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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사분오열의 홍얼다이: 시진핑은 누구를 위하여 '보당(保黨)'하는가?

by 중은우시 2020. 10. 9.

글: 왕우군(王友郡)

 

중공 5중전회가 곧 개최된다. 시진핑은 여전히 '보당'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몸부림치고 있다. 일찌기 시진핑을 지지했던 홍얼다이(紅二代)는 그러나 하나 또 하나 그를 떠나버렸다.

 

쩡칭홍(曾慶紅): 반시진핑세력의 총대표가 되다

 

쩡칭홍의 부친 쩡산(曾山)은 중공 동남국, 화중국 조직부장, 상업부장, 교통부장, 내무부장등의 직위를 지낸 바 있고, 쩡칭홍의 모친 덩류진(鄧六金)은 '장정'에 참가했던 27명의 여성중 한 명이고, 일찌기 중공 화동국 기관보육원의 원장을 지낸다. 이 보육원은 '태자당'의 요람이라 불리는 곳이다.

 

쩡칭홍은 장쩌민파의 2인자이다. 일찌기 중앙판공청주임, 중앙서기처서기, 중앙조직부장, 중국정치국상위, 국가부주석, 중앙당교교장을 지냈다. 그의 둘째동생 쩡칭화이(曾慶淮)는 문화부의 고관이며, 형인 쩡칭홍을 대신하여 홍콩특무와 대륙과 홍콩, 타이완의 연예계를 관리했다; 셋째동생 쩡칭양(曾慶洋)은 군사과학원 군제연구부 부장, 소장이다; 넷째동생 쩡칭위안(曾慶源)은 공군후근부 부부장, 소장이다; 여동생 쩡하이셩(曾海生)은 총참모부 관리보장부 정위, 소장이다; 조카딸 왕샤오링(王曉玲)은 광저우시 부시장 겸 기율검사위 서기를 지낸다.

 

소문에 따르면, 쩡칭홍이 시진핑을 후계자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러나 쩡칭홍이 이렇게 한 것은 미봉책이었다; 첫째는 시진핑을 이용하여 후진타오가 리커창을 후계자로 올리는 것을 막아야 했고, 둘째, 당시 홍얼다이중에서 보시라이는 당내에서 득표수가 너무 적었고, 셋째, 시진핑은 겉으로 보기에 돈후해 보였기 때문이다.

 

2012년 2월 6일, 전 충칭시 공안국장 왕리쥔이 주청두미국총영사관으로 도망친 후, 보시라이등이 '정변'을 통하여 시진핑을 하야시키려는 음모가 미국에 누설되었다. 보시라이의 배경은 장쩌민, 쩡칭홍이다. 시진핑은 이 소식을 들은 후, 2013년 1월부터 장쩌민, 쩡칭홍에 대하여 반부타호(反腐打虎)의 전투를 시작한다. 5년동안 440여명의 차관급(부성장, 부부장)이상의 고관을 조사처벌했고, 그중 대다수는 장쩌민, 쩡칭홍이 발탁중용한 자들이다. 한 때는 장쩌민, 쩡칭홍까지도 체포명단에 올라 있었다. 이렇게 하여 장쩌민,쩡칭홍과 시진핑간의 너죽고 나살기식의 생사를 건 결투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중공19대이전에 형세는 장쩌민, 쩡칭홍에게 매우 불리했다. 그런 상황하에서 장쩌민, 쩡칭홍은 겉으로 고개를 숙이고, 시진핑과 타협한다. 시진핑은 대권을 손에 넣었다고 여겨서 이들을 남겨두고, 장쩌민, 쩡칭홍은 체포하지 않기로 한다. 이때부터 시진핑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게 된다. 중공19대이후 지금까지, 장쩌민, 쩡칭홍과 그의 심복들은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시진핑을 묶어서,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넣었다.

 

2020년 장쩌민은 이미 94세이다.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쩌민파의 막후총지휘관은 실제로 쩡칭홍이다. 쩡칭홍은 국내외의 시진핑타도세력의 막후총지휘관인 것이다.

 

5중전회 전날, 해외의 누군가 폭로했다. 장쩌민, 쩡칭홍, 멍젠주의 가족이 움직였다. 하드디스크 3장을 미국대통령 트럼프와 미국법무부로 보낸다. 그중에는 미국대통령후보 바이든과 시진핑, 왕치산의 '관계'에 관한 엄청난 자료도 들어 있다. 장쩌민, 쩡칭홍, 멍젠주는 시진핑과의 최후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덩푸팡(鄧樸方):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은 중공 '제2대영도핵심' 덩샤오핑의 장남이고, 홍얼다이의 대표인물이다.

 

5월 1일, 중공 '양회'전날, 해외의 인터넷에 덩푸팡이 '양회'대표에게 보내는 공개서신이 발표된 바 있다. 서신에서는 15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권력자는 일존(一尊)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대표들에게 묻겠다. 우리나라의 일존은 도대체 황실세습의 황제인가? 민선의 대통령인가? 당내투표로 선임된 총서기인가? 모두 아니라면, 그는 도대체 누구의 일존이란 말인가?" 이 15가지 문제는 도무 시진핑을 겨냥한 것이다. 반시진핑의 의미가 아주 짙다.

 

이 서신의 진위는 고증하기 어렵다. 아마도 누군가 덩푸팡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일 것이다. 다만, 덩푸팡과 시진핑의 관계파탄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2018년 9월 16일, 덩푸팡은 중공잔련(殘聯) 제7차전국대표대회 폐막식에서 강연을 했는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이를 보도했고, 해외에서 강렬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강연은 시종 '덩샤오핑이론을 지도로 하여"라고 말했고, '시진핑사상을 지도로'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덩푸팡과 시진핑의 관계파탄은 아마도 덩씨집안의 외손녀사위 우샤오후이(吳小暉)가 체포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샤오후이는 안방보험집단의 동사장 겸 총경리이다. 2017년 6월 9일 체포되었고, 유기징역 18년형을 받고, 몰수,추징된 재산이 857억위안에 달한다. 게다가 각지정부가 가져간 재산까지 합치면 1,000억위안이 넘을 것이다. 우샤오후이는 2004년 안방보험집단을 창업한 후, 짧은 13년만에 총자산을 거의 2조위안까지 키웠었다.

 

후더화(胡德華): 후야오방(胡耀邦)의 아들 

 

후더화는 전 중공중앙총서기 후야오방의 아들이다. 일찌기 <염황춘추(炎黃春秋)>잡지사의 부사장을 지낸다. 리뤼(李銳), 두다오쩡(杜導正)등 중공체제내 개혁파인사글과 관계가 밀접하다.

 

2016년 7월 <염황춘추>가 중공에 의해 문혁식으로 권한을 빼앗긴다. 그후 후더화는 매체에 이렇게 말한다: "<염황춘추>는 국유기업이나 당의 재산이 아니다. 그 자산은 모두 <염황춘추>직원이 25년간 노동으로 일군 것이다. 만일 문건 한장도 없이 그것을 국유화한다면, 약탈행위나 같다."

 

2013년 2월 27일, <염황춘추>가 개최한 신춘연의회에서 시진핑이 소련공산당의 망당때 "한 명의 사내대장부도 없었다"고 말하여 한 사람도 나서서 항쟁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후더화는 러시아공산당총서기 쥬가노프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소련공산당이 무너진 것은 소련공산당의 정치권력에 대한 독점, 경제와 모든 자원에 대한 독점, 진리에 대한 독점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소련공산당이 망한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시진핑이 말한 것에 대하여, 개혁개방후의 역사를 가지고 개혁개방전의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개혁개방전의 역사를 가지고 개혁개방후의 역사를 부정해서도 안된다. 후더화는 이렇게 말한다. "전삼십년을 부정할 수 없다니, 그럼 우리는 문혁도 부정할 수 없단 말인가? ...모주석이 말한 시진핑총서기의 부친 시중쉰은 '소설을 이용하여 반당하는 것은 큰 발명이다'라고 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단 말인가?"

 

후더화는 또한 이런 말도 한다: 하나의 정당에 위기가 발생하면, '누구든 나를 반대하면 탱크를 몰아 그와 싸워야 한다'고 할 수도 있고, 또한 민의에 순응하여 진상을 공개하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 타이완의 장경국은 '2.28사건'을 반성하고, 타이완민중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국민당은 마침내 다시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현명한 선택이다. "만일 이런 것조차 없다면, 모두 무엇이 진상인지도 모른다면, 우리는 보위해야할지, 보위하지 말아야할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누구를 보위해야 하고, 누구를 보위하지 말아야할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자오쯔양의 4남1녀

 

전 중공중앙총서기 자오쯔양에게는 4남1녀가 있다. 자오따쥔(趙大軍), 자오얼쥔(趙二軍), 자오산쥔(趙三軍), 자오쓰쥔(趙四軍), 자오량(趙亮). 작년 8월 17일 자오쯔양의 탄생100주년때, 그들은 홍콩의 <명보>에 글을 발표하여, 자오쯔양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시정에 대한 언급을 한다. 그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것은, 사상의 퇴화, 철학의 빈곤이다; 용등호약의 심각한 탐색도 잃어버렸고, 미약하게 빛나던 지혜의 불꽃도 보이지 않는다; 인도적으로 보살피는 약간의 따스함도 없으며,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그 어떤 감동도 없다. 이는 백년이래 보지 못했던 정신의 곤국(困局)이다." "여러 해동안의 자연도태를 거쳐 '역도태'가 이루어진 후" 중공내부에 "강정경개(剛正耿介)한 자는 거의 보이지 않고, 과렴선치(寡廉鮮恥)한 자들만 가득 찼다." 이 글에서 비록 시진핑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자오쯔양과 시진핑의 차이점을 연상할 수 있었다.

 

글에서는 특별히 이렇게 써놓았다: "이치를 따져서 사람을 설득하려는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타협과 관용의 지혜로 잃어버리면, 진보의 능력도 잃게 된다." 글의 끝에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중국이 바뀌길 바란다. 세계가 바뀌길 바란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바꿀 수 없단 말인가?" 이는 함축적으로 시진핑에게 개과천선하기를 권한 것이다. 2020년의 오늘날에 이르러, 더 이상 자오씨형제자매가 이런 류의 글을 발표하는 것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뤄위(羅宇): 중공대장의 아들

 

뤄위는 중공대장 뤄뤼칭(羅瑞卿)의 아들이다. 일찌기 총참모부에서 일했다; 1990년 "6.4"천안문사태에 불만을 품고, 중공과 이별하고 출국해버린다; 1992년 장쩌민은 그의 당적, 군적을 박탈했다. 현재 그는 미국에 살고 있다.

 

뤄위에 따르면,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이 모택동에게 타도될 때, 시진핑의 나이는 겨우 15살이었다. 시진핑의 모친은 치신(齊心)은 자주 뤄위의 모친을 찾아왔다. 10년간 그런 관계는 계속되었다. 뤄위의 인상 속에, 시진핑의 부모는 아주 친절하고, 성실했다. 시중쉰은 모주석에게 16년간이나 핍박을 당했고, 말년에는 다시 덩샤오핑에게 숙청을 당하여 선전에 연금당했다. 뤄위의 모친은 매년 광동으로 가서 겨울을 지냈는데, 항상 시진핑의 부모를 만나러 갔었다. 뤄위는 시중쉰은 중공당내의 민주파였고, 개명파였다. 시진핑이 취임한 후, 뤄위는 시진핑에게 큰 기대를 걸었었다.

 

2015년 12월 3일부터, 뤄위는 시진핑에게 공개서신을 써서 홍콩 <빈과일보>에 발표했다. 시진핑이 민주화의 길로 가기를 권했다. 2018년 9월 6일까지 모두 31통의 "시진핑동생에게"라는 서신을 썼다.

 

일찌기 어느 기자가 뤄위에게 물은 바 있다: 이 서신을 시진핑이 볼 것같은가? 뤄위는 대답한다: "그는 본다. 이것은 '상서방행주(옛날 황제의 집무실에서 일하는 관리를 가리킴)'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다. 당신이 쓴 서신은 모든 상위의 테이블에 모두 놓인다" "그가 어느 정도 보는지, 어느 정도 알아들었는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나는 그가 생각해보길 바란다. 내가 그에게 쓴 서신은 누가 보더라도 호의에서이고, 조그만치의 악의도 없는 것이니까."

 

다만, 뤄위는 시진핑이 민주화의 길로 향한다는 여하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반대로 갈수록 문혁으로 후퇴했다. 뤄위는 미국의 소리 기자와의 인터뷰때 이렇게 말한다: "만일 시진핑이 오늘의 중국사회를 모택동시대로 퇴보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완전 끝장난 것이다."

 

아마도 시진핑에게 희망을 품고 있다가 실망하고, 다시 절망한 것같다. 2018년 9월 6일의 31번째 서신이후, 2020년 10월 8일 현재까지 다시는 뤄위가 시진핑에게 쓴 서신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런즈창(任志强): 홍얼다이중에서 할 말은 하는 인물

 

런즈창은 3가지 신분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홍얼다이이다. 그의 부친 런췐셩(任泉生)은 중공 상업부 부부장을 지냈다; 둘은 기업가이다. 그는 베이징시화위안(華遠)부동산회사의 동사장을 지낸다; 셋은 국가부주석 왕치산의 가까운 친구이다.

 

시진핑이 201년 11월 집권한 후, 왕치산은 중공정치국상위, 중기위서기가 된다. 런즈창은 여러번 '출격(出格)'의 말을 한 바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런즈창은 북경대학 강연때 이런 말을 한다. 중공체제는 완전히 썩었다. 그러면서 이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호소한다. 2015년 2월 14일, '중국경제50인논단연회"에 참가하여,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과도하게 총잡이과 칼잡이를 강조한며, 서방의 가치관을 반대한다. 문혁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같은 해 9월 21일 런즈창은 웨이보에 이렇게 쓴다: "우리는 공산주의 후계자이다라는 이 구호는 십여년간 속여왔다." 런즈창의 '출격' 언론에는 이런 말도 있다: "시진핑의 사람들은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군대는 총부리를 안으로 겨누었다." "시진핑은 연이어 악수를 두고 있다." "공산당독재는 불법적이다."

 

2016년 2월 19일, 시진핑의 '당매성당(黨媒姓黨)'이라는 말에 대하여 런즈창은 웨이보에 이렇게 쓴다: "모든 매체에 성이 있다면, 그리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면, 인민은 잊혀진 구석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나오자, 중공당매체는 즉시 문혁식의 비판을 시작한다. 2016년 2월 29일, 중기위서기 왕치산의 산하에 있는 <중앙기검감찰보>에는 <친인지낙낙(千人之諾諾), 불여일사지악악(不如一士之諤諤)>(천명의 아부보다 한 사람의 곧은 소리가 낫다)를 싣는다. 그후 각매체의 런즈창에 대한 비판은 돌연 중단된다. 같은 해 5월 2일, 런즈창은 '유당관찰1년(留黨觀察一年)'의 처분을 받는다.

 

2020년 2월 23일, 중공은 '17만인대회'를 개최한다. 시진핑은 장편의 연설을 통해, 우한폐렴의 방역문제를 얘기했다. 런즈창은 시진핑의 강연과 일부 사람들의 아부글을 본 후에, 시진핑을 공격하는 장문의 글을 쓴다. "사람들은 대회에서 비판의 견을 볼 수가 없었다. 사실의 진상에 대한 추궁이나 공개가 없었다. 우한폐렴이 폭발한 원인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아무도 반성을 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각종 위대한 성적으로 사실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 "십칠년전의 교훈(2003년의 SARS를 가리킴)은 이 체제를 철저히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한폐렴이 다시 폭발한 것이다. 이번에 뿌리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한번 더욱 큰 재난이 발생할 것이다."

 

이 글로 인하여, 9월 22일, 런즈창은 '탐오'등 4가지 죄명으로 18년 유기징역의 형을 받는다.

 

런즈창은 혼자가 아니다. 그의 배후에는 일련의 홍얼다이, 기업가, 고관이 있다. 시진핑이 런즈창에게 중형을 내린 것은, 반드시 홍얼다이, 기업가집단, 고관의 분열을 불러올 것이다. 반시진핑세력의 사람을 더욱 늘이게 될 것이다.

 

차이샤(蔡霞): 홍얼다이중의 교수

 

중공중앙당교교수 차이샤는 외조부가 중공원로이고, 그녀의 모친, 외삼촌, 이모는 모두 중공군대에 재직했다.

 

금년 6월, 차이샤의 내부강연녹음이 인터넷에 널리 퍼진다. 거기에는 중공은 이미 '정치적 강시'이고, 시진핑(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음)은 완전히 마피아두목이고, 누구든 이 위기국면을 수습하려 해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출로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만일 시진핑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체제는 자유낙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공이 홍콩국가안전법을 강행하는 것에 대하여, 차이샤는 "표면적으로 보면 중공이 홍콩인민의 자유권리를 위협하고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세계질서와 인류문명의 가치를 위협하는 것이다....중공은 인류의 공적이다."

 

8월 17일, 차이샤는 당적을 박탈당하고, 은퇴대우도 취소당한다. 그녀의 국내 은행계좌까지도 동결되었다고 한다. 만일 차이샤가 미국에 머물지 않고, 중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차이샤 본인이 홍얼다이이고, 차이샤의 제자는 대부분 중공고관이다. 중공이 차이샤를 엄벌한 결과는 아마도 더 많은 홍얼다이, 고관의 마음이 중공에서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천핑(陳平): 홍얼다이가 공개서신을 포위딩하다.

 

3월 21일, 홍콩에 있는 홍얼다이, 양광위성TV동사장 천핑은 웨이신에 공개서신을 포워딩했다. 그것은 긴급히 중공정치국확대회의를 소지배최하여, 시진핑을 하야시킬지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공개서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진핑의 집권이래업무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은 그 중요성이 사인방을 타도하는 것에 못지 않다."

 

천핑은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에 이것은 많은 사람, 특히 체제내의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이 특수한 것은 현재 하나의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이런 상태로 놔둘 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의 길 뿐이다."

 

그후 천핑은 여러해동안의 금기를 깨고, 직접 양광위성TV에 나와서 <진평유화설(陳平有話說, 천핑이 할 말이 있다)>는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는 중국의 시국에 대한 견해를 여기에서 밝힌다. 4월 11일, 천핑은 <간중국>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 중국은 이미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관건적인 순간에 있다. "나는 시진핑이 알기를 바란다. 만일 정말 안다면, 영명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모른다면, 아마도 만세에 욕을 먹게 될 것이다."

 

보시라이(薄熙來): 친청감옥(秦城監獄)에 갇혀 있다.

 

중공원로 보이보(薄一波)의 아들 보시라이는 '황제'가 될 준비를 했었다. 그가 다롄을 다스릴 때, 베이징천안문광장보다 2배가 큰 싱하이광장(星海廣場)을 만든 바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천안문광장에 있는 황권을 상징하는 화표(華表)보다 더욱 높은 화표를 세워 두었다.

 

보시라이는 일찌기 홍얼다이중에서 시진핑에게 최대의 경쟁적수였다. 후계자로 당선될 때, 보시라이가 너무 나대는 바람에 시진핑이 될 수 있었다. 2012년 2월 6일, 왕리쥔이 주청두미국총영사관으로 도망친 후, 보시라이가 저우용캉과 권력탈취를 밀모했다는 소식을 미국측에 누설한다. 보시라이는 저우용캉과 상의하여, 18대에서 보시라이가 저우용캉의 자리를 넘겨받아 중공정치국상위, 중공정법위서기가 되고, 그후 기회를 보아 '정변'을 일으켜 시진핑을 하야시키고, 보시라이게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2012년 2월 13일부터 17일까지, 시진핑이 미국방문한 기간동안, 이 소식을 알게 된다. 2012년 3월 15일, 보시라이는 체포된다. 그후 무기징역형을 받는다.

 

보시라이를 체포한 것은 시진핑 집권후 홍얼다이의 제1차분열이었다. 보씨집안과 보씨집안과 관계가 밀접한 홍얼다이들 예를 들어, 중공원로 왕쩐(王震)의 아들이자 중신집단 동사장인 왕쥔(王軍)등은 시진핑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해외로 이주한 홍얼다이의 후손들

 

중공의 이론인 마르크스주의의 실질은 '가(假), 악(惡), 투(鬪)'이다. 중공의 체제는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하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되든, 코치가 되건, 심판이 되건, 중공의 매커니즘은 고압과 기만이다. 이런 요소는 중공은 바로 너죽고 나살기식의 교육기(絞肉機)가 되게 만든다. '교살'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중공이 강산을 차지한 이들의 자손후대중 상당수는 일찌감치 해외로 이주했고, 재산도 외국으로 옮겨놓았다.

 

북경대학 교수 정예푸(鄭也夫)가 말하는 것처럼 중공특권계층의 자손은 이미 발로 투표했다. 강산을 사랑하지도 않고, 나라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시진핑이 온갖 힘을 들여 '강산을 보존'하려 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보존하려는 것인가?

 

시진핑은 누구에 의존하여 강산을 지킬 수 있을까?

 

2020년, 중공이 우한폐렴을 은폐한 것으로 인해 전세계에 퍼져버렸다. 미국의 위시한 자유세계는 이미 중국에 대하여 '멸공'대전을 개시했다. 중공은 이미 마지막 해체의 전야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취임하기 전에, 홍얼다이들이 일치하여 시진핑을 지지하던 국면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현재 누가 시진핑의 철석같은 지지자인가? 일찌기 시진핑을 도와 권력탈취에 공로를 세운 국가부주석 왕치산은 이미 주변으로 밀려났다. 일찌기 시진핑을 도와 시진핑최대의 정적인 장쩌민, 쩡칭홍을 상대하던 리커창은 계속 배제당하고 압박받고 있다. 중남해 최대의 간신이자, 장쩌민, 쩡칭홍의 심복인 중공정치국상위 왕후닝은 시진핑의 총조반수(總操盤手)가 되었다. 장쩌민, 쩡칭홍의 심복이며 중공정치국상위, 중앙기율검사위서기인 자오러지는 이미 '혈채방'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장쩌민, 쩡칭홍의 심복이며 중공정치국상위, 국무원부총리 한정은 아마도 매일 시진핑이 하야하는 것만 바라고 있을 것이다.

 

중공은 큰 화가 닥쳤다. 시진핑이 계속 당을 보존하려 한다. 때가 되면, 당을 지키지 못할 뿐아니라, 목숨마저도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