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언(金言)
최근 대륙의 네티즌들들은 대련(對聯)의 형식으로 멋진 문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반년항역(上半年抗疫), 전구항공(全球抗共): 하반년항홍(下半年抗洪), 전년항궁(全年抗窮), 노역결합(澇疫結合)"
상반년에는 우한폐렴과 싸우고, 전세계는 중공과 싸운다; 하반기에는 홍수와 까우고 일년내내 가난과 싸운다. 홍수와 역병의 결합
"대반개중국포수(大半個中國泡水), 중남해집체잠수(中南海集體潛水), 수중노월(水中憦月)"
중국의 절반은 홍수를 당하고, 중남해의 고관은 집단적으로 잠수탄다. 물속의 달건지기.
양고군고(糧庫軍庫) 고고도공(庫庫掏空); 역구재구(疫區災區) 구구소사(區區小事) 자생자멸(自生自滅)"
양식창고 군대창고 창고마다 텅텅 비었고, 역병구역, 재난구역은 자잘한 작은 일로 취급한다. 스스로살고 스스로 죽을 수밖에
육온외가일온(六穩外加一穩) 온정권(穩政權); 육보외가일보(六保外加一保), 보핵심(保核心) 기수이진(氣數已盡)
여섯가지 안정 외에 하나의 안정을 더해야 한다. 정권안정. 여섯가지 보장외에 하나의 보장을 더 해야 한다. 핵심(핵심은 시진핑을 의미함)보장. 목숨은 이미 다하였다.
6월부터 전면적으로 장마가 내리면서, 중국남방은 역사상 최악의 폭우습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강이 범람한다. '수만금산(水漫金山)'이 현실로 나타나고, 도시에서 바다를 보는 것같은 광경이 벌어진다. 농촌에는 애타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장강유역은 곳곳에서 위급하다고 소리친다. 많은 농지, 마을은 물에 잠겼고, 제방, 주택, 도로, 교량은 무너져 버렸다. 안휘는 통곡하고, 강서는 눈물흘리며, 광서는 울부짖고, 귀주는 신음한다.
현재 홍수피해는 이미 호북, 호남, 강소, 중경등 27개 성시로 번져, 4,522.3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142명이 사망실종되고, 3.5만개의 가옥이 파손되었다. 직접적인 경제손실만 1,169.5억위안에 달한다. 그래서 '만년에 한번오는 홍수도 막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삼협공정은 다시 한번 사람들이 주목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아래에서는 중국전통문화의 각도에서 여러 사람의 말과 서로 다른 견해를 종합하여, 최근 대륙에서 수재가 빈발하는 원인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고 분석해보기로 한다.
삼협댐은 용맥을 잘랐고, 중국 내지 세계의 풍수를 파괴했다.
삼협댐은 당금 세계최대의 수력발전소이다. 또한 중국에서 유사이래 최대의 공정프로젝트이다. 삼협댐은 투자가 거대할 뿐아니라, 남겨진 문제도 아주 많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삼협공정이 중국에서 불러온 논쟁 역시 전대미문이라는 것이다. 2009년 완공식때 호대희공(好大喜功)의 중고에서 단 한명의 당 및 국가지도자들도 행사현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중공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을 것이다.
중국고대의 과학자들은 눈을 들어 천문(天文)을 보고 고개를 숙여 지리(地理)를 보았다. 근취제신(近取諸身), 원취제물(遠取諸物)하여 오천년에 걸친 탐색과 실천, 귀납과 깨달음으로 세계에 유명한 '동방풍수학'이 형성되었다.
중국풍수이론의 핵심은 천, 지, 인 삼자의 합일을 중시한다. 즉, 천시, 지리, 인화를 중시한다. 용맥(龍脈)이 통하면, 국운(國運)이 흥한다. 용맥이 막히면, 국운이 쇠한다. 전통 중의학에서는 "통자불통(通者不痛), 통자불통(痛者不通)"이라는 말이 있다. 강하(江河)는 대지의 혈맥이다. 강하를 끊고, 막으면 대지는 혈전(血栓) 환자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혈관은 점점 노화하고 막히게 된다. 결국은 '심근경색', '뇌경색' 혹은 '뇌색전'으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삼협댐을 건설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풍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서서 반대했다. 그들은 기문풍수(奇門風水)의 지기학설(地氣學說)로 보면, 장강이남은 경문(景門)에 속한다. 지기가 남으로 옮겨온 후 중국경제발전은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래서 장강은 하나의 용맥이고, 심지어 황하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극력 보호해야 한다.
삼협댐은 장강의 흐름을 막아버렸다. 마치 사람이 허리를 잘리거나, 혹은 용이 담장에 깔린 것과 같다. 꼼짝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 산과 물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양이 균형을 이루는 형태가 중단되면, 풍수의 기운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중국의 장기적인 추세와 지속적인 발전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실상, 삼협댐의 건설은 확실히 중국 그리고 세계의 풍수를 바꾸어 놓았다. 자연, 기후에 영향을 주었을 뿐아니라, 경제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민간의 반대목소리 이외에 저명한 수리전문가인 황완리(黃萬里) 선생도 여러번 중앙지도자들에게 글을 올려 삼협댐의 위험을 얘기했었다. 현대과학의 각도에서, 왜 삼협공정을 영원히 해서는 안되는지를 진술했다. 하물며 당시 14건의 항목별논증보고서중에서 5개의 보고서는 전문가팀이 서명을 거부했다. 그래도 여전히 정치공정이 착수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햇, 당시 전인대에서 삼협댐에 대해 표결할 때, 2천여명의 대표중에서 몇명이 지질, 수리공학, 댐측면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던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인민대표대회제도는 '활화석(活化石)' 션지란(申紀蘭)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며, 그저 찬성표만 던지는 거수기이다. 이는 기실 국가에 대한 독직이고, 인민에 대한 범죄이다.
비록 그러하지만, 당시의 반대표수와 기권표수는 841표에 달하였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민주제도방면의 결함이 가져온 제도의 악과(惡果)는 중화민족의 명맥, 기운, 자손천추만대의 안위가 걸린 삼협댐의 표결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결국 14억 중국인은 중국 소수이익집단에 인질로 잡혀버린 것이다.
남수북조(南水北調)는 하늘이 정한 풍수국면에 위배되고, 자연생태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5천억위안의 거액을 투입하여, 세계가 주목한 남수북조공정은 마찬가지로 사상유례없는 거대한 건설프로젝트이다. 관방의 표현에 따르면 '공재당대(功在當代), 이재천추(利在千秋)" 공로는 현재에 있지만, 이익은 천추마내에 걸쳐 있다고 한다. 북방의 가뭄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선(東線)과 중선(中線)이 모두 완공되고 물을 보내기 시작했지만, 마찬가지로 중국의 각 중요의사결정자, 건설자, 책임자와 지휘자들중에 나서서 자신의 공로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어떤 학자는 이런 글을 쓴 바 있다. 전체 남수복조공정의 의사결정과 실시는 그저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식의 결정이었다. 최소한의 자연원리 과학원리도 무시했다. 백성을 괴롭히며, 돈만 쓰고, 나라와 국민들에게 해악을 끼치며, 자손의 살 길을 막는 공정이다.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 또한 이렇게 말한다. "복명왈상(復命曰常), 지상왈명(知常曰明), 부지상(不知常), 망작흉(妄作凶)!" 중국의 산하형세는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다. 이는 일종의 자연지리상태이다. 일종의 대자연이다. <열자>, <회남자>등 고적에 따르면, 공공(共工)이 전욱(顓頊)과 제위(帝位)를 놓고 다투다가, 일시의 화를 참지 못하고 머리로 불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았다. 그리하여 천주(天柱)가 부러지고, 지유(地維)가 끊겼다. 이때부터 화하대지는 하늘이 서북으로 기울고, 동남의 땅이 함몰된다. 백천(百川)이 서북에서 동남으로 흐르고, 산이 하나 서 있으면, 강이 하나 흐른다. 산맥이 이렇게 흐르면, 강물도 그렇게 흐른다. 이런 지리산천형세는 사람의 사지, 오관, 오장, 육부의 배치 그리고 혈액의 순환과 같다. 모두 천지간의 조물주가 교묘하게 안배한 것이다.
그래서 큰 산하의 길과 기맥을 따라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역행하려 해서는 안된다. 대자연의 흐름과 거꾸로 가려고 해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고 이런 안배를 파괴하면, 이런 '대자연'을 파괴하면, 이런 '상(常)'을 파괴하면, 그것은 '망작(妄作)'이 된다. '대흉(大凶)'이 된다. 결국 '대자연'의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기승풍즉산(氣乘風則散), 계수즉지(界水則止)" 풍수는 '형(形)'과 '기(氣)'로 나뉜다. "봉유여이손부족(奉有餘而損不足)" 오행상생상극의 이치에 따라, 기로 말하자면, 남방은 병정화(丙丁火)이고, 북방은 임계수(壬癸水)이다. 큰강 큰하(河)는 동남방향으로 흐른다. 이수제화(以水濟火)하고 이형제기(以形濟氣)한다. 이것이 바로 수화기제(水火旣濟)이다. 이런 선천적인 자연국면은 아주 조화롭고 합리적이다. '길무불리(吉無不利)"하다. 그런데, 남수복조는 이 국면을 파괴하는 것이다. 남방은 병정화로 현제 불을 끌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북방은 임계수인데 다시 북방으로 물을 가져온다. 이는 노자가 말한 "봉유여이손부족" 즉 남는데 주고, 모자라는데 빼앗는 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일찌기 <삼협댐은 장강을 목졸라죽인다>는 글에서 지진, 가뭄과 수재의 3가지 방면에서 예를 들어 삼협댐과 남수복조는 장강유역, 내지 전국점위의 새태균형에 위해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다시 재론하지는 않겠다.
강하는 죄가 없다.
신중국이 건립된 후, 모택도은 친히 형강분홍(荊江分洪)공정을 심사비준한다. 1953년 2월, 모택동은 "장강함"을 타고, 한구(漢口)에서 남경(南京)으로 간다. 거기서 장강유역계획, 삼협공정과 남수북조등 문제에 대하여 장강수리위원회 주임인 임일산(林一山)과 3일간 토론한다. 임일산은 장강의 여러 지류에 댐을 건설하는 계획을 말한다. 모택동은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류의 댐을 모두 합치면 삼협의 댐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가? 그러자 임일산은 상대가 안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모택도은 삼협구를 가리키면서 '왜 이곳를 막아서 삼협댐을 만들지 않는 것인가? 어떤가?"라고 묻는다. 이때부터 중국정부는 삼협댐건설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1956년 7월, 모태공은 무한으로 가서 장강유람을 한다. 그리고 "절단무산운우(截斷巫山雲雨), 고협출평호(高峽出平湖)"라는 식수를 쓴다. 그가 삼협에 댐을 막아서, 산하를 개조할 망상을 한 것이다.
1958년 1월, 모택동은 직접 남녕회의를 주재한다. 그리고 삼협댐을 의사일정에 올린다. 회의기간동안 즉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임일산과 즉시 추진하는데 반대하는 이예(李銳)가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다. 모택동은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후, 최종적으로 이예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리고 삼협댐에 대하여, '충분히 신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충분히 논증한다"는 방침을 정한다. 그리고 주은래에게 이 일을 주관하도록 위임한다.
같은 해 3월 하순, 중공중앙은 성도회의를 소집하여, 주은래가 삼협을 고찰한 최종보고를 듣는다. 그리고 <중공중앙의 삼협수리시스템과 장강유역계획에 관한 의견>을 통과시키고, 전기준비와 각종관련업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1958년 여름, 모택동은 다시 임일산을 무한으로 불러 장강의 니사(泥沙, 진흙모래)문제에 대하여 보고를 받는다. 즉, 삼협댐의 수명문제이다. 임일산은 이렇게 보고한다. 삼협에 유입되는 진흙모래는 연간 5억톤이다. 삼협 위에 다른 댐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삼협댐의 사용수명은 400년이 될 것이고, 최소한 200년은 될 것이다.
모택동은 한참을 생각한 후, 임일산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건 백년대계가 아니라, 천년대계이다. 겨우 2백년이라니 너무 아쉽다." 그후 중소분쟁으로 소련에서 전문가들이 철수한다. 그후 다시 3년 '대기근'이 닥치고 '문혁'이 일어나면서 삼협댐계획은 방치된다.
1969년 9월, 중공 호북성 혁명위원회 부주임 장체학(張體學)은 모택동이 시찰왔을 때, 정식으로 삼협댐건설을 건의한다.그러나, 모택동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는 삼협댐건설을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삼협댐의 전기공정. 즉 갈주패수리사업을 승인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6.4'사태의 학생의 선혈을 밟고 올라선 강택민은 다시 총리를 맡고 있던 이붕과 결탁하여,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 한다. 그리하여 삼협댐의안을 적극 추진한다. 그리고 1992년 전인대를 통과시키고, 1994년 12월 14일 저식 착공하며, 2009년 완공한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하나님이 지상에서 원죄의 낙인이 찍힌 인류를 보고, 도덕이 타락하고, 인심히 나빠지며 세간의 폭력과 죄악이 더 이상 심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을 본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며 대홍수로 세간의 악인을 죽이고자 한다. 동시에 하나님은 사람들 중에서 노아라는 의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고, 그에게 방주를 만들게 해서 그의 부부, 3명아들과 며느리를 신세대의 인류의 씨로 보존시킨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금년 4월 20일, 시진핑은 자신의 '용흥지지(龍興之地)인 진령을 사람들이 침범하여 용기(龍氣)가 누설되는 것을 보고 전후로 6회나 '중요지시'를 내렸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 친히 현지로 가서 별장철거를 집행한다. 그리고 재삼강조한다. '진령은 중화민족의 조맥이다. 진령에 위법건축물을 지은 교훈을 받아들여 깊이 반성하고, 경종을 울려야 하며, 진령의 생태를 보호하는 호위무사가 되어야 한다. 절대로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고, 역사에 악명을 남겨서는 안된다"
기실, 중국이 삼협댐을 만든 진정한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목적은 바로 장강이라는 중국에 유일하게 남은 최대용맥을 잘라버리고 다시 남수복조를 통해 남방의 용기 용혈을 북경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하여 목숨이 다한 대홍룡(大紅龍)의 목숨을 부지시키려 한 것이다. 몇년전 중공은 다시 한번 목숨을 연장하기 위하여 '천년대계'인 웅안신구(雄安新區)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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