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탄봉진(撣封塵)
용은 자식을 아홉 낳는데, 각각 서로 다르다. 그러나, 공산당 가족내의 소련과 중공이라는 이 형제는 하나의 타고난 공통적인 천성을 지녔다. 분명히 자기가 범한 엄청난 죄행인데도, 죽어라 인정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써서 빠져나가려 하며, 책임을 심지어 다른 사람, 국가에 미룬다. 사람들은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공산당은 사건을 만드는 고수일 뿐아니라, 책임을 떠넘기는데도 고수이다.
여기서 두 개의 아주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는 소련 스탈린시대에 발생한 '카틴학살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서 발생한 우한폐렴으로 최근의 일이다.
"카틴학살사건"
2차대전기간, 스탈인은 소련의 최고총사령관으로서 국가보위전쟁의 승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 스탈린은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1940년, 스탈린과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정치국의 주요구성원들이 서명하여, 비밀리에 2만여명의 폴란드인으로 생포된 장교와 인민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들의 시신은 스몰렌스크 부군의 카틴 숲등지에 묻어버렸다.
스탈린은 이번 사건을 이렇게 묻어버릴 수 있다고 여겼던 것같다. 그러나 하늘은 눈이 있고, 천리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1943년, 소련을 침입한 독일군에 의하여 시신대량매장이 발견된다. 스탈린과 소련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첫번째 반응은 온갖 방법을 써서 부인하는 것이고, 이어서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이를 위하여, 스탈린은 국가역량을 총동원하여 그 책임을 다른 나라에 뒤집어씌우려 했다. 스탈린은 명을 내려 저명한 과학자인 부르젠코 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성립하여, 진지하게 조사한다. 그리고는 정교하게 작성된 '특별보고서'를 제출한다. 여기에는 카틴학살이 독일인에 의하여 저질러졌고 소련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폭로'한다. 이렇게 하고서도 스탈린은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전후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가상(假相)을 확인시키기 위해, 그는 심지어 소련 검찰총장 루덴코를 시켜 뉴른베르그국제법정에 '나치가 카틴숲에서 범한 죄행'을 확인하도록 요구하게 하였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스탈린이 연출한 이 기만적인 소행에 대하여 이후의 모든 소련지도자들도 부득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후르시쵸프도 스탈린이 소련공산당 20대에서 한 '비밀보고서'를 전면부정하면서 카틴학살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즉, 카틴의 진상을 은폐한 것은 스탈린, 정치국만이 아니라, 이후의 모든 소련공산당 총서기를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카틴사건은 너무나 심각한 사건이었고, 스탈린의 '명예'에 관련되어있다. 그리고 스탈린의 명예는 소련공산당의 명예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거짓말과 책임떠넘기기는 5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세월이 바뀌어 크레믈린궁은 고르바초프시대로 접어든다. 소련과 소련공산당도 해체를 맞이한다. 반세기동안 감춰왔던 진상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고, 이는 갈수록 소련공산당에 부담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1989년 3월 22일, 소련의 외무장관 세바르드나제, KGB의장 크류치코프, 당중앙국제부장 파린이 공동으로 소련공산당 당중앙에 보고서를 올려서, 카틴사건의 내막을 공표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이유는 이러했다: "사실의 진상과 구체적인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런 행동의 댓가는 현재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조성된 손실보다 적다."
고르바초프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치국은 이런 의견을 받아들인다. 1990년 4월 13일, 타스통신은 카틴사건이 '스탈린주의의 엄중한 죄책중 하나"라고 인정한다. 이 날은 폴란드 지도자 야루첼스키의 소련방문일이다. 고르바초프는 직접 그에게 일부 자료를 건네주고, 피해자가족에 위문을 표시한다. 고르바초프의 행동은 폴란드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고르바초프는 일찌기 자신의 행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비극을 얘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야 했다. 실제사정을 얘기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혁신과 진정한 상호이해를 얻어낼 수 있다."
1992년 10월 14일,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 있던 옐친의 특사는 카틴사건의 '특급기밀자료' 봉투 2개를 당시 폴란드 대통령 바웬사에게 전달한다. 이제 이 전세계를 놀라게 만든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우한폐렴"
중국공산당의 큰형님인 소련공산당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스탈린부터 시작하여 소련공산당의 역대지도자들이 이어받았던 카틴거짓말과 책임떠넘기기는 이미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불행하게도 중국공산당에 의하여 복제되고 있다. 그리고 거짓말은 더욱 커졌고, 책임떠넘기기에 더욱 광분하게 되었다.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은 지금까지도 끝이 나지 않았다. 현재 전세계에서 확진자만 5백만이 넘고, 사망자도 30만이 넘었다. 경제적인 손실도 참혹하고, 민생은 피폐해졌다. 그리하여 전세계에서 그 원인을 찾고 책임추궁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오히려 역으로 치고 나왔다. 전랑외교, 정보전을 발동하여 사태를 휘저어 국제적인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스스로 이번이 큰 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책임을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심지어 카자흐스탄까지 떠넘기고 있다. 당연히 미국은 중국의 최대 적국이다. 자연히 중국이 책임을 떠넘기는 주요목표이다. 중국의 CCTV는 안면을 몰수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여러 미국의 정계요인들에게 거친 욕설을 퍼붓고 있다.
비록 중국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책임을 미루고, 바이러스의 출처가 중국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우한폐렴상황을 은폐하거나 미룬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륙의 의사, 연구원이 국제학술간행물에 발표한 논문이 증명한다. 리원량등 8명의 의사는 '먼저 알린' 것때문에 중국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중국이 그런데도 어떻게 부인하겠는가. 현재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중국은 이번에 우한폐렴의 전세계적인 유행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끝이 난 WHO대회에서 129개국은 중국바이러스의 원천에 대하여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중국정부의 편을 들다가 '중남해(中南海)'라는 별명을 얻은 중국의 어용전문가 종난산(鍾南山)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질병통제센터와 관련부서는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스정리실험실에 대하여 2주동안 조사했는데, 아무런 과실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말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도적두목이 부하를 시켜서 산적소굴로 들어가 조사하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 부하는 산을 한바퀴 둘러보고서, "여기는 도적이 없습니다. 모두 우리 형제들 뿐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중국은 바이러스의 진상을 분명히 알고 있고, 또한 공개를 늦추고 은폐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내적으로 책임추궁이 없다. 이것은 무엇때문인가? 중국은 그저 책임떠넘기기만 골몰하고 있고, 그래서 대외적으로 책임추궁은 말도 꺼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적으로 책임추궁을 하게 되면, 나아가 우한이 바이러스의 출처라는 것을 인정하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외적으로 책임추궁을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출처가 우한이지 외국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다른 나라에 책임추궁을 한다면 반드시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 마각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중국정부의 조폭같은 행동에 대하여 중국체제내에서 혹시 세바르드나제같은 인물이 나타나서 건의하면, 현임당국은 고르바초프처럼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을까? 우한폐렴의 진상을 공개하고 바깥에 떠넘겼던 책임이 원래는 자신이 져야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진상을 밝히지는 않을까? 아마 만분의 일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 소련공산당이 카틴학살을 인정하였지만, 스탈린등 책임자들은 이미 모두 죽었고, 그래서 책임추궁의 문제가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우한폐렴의 죄인은 바로 현직관리이다. 고위층을 포함하여. 이들이 모두 건재한 것이다. 카틴학살은 겨우 2만여명이 죽었지만, 우한폐렴은 이미 전세계에서 30만명이상을 죽였다. 양자는 같은 수준이 아니다. 일단 중국공산당이 우한폐렴의 책임을 인정하게 되면, 부득이 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손해배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우한폐렴에 대한 태도는 이러할 것이다: 거짓말을 계속하다가 정권이 붕괴되고, 책임을 떠넘기다가 당이 해체될 것이다. 비록 이번 WHO대회에서 중국은 부가조건이 붙은 상태로 조사를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그것은 이미 중국당국이 증거를 깨끗하게 처리한 이후일 것이므로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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