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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동홍(董宏) 체포는 왕치산(王岐山) 낙마의 전조인가?

by 중은우시 2020. 10. 5.

글: 장걸(張杰)

 

10월 2일, 중앙기율검사위 웹사이트에 이런 소식이 실렸다: 중앙순시조 전 부부장급 순시전원(巡視專員) 동홍이 "엄중한 위기위법(違紀違法)"으로 이미 감찰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동홍은 현재 나이 66세로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했다. 일찌기 보시라이(薄熙來)의 부친 보이보(薄一波)의 비서를 지낸다. 2000년이후 오랫동안 왕치산을 따랐다. 왕치산이 광동성 부성장, 국무원 경제체제개혁판공실 주임, 하이난성위서기, 베이징시장으로 있을 때, 동홍은 광동성정부 부비서장, 국무원 경제체제개혁판공실 산업체제사 사장(司長), 하이난성정부 부비서장, 베이징시정부 부비서장등의 직위를 지냈다. 동홍은 외부에서 왕치산의 심복 겸 대관가(大管家, 비서실장)로 여겨진다. 왕치산이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있을 떄, 동홍은 중앙제2순시조 부조장, 중앙제12순시조 조장을 지낸다.

 

동홍에 조사받기 전에, 왕치산과 관계가 비교적 좋았던 홍얼다이 런즈창(任志强)은 글을 써서 시진핑을 비난했다: "벌거벗고도 황제가 되려고 고집하는 삐에로" 9월 22일, 베이징시제2중급법원은 부정부패죄, 수뢰죄, 공금유용죄 및 국유회사인원권한남용독직죄로 런즈창에게 18년 유기징역형을 내린 바 있다.

 

왕치산의 두 가까운 친구가 전후로 시진핑에게 붙잡혔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시진핑과 왕치산의 사이에 금이 갔다고 여긴다. 심지어 이미 안면을 바꾸었다고도 얘기한다. 그럼 동홍의 낙마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시진핑과 왕치산의 관계는 도대체 어떠한가? 여기에서는 본인의 견해를 얘기해보기로 한다.

 

첫째, 동홍 낙마의 원인

 

중앙기율검사위의 통고에서 동홍을 조사하는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현재 분석가들의 견해는 대부분 추측이다. 당연히 우리는 최종적으로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경제부패의 원인으로 정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법기관으로 보내어 기소하고 재판할 것이다. 동홍은 분명히 죄를 인정하고 상소하지 않을 것이다.

 

원인은 아마도 경제부패와 정치박해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동홍은 오랫동안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일했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부패는 아주 심각하다. 그들의 잠규칙은 바로 일단 관리부패사건의 단서를 발견하면 암중으로 정보를 알려주고 뇌물을 받는다. 다만 만일 사건이 심각하거나 이미 지도자의 지시가 있으면 그들은 고문과 진술유인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관리가 죄를 인정하게 하여 공을 세운다. 그래서, 동홍이 부패로 낙마하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중공의 고관은 거의 탐관이 아닌 경우가 없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원인도 있다. 그것은 정치박해이다. 중기위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 많은 관리들이 그들과 관계를 잘 맺으려 한다. 하나는 자신에게 장래 문제가 생겼을 때 중기위의 친구가 돌봐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은 시진핑과 왕치산의 반부패기간동안 특수한 관계로 동홍을 통하면 왕치산과 연결될 수 있다. 셋은 친구를 도와 죄를 덮어주고, 자신이 돈을 받았을 수 있다. 결국 동홍은 분명 친구가 적지 않을 것이고, 받은 돈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미움을 산 경우도 많을 것이고, 원한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시진핑을 사적으로 비난했을 수도 있다. 누군가 그것을 밀고해서 시진핑이 격노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결국 시진핑이 동홍을 잡아들인 것이 왕치산에 대한 고산진호(敲山震虎)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알 수가 없다.

 

둘째, 시진핑과 왕치산의 관계

 

시진핑과 왕치산은 관계가 특수하다. 하나, 그들은 비슷한 홍색혈맥을 지니고 있다. 시진핑의 부친은 시중쉰이고, 시진핑은 정종의 홍얼다이라 할 수 있다. 왕치산의 장인은 야오이린이다. 왕치산은 인척관계로 맺어진 홍얼다이이다. 둘, 그들은 장기간 우의가 있다. 시진핑이 하향했던 초기에, 한번은 베이징에서 얜촨(延川)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 가는 길이 멀어서 먼저 풍장(馮莊)으로 가서 왕치산의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 두 사람은 같은 이불을 덮고 잤다. 셋, 그들은 비슷한 경력이 있다. 모두 오랫동안 하층에서 일을 했다. 그들의 중국에 대한 견해는 비슷하다. 모두 부친대가 남겨놓은 홍색강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독재를 숭상한다. 경제적으로는 국유경제를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다만 민영경제에 생존공간은 남겨두어야 한다고 여긴다. 넷, 그들은 모두 명나라 왕양명의 심학(心學)을 숭상한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시진핑은 총서기를 맡은 후 지금까지 이미 6,7번 왕양명을 언급했거나, 왕양명의 학설을 인용했다. 왕치산은 미국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福山)와의 대화때 자신은 왕양명의 심학에 흥미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른 점도 있다. 하나, 왕치산은 정규교육을 받았고, 서북대학 역사학과를 다녔다. 시진핑은 정규교육을 받은 바 없다. 그의 박사학위는 그저 명불부실(名不副實)하다. 둘, 시진핑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중서방문화에 대한 이해가 얕다. 다만 왕치산은 글을 많이 읽었다. 셋, 시진핑은 성격은 야만적이고 능력은 부족하다. 왕치산은 건설은행의 행장을 맡은 바 있다. 그리고 광동국유투자은행이 청산업무를 짆애했다. 하이난의 채무위기로 해결했다. 사스와 2008년 국제금융위기등 중대위기사건을 잘 대응했다. 왕치산의 치국능력은 확실히 시진핑보다 뛰어나다. 시진핑이 취임한 후 5년동안, 왕치산은 시진핑을 도와 권력집중을 완성한다. 넷, 시진핑은 독재주의를 숭상한다. 모택동은 그의 정신적 스승이다. 그러나 왕치산은 다르다. 80년대 왕치산은 자유주의 총서 <주향미래(走向未來)>의 편집위원을 맡은 바 있다. 제1차기부금 5000위안은 왕치산이 낸 것이라고 한다. 다만 6.4이후, 그의 사상은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자유주의 와 결별하고 권위주의로 향했다.

 

이념이 다르다보니, 19대이후, 왕치산은 비록 국가부주석이지만, 고의로 시진핑과 거리를 둔다. 2018년 5월, 그는 미국의 비지니스계인사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미중관계를 담당하는 책임자'라는 것을 부인한다. 자신의 국가부주석이라는 자리는 시진핑이 그에게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금년초, 우한에서 신종코로나가 발발했을 때, 왕치산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황학루상간번선(黃鶴樓上看飜船, 황학루에서 배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뜻으로, '견사불구(見死不救)' 죽는 것을 보고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의미임)'했다. 시진핑은 왜 왕치산을 기용하지 않았을까? 왕치산의 방역방식과 비교하면 우리는 바로 알 수 있다. 시진핑과 왕치산은 방역방식이 전혀 다른 것이다.

 

왕치산은 SARS기간동안 솔직하게 말했고, 실질적인 일을 했다. 감히 나서서 일을 해낸다는 모습에 많은 중국인들이 그를 찬양했다. 다만 시진핑의 방식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진핑은 리원량등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탄압했다. 상황을 은폐했다. 그리하여 사태가 만연하고 세계로 퍼져가싿.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3,475만명이 감염되고, 102만명이 사망했다. 시진핑은 야만적은 도시봉쇄방식을 취하여 부가적인 재해까지 일으킨다. 사태가 완화된 3월에, 시진핑은 비로소 우한의 땅을 밟는다.

 

셋째, 시진핑은 왕치산을 용납하지 못한다.

 

19대이후, 대권을 장악한 시진핑은 그에게 아부하는 시가군(習家軍)에 둘러싸인다. 궁중정치가 부활한 것이다. 시진핑은 내심으로 왕치산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왕치산의 능력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시진핑은 속이 좁다. 그래서 왕치산이 나서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왕치산이 일을 잘 해내면, 자신의 위엄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일존(一尊)은 신이다. 칼도 총알도 들어가지 않는다. 무엇을 해결하지 못한단 말인가? 시진핑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와중에 스스로를 해치고, 국가를 해쳤다. 리커창이 우한을 시찰하여 민중의 찬양을 받을 때, 시진핑은 상처를 입고 질투한다. 1월 28일,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이여수스가 중국을 방문했을 떄, 시진핑은 기회를 잡아 공로를 가로챈다: "나는 지금까지 직접 지휘했고, 직접 배치했다." 우한의 방역업무를 자신이 했다고 한 것이다. 왕치산이 어떤 인물인가? 육전, 해전 ,공중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그는 중국정치의 어두운 점을 잘 안다. '토사구팽'의 원리도 잘 안다.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시진핑은 제왕심리를 가지고 있으며 계속 권모술수를 쓰기를 좋아한다고. 제왕심리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공을 세우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어찌 자신의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는 자를 용납할 것인가. 많은 태자당의 인물들이 시진핑에 의하여 자리에서 쫓겨났다. 시진핑은 태자당중 유일한 홍색혈맥으로 남아서 장기집권하려는 것이다. 설사 왕치산이 시진핑을 도와서 반부패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시진핑은 왕치산에 대하여 마음을 놓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시진핑이 사람을 보내어 왕치산을 조사했었다고 폭로했다. 왕치산은 확실히 중공의 일반적인 간부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지녔다. 과감하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행동한다. 살벌하게 결단한다. 파죽지세로 밀어부친다.

 

시진핑이 왕치산을 멀리하는 것은 한편으로 당연히 그가 공을 크게 세워서 자신보다 위신이 커질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에 '시진핑이 왕치산만 못하다'는 말이 돌고 있기 대문이다. 그리하여 시진핑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당시 모택동은 바로 그 동요 "모주석이 삼일을 공부하지 않으면, 유소기를 따라가지 못한다."에 놀라서 어쩔 줄 몰랐던 것아닌가. 시진핑은 팔기자제나 도련님(公子哥) 스타일이다.  왕치산은 권위주의통치사상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치국이념, 일처리방식은 시진핑과 전혀 다르다. 시진핑의 질시와 편협은 왕치산을 용납하지 못한다.

 

넷째, 시진핑은 왕치산을 끌어내릴까?

 

필자의 생각에 아직 그런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런즈창이 중형을 받은 것은 시진핑과 왕치산의 반목이라고 결론내리기 힘들다. 왜냐하면 런즈창과 왕치산의 관계가 좋지만, 어쨌든 평소에 접촉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2016년 런즈창이 당매성당(黨媒姓黨)에 대하여 비판을 쏟았을 때, 왕치산이 도와준 적이 있다. 이번에 런즈창이 시진핑을 직접 비판하게 되니, 도와주기가 어렵게 되었다. 다만 이런 세부적인 사항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정에서 런즈창에게 판결을 선고한 후, 런즈창은 상소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는 판결선고후 런즈창이 병보석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을까? 혹시 왕치산이 암중으로 도와 준 것이 아닐까? 동홍은 왕치산의 심복이다. 다만 문제가 부정부패인지 반시진핑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처벌에서 왕치산이 적절하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진핑이 왕치산을 경계하는 것은 맞다. 왕치산을 중용하지 않는 것도 맞다. 동시에 그들은 치국이념이 서로 다르다. 다만 필자는 시진핑과 왕치산이 이미 반목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중공은 흑사회이다. 내부투쟁, 싸움은 항상 있어왔다. 다만 하나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시진핑, 왕치산은 한배를 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진핑과 왕치산은 힘을 합쳐 많은 부패관리를 솎아냈다. 시진핑이 낙마하는 것은 왕치산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시진핑이 왕치산을 낙마시키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현재 중국은 내우외환으로 상황이 심각하다. 중국 홍색강산을 지키는 일에서 시진핑과 왕치산은 의견이 일치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동홍의 낙마는 부정부패로 인한 것이든 정치박해이든, 왕치산의 낙마를 알리는 전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진핑과 왕치산은 갈등이 있기는 해도, 현재 중국은 안으로는 경제가 좋지 않고, 위구르족, 몽골족과 갈등이 있고, 홍콩과 타이완위기도 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을 위시한 반중진영과 전면적으로 대항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중공정권이라는 한 배를 탔다. 공동의 이익이 있다. 시진핑은 그의 권력을 위협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고 경계한다. 독재자는 진정한 친구가 있을 수 없다. 능력이 그보다 뛰어난 왕치산을 당연히 경계할 것이다. 5중전회전에 다음에 낙마할 사람은 누구일까? 정치문명시대로 들어서지 못한 중국에서 다시 한번 3천년간 독재에서 일어났던 혈우성풍이 윤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