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동홍(董宏)낙마: 중남해 "지동산요(地動山搖)"

중은우시 2020. 10. 11. 14:49

글: 나정정(羅婷婷)

 

최근 들어 왕치산의 친구와 심복의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외부에서는 '시왕반목(習王反目)'에 대한 추측이 난무한다. 한 소식통의 토로에 따르면, 왕치산의 '대비(大秘, 비서실장)' 동홍의 관료사회에서의 무게는 쑨리쥔 3명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의 돌연한 낙마는 핵폭탄이 터진 것과 같으며, 중남해의 지동산요를 몰고 올 것이다.

 

동홍낙마, 경성의 정국이 흔들리다

 

왕치산의 가까운 친구 런즈창이 18년형의 중형을 받은 후, 오랫동안 왕치산을 따랐던 중앙순시조의 전 부부장급 순시전원 동홍이 이어서 낙마했다. 10월 2일, 중앙기율검사위 감찰위원회 사이트에는 동홍이 '엄중한 위기위법 혐의'로 현재 '기율검사와 감찰조사'를 받고 있다고 공표했다.

 

공민역량의 부주석 한롄차오(韓連潮)는 10월 8일 트위터에서 동홍에 관련된 폭로내용을 실었다. 동홍의 관료사회에서의 무게는 쑨리쥔 3명과 같다고 하며, 그는 중앙기율검사위 북경방의 큰형이고, 북경방의 구성원에는 왕치산의 옛부하인 샤오페이(肖培), 리샤오홍(黎曉宏), 자오펑통(趙鳳桐)과 추이펑(崔鵬)등이 포함되어 있다. 동홍의 정치자원은 노,중,장 3대에 걸쳐 있다. 보이보를 부친과 같이 보고, 보시라이를 형과 가티 보고, 그의 동생들은 모두 실권소장파이며 거기에는 깐쑤성위서기 린둬(林鐸)도 포함된다. 

 

금년 4월, 전 공안부 부부장 쑨리쥔이 돌연 낙마한 것을 중공내부투쟁의 표지석과 같은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쑨리쥔은 상해방과 관계가 밀접하고, 정치, 정보와 파룬공진압등 안정유지업무를 주관했었다. 장쩌민파의 고위 앞잡이이다. 그런데, 실력이 쑨리쥔보다 훨씬 큰 동홍이 잡혔다는 것은 중공내부에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고, 앞으로 지동산요하게 될 것이다.

 

동홍은 보시라이가족과 관계가 밀접하다.

 

주목할 점은 동홍이 2020년들어 15번째로 낙마한 부부장급 고관인데, 다른 낙마한 고관과 달리, 중기위의 웹사이트 통보내용이 동홍의 이력이 나와 있지 않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홍의 관료생활은 중앙고문위원회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일찌기 중공원로, 중앙고문위원회 상무부주임 보이보의 비서장을 10년간 지낸다. 나중에는 오랫동안 왕치산을 따랐고, 왕치산을 도와 반부패활동에 종사했다. 외부에서는 동홍의 낙마는 간단하지 않다고 본다. 중남해는 아마도 한바탕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동홍은 1953년생으로 랴오닝성 하이청시(海城市) 사람이다. 동홍은 1983년 중앙고문위원회 비서, 연구실 부주임이 된다, 1992년에 이르러 중앙고문위원회가 철폐된 후, 광동성 포산시(佛山市) 시장조리가 될 때까지 전후로 10년간 중앙고문위원회에서 일했다.

 

중앙고문위원회는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중공내에 존재한 특수한 기구이다. 등소평이 생전에 중앙고문위원회 주임을 맡았다. 이 특수한 기구는 중공중앙지도층의 신구교체를 처리하고, 젊은 관리들을 뽑아서 중앙위원회에 진입시켰으며, 나이많은 노간부는 은퇴한 후 중앙고문위원회로 왔다.

 

중앙고문위원회는 중공원로원에 상당한다. 보이보는 계속하여 중앙고문위원회 상임부주임을 맡아, 실질적으로 중앙고문위원회를 장악한다. 동홍은 중앙고문위원회에서 일할 때 실질적으로 보이보의 비서를 맡는다. 중앙고문위원회가 1992년에 철폐된 후, 동홍은 광동성 포산시 시장조리로 갔고, 1993년 북경으로 돌아와 중국사회과학원 당대중국연구소 부국장, 국장이 된다.

 

중앙고문위원회의 비서장 리리안(李力安)은 당대중국연구소 소장을 맡아, 동홍은 다시 리리안의 부하가 된다. 보이보는 산시성(山西省) 딩샹현(定襄縣) 장춘(蔣村) 사람이다. 리리안은 그의 고향사람이고, 관계가 밀접했다. 동홍은 보이보의 대비로 보씨가문과 관계가 밀접했다. 위의 폭로인사에 따르면, 동홍은 보이보를 부친처럼 여기고, 보시라이를 형처럼 여겼으며, 장쩌민파의 인물들과도 많은 교류가 있다고 말한다.

 

동홍은 왕치산을 따라다니며, 장쩌민파의 지반(地盤)을 순시했다.

 

그후, 동홍은 왕치산을 따르기 시작한다. 왕치산이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은 기간동안, 순시업무를 주도하는데, 동홍은 여러번 순시조 부조장 혹은 조장을 맡아, 상하이복단대학, 장쑤성, 중국이동통신등 상해방 및 장쩌민가족세력의 지반을 순시한 바 있다.

 

2013년, 중공18대이후 제2차중앙순시때 동홍은 제2조 부조장을 맡아서, 신화사에 진주한다. 2014년, 동홍은 전후호 상해복다대학과 장쩌민의 고향 장쑤성을 순시하는 순시조의 조장과 부조장을 맡는다.

 

2015년 2월, 동홍은 중앙제12순시조의 조장이 되어, 중국전신과 중국이동통신에 진주하여 특별순시업무를 진행한다. 장쩌민의 장남 장멘헝은 중국의 '전신대왕'으로 일컬어진다; 장멘헝의 '전신왕국'은 중국이동통신, 연통과 중국망통을 포함한다.

 

왕치산이 '전군변(剪裙邊)'을 당한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동홍은 보시라이계, 왕치산계를 겸하여, '무우를 뽑으면 흙도 따라나오게 된다' 도대체 그의 낙마로 연루될 범위가 어디까지일지에 대하여 외부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의 매체인사인 가오위(高瑜)는 일찌기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동홍의 낙마는 바로 당내의 숙청이다. 중공당내에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 오직 한 목소리만을 듣기를 원하기 때문에 손을 쓰게 된 것이다."

 

시사분석가 린허리(林和立)의 분석에 따르면, 동홍의 낙마는 왕치산세력과 그의 당내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최신의 사례이다. 왕치산의 이후 처지가 어떨지는 말하기 어렵다.

 

한 중국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캐나다학자인 Alex Payette는 이렇게 지적한다: "동홍이 체포된 것은 왕치산에 있어서 좋은 징조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상황하에서, 비서 혹은 가까운 친구가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모두 관련지도자가 곧 낙마할 것이라는 것을 예시하기 때문이다."

 

<르몽드>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어느 지도자를 끌어내리려면, 통상 그의 주변사람부터 시작한다.

 

시진핑이 동홍을 체포한 것이 왕치산에 대한 고산진호(敲山震虎)인지 여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어떤 평론가는 시진핑은 제왕심리를 가지고 있어, 모든 마음씀씀이를 권모술수에 두고 있다. 19대이후, 대권을 장악한 시진핑은 그를 칭송하고 아부하는 시가군에 둘러싸여 버렸고, 내정정치가 부활했다.

 

평론가에 따르면, 일존에 오른 시진핑은 내심으로 왕치산을 경계한다. 그가 공고개주(功高蓋主)하는 것을 우려한다. 설사 왕치산이 시진핑을 도와 반부패가 가장 요란했을 때조차, 시진핑은 왕치산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았고, 사람을 보내 왕치산을 조사하게 한 바 있다.

 

자유아시아평론에 따르면, 시진핑이 왕치산을 경계하는 것은 막다. 왕치산을 중용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공은 흑사회(마피아)이고, 내부투쟁과 전투는 항상 존재했다. 다만 시진핑이 무너지는 것이 왕치산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고, 시진핑이 왕치산을 낙마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다른 분석에 따르면, 중공은 파벌이 교차하고, 당금 중남해의 진정한 조타수는 시진핑의 '첩심인(貼心人)' 왕후닝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국요(國妖)'이다. 왕치산의 주변사람에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왕후닝과 분명히 관계가 있다.

 

현재 중공은 내외로 곤경에 처해 있다. 정권은 위기일발이다. 중남해의 권력쟁탈전은 다시 격렬해지고 있고, 미국으로 도망친 중국상인 궈원꾸이는 라이브방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대통령선거가 가까워오면서, 중공의 각 파벌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미국정부를 이용하여 중공내부의 정치투쟁을 끝내고자 한다.

 

궈원꾸이에 따르면, 왕치산, 쩡칭홍, 리커창, 장쩌민, 주룽지가 '모조리 나섰다' 심지어 친청감옥에 갇혀 있는 '노장'들도 활동을 시작했다. 외부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배경하에서 동홍이 낙마한 것은 아마도 그저 시작일 뿐이고, 이후에 더욱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