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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왕이(王毅)는 외교부장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by 중은우시 2020. 9. 3.

글: 양위(楊威)

 

왕이는 유럽방문을 끝냈다. 유럽을 끌어들여 함께 미국에 대항하려는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가는 곳마다 중국이 인권박해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들었고, 독일 외무장관은 더더욱 직접적으로 중국에 홍콩국가안전법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들어야 했다.

 

왕이는 상상할 수 없는 냉대를 받았다. 노르웨이가 홍콩인을 2020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하자, 왕이는 악독한 말로 비난 했고, 이는 노르웨이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그후, 왕이는 직접 타이완을 방문한 체코상원의장대표단을 위협하여 다시 한번 강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독일 외무장관은 직접적으로 '왕이의 협박은 여기서 적합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왕이의 유럽 5개국방문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왔고, 오히려 갈등만 격화시켰을 뿐이다.

 

9월 2일,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새로운 대등외교매커니즘을 선언했다. "미국에 있는 고위중공외교관이 미국대학캠퍼스를 방문하거나, 지방정부와 만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는 중국사절단의 자산범위밖에서 만일 참가자수가 50명이상인 문화활동을 거행할 때도 적용되어 국무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외에 모든 중국대사관,영사관의 SNS계정에는 반드시 중국정부의 계정이라는 것을 표시해야 한다.

 

유럽과의 관계를 만회하지 못했고, 미국에 대하여도 아무런 방법이 없다. 왕이의 이 외교부장 직은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9월 2일, 신화사는 <손에 손을 잡고 중국유럽관계를 앞으로 발전시키자>는 글을 실어, 적시에 왕이가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프랑스와 독일을 방문한 것에 대하여 '유럽각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결론내렸다.

 

왕이가 가장 중시한 것은 독일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방문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일외무장관은 상당히 강경했고, 독일총리 메르켈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왕이로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신화사는 그저 스스로 찬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중국과 유렵이 공동으로 다변주의의 목소리를 키웠다"고 말하면서 고의로 "현재, 미국의 일부 정치인이 마음대로 단변주의, 보호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시종 다변주의를 굳건히 옹호하고, 유럽측과 공동으로 다변관계를 유지할 것을 원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화사는 스스로 '유럽측의 광범위한 동의를 받아냈다"고 말했지만, 이는 실제 중국의 일방적인 바램인 것이다.

 

신화사도 부득이 인정해야 했다. 왕이의 방문은, "중국과 유럽간에 이견에 대하여 적절히 통제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중국과 유럽간에 이견이 존재하고, 평등대화를 통해 이해를 심화하고, 솔직한 소통으로 상호신뢰를 증진시켜야 한다."

 

유럽에서는 비슷한 표현이 없었다. 오히려 중국이 인권을 박해한다는 것을 두드러진 위치에 놓았다. 신화사도 마지막에는 부득이 이렇게 말한다: "유럽은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 합작을 원한다."

 

실제로 중국은 충돌을 겁내고, 유럽이 미국의 행렬에 가담하는 것을 겁낸다. 다만 왕이의 언행은 상호신뢰를 증가시키지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반감만 증가시켰다. 왕이의 인권문제에 대한 표현은 유럽이 더욱 중국을 잘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왕이는 1953년 출생했고, 현재 나이는 67세이다. 장관급의 기준에 따르면 65세에 퇴임해야 했다. 저장과 랴오닝의 두 성위서기도 막 나이가 되어 퇴임했다. 왕이는 그런데도 국무위원의 직함을 달고 있으니, 부국급(副國級)이라 할 수 있다. 70세에 퇴임하면 된다.

 

외교부장으로서, 왕이는 미국쪽에 전혀 말도 섞지 못한다. 유럽도 체면을 봐주지 않는다. 정상적이라면 당연히 사임해야 한다.

 

왕이는 확실히 구미에서 일한 경력이 없다. 그는 원래 일본어전공이다. 전후로 외교부 아주사와 주일대사를 지냈다; 1995년부터 외교부 아주사 사장, 부장조리, 정책연구실주임, 부부장등의 직위를 지낸다; 2004년 왕이는 다시 주일대사로 나간다; 2007년 귀국후, 전후로 외교부 당위서기, 부부장, 국태판공실주임을 맡는다. 2013년, 왕이는 외교부장에 오른다.

 

왕이의 외교부에서의 승진은 인척관계의 도움을 받았다. 왕이의 장인은 첸자동(錢嘉東)인데, 일찌기 저우언라이의 외사비서를 지냈다. 나중에 중국주유엔제네바대사를 지낸다. 왕이의 장모 천얜(陳琰)은 외교부 아주사 부사장을 지냈다.

 

왕이 본인은 구미에서 일한 경력이 없고, 일본과 아시아는 아주 익숙하다. 분명히 시진핑에게 인정을 받아서 외교부장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보면 이는 중국외교사의 큰 실패작이다.

 

2016년 6월 1일, 왕이는 캐나다를 방문한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캐나다기자가 캐나다외무장관에게 중국과 홍콩의 인권문제를 질문한다. 왕이는 곁에서 그 말을 듣고 화를 낸다. 직접 끼어들어 그 기자에게 아주 오만과 편견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국제적으로 말썽을 일으킨다. 그후 중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멍완저우사건으로 신속히 악화된다.

 

다만, 왕이는 아부를 잘했다. 2017년 9월 1일, 왕이는 <시진핑총서기외교사상의 지도하에 개척전진한다>는 글을 발표한다. 거기서 시진핑의 "세계발전의 조류에 서서, 창조적으로 일련의 외교신이념, 신사상, 신전략을 제출한 것'을 찬양하고, '시진핑외교사상은 과거 300여년 서방전통국제관계이론의 혁신이자 초월이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2018년 왕이는 외교부장에 연임되고, 국무위원으로 승진한다. 이는 중국외교에 더욱 큰 악몽을 가져왔다.

 

금년이래, 중국외교는 금방 고립에 빠진다. 미중관계는 신속히 악화된다. 7월 20일, 왕이는 시진핑외교사상연구센터 성립의식을 주재하고 여전히 시진핑을 받든다: "오늘날의 중국은....전례없이 세계무대중앙에 가까워졌다.....시진핑은....위대한 전략가의 장기적안목의 탁견으로....중국이 어떤 세계를 건설해야하는지, 어떤 국제관계를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답해주었다." "중국특색의 대국외교에 상급설계와 전략기획을 하여 인류운명공동체를 구축하도록 추진했다." "글로벌통치관"

 

미중관계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그런데도, 왕이는 시진핑의 외교사상을 찬양한다. "중국외교는 시진핑외교사상을 가이드로 하여....역사적인 성취를 거두었고, 참신한 국면을 개창했다." 그 말의 속에 숨은 뜻은 바로 미중관계가 역사적 최저점에 이르렀는데, 이는 모두 중공고위층의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란 말이다.

 

현재, 유럽쪽이 터졌다. 만일 중국고위층이 왕이를 교체한다면, 겉으로는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될 것이지만, 아마도 진정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9월 2일, 신화사는 또한 잘보이는 장소에 <미국은 중국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응락하고, 관계를 다시 정상궤도에 진입하도록 해야 한다---전국정협외사위원회부주임 콩췐(孔泉)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콩췐은 1955년생이다. 왕이보다 어리다. 그리고 홍이대(紅二代)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화사 도쿄분사 및 하바나분사의 전사장 콩마이(孔邁)의 장남이다. 콩췐은 북경외국어학원부설학교를 졸업하고, 벨기에, 프랑스에 유학했다. 졸업후에는 중국 주벨기에대사관에서 일했다; 나중에 중국 주프랑스대사관 참찬, 서구사 부사장을 지낸다. 2001년 외교부 신문사사장이 되고, 2006년 외교부 구주사 사장, 부장조리가 된다. 2008년에 중국 주프랑스대사가 된다, 2013년 중공외교공작영도소조판공실 부주임이 되어 실질적으로 외교부를 떠난다. 그해 나이 58세였다. 중임을 맡지 못한 것이다. 2018년 콩췐은 63세의 나이로 정협에 들어가 양로하고, 외사위원회 부주임이 되었다.

 

콩췐은 이미 외교영역을 떠났다. 그런데 돌연 신화사와 인터뷰를 하다니, 그리고 아주 민감한 미중관계를 얘기하다니 이것은 아주 괴이하다. 이는 중국의 관료사회에서는 금기이다. 그런데, 이 글이 당매체의 아주 두드러진 위치에 실리다니, 실로 심상한 일은 아니다.

 

콩췐의 인터뷰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다. 여전히 혼자만의 바램으로 '충돌대항을 피하고, 이견을 통제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며 미국측에 '중국입장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호응하라'고 하였다. 콩췐은 또한 "그 핵심문제는 미국측이 도대체 미중관계발전을 어떻게 판단하느냐, 대중관계를 어떻게 처리하려고 생각하느냐이다"라고 하였다.

 

콩췐은 계속하여 공을 미국측에 넘겼다. 중국이 어떤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최소한 콩췐은 욕을 하지는 않았다. 또한 모욕적인 말도 거의 없었다. 콩췐의 신분으로 보아, 이런 글은 아무런 무게가 없다. 미국에 무슨 영향력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당매체는 도 다른 반미선전을 할 것일까? 아니면 중국이 방향을 부득이 바꾸는 것일까?

 

콩췐은 이미 65세이다. 다시 기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베이다이허회의후 중국의 새로운 급진적인 외교조치는 다시 참패했다. 이는 다시 중공의 내부투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럼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어떻게 해야 외부곤경을 벗어날 수 있을까?

 

거짓으로 유화책을 나타내는 것도 소용이 없다. 맹목적으로 강경책을 취하는 것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 중국외교부는 아마도 사람을 바꿀 것이다. 왕이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