에서 생산된 것을 시장에서 사야 한다. 비록 멀리 떨어진 소도시지만 물가는 대도시보다 훨씬 비싸다.

 

현지주민은 일년내내 기름기있는 음식은 먹기 힘들고 산탕(酸湯)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현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삼일동안 산탕을 먹지 않으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리고 두윈에는 십팔괴(十八怪)도 있다. 돼지고기는 허리띠를 매고 있고, 달걀은 풀로 싸서 팔고, 짚모자를 냄비두껑으로 쓴다, 집을 나서면 날씨가 바로 바뀌고, 동쪽은 비가 오는데 서쪽은 해가 쨍쨍하다. 두윈의 가난함은 다른 지방과도 다르다. 두윈에 처음 온 사람은 모두 이 십팔괴에 대한 얘기를 듣는데, 듣는 사람의 기분은 아주 찜찜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서 의자가 따뜻해지기도 전에 분투하러 튀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겁나는 것은 두윈사투리이다. 보통화와는 너무나 다르다. 두윈사투리를 배우고 나면 나중에 외지에 나가서 살 생각은 버려야 한다. 외지인들은 아이들에게 집에서 두윈사투리를 쓰지 못하게 한다. 한번은 귀국해서 조용히 두윈을 가본 적이 있다. 거기서 멍완저우의 모교인 두윈1중의 교문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첫째 보통화 둘째 영어를 쓴다. 학교는 두윈사투리를 엄금한다."

 

멍완저우는 자신의 글에서도 이렇게 썼다. 청두에서 두윈으로 간 것은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다: (1) 부모님이 망자성룡(望子成龍)하여 딸이 2년일찍 입학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청두에서는 5살에 입학할 수 없었는데, 두윈에서는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2) 부모님은 군대에 있어서 일정한 장소에 머물지 않았다. 그래서 딸을 두윈에 있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맡긴 것이다.

 

만일 두윈의 조건이 청두와 비슷하다면, 혹은 청두보다 좋다면 이 두 가지 이유는 모두 말이 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늘과 땅차이인 것이다. 멍완저우 자신도 이렇게 썼다: "그 때 멀리 꾸이산의 산간지역은 경제조건이 아주 열악했다. 내가 청두에서 살던 것에는 훨씬 못미쳤다." 이런 차이는 마치 대도시에 살다가 군대에 들어가서 소도시에 배치받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두윈에는 양변기가 없다. 모두 공공변소뿐이다. 어려서부터 양변기에 익숙해진 사람이 이런 냄새나는 공공변소에 적응해야만 한다. 다른 선택이 있지 않은 한 어쩔 수가 없다. 인터넷에 나오는 사진의 공공변소는 모두 두윈의 것보다 낫다. 두윈의 공공변소의 자리는 벽이 없다. 시멘트로 만든 것도 아니다. 그저 높낮이가 다른 검은 흙에 한꺼번에 10개 내지 20개의 자리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분갱에 빠질 수 있다.

 

대련외국어학원 회화반에서 가르치는 60여세의 우아한 영어선생님이 있었는데, 본인과는 망년지교였다. 성요한대학을 졸업했는데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 바 있다. 양변기가 없으면 안되기 때문에 평생 집밖을 나다닌 적이 없고, 여행을 다닌 적이 없다. 이런 사람은 그 선생님만이 아니다. 양변기가 얼마나 중요한가. 먹고 마시는 것보다 전혀 덜 중요하지 않다. 먹고 마시고 싸는 것이 다 중요하다.

 

화장실은 그 지방의 문명정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나는 지금도 두윈의 산탕을 좋아한다. 다만 이전에 썼던 그 공공변소는 도저히 쓸 수가 없다. 멍완저우는 청두에서 사치스럽게 살다가, 두윈으로 와서 곤궁하게 살아야 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이 얼마나 억울해야할 일인가?

 

멍완저우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청두에는 고위직에 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있다. 설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그녀를 예뻐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서 두윈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하물며 당시 멍완저우의 부모는 충칭에 있었다. 청두에서 충칭이 두윈보다 가깝다. 당시의 교통은 촉도난, 난어상청천이다. 굳이 청두에서 힘들게 두윈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사진을 보면 멍완저우는 1978년 9월에 두윈제3소학교에 입학한다. 1972년 2월생인 그녀는 1년 7개월을 앞당겨 입학했다. 이게 그리 중요한가? 청두에서 두윈으로 가야할 만큼.

 

멍완저우가 두윈으로 갔을 때, 본인도 아직 두윈에 있었고, 친구들도 많았다. 비록 뒷문으로 들어갈 수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아이를 일찍 입학시키려 하지 않았다. 50년대에는 미리 입학시킨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7,80년대에 이르러서는 7살에 입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어떤 경우는 오히려 몇달이나 반년을 늦게 입학하기도 했다.

 

멍완저우의 부모가 딸을 하루라도 빨리 입학시키고 싶었다면, 두윈에서 입학한 후에 언제든지 청두로 전학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특히 소학교를 졸업한 후, 두윈의 소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청두로 가서 중학에 입학할 수 있다. 굳이 소학교, 중고등학교 12년을 모두 두윈에서 보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멍완저우는 자신의 글에서 이런 말도 했다. 자신은 몇년간 두윈에서 혼자 지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두윈을 떠나, 이혼한 부친과 선전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이때 그녀는 왜 청두로 가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지내지 않은 것일까? 굳이 혼자 남아서 고생을 겪을 필요가 있었을까?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두윈에서. 만일 멍쥔에게 무슨 숨은 사정이 없다면, 딸이 이렇게 고생을 겪도록 놔둘 필요가 있었을까?

 

꾸이저우의 학생들은 대학입시를 통과하면 첫번째 목표가 꾸이저우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본인은 대학입시 2주전에 이공과만이 꾸이저우성을 벗어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꿈꿨던 의과대학을 포기했다. 멍완저우는 분명히 청두에 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의탁할 수 있었는데, 굳이 혼자서 두윈에 남아 있었다. 만일 친어머니인 멍쥔에게 무슨 사연이 있지 않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멍완저우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어렸을 때 수학을 배우는게 힘들었고, 중학교에서도 수학은 꼴찌였다. 부모는 모두 이공과분야에 뛰어난데 어찌 딸은 간단한 수학도 어려워했을까? 유전요소가 역할을 한 것일까? 마치 어느 위인과 같다(모택동). 사회과학, 인문 특히 투쟁철학에서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이지만, 수학은 빵점이었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굳이 남의 집안 프라이버시를 들출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남의 그런 프라이버시를 들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요(瓊瑤, 대만의 유명작가) 아줌마의 책이나 영화도 보지 않았다. 다만 멍완저우는 일반인이 아니다. 국가가 비용을 따지지 않고, 20여억위안을 들여 전용기로 북극항선을 거쳐 데려왔고, 공항에는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환영했다. 이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니, 본인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필자는 멍완저우가 대단하다고 여긴다. 우리는 온갖 방법을 써서 그 가난한 곳을 벗어나려 했는데, 그녀는 청두를 버리고 와서 십이년이나 지냈다. 필자보다 3년이 더 많다. 심지어 가족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청두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말 온갖 고생을 다 겪어 보아야, 다른 사람의 위에 설 수 있는가보다.

 

멍완저우는 천생여질(天生麗質), 작양다자(綽約多姿), 걸오불훈(桀驁不訓, 국법이나 천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나쁜 짓을 저질렀다), 자고자대(自高自大), 목무타인(目無他人, 심지어 부친 런정페이를 포함해서)이고, 하늘이 나를 낳은 것은 분명히 쓸 데가 있을 것이다. 하늘이 나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는 것이다라는 자세를 보인다....일반사람이 아니다. 간단하지 않다.

 

무슨 배경이 있을까? 친어머니 멍쥔에게는 무슨 숨은 비밀이 있을까? 정말 필자같은 소민이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씻고 잠이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