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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913사건"(임표도망사건)의 또 다른 한 대의 비행기

by 중은우시 2020. 9. 15.

글: 이청(李菁)

 

1971년 9월 13일 새벽, 임표(林彪)는 산해관(山海關)공항에서 트라이던트256전용기를 타고 도망쳤다. 도중에 몽골의 원두르칸을 지날 때, 추락하여, 모두 사망한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그날 트라이던트256전용기외에 또 하나의 헬리콥터도 함께 도망갔었다는 것이다.

 

임표가 도망칠 때 탄 트라이던트256전용기의 부조종사 강정재(康庭梓)는 당시에 비행기에 타고 있지 않았다. 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얘기했다.

 

3685헬리콥터를 직접 겪은 진사인(陳士印)은 나의 항공학교 동기이다. 1964년 7월, 우리는 함께 34사로 배속된다. 진사이는 나주에 새로 설립된 4단으로 가서 헬리콥터를 조종하게 되었다. 1967년 공군은 프랑스로부터 Aérospatiale Alouette(雲雀)헬리콥터를 도입한 후, 그는 '운작'조종을 배우고 금방 비행부대대장이 된다. 당시 나이 30살도 되지 않았다.

 

1971년 봄, 공군 부참모장 호평(胡萍)은 헬리콥터단을 지휘하는 전용기사 부사장(副師長)을 찾아서 말했다: "공군 수장의 요청이 있으니 수장(임표)의 곁에 헬리콥터 조종사를 1명 교육시켜달라." 그 헬리콥터조종을 배운 사람이 바로 주우치(周宇馳)이다.

 

비록 주우치는 공군의 신분이지만, 사령부당위판공실 부주임이고, 그가 임입과(林立果, 임표의 아들)와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사장은 친히 주우치를 데리고 비교적 선진적인 '운작'헬리콥터의 조종을 배우게 한다. 부대대장인 진사인이 훈련비행을 담당할 지휘관으로 지정된다. 그리하여, 그도 주우치를 만나서 알게 된다.

 

9월 13일 새벽 1시경, 잠에 빠져있던 진사인은 주우치의 전화에 잠을 깬다. 주우치는 우신야(于新野, 당시 공군당위 판공실비서)로 하여금 차량으로 진사인을 공군지휘학원의 건물로 데려오게 한다. 주우치는 16절지크기정도의 백지를 꺼내서 진사인에게 보여준다. 위에는 붉은 연필로 쓴 몇 글자가 있었다: "입과, 우치 동지가 전달하는 명령에 따라 처리하기 바람. 임표 구월 팔일" 아래에 도장도 찍혀 있지 않았고, 위에 붉은 글씨의 레터헤드도 없었다.

 

주우치는 중요업무라고만 말했다. 진사인으로 하여금 헬리콥터를 몰고 북대하로 가서 임표에게 문건을 전달하라고 했다. 이어서 주우치는 우신야, 이위신(李偉信, 당시 7431부대 정치처 부처장)과 3명이 공군지휘학원의 사무실에서 황급히 물건을 챙긴 후 진사인을 데리고 사하(沙河)공항으로 간다. 오랫동안 직-5헬리콥터는 조종해보지 않아서, 진사인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또 다른 헬리콥터조종사인 진수문(陳修文)을 부른다.

 

주우치는 임표의 명령서를 가지고 엔지니어를 속여서 헬리콥터를 몰게 된다. 그리고 자동차연대의 연대장도 속여서 3685호 헬리콥터에 기름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조도장(운항관리책임자)를 속여 비행장의 운항관리실 당직자에게 헬리콥터를 띄우게 한다.

 

진사인과 진수문은 당연히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직-5의 조종석에는 3명이 앉을 수 있었다.진수문이 왼쪽의 주조종석에 앉고, 진사인은 오른쪽의 조종석에 앉는다. 주우치는 진사인의 뒤에 앉았다. 그는 통화를 끊고, 다시 숙련되기 항행등과 모든 등을 끈다. 그러면서 기밀임무이기 때문에 침묵을 유지하면 항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헬기가 출발한 후, 주우치는 두 조종사로 하여금 장가구(張家口)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조종사들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북대하로 가서 임무를 집행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주우치는 더 이상 계속 속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북경 - 울란바토르 - 이르쿠츠크의 항행노선도를 보여주며, 두 조종사에게 울란바토르로 가라고 명령한다. 

 

진사인은 나중에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들은 당시 복잡한 정치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주우치는 도망치려는 것이었다.이것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편으로 조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궁리를 했다.

 

기실, 이 3685호 헬기는 당시에 이미 지면레이다의 감시하에 있었다. 장가구일대의 비행장에 있는 8대의 전투기가 이미 이륙해 있었다.

 

진사인의 회고에 따르면, 그와 진수문은 은연중에 비행기 주위로 작은 비행기의 그림자가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주우치에게 말한다. 전투기가 막고 있다고. 주우치가 놀라서 목을 빼어 바깥을 내다보는 동안에 조종사는 그 순간을 트마 몰래 비행기의 방향을 180도 돌려버린다. 그리고 교묘하게 헬기를 오른쪽으로 튼다. 이렇게 하여 헬기는 오던 길을 되돌아오게 된다.

 

새벽 4시 50분경, 비행기는 관청수고(官廳水庫) 상공에 도착한다. 북경성내의 불빛이 약간 보였다. 주우치는 바로 속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쩔 줄 모르고 먼저 권총을 꺼내 두 조종사를 협박하여, 조어대 국빈관으로 가라고 한다. 조종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조어대 부근에는 고사포가 있어, 도착하기도 전에 격추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편으로 주우치와 얘기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고도를 낮추어, 그들이 잘 아는 서교(西郊)공항에 착륙하려 했다. 그러나, 주우치가 미친 듯이 저지하여, 그들의 이런 조치는 실현되지 못한다.

 

당시 우리의 전용기사의 사단장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 서교공항에는 트라이던트를 처리하는 일을 배치하고 있었는데, 헬기가 돌아오자 급히 지면에 헬기를 처리하는 업무를 배치했다. 모든 배치가 완료되었는데, 헬기가 내리지 안고, 다시 날아올라서 떠났다. 사하공항에 도착한 후에도 역시 착륙하지 않았다.

 

헬기가 회유(懷柔)상공까지 날아갔을 때 날은 이미 밝았다. 회유는 우리가 자주 훈련할 때 갔던 곳이다. 모두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진사인은 그가 사욕(沙峪)일대의 강사에 개활지가 있다고 말하고, 천천히 고도를 낮추었다. 이때 이미 3시간을 비행했고, 주우치도 알고 있었다. 남은 기름량으로는 국경선을 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착륙하려는 것을 막지 않았다.

 

고도를 80미터까지 낮추었을 때, 진수문은 돌연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주우치의 총을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주우치는 바로 근거리에서 그의 왼쪽가슴을 쏜다. 마침 헬기를 조종하여 착륙하려던 진사인의 회고에 다르면, 그가 총소리를 듣고, 진수문이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헬기의 균형은 신경쓰지 않고, 본능적으로 왼손으로 뒤를 막으면서 소리쳤다: "왜 총을 쏩니까?" 비행기가 일시에 완전히 통제불능상태가 되었다. 결국은 진사인의 조종실력으로 다시 헬기를 안정시킨다.

 

비행기가 착륙한 후, 객석에 앉아 있던 우신야와 이위신이 헬기에서 내렸다. 그들은 진수문이 조종석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충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신야는 즉시 총구를 진사인에게 겨누고 사격준비를 한다.

 

진사인은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그의 눈에 누가 오는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오른쪽에서 그를 눌러왔다. 이때 주우치의 두 손이 그의 어깨를 힘있게 잡고 있었다. 진사인이 쓰러지는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우신야의 총이 발사된 것이고, 주우치의 팔에 맞았다. 주우치는 크게 소리질렀다: 나를 쐈어! 진사인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오른쪽 헬기문을 밀어서 열고 도망쳤다. 

 

진사인은 그날 가죽자켓을 입고 있었고 안에는 업무복을 압었다. 나중에 그는 발견한다. 총알이 살에 닿아 있었다는 것을 안팎의 두 개의 옷에 4개의 구멍이 뚤려 있었다는 것을. 지상에 있던 민병이 달려왔고, 진사인의 얼굴에 온통 피로 뒤범범인 것을 보고 그가 중상을 입었다고 생각하여 그를 들처업고 뛰었다. 진사인은 급히 말한다: 나를 업을 필요없다. 헬기에 한명 더 있다. 민병들이 헬기로 가서 진수문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한 마을의 생산대대에 도착하여, 진사인은 전화로 서교공항의 호평에게 연락한다. 호평은 그에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다. 진사인은 대대에서 몇시간을 기다렸고, 정오가 되어 무경부대가 차량을 가지고 그를 데리러 온다.

 

진사인이 도망친 후, 우신야와 이위신은 부상입은 주우치를 비행기에서 끌어내린다. 근처의 옥수수밭으로 간 후에 자살하자고 합의한다. 3명은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같이 하나, 둘 셋을 세면서 동시에 총을 쏘기로 했다. 주우치, 우신야는 바닥에 쓰러졌으나, 이위신은 권총을 살짝 들어 하늘에 쏘아서 살아남는다. 나중에 법정에서 임임과가 임표의 지시로 <571공정기요>를 만든 일을 진술한다. 

 

이위생은 1934년생으로 임입과의 '비서'가 된다. 1981년, 공군법원은 이위신에게 15년형을 내린다. 그리고 상해시제람교(提籃橋)감옥으로 보내어져 복역한다. 감옥에서 그는 건축학을 공부한다. 출옥후 그는 처와 이혼하고, 신속히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면서 저녁시간에는 동제대학에서 2년간 영어를 배운다. 건축설계수준이 뛰어났고 ,영어도 잘하다보니 1990년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계 건축설계사 패율명(貝律銘)과 연결되어, 패율명의 설계사무소의 상해판사처를 책임진다. 이렇게 그는 패율명의 유력한 조수가 된다. 이위신은 세계각지에서 건축설계를 했고,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진사인은 북경으로 돌아온 후, 11년간이나 구류심사를 받았고 결국은 심양 고향으로 간다. 진사인은 여러해동안 대외적으로 이때 일을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옛동창, 전우의 신분으로 그를 찾았고, 마침내 그를 설득하여 여러 해전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 되돌아온 3685호헬기는 지금도 사하공항의 항공클럽에 보존되어 있다.

 

새벽 3시 15분, 3685호 헬기가 이륙했다. 그때는 주은래 총리가 이미 공군에 있던 이덕생(李德生)에게 지시하여 '금공령'을 내린다. 이때 장가구공항에서 전투기가 이미 이륙했고, 3685호헬기를 공중에서 막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