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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동오(東吳)의 승상(丞相) 12명은 각각 누구인가?

by 중은우시 2020. 11. 23.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승상은 백관의 우두머리이고, 고대역사상 아주 중요한 관직이다. 최초의 승상은 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무왕(秦武王) 2년(기원전309년)이다. <사기. 진본기>에 따르면, "진무왕2년, 처음 승상을 설치하고, 저리질(樗里疾), 감무(甘茂)를 좌우승상으로 삼았다." 진왕조가 건립된 후, 승상, 태위(太尉),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삼공(三公)이라 불렀다. 한애제(漢哀帝) 원수2년(기원전1년) 승상을 대사도(大司徒)로 명칭을 고친다. 서한의 한애제때부터 동한 한헌제 건안13년(208년)까지 이백여년간은 승상을 두지 않았다.

 

동한 말기, 조조가 승상직을 회복시킨다. 그러나, 조비가 황위를 찬탈한 후, 조위는 실제로 승상의 직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촉한은 제갈량이 사망한 이후 승상직을 비워둔다.  이와 상응하게 손권이 건립한 동오는 계속 승상직을 두었다. 그렇다면, 동오의 승상은 어떤 사람들일까?

 

1. 손소(孫卲)

 

손소(163-225), 자는 장서(長緖), 청주(靑州) 북해국(北海國) 사람이다(지금의 산동성 유방시 창락현 서쪽). 원래 북해상(北海相) 공융(孔融)의 공조(功曹)였다. 공융은 그를 조정요직을 맡을만한 인재라고 칭찬한다. 나중에 유요(劉繇)를 따라 강동으로 가서, 손권을 보좌한다. 손권이 오왕을 칭한 후, 손소가 동오의 첫 승상에 오른다. 몇년후 그는 병사한다. 손소는 비록 동오의 최초 승상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비교적 낮다. 예를 들어, 승상의 직을 맡지 않았던 장소(張昭)가 확실히 손소보다 훨씬 유명하다. 

 

2. 고옹(顧雍)

 

고옹(168-243), 자는 원탄(元嘆)이다. 오군(吳郡) 오현(吳縣)사람이다(지금의 강소성 소주). 한나라말기에서 삼국시대까지 오나라의 중신이다. 동한말기, 고옹은 손권의 막부에 들어가 좌사마(左司馬)가 된다. 나중에 대리(大理), 봉상(奉常)으로 옮기고, 다시 영상서령(領尙書令)이 되고, 양수향후(陽遂鄕侯)에 봉해진다. 황무4년(225년), 태상(太常)이 된다. 같은 해에 승상이 되고, 평상서사(平尙書事)가 되고, 예릉후(醴陵侯)에 봉해진다. 그는 승상에 19년간 있었다. 적오6년(243년), 고옹이 사망한다. 향년 76세이다. 손권이 소복을 입고 조문하고, 시호를 '숙(肅)'이라 하사한다. 손권에 있어서, 전후로 손소, 고옹을 승상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장소는 외부에 내보낸다. 이는 자신의 심복세력을 배양하려는 뜻이고, 동오노신들의 세력균형을 이루려는 뜻이다.

 

3. 육손(陸遜)

 

동오의 12명 승상중에서, 육손은 가장 유명할 뿐아니라, 능력이나 공적에서도 그에 필적할 사람이 없다. 육손(183-245년 3월 19일), 원래 이름은 육의(陸議)이고, 자는 백언(伯言)이며, 오군 오현사람이다. 건안24년(219년), 육손은 형주(荊州)를 기습하여 취하는데 참가한다. 촉 장무2년(222년),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하여 이릉지전에서 유비를 격패한다. 오 황무7년(228년), 육손은 석정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황룡원년(229년), 손권이 칭제한 후, 육손은 상대장군이 되고, 태자 손등(孫登)을 보좌한다. 그리고 배도(陪都) 무창(武昌)의 업무를 관장한다. 적오7년(244년), 승상, 형주목, 우도호(右都護)가 된다.

 

4. 보즐(步騭)

 

보즐(?-247), 자는 자산(子山), 임회군(臨淮郡) 회음현(淮陰縣)사람이다(지금의 강소성 회안시 회음구). 삼국시기 오나라의 중신이다. 건안15년(210년), 보즐은 사지절(使持節), 정남중랑장(征南中郞將), 교주자사(交州刺史)가 된다. 교주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평융장군(平戎將軍)이 되고, 광신후(廣信侯)에 책봉되고, 우장군(右將軍), 좌호군(左護軍)이 되며, 임상현후(臨湘縣侯)에 봉해진다. 손권이 칭제한 후, 표기장군(驃騎將軍), 기주목(冀州牧)이 된다. 적오9년(246년), 육손이 사망한 후 보즐이 승상에 오른다.

 

5. 주거(朱據)

 

주거(194-250), 자는 자범(子范), 오군 오현사람(지금의 강소성 소주)이다. 황룡원년(229년), 손권이 칭제하고, 딸 손로육(孫魯育)을 주거에게 시집보낸다. 그리고 주거를 좌장군(左將軍)에 임명하고, 운양후(雲陽侯)에 봉한다. 적오9년(246년) 표기장군으로 승진한다. 적오12년(249년), 주거는 이미 죽은 보즐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된다.

 

6. 제갈각(諸葛恪)

 

제갈각(203-253), 자는 원손(元遜), 낭야양도(琅琊陽都)사람이다(지금의 산동성 기남현). 삼국시기 오나라의 명장, 권신이다. 대장군 제갈근(諸葛瑾)의 장남이다. 그의 숙부 제갈량과 마찬가지로, 제갈각도 승상의 직을 맡는다. 적오8년(252년), 손권의 병세가 위급할 때, 탁고대신으로 뽑힌다. 손량(孫亮)이 즉위한 후, 태부(太傅)를 맡아 동오의 대권을 장악한다. 제갈각은 조위에 항거하여 동흥대첩을 이끌어 내 내외에 명성을 떨치고, 천하를 진동시킨다. 승상의 직위를 받고, 양도현후(陽都縣侯)에 봉해진다.

 

7. 손준(孫峻)

 

손준(219-256년 10월 19일), 자는 자원(子遠). 오군 부춘현(富春縣)사람이다.(지금의 절강성 항주시 부양구 부춘가도). 손준은 용맹하고 과감하며, 정명하고 일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처음에 무위도위(武衛都尉) 겸 시중(侍中)이 된다. 손권이 죽은 후, 손준은 제갈각과 함께 유조를 받들어 보정대신이 된다. 회계왕 손량이 즉위한 후, 무위장군으로 승진하고, 도향후(都鄕侯)에 봉해진다. 계책을 꾸며 태부 제갈각을 주살한 후, 오나라의 대권을 장악한다. 승상, 대장군이 되며 부춘현후에 책봉된다. 태평원년(256년), 문흠(文欽)을 따라 위나라를 정벌하다가 병으로 죽는다. 향년 38세이며, 후사를 당제(堂弟) 손침(孫綝)에게 부탁한다.

 

8. 손침(孫綝)

 

손침(231-259년 1월 18일), 자는 자통(子通), 오군 부춘사람(지금의 항주시 부양구)이다. 손침이 대권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황제 손량과의 갈등이 격화된다. 결국 손량을 폐위시키고, 낭야왕 손휴(孫休)를 즉위시키고, 승상, 형주목이 된다. 영안원년 십이월(259년 1월), 황제 손휴는 좌장군 장포(張布)의 협조하에 손침을 죽인다. 손침의 당시 나이 28살이었다.

 

9. 복양흥(濮陽興)

 

복양흥(?-264년), 자는 자원(子元), 진류(陳留)사람이다(지금의 하남성 개봉). 삼국시기 동오의 대신이며 오경제 손휴의 말년부터 말제(末帝) 손호(孫皓)초기까지 승상을 맡는다. 영안7년(264년) 손휴가 사망하고, 복양흥은 장포와 함께 손호를 맞이하여 황제위에 앉힌다. 시랑(侍郞)을 맡고 청주목(靑州牧)을 겸한다. 같은 해에 만욱(萬彧)의 모함으로 광주(廣州)에 유배를 간다. 도중에 손호가 보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고 삼족이 멸해진다.

 

10. 육개(陸凱)

 

육개(198-269), 자는 경풍(敬風). 오군 오현사람이다(강소성 소주시). 삼국시기 오나라의 중신이고, 승상 육손의 조카이다. 대사마 육항(陸抗)의 족형(族兄)이다. 오경제 손휴가 즉위한 후 육개는 정북장군(征北將軍)이 되고, 예주목(豫州牧)이 된다. 오나라 말제 손호가 즉위한 후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형주목이 되며, 가흥현후(嘉興縣侯)에 봉해진다. 보정원년(266년) 좌승상이 된다. 그는 여러번 손호에게 간언한다. 

 

11. 만욱(萬彧)

 

만욱(235-273), 자는 문빈(文彬) 동오말기의 대신, 관직은 우승상에 이름. 중국고대역사상 좌우승상을 두는 것은 비교적 자주 보이는 상황이다. 승상의 권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손호는 좌승상과 우승상을 나누어, 견제와 균형을 이루었다.

 

12. 장제(張悌)

 

장제(236-280), 자는 거선(巨先), 형주 양양군(지금의 호북성 양양시) 사람이다. 삼국시대 동오의 대신이다. 장제는 오경제때 둔기교위(屯騎校尉)가 된다. 천기4년(280년), 서진이 오를 정벌한다. 장제는 반드시 패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심영(沈瑩), 제갈정(諸葛靚)과 군대 3만을 이끌고 강을 건너 전투를 벌인다. 진(晋)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판교(板橋)에서 대패한다. 제갈정은 무리를 이끌고 장제를 맞이하러 왔으나, 장제는 도망쳐서 목숨을 구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전투를 하다가 사망한다. 동오의 마지막 승상으로서, 장제는 동오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는다. 이는 존경받아 마땅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