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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스원칭(史文淸): 한 부성장급 고위관료의 부정부패방법

by 중은우시 2019. 12. 21.

글: 원빈(袁斌)


중국공산당 18대이래로 낙마한 1억위안이상의 탐관은 이미 43명에 이르렀다.


이들 탐관오리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돈을 긁어모았을까? 전 중공강서위상위(常委), 감주시위(贑州市委)위서기인 스원칭의 재물긁어모으는 수법은 우리에게 아주 생생한 사례를 보여준다.


감주는 전국 희토류산업기지이며 선진제조업기지이다. '중국제조2025'의 제1차 시범도시이다. 또한 '희토왕국'이라는 명칭도 얻고 있다.


'법경망'의 보도에 따르면, 기업가인 쩡자오차이(曾照財)는 2002년부터 감주에서 희토류무역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그는 난캉(南康)용회(龍賄)창고에서 희토류 재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돌연 난캉시공안국이 불법경영을 이유로 압수한다. 같은 해 4월초, 쩡자오차이는 정식 구속되고, 아들 쩡이핑(曾義平)도 지명수배를 당한다. 8,9월간 난캉시공안국은 자발적으로 쩡이핑이 가족을 찾아와서, 자수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자수하면 보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한다. 쩡이핑은 그들이 시키는대로 했다.


1개월후, 누군가 쩡이핑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그의 부친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서 베이징에서 만나자고 한다.


베이징의 동직문외대가 아오자(奧加)호텔에서 쩡이핑은 처음 스원칭을 만난다. 그때 스원칭은 강서성위상위, 감주시위서기, 감주군분구당위제일서기를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고, 스원칭이 던진 첫마디는 이러했다: "네 부친에게 이렇게 큰 일이 났다. 5천만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 1988년에 태어난 쩡이핑은 이렇게 대답한다. 자신은 금방 사회에 나와서 그렇게 많은 돈이 없다. 부친이 나와야 그런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55천만위안을 확실히 모은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스원칭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그럼 먼저 네 부친을 풀어주겠다. 다만 최소한 2천만이 필요하다." 쩡이핑이 대답한다: "그럼 그 돈을 준 후에 압수한 희토류도 돌려달라. 그리고, 만일 돈을 다 모으면 어떻게 드리면 되는가?" 스원칭은 미리 생각해 놓은 것같았다: "같은 가치의 황금으로 사놓아라. 그 후에 내가 통지하겠다."


2011년 12월 31일, 쩡자오차이의 불법경영사건은 난캉시법원에서 1심이 열렸는데, 그날 판결을 선고하지 않았다. 스원칭은 약속을 지켜서, 권력으로 간섭하여 쩡자오차이는 그날 석방되며, 다시 구속되지 않았다.


쩡자오차이가 집으로 돌아온 후, 집안의 재산을 팔고, 사방에서 돈을 빌려 겨우 2천만위안을 모은다.


2012년 2월 23일, 베이징 류인공원(柳蔭公園)남가의 중국황금플래그십스토어에서, 쩡이핑은 쩡홍원(曾紅文)의 농업은행구죄를 통해 2000.15위안어치 황금을 구매한다. 금액이 크기 때문에, 금은방에서는 일시에 충분한 물건을 준비하지 못했다.


반달 후, 금은방에 황금이 도착하는데, 2개의 여행용상자에 꽉 찼다. 쩡이핑은 함울 들여서 황금을 가지고 아오자호텔로 돌아온다. 스원칭은 직접 말한다: '물건은 내 차로 옮겨라. 너는 그리고 나서 가면 된다." 쩡이핑은 분부대로 두 개의 무거운 여행용상자를 스원칭의 승용차 뒷트렁크에 넣었다.


돈을 썼지만, 쩡자오차이는 그래도 집행유예판결을 받았다. 확실히 스원칭이 말한 5천만위안이면 깔끔하게 해결했겠지만, 2천만위안이며 그저 집행유예로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원칭은 이렇게 약속한 바 있다. 창고에서 압수한 희토류를 모두 돌려주겠다고, 그러나 실제로는 절반만 돌려준다. 나머지 3000만위안가치의 희토류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쩡이핑에 여러 곳에 알아보고나서야 비로소 이 모든 것은 스원칭이 설계한 것임을 알게 된다. 2천만위안의 황금구매에 대하여도 스원칭은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다.


2011년, 강서 감주의 한 비지니스유치회의에서 원허쿠이(溫和魁)은 스원칭을 만난다. 그는 현지의 중점유치대상이었다. 마찬가지로 스원칭의 '중점사냥대상'이기도 하다.


스원칭은 중공감주시위서기이다. 이는 원허쿠이로 하여금 거절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당시의 감주는 이미 공대괸 '명규칙(明規則)'이 있었다: 만일 감주에서 편안하게 사업을 하려면, 절대로 스원칭에게 밉보여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도 제대로 못하게 될 뿐아니라,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해 10월, 원허쿠이는 강서 감주에 성의 중점인프라프로젝트에 투자한다. 다음 해 4월, 스원칭은 자신의 아들인 스자창(史家昌)이 그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하며, 40%의 지분참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원허쿠이는 감주의 그 '명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는 전혀 원치 않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원허쿠이는 스자창이 지분참여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인다. 실제로 스원칭부자는 돈을 출자하지는 않는다.


4월말, 스원칭이 원허쿠이를 찾는다. 전체 프로젝트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물어본다. 원허쿠이는 2억이 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스원칭은 그러자 기회를 잡아 바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최근 돈이 급히 필요하다. 당신이 먼저 1억의 이익금을 배분해 달라." "마침 내 친구에게 2000만위안의 황금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합계 1.2억위안이다."


원허쿠이는 난감해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익배분금은 치대 8천만위안이다(40%), 여기에 황금가격을 더하면 1억위안이다." 스원칭은 바로 동의한다. 그러나 부가조건을 단다. 그의 친구가 하르빈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데 약 3천만평방미터라고 한다. 평방미터당 1만위안으로 계산하여 합계 3200만위안이라고 한다. 합치면 1.32억위안이다. 원허쿠이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동의한다. 그후 스원칭의 요구에 따라 원허쿠이는 부동산구매대금이라는 명목으로 1.32억위안을 모두 지급한다.


2014년 1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스원칭은 여러 명목으로 원허쿠이에게서 1.1억위안을 뜯어낸다. 원허쿠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스원칭)의 권력을 이용하여 돈 한푼도 벌지 않았다. 그냥 1억여위안을 뜯겼을 뿐이다. 그의 곁에 있는 이익집단은 최소한 100명이다. 감주의 토지에서 그가 재임하고 있을 때 기본적으로 모두 무(畝)당 수십만위안을 그에게 지급하는 이익집단이다. 여기에 크고 작은 공사까지 계산하면 스원칭은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수백억위안을 끌어모았다.


기업가인 왕위페이(王宇飛)와 스원칭은 감주의 시중심에 있는 '리징강상(麗景江山)'이라는 부동산프로젝트로 알게 된다. 스원칭은 여러번 그의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돈을 요구한다.


2017년 2월말, 스원칭은 왕위페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에 지분참여할 기회가 있는데, 원시주(原始股)를 살 수 있도록 500만위안을 빌려달라고 한다. '빌린다'는 것은 스원칭이 돈을 받을 때 통상적으로 하는 말이다. 거절할 수 없을 뿐아니라, 나중에 돈을 갚으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된다. 그해 3월 8일, 왕위페이는 할 수 없이 500만위안을 스원칭의 아들 스자창의 구좌로 송금한다.


스원칭이 돈을 긁어모은 수단을 보면, 다른 탐관오리들과는 다르다. 부인이나 자녀가 나서서 돈을 받고, 자신은 뒤에 숨어서 청렴한 척 한다. 나중에 사건이 발각되더라도 자신은 몰랐다는 이유로 최책을 줄이고자 한다. 그러나 스원칭은 달랐다. 그는 적나라하게 직접 나서서 돈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크게 받았다. 관료사회가 말 그대로 조폭집단이다. 스원칭이 어떻게 이렇게 대담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감주의 대권을 장악한 '토황제'였기 때문이다. 결국은 현재 중국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독재정권이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쩡이핑, 원허쿠이와 왕위페이는 각각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실명으로 스원칭의 부정부패사실을 신고한다. 이어서 그는 아마도 낙마하여 법률의 제재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근본적으로 중국의 일당독재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공권력을 철저히 철창 속에 가두어 놓지 않는다면, 설사 스원칭이 조사처벌받더라고, 크고 작은 스원칭은 여전히 암세포처럼 퍼져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