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우한폐렴

홍콩의 전염병전문가들은 어떻게 정치에 말려들었는가?

중은우시 2020. 3. 20. 11:54

글: 석산(石山)


홍콩의 2명 전염병바이러스전문가인 룽전방(龍振邦)과 위안궈용(袁國勇)은 3월 18일, 홍콩의 간행물에 글을 하나 실었다. 제목은 "대유행연기무한(大流行緣起武漢) 십칠년교훈진망(十七年敎訓盡忘)"(우한에서 전염병이 크게 일어났다. 17년전의 교훈은 모조리 잊었다) 이 글은 전문가의 시각에서 이번 우한폐렴의 주요한 이슈들을 검토한 내용이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성명을 발표하고, 글을 취소했다.


성명에 따르면, 그들은 과학자이고,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며, 정치는 알지 못하며, 정치에 끼어들 생각도 없다고 말한다.


원래, 우리는 룽전방과 위안궈용의 글을 별로 주목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대체적으로 말해서, 그 글을 단지 바이러스에 관한 몇 가지 상식적인 말들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이 정치문제를 일으켰다고 하니, 우리는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정치와 연결되게 되었는지.


이 글은 아주 재미있다. 먼저 문풍(文風)이다. 현대의 백화문이 아니라, 반문언체(半文言體)의 문체로 썼다.


"기해동(己亥冬), 역발무한(疫發武漢), 경자춘(庚子春), 호북대역(湖北大疫), 국내역자팔만여(國內疫者八萬餘), 사자삼천(死者三千)"


재미있지 않은가


이 글은 주로 몇가지 이슈를 얘기한다. 첫째는 명명문제이다. 이 글에서 WHO의 현재 전염병과 바이러스를 명명하는 원칙을 설명한 뒤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민간 및 국제매체는 이를 우한코로나바이러스 혹은 우한폐렴이라고 부르는다. 직접적이고 간단하다.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한코로나바이러스 혹은 우한폐렴이라고 부르는 것은 통속적이고 쉬우며, 소통에 간편하다."


둘째, 글에서는 바이러스가 아마도 우한화난해산물시장의 야생동물에서 왔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몇 종류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혼합된 후 돌변한 결과일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시장의 야생동물은 중국각지 심지어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까지 오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원조가 어디인지는 고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셋째, 문장은 중국의 야생동물시장을 언급한다. 2003년 사스병균도 야생동물에서 왔다. 다만 중국인은 교훈을 익히지 못하고, 정부도 관리를 강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의 문제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넷째, 인터넷에서는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왔다고 하는데 아무런 증거가 없고,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일이며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일이다. 비웃음을 사기 전에.


다섯째, 중국이 반성해야한다고 호소한다. 글에서는 "우한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인의 열악한 문화의 산물이다.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잡아 먹고,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생명을 존중하지 않았다. 각종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계속하여 야생동물을 먹었다. 중국인의 누습과 열악한 근성이야말로 바이러스의 근원이다. 이런 태도라면 십여년후에 사스3.0이 반드시 다시 출현할 것이다."


한번 보라. 이런 관점은 홍콩의 최고수준의 바이러스전문가의 판단이다.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어느 것이 '정치'에 연루되었는지 알아보겠는가?


만일 이 글이 중국대륙 이외의 지방에서라면 말한 내용이 무슨 정치에 관련된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룽전방과 위안궈용 두 사람은 이런 결과를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예상밖일 것이다.


정부에서 문제삼은 것은 어던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 중의 한 구절이다: 그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다:


제국흠조시결저비(諸國欠措施缺儲備), 신대역(迅大疫), 성항오급중화민국개면어대역(星港澳及中華民國皆免於大疫), 유령성해외수입지증급소군조부절(唯零星海外輸入之症及小群組不絶), 상미실수(尙未失守)"


이 50자 정도 되는 글에서 대만을 '중화민국'이라 칭한 것이 첫번째 '잘못'이다. 싱가포르를 홍콩, 마카오, 대만과 병렬시킨 것이 두번째 '잘못'이다. 정치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려면 당연히 이렇게 적었어야 한다: "싱가포르 및 중국의 홍콩, 마카오, 대만지구" 이 글은 당연히 원문만큼 아릅답지는 않다. 다만 정치적으로 정확해야한다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원문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나머지, 무슨 우한폐렴이라고 부르는 것이야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무슨 중국의 열악한 문화라는 것도 당연히 정치적인 부정확과는 관련이 없다. 다만 최대의 부정확은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왔다는 것을 비웃은 것이다. 무슨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고,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라니.


두 과학자가 글을 취소하면서 성명을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글은 "표현이 부적절했고, 단어선택에 잘못이 있었다."


정치는 중국바이두백과사전의 해석에 따르면, 정부, 정당 등 국가를 다스리는 행위이다. 룽선생, 위안선생의 글의 어느 부분이 정부, 정장등 국가를 다스리는 행위에 들어가는가?


기실, 이 단어는 중국대륙의 문화에서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왕왕 알아서 새겨들어야 하고, 직접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장쩌민이 '삼강교육(三講敎育)'을 내놓으면서 강학습(講學習), 강정치(講政治), 강정기(講正氣)를 얘기한 바 있다. 모두 정치를 얘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정말 정치적인 말을 한다면, 아마도 정치를 한다고 비판받았을 것이다.


기실 '정치'는 중국대륙에서는 대명사이다. 그것은 '말을 잘듣는 것'을 가리킨다. 너에게 내가 시키는 것만 해라라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하나는 것만 말해라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하면 정치적으로 정확한 것이고, 만일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정치를 하는'것이 되거나 혹은 '정치에 말려드는 것'이 된다.


문제는 누가 너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하라고 시키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관건이다. 최고지도자나 그의 사람들 외에 나머지 사람들 예를 들어, 문혁기간에 유소기, 임표, 등소평시기의 사인방, 혹은 몇년전의 보시라이 그들이 너에게 시킨 일ㅇ르 한다면 그것은 '정치를 하는 것'이 된다.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하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는 것이다. 세계에는 두 가지 논리가 있다. 하나는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논리 혹은 중공논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정말 그 두 분을 동정한다.


잘못을 보완하기 위하여, 위안궈용은 선전위성TV에 출연하여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을 직면하는 것이며, 아무도 그보다 더 애국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더더욱 중국이 방역에 성공하기를 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이런 말도 했다. 중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서로를 양해해주어야 하고, 처음에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정한다면, 인정하고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더욱 강성해지고 더욱 흥성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기실 '정치에 말려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처음에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실, 위안궈용과 룽전방과 같은 과학자는 가장 쉽게 당국에서 정치문제로 문제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1950년대에 해외에서 귀국한 중국과학자들은 1천여명이었다. 모두 최고수준의 과학자들이었고, 당국에서 정치적인 비난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49년 8월부터 1955년 11월까지, 서방국가에서 돌아온 최고수준의 지식인들은1,536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미국에서 귀국한 사람만 1,041명이다.


중국과학원 비서장 두룬성(杜潤生)이 문건을 하나 만드는데 그 문건에는 이렇게 규정했다: 1954년 제네바회의이후에 귀국한 과학자들은 일률적으로 반우투쟁의 운동에 참가하지 않는다. 이들의 숫자는 개략 200여명이다, 전학삼(錢學森)과 함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제네바회의 이전에 귀국한 근 1,000명의 지식인들은 모두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반우운동은 피했다고 하더라도, 문혁은 피할 수 없었다.


북경의 대학에 걸린 대표어에는 "내자불선(來者不善), 선자불래9善者不來). 온 사람은 좋은 뜻이 아니고, 좋은 뜻인 사람은 오지 않는다.


예를 아무렇게나 들어보자.


주화장(周華章)은 청화대학 수학과 교수이다. 1952년 6월 시카고대학 수리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953년 귀국하였는데, 1968년 투신자살한다.


임홍손(林鴻蓀): 중국과학원 역학연구소 연구원. 브라운대학 수학석사. 1950년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한 후, 1968년 12월 음독자살한다.


소광염(蕭光琰): 시카고대학 대학원 물리화학 박사. 귀국후 대련화학물리연구소의 연구원이 된다. 1968년 12월 비판구타당한 후 음독자살한다.


더욱 유명한 사람으로는 요동빈(姚桐斌)이 있다. 그는 야금학과 우주재료전문가이다. 중국의 양탄일성(兩彈一星)의 공로자이다. 중국최초의 유도탄을 만든 핵심인물이다. 1968년 6월, 집안에서 '혁명군중'들에게 맞아죽는다.


조구장(趙九章). 역시 양탄일성의 공로자이다. 기상학, 지구물리및 공간물리학자이다. 1968년 10월 북경에서 음독자살한다.


문혁기간동은 중국과학원의 북경지역에 있는 170여명의 고급학자들 중에서, 131명이 타도되거나 조사받았다. 전체 과학원에서 박해받아 사망한 사람이 229명인데, 그중 최고수준의 전문가 8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과학자들은 모두 과기보국의 이상을 품고, 모두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당연히 모두 정치로 박해받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했다.


홍콩의 과학자들은 반우운동이나 문혁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국체제하에서는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묻자.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는 기실 많은 사람들의 일이다. 정치는 말잘듣는 것의 대명사가 아니다. 보통시민도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고,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고,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생각을 얘기하는 것은 정치와 관련이 없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치를 하고, 권력을 추구한다. 만일 정치에 연루되기를 겁내고, 다른 사람이 너를 정치에 관여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겁낸다면, 너는 이미 정치에 말려든 것이다. 왜냐면 너는 더 이상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얘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자에 있어서, 과학적진리추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래서 정치권력은 우리같은 보통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과학자들에게서도 멀리 떨어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