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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법률/사건이야기

꾸이저우버스호수추락사건: '절망'의 살인사건

by 중은우시 2020. 7. 17.

글: 장걸(張杰)

 

7월 7일 12시 12분, 차량번호가 "貴G02086D"인 안슌시(安順市) 2번시내버스가 시슈구(西秀區) 홍샨(虹山)댐을 지나가다가 돌연 방향을 바꾸고 가속하여 반대편 차도를 가로질러 난간을 부수고 댐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버스안에는 모두 37명이 타고 있었는데, 승객중 21명이 죽고 15명이 부상했으며, 운전기사도 사망했다.

 

사건을 일으킨 운전기사는 장바오강(張包鋼)이라는 사람이다. 금년에 52세이고, 1997년부터 2번시내버스를 운전해왔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당시 차량의 상황은 정상이었고, 다리 위의 교통질서도 정상이었다.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말한다. 시내버스운전기사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2번시내버스운전기사의 동료에 따르면 장바오강은 평상시 동료들과 장 어울렸고, 사람을 대하거나 일처리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항상 싱글벙글했고, 같이 얘기를 나눌 때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했다."

 

7월 12일 꾸이저우성 안슌시 공안국은 "꾸이저우시내버스호수추락"사건에 대하여 브리핑을 했다. 이때 비로소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번 호수추락사건은 사고도 아니고, 운전기사의 정신병문제도 아니고, 그저 고의로 사회에 보복하기 위해 저지른 살인사건이었던 것이다.

 

꾸이저우관방의 공식통보에 따르면, 이 사건은 장바오강의 집이 강제로 철거된 것이 원인이었다. 장바오강은 시슈구디젤엔진공장(나중에 시슈구양조기계공장으로 바뀐다)의 노동자였다. 공장에서 일할 때, 그는 40평방미터의 공공주택을 배정받는다. 2016년 이 집은 판잣집개조대상지역으로 지정된다. <국유토지방옥징수및보상조례>의 규정에 근거하여, 2020년 6월 8일, 장바오강은 시슈구주택건설국과 <본인관리공용주택이주보조합의>를 체결한다. 합의된 보상금은 72,542.94위안이었다. 그후 장바오강은 보상금이 너무 적다며 수령을 거절한다. 장바오강은 현지정부에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했다. 그러나 받지 못한다. 7월 7일 오전 8시 30분경, 장바오강은 그의 집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집은 이미 철거되고 없었다. 8시 38분, 장바오강은 행정서비스핫라인에 전화를 걸어,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도 받아주지 않으면서 거주하던 집은 이미 철거된데 대하여 분통을 터뜨렸다.

 

7월 7일 오전 9시 4분, 장바오강은 백주와 음료를 구매하여, 백주를 음료벙에 넣는다. 그후 검은색 비닐봉지로 사서 버스회사로 가 교대를 한다. 11시 47분 장바오강은 2번 시내버스를 운전하여 기차역에서 출발한다. 12시 9분 장바오강은 정류장에 섰을 때 승객이 내리는 틈을 타서, 음료수병에 넣은 백주를 마신다. 12시 12분, 장바오강은 시내버스를 운전하여 시슈구 홍샨댐을 지날 때 돌연 방향을 바꾸고 가속하여 5개의 차도를 가로질러 난간을 부수고 댐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보면, 장바오강은 주택이 강제철거된데 불만을 품고 사회에 보복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자살식 인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21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었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비통과 고통을 남겼다. 정부에서는 모든 책임을 장바오강이 사회에 보복하기 위하여 극단적행위를 한데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러 의문을 품게 되었다. 장바오강은 왜 이런 극단적인 행위를 해야 했을까?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는 자신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겼을까? 왜 선량했던 사람이 돌연 살인마귀로 바뀌게 된 것일까? 보복사건의 배후에 숨어 있는 죄악은 무엇인가? 아래에서 나의 생각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첫째, 장바오강의 주택은 불법철거되었다.

 

베이징차이량(才良)율사사무소의 주임인 왕차이량(王才亮)은 <안슌시내버스기사건물철거에 존재하는 위법문제>라는 글에서 장바오강의 주택이 강제철거된 데 대하여 법률적 분석을 했다.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첫째, 관련주택의 보상은 법률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통보로 보면 보상금이 지나치게 적다. 40여평방미터의 주택에 겨우 7만여위안이라니 이는 확실히 국무원 국유토지상방옥징수및보상조례에서 규정한 "시장가격보다 낮지 않아야 한다"는 요건에 맞지 않는다. 설사 장바오강의 주택은 단지 공용주택에 대한 임차거주권이라 하더라도, 국유기업이 주택을 분배하는 것은 복지적 성격이 있다. 그래서 건물철거때의 통상적인 방식은 주택개혁조건에 따라, 징수전에 건물소유권을 임차인의 명의로 돌린 후, 직접 모든 건물에 대한 보상금을 임차인에게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본사건의 강제철거는 징수보상조례에서 규정한 선보상후철거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장바오강은 비록 계약을 체결했지만, 바로 마음을 바꾸어 돈을 수령하지 않았다. 징수인은 장바오강을 찾아서 협상해야 하고, 그에게 계약을 이행하며 스스로 이주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만일 장바오강이 끝까지 약이행을 거절하면 판잣집지구개조주체는 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셋째, 강제철거절차가 위법하다. 만일 계약을 체결한 후 바로 계약을 페기했다면, 운전기사에게는 스스로 이주해야 할 의무가 없다. 징수부문은 법적절차에 따라 징수보상결정을 해야 하고, 장바오강에게 기한을 정해서 이주하도록 명하여야 한다. 그리고 결정이 발효된 후 인민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강제철거는 법원이 결정이 없었고, 법원이 집행한 것도 아니다.

 

넷째, 현지정부는 명백한 독직행위가 있었다. 장바오강은 현지에서 "신청인이 이혼으로 주택을 잃고 1년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보상금으로 같은 지역에 같은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공용주택임대를 신청한 것이다. 아주 유감스럽게도 사건발생전에 그의 공용주택임대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권법 제42조는 명확히 거주한다. 개인주택이 징수되면 그의 거주조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징수보상조례 제18조는 "개인주택을 징수한 경우, 피징수인이 주택보장조건에 부합되면, 건물징수를 결정한 시, 현급인민정부는 우선적으로 주택보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지정부는 자신들이 해야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장바오강이 이번 살인사건을 저지른 죄인이지만, 그는 또한 사회적약자의 일원이다. 정당한 권리가 침해받은 사회하층의 초민(草民)이다.

 

둘째, 절망이 살인사건의 원흉이다.

 

장바오강은 40평방미터의 주택이 강제철거되었다, 7만위안의 보상금으로 그는 자신과 아들이 거주할 방을 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부는 법에 따라 그에게 공용주택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부동산은 개발해야 하고, 고층건물도 지어야 한다. 그러나 원래 이 토지에 거주하던 장바오강은 갈 곳을 잃었다. 이것은 바로 중국 성세마의(盛世螞蟻, 개미)의 진실한 모습이다.

 

다만, 지방정부는 근본적으로 장바오강을 신경쓰지 않고, 강제로 철거해버렸다. 장바오강의 절망은 우리도 느낄 수 있다. 만일 정부가 강제철거하지 않고 그와 협상을 해주었다면? 만일 그의 곤란을 생각하여 적시에 그에게 공용주택을 배정해 주었다면? 만일 인권변호사가 그를 도와 권리를 주장해 주었다면? 이번 공공재난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사회구성원이 철저한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고, 전체 사회는 그 시내버스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운행'되지만, 실제로는 호수로 추락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무수한 개체, 사회조직과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개체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사회는 발전한다. 반대가 되면 사회는 위축된다. 개인도 마지막 끈을 놓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자신이 개미와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언제든지 갈려서 먼지로 화할 수 있다. 장바오강의 행위는 중국하층사회의 절망을 가장 진실되고 가장 참혹하게 보여준 것이다. 만일 출로를 찾지 못한다면, 이것은 앞으로 중국미래사회의 리허설이 될 것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사상가인 Russel Kirk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사회구성원이 정신적으로 질서를 상실하게 되면, 공동체의 질서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오늘날의 꾸이저우호수추락사건과 2013년의 샤먼시내버스방화사건은 너무나 유사하다. 2013년 6월 7일, 샤먼에서는 시내버스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47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부상을 입었다. 방화한 사람은 샤먼의 주민 천쉐이종(陳水總)으로 당시 나이 60세였다. 천쉐이종은 왜 방화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방화하기 전날, 천쉐이종은 웨이보에 이렇게 썼다:

 

"초민(草民) 천쉐이종. 현재나이 60세. 초소(初小)학력. 샤먼지 귀커우제 24호 거주. 1970년 가정생활의 소득이 끊겨, 초민은 일가족을 데리고 고향으로 갔다. 천신만고끝에 1983년 도시로 돌아왔다. 주택을 안배받지 못해서 10명의 식구가 28평방미터에 거주했고,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다. 혼자서 살길을 찾다가 94년 겨우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는다. 가난한 집안에 식구가 느니 더욱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다. 96년에는 더욱 큰 액운이 닥친다. 생계를 유지하던 노점이 단속당했다. 초민은 사방에 호소하였으나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살아가야 했다. 부득이 집문앞에 50센티미터의 유리대를 놓고 찹쌀떡을 팔았다. 비용도 적게 들지만 이윤도 적어서 겨우겨우 풀칠했다. 권력있는 사람에게 뇌물이라도 바치고 싶었지만, 집안이 가난하니 마음은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서 또 단속을 당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막일을 하며 어렵게 보냈다. 겨우겨우 버텨서 60세가 되어 퇴직처리되면 구차하지만 사회보험으로 연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호구를 옮기는 과정에서 파출소가 나이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사회보험처리가 되지 않았다. 공안을 찾아가서 고쳐달라고 요청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초민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다. 수십년동안 빈곤선아래에서 버텨왔는데, 집에는 더 이상 먹을 양식도 없다. 절망가운데 정부에 요청드리니 살길을 열어주십시오."

 

현재의 중국은 화약통과 같다. 위험이 계속 축적되고 있다. 누구도 자신이 다음번 시내버스의 승객이 아니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은 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고, 심지어 무망지재(无妄之災)를 당하기도 한다. 막 집으로 돌아온 청화대학 쉬장룬(許章潤) 교수도 정부의 정치가 후퇴했다고 비난하다가 성매매라는 죄명으로 구류되고 치욕을 당했다. 사회적약자의 권리를 주장하던 인권변호사는 감옥에 들어가거나, 감윽으로 끌려가는 중이다. 누가 이들 하층백성들을 위하여 입바른 소리를 할 것인가? 급속히 조폭화하는 중국은 지금 갈수록 많은 선량한 백성들을 범죄자로 만든다. 중국의 수천수만의 상방(上訪, 민원)인원 그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아니라, 박해까지 받고 있다. 중공이 법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법독립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공정한 최후방어선이 상실되었다. 사회제도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민주법치가 없으면 아무리 많은 완장이나 차오양다마(朝陽大媽)가 길거리에 나오더라도 사회보복사건을 막지 못한다. 우리는 장바오강의 시내버스에 타지 않은 것을 행운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중국이라는 큰 시내버스에 타고 있다.

 

장바오강은 유약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를 억누르는 정부와 불공정한 사회제도에 대항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노를 무고한 승객들에게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21명의 무고한 생명이 그의 순장품이 되었다. 다만 우리중 누가 스스로는 절망중에 통제를 상실하면 제2의 장바오강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이런 비극을 막고 줄일 수 있을까?

 

서방국가의 백년헌정경험은 이미 우리에게 답안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권력을 쥔 사람과 백성이 같은 시내버스에 타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변호사 장카이(張凱)는 <한 대의 차량에 타고 있지 않다>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한대의 차량에 타고 있지 않다. 그것이 진정한 문제점이다. 그리하여 우리제도의 변혁은 왕왕 피의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 피의 교훈이 있어도, 여전히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전체 사회의 규칙을 결정하는 사람은 모두 규칙의 밖에 있다. 같은 차량에 타고 있지 않는데, 누가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의 생사를 신경쓰겠는가?"

 

사회규칙을 결정하는 사람이 우리와 같은 차량에 타고 있다면, 우리느 반드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할 투표권을 가진다. 그들은 우리의 공복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에 반드시 헌정민주제도와 공민사회를 건설해야하고, 모든 공민이 존엄있고 따스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이 시내버스참사는 내일의 여객선참사 비행기참사로 이어질 것이다. 구이저우호수추락사건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보았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희망이 있다는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불공정제도와 금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만 우리는 더더욱 절망에서 빠져나올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