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전(謝田)
중국대륙에 최근들어 민간에 '당평주의(躺平主義, '당'은 드러눕는다는 의미이며, '당평'은 똑바로 드러눕는다는 것으로, 대국굴기의 굴기에 대응하는 말임)'가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슈가 되고 있다. '당평주의'의 진정한 의미와 영향을 심도있게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 있다. 이는 기실 중공에 대한 일종의 항의이다. 당평주의의 '소극'적인 저항은 기실 중공에 대한 '적극'적인 항쟁이다. 그리고, 중국 민간의 '소민당평'은 중공의 '대국굴기'의 반면이기도 하다. 민간의 '당평'이 날이 갈수록 흥성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중국의 '대국굴기'의 꿈을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당평'은 사람들이 충분히 노력하며 죽을 힘을 다했지만, 여전히 생활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아예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저 최조한의 욕망을 유지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중공치하의 사회빈부격차를 드러내는 것이고, 중공이 선전하는 전면적인 빈곤탈출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대륙에서 최근 들어 핫이슈가 되고 있는 '당평족(躺平族)'은 틈틈이 일하면서 일당을 받는 아르바이트족을 말하며 새로운 사회형태를 묘사한다. <당평이 정의이다>라는 글의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과거 2년간 안정된 일자리가 없었으며, 아르바이트를 통해, 소비를 줄이고,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는 많은 젊은이들의 공명(共鳴)과 공감을 끌어냈다. 그들은 나아가 '당평학(躺平學)'을 제출하며, 시스템적으로 젊은이들이 집을 사지 않고, 차도 사지 않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기르지 않고, 소비도 하지 않으면서 최조생존기준을 유지하는 상태를 가리키게 된다.
NHK는 일찌기 2018년 '중국일당100위안의 청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선전 싼허(三合)인재시장을 취재한 프로그램에서 정확하게 당평족들의 특징을 묘사한 바 있다. 이들은 1일수입 100위안, 당일 일당을 받는 청년들인데, 전도가 없다고 보고, 절망 속에서 그들은 인생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선전 싼허인재시장에서 일당 100위안의 청년들은 매일 수입이 100위안이다. 달러로는 15달러가량이다. 이는 그들이 하루 일하고 이틀 쉬는(당평) 비용이다. 1일당 5달러가량을 쓴다는 것이다. 유엔의 빈곤인구기준은 1일수입 35달러이하를 가리키고, 절대빈곤은 2달러이하를 가리킨다. 즉 중국의 이들 당평족인 젊은이, 중년인들은 국제적인 '빈곤선'과 '절대빈곤선'의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다.
당평은 일종의 조용한 시위이고, 공개적인 비협력이다. 멀리 보자면, 그것은 인도의 성인 간디의 평화저항, 비협력운동과 아주 비슷한 점이 있다. 간디가 이끄는 인도인민은 식민정부에 비협력하는데, 목적이 명확했고, 머리도 맑았고, 굳건하고 평화적으로 반항운동을 벌인다. 중국 당대의 당평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정도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 이는 중공정권이 왜 이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당평족으로 오래 지나다보면, 생각이 분명해진다. 반항의 의사, 정서, 의지, 이념, 결심이 성숙되고 발전되면 아마도 굳건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설사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행동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공의 통치와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결국 누워있지 못하고 일어나 앉는다면, 걸어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에너지와 열량은 체내에 축적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보자면, 당평은 홍콩의 반송중시위때 홍콩인들의 "약수(若水), 무대태(無大台)"전략과 아주 비슷하다. (약수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 나온 것이며, 대태는 홍콩말로 지도자를 의미한다.). 당평은 지도자가 없다. 아무도 앞장서지 않는다. 그것은 묵묵히 출현했지만 명확한 책략이 있다; 그것은 중공의 통치에 대하여, 중공의 경제에 대하여 모두 훼멸성의 역량을 지닌다. 아무런 과장없이 말하자면, 당평은 일종의 중국민중이 자발적이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비협력운동이다. 중공의 엄격한 감시감독하에서 가장 뛰어나고, 조용한 반항이다.
당평은 사람들의 와거(蝸居, 달팽이집처럼 협소한 주거공간을 의미함), 청년들의 간로(啃老, 일을 하지 않으면서 부모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청년),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봉쇄시키는 코쿠닝(螢蛹化, cocooning, 집안에 틀어박혀지내기)와 모두 비슷한 점이 있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 모두 존재한다. 단지 다른 나라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영향이 그다지 깊지 않은데 반하여, 중국은 이미 신속하게 일종의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도시지역에도 유사한 사례를 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중국계 젊은이인데 대학졸업후 일자리가 없어 계속 집에서 부모에 얹혀 살고 있다. 부친은 어쩔 도리가 없었고, 친구들에게 불평을 한다; 또 다른 경우도 중국계 젊은이인데 고등학교 졸업후 부모는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내 결혼시키려 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고, 다시 돌아오니 대학에 진학할 시기도 놓쳤다. 그후 그는 다시는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대학도 가지 못해 매일 집에서 먹고, 자고, 컴퓨터를 한다. 여자친구도 없고, 연애할 생각도 없다. 일가를 이루어 성공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 일본등의 나라에 젊은이들이 부모에 얹혀살거나, 부모와 함께 사는 사례가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다면 거의 사회현상으로까지 되지는 않는 것같다. 젊은이들이 독립하여 일가를 이루는 것이 주류추세이다. 다만 중국대륙의 당평은 중국사회의 경제쇠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거기에 휩쓸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회현상이 되고 있고, 이론연구의 주체가 되고 있으며,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회문제가 된 후에 사회적인 반응이 있고, 사회적인 영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중공은 인류사회죄악의 집대성자이고, 모든 폭군, 독부, 민적의 통치술을 종합했다. 게다가 가장 선진적인 진압과학기술과 사회감시통제를 한다. 그리하여 중국민중은 내심으로 불만이 있고, 마음 속으로 반항하지만, 마음만 있지 힘이 부족하다. 반기를 들 기회조차 없다. 오늘날의 당평족은 겉으로 보기에 역사에서 많은 교훈을 얻은 것같다. 홍콩의 약수, 인도의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평화와 비폭력, 이것이 그들의 주제이다. 그들은 자율적이고, 스스로 유지하고 심지어 자학한다. 다만 사회에 해롭지는 않다. 다만 중공에 대한 살상력은 아주 거대하다.
중공이 다시 한번 중국인민을 진압할 때, 탕평족들은 아마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위호작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중공을 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통치자가 인민을 탄압하는 자원이 풍부하고, 인민을 진압하는 수단이 모든 곳에 미치고 있을 때 가장 좋은 대응방법이기 때문이다. 당평족들은 중공이 타이완을 치더라도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중공이 반미를 하더라도 그들은 흥미가 없을 것이다; 중공이 경제를 활성화시키려 해도 그들은 그저 땅바닥에 엎드려 있을 것이다. 중공이 안정을 유지하려 해도,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온순한 백성들이다. 중공이 세뇌하고 선전하려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듣고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게임이나 즐길 것이다. 당평은 실제로 가장 큰 규모의 비협력운동이다. 중국대지에서 비협력은 바로 저항이다. 즉 가장 효과적인 저항이다.
중공정권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걸핏하면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인민을 입제하고 박해한다. 중공은 필요할 때면 정치를 얘기하고, 무슨 정치각오, 정치관심, 정치민감, 당중앙과 정치적으로 고도의 일치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한다. 중공이 불필요할 때면 정치참여, 정치토론 심ㅁ지어 정치학 자체마저도 민감단어가 된다. 당평족은 중공의 정치세뇌에서 멀어지고, 정치와 관련없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중국민간의 '소민당평'에 대응하는 것은 중공이 떠드는 '대국굴기'이다. 작은 것으로 큰 것에 상대하고, 백성이 국가를 상대하고, 드러눕는 것으로 일어나는 것에 상대하는 것이다. 중공은 '대국굴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수억의 농민공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일해주어야 하고, 세계공장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공을 위해 부를 창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상으로 중공과 입장을 일치시키고, 중공의 세뇌를 받아들여야 한다. 민간의 '소민당평'은 바로 중공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이다. 중공을 위해 돈벌어주지 않는 것이다. 중공을 위해 가치를 창조해주지 않는 것이다. 또한 중공을 위해 시장을 번영시키지 않는 것이다. 와거는 집에서 혹은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우는 것이다. 중공의 당소조, 당지부, 중공의 입과 목의 선전을 모두 경원시한다. 중공이 분노하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중공 관방매체의 공격도 있다. 신화망은 <남방일보>의 "당평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디에 정의감이 있는가?"라는 글을 전재했다. 이는 중공의 인권에 대한 멸시를 드러낸 것이고,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것이다. 중공의 입은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그러나 당평은 안된다!" 중공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 마디를 뒤집은 것이다. 즉, "당평은 안된다. 다만, 운명을 받아들여라" 이는 빨리 일어나서 일하라는 것이다. 중공의 순민과 노예로 열심히 살아가라는 것이다.
평론계의 인사들은 이렇게 예측한다. 만일 당평족이 갈수록 많아지면, 중공은 아마도 그들을 상대할 수단을 마련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당평할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중공은 확실히 그렇게 할 것이다. 다만 어떤 수단을 취할 수 있을까? 중공은 아마도 군중을 동원하여, 지역사회의 '자경단'을 조직할 수도 있다. '보갑' '연좌'같은 제도를 되살릴 지도 모른다. 당평자들을 일어나서 강제로 일시킬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청나라말기, 관리들이 직무를 유기하고, 소극적으로 태업한다. 가경제때부터 도광, 함풍제에 이르기까지, 몇몇 황제들이 머리가 깨지도록 생각을 굴렸지만 좋은 해결방법을 강구해내지 못했다. 중공정권말기에 중공도 아마 쓸만한 수단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중공은 아마도 이렇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생활비를 올려서, 당평자들이 누워있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돈이 부족하면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중공이 그렇게 하려면 계속 돈을 찍어내야 하고, 통화팽창이 일어나서, 백성들의 불만을 불러올 수 있다. 그것은 멸망을 가속화시킬지도 모른다.
당평, 희망이 없기 때문에 중공의 분노와 위협아래에서도, 당평한 사람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된다. 그들은 이런 구호를 내세운다: "삼월불상강(三月不上崗), 모건공산당(耗乾共産黨), 반년불간활(半年不干活), 영래신중국(迎來新中國)"(삼개월을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공산당의 힘이 모두 소모되고, 반년을 일하지 않으면, 새로운 중국을 맞이할 수 있다). '소민당평'과 '대국굴기'는 이미 정식 대항국면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의 당평운동은 비협력이고 소극적 저항이며, 조직자가 없는 파업이다! 확실히 부추, 낫은 모두 당평운동의 역량을 잘 알고 있다. 모두 그 맛을 깊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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