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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스포츠

중국매체가 보는 신진서: "커제가 자극하는 말이 나를 더욱 분발케 했다."

by 중은우시 2021. 2. 26.

글: 김뢰(金雷)

 

한국팀을 위해 중국과 일본을 꺽고, 3년만에 다시 농심배 우승컵을 들어올린 나이 만21살도 되지 않은 신진서는 이미 중국바둑의 최강상대가 되었다. 앞으로 거행될 3개의 세계대회 몽백합배, 춘란배와 응씨배에서 중국기사들이 우승을 향한 길에 마찬가지로 그를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목표를 얘기하면서, 신진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기는 것말고 다른 생각은 없다." 이 부산신동은 어떻게 성장하여 지금 중국바둑의 최강상대로 성장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많은 바둑팬들의 관심사일 것같다.

 

2000년, 신진서는 부산의 한 평범한 '바둑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신상용은 사상구 주례동에 바둑교실을 열었고, 모친 송윤옥은 초급반의 강사였다. 부친은 그에게 '신진서(申眞諝)'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느넫, '서'는 재지(才智)라는 뜻이다. '진서'라는 것은 '진짜지혜"라는 의미이다. 신진서가 5살이 되던 해 부모의 바둑교실에서 그는 바둑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금방 재능이 뛰어났던 신진서의 기력은 부모를 넘어선다. 일상적인 훈련은 인터넷에서 했고, 대국실은 그의 놀이터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그는 한국국내의 어린이바둑대회의 우승을 모두 차지한다. 신진서가 12살때,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는 서울로 이사한다. 그리고 아들을 충암바둑도장에 보내어 정규훈련을 받게 한다. 부모는 그에게 "인품은 이창호를 배우고, 기풍은 이세돌을 배우라"고 말한다. 신진서의 새집은 한국기원에서 아주 가까웠다. 걸어서 몇분이면 도착할 정도이다. 말할 때 약간 부산사투리가 섞여 있는 아이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당시 가정의 결정을 되돌아보면서 신진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은 제가 바둑의 일인자로 만들 것만 생각했습니다. 나의 목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고, 세계1위를 하겠다고 정했습니다."

 

같이 입단한 '대신(大申)' 신민준은 세계대회우승자 이세돌을 스승으로 배운 것과 달리, 신진서의 성장은 조금 신기하다. 그는 스승이 없다. 다만 여러 사람들의 장점을 취한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토로했다. 기력이 급격히 성장한 것은 인터넷바둑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중 중국기사들에게서 많이 배웠다. 입단전1년동안 신진서는 자주 자기보다 3살많은 커제와 인터넷으로 대국했다. "처음에 내가 많이 졌다. 그러나 일방적인 정도는 아니었다. 그외에 나는 미위팅, 판팅위, 천야오예, 당이페이등 세계최고기사들과 무수히 많은 대국을 했다. 이를 통해 신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입단후 1년간 13살의 신진서는 한 특별대국에서 흑을 들고 179수만에 이창호 구단을 이긴다. 이때부터 한국바둑계는 그에게 큰 기대를 걸게 된다.

 

한국바둑역사상의 일인자들 조남철, 김인, 조훈현에서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에 이르기까지 모두 스승을 모시고 바둑을 배웠으며, 일인자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신진서에 이르러, 또 다른 길이 나타났다. 바둑지식은 심오한 바다와 같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슬럼프을 만났을 때 좋은 스승의 지도를 받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신진서는 스스로 이런 곤란을 해결하며 매진했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집중력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은 바둑을 좋아하고, 정신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나보다 수준이 높은 기사와 대국하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한 사람의 생각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아마도 다른 사람은 장기간의 슬럼프를 만났을 때, 심적으로 힘들어한다. 그러나 나는 마찬가지로 바둑에 흥미를 느꼈다. 바둑은 각양각색의 변화가 충만하다. 무궁무진하다. 나는 이것이 최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바둑AI가 나타난 후, 신속히 신진서의 좋은 스승이자 좋은 친구가 되었다. 매일 그는 최소한 5시간동안 AI로 훈련한다. 신진서와 바둑을 두어본 기사들은 모두 말한다. 그의 적지 않은 수법은 AI의 느낌이 많다. 특히 포석과 감각이 그러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오늘날의 기사들은 확실히 모두 AI를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신공지능'의 심득은 "AI가 제시하는 수법을 맹종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역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나는 반독하여 AI가 제시하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수법을 연구해본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

 

신진서는 '노력이 보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전의 일면이다. 다른 일면은 더욱 얻기 힘든 것으로 자연스럽게 놔두고 수도거성(水到渠成)했다는 것이다. 입단에 성공했을 때, 누군가 신진서에게 바둑이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떤 지위를 차지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미련도 없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바둑은 공기, 의복과 같다. 바로 나의 생활이다. 생활은 하루하루 쌓아나가야 비로소 과실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신진서의 이런 성공에 대한 담담한 태도는 가정의 영향이 큰 것같다. 2018년말, 신진서는 최초로 세계대회 천부대의 결승에 진출한다. 천야요예 구단과 우승을 다투는 날, 그의 부모는 서울에서 바둑계의 몇몇 중국손님들을 맞이했다. 신진서의 모친은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몰고 중국손님들을 모시고 막 준공된 롯데빌딩으로 관광을 갔다. 신진서의 부친도 모든 일정을 따라다녔고, 단 1분이라도 핸드폰을 꺼내서 아들의 바둑대국상황을 살펴보지 않았다. 이들 중국손님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물어본다: "아들이 오늘 결승전을 치르는데, 최초의 세계대회우승자가 될 기회인데, 당신들은 왜 보지 않는 것인가?" 신진서의 부친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괜찮다. 아들이 이기고 지는 것은 아주 정상이다. 만일 지면 그의 바둑의 길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후, 신진서는 다시 제4회 백령배 결승에서 커제에게 패배했다. 작년의 제24회 LG배 결승에서 비로소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박정환과의 대결에서 첫판은 상대의 실수를 포착하여 역전에 성공했고, 둘째판은 승기를 잡아 끝까지 가서, 최초로 세계대회우승을 한다. "2017년 나는 세계대회우승을 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후 두번 세계대회 결승을 치렀는데, 모두 졌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의 자신감이 실은 자만감이었던 것같다." 이때, 그는 자신이 넘어야할 두 개의 '산'이라고 형용한다. 하나의 산은 15승4패의 전적으로 그를 압도하는 박정환 선배이고, 다른 하나의 산은 바로 대승부를 앞둔 심리적 그림자라고 한다.

 

이를 뛰어넘여야 하는 것은 스스로 강해지려고 하는 신진서를 스스로 계속 자극하게 한다. 아주 강렬한 승부심은 신진서의 또 하나의 레테르이다. 어릴 때는 바둑을 한판 지면, 눈물콧물을 다흘리며 울었다. 인터넷바둑에서 지면, 이길 때까지 두었다. 천야오예에게 천부배 결승에서 패배하고 난 후, 신진서는 호텔로 돌아가서 잠도 자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세계대회우승자 양딩신 구단은 신진서와 중요한 경기에서 여러번 만났다. "그의 바둑을 이기려는 욕망은 보통 강렬한 게 아니다. 열세에 처했을 때 특히 완강하다."

 

어제 중국팀 주장 커제를 물리치고, 한국에 농심배를 안겨준 후, 신진서는 커제를 가장 중요한 상대로서 어떻게 스스로를 격려했는지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실 결승에서 지면 이미 아주 피로하다. 어떤 때는 여기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 커제의 자극적인 말은 오히려 내가 힘을 내게 해주었다. 내가 다시 힘을 내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양딩신은 그래서 이렇게 평가한다: "이전에 신진서는 자신감을 바깥으로 드러냈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바둑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작년 11월의 삼성배 결승에서 우승을 한 후 커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게 해주어서 신진서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나에게 가장 아팠다." 신진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다시 힘을 내게 해주었다." 새해에 들어서서, 신진서는 16판의 바둑을 두었는데, 전적이 엄청나다. 농심배 3차대회의 첫판에서 일본팀의 부장 이야마 유타를 이긴 후, 그는 지지않고 대회를 끝내고 싶다고 호언장담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정말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오늘, 한국바둑 1인자로서, 신진서는 이미 중국기사들에게 최대의 적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진보한다. 5연승으로 한국팀에 농심배를 안겨준 것외에 최근 그는 전후로 춘란배와 응씨배 결승에 올랐다. 그리하여 중국기사들이 넘어야할 산이 되었다. 이창호, 이세돌이후, 중국바둑은 그와 같은 강력한 적수가 있다는데 감사해야 한다. 서로 쫓고 쫓겨야 바둑이 발전할 수 있다.

 

[기자후기]

 

신진서, 신민준등 젊은 기사들의 성공은 한국기원이 인재배양에서 중국의 성공경험을 받아들인데 있다. 당시 이창호등 대표적인 기사들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한국바둑계는 위기를 느낀다. 이와 동시에 중국바둑은 승단규정을 두어 세계대회우승 1회 혹은 세계대회 준우승 2회이면 구단이 되도록 했다. 그후 신생역량이 계속 나타난다. 세계대회우승횟수에서 한국을 넘어섰다. 특히 '95후' 기사들은 뛰어난 성적을 나타낸다. 입단의 문턱이 비교적 높은 한국은 정책을 조정해야 했다. 중국을 본받아 어려서부터 소년영재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여, '영재입단대회'를 만들어 젊은 기사를 선발했다. 그리고 한국최고기사들과 대국하게 하여 성장하게 했다.

 

과거 한국기사의 입단은 오직 한국기원의 연구생만이 자격을 가졌다. 그러나 입단인원은 수가 적었다. 입단에 뜻을 둔 지원자가 감소하고 바둑영재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2012년부터, 양재호 구단이 한국기원의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입단대회에 '영재반'을 두기로 한다. 이는 이후 한국바둑의 젊은 역량을 이끄는데 큰 도움을 준다. 양재호는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중국바둑의 보급은 이미 국가적인 층면으로까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반드시 따라잡아야 한다. "중국기원이 배양하는 어린 친구들이 아주 많다. 다만 한국은 그저 개별적으로 영재들을 배양하고 있다."

 

인재풀을 확대하고, 더욱 좋은 영재를 찾기 위해, 한국기원의 개혁은 지금 보답을 받고 있다. 당시 입단한 '양신' 신진서와 신민준은 지금 모두 세계대회우승자가 되었다. 그들도 새로운 역량ㅇ르 대표하여 중국바둑에 대항한다. 한국기사들은 분발하고 자율적이며 목적을 추구하는 전통이 있다. 이는 젊은 세대에도 전승되고 있다. 만일 큰 경기가 없어도, 한국국가팀은 매일 정상적으로 훈련한다. 어떤 기사가 중요한 시합에 참가할 때는 국내 랭킹5위이내의 기사들이 돌아가면서 연습대국을 해준다. 그리고 함께 수를 연구한다. 그들은 인공지능을 충분히 이용하고, 상대방이 어떤 포석을 좋아하는지,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하여 분석을 한다. 

 

한국이 농심배를 다시 가져갔다는 것은 한중바둑의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서로를 배우고, 따라잡는 상황을 보면 더 재미있는 일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