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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중국에서 탐관오리가 없는 부서는 도대체 어디인가?

by 중은우시 2015. 11. 15.

글: 수재강호(秀才江湖)

 

고수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중국에서 어느 성,시,자치구, 어느 관직에서 탐관오리가 나오지 않은 곳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어지럽다. 생각해보면 정말 기이한 일이다. 나는 도저히 답을 내놓을 수 없다. 대륙에 탐관오리는 많다. 광동은 특히 많다. 광동에 탐관오리는 수도 없이 많다. 변방인 티벳, 신강에도 탐관오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성장, 시장, 국장, 현장, 부장, 나는 '장'자가 붙은 관직을 다 생각해 보았다. '서기'가 붙는 성위서기, 시위서기, 현위서기도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중국에서 탐관오리가 없는 곳은 찾지를 못하겠다. 콩고물이 풍부한 방산국, 안전감독국, 시장, 시위서기, 법원원장은 탐관오리로 가득하다. 비인기인 종교국, 동물원, 문명판공실에도 탐관은 없지않다. 동물원의 원장은 사람의 돈을 탐할 수 없자, 동물의 사료값을 자기 것으로 했다. 코끼리 호랑이는 굶어서 뼈만 앙상해 졌다. 내 생각에 이 시대에 조그만큼의 권력을 쥐고 있으면, 그것이 문을 지키는 개라고 할지라도 수중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꾀한다. 개에게 뼈다귀 몇 개라도 던져주어야 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 남경시 시장 지젠예(季建業)은 탐관오리이다. 그를 심판한 법관인 연태시중급인민법원 부원장 비충장(畢崇江)도 탐관오리이다. 국무원에서 파견한 조사소조는 천진폭발사건의 위법위규를 조사하였는데, 며칠 후 조사소조의 조장인 국가안전감독총국 당위서기 양동량(楊棟梁)도 조사를 받게 된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심판을 받는 탐관오리나, 탐관오리를 심판하는 사람도 탐관이다.  분명한 것은, "장비가 이규를 보고 웃고, 까마귀가 까마귀보고 검다고 하는 격이다." 이런 난국에 나는 '무관불탐(無官不貪)', 관리는 모두 탐관이라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받는 사람이 탐관인데, 탐관을 재판하는 법관이 탐관이면, 법관을 재판하는 법관은 탐관일까 아닐까? 천진폭발사건에 탐관이 있는데, 탐관을 조사하는 조사소조의 조장이 탐관이면, 조사소소이 조장을 조사하는 관리는 깨끗할까? 나는 지금 깨닫는다 중국의 관리는 이미 누가 탐관이고 누가 탐관이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저 누가 조사받고 누가 조사받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조사만 하면 분명 문제가 있다. 조사하지 않으면 어떤 탐관이어도 문제가 없다. 왜 이것은 조사하고 저것은 조사하지 않는가. 왜 어떤 사람은 감오겡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적발되지 않는가. 정치게임이다. 뒷배경이 좋으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이 일은 너무 자세히 얘기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출현빈도가 가장 높고 매일 나오는 뉴스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말이다. ".....위법위규혐의로 지금 조직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뉴스는 마치 빈칸채우기 같다. 매일 새로운 답이 나오고, 새로운 관직과 성명이 들어간다. 최근 들어 거의 중국의 모든 관직이 다 나온 것같다. 하급관직, 한직도 포함해서. 나는 건의한다. 이 말 즉 ".....위법위규혐의로 지금 조직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말을 '세게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하자고. 우리 중국특색을 세계로 뻗어가게 하고 세계에 명성을 떨치자고.

 

이런 우스개 말이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우스개가 아니다: "전봇대가 하나 쓰러져서 10명의 중국관리가 감전되어 죽었다. 그중 9명은 탐관오리이다. 나머지 1명은 부임하러 가는 중이어서, 아직 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관리는 하나하나 총살한다면 억울한 사람이 있겠지만, 하나 건너 하나씩 총살한다면 절대로 억울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일 네가 관리가 되면, 너도 탐관이 될 것이다." 그렇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만일 한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내가 마음대로 가지고 갈 수 있고, 아무도 감독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며, 동료들도 모두 가지고 같다면 만일 내가 가지고가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시기하고 배척할 것이다. 내 생각에 나도 집으로 가지고 갈 것같다. 만일 이 수퍼마켓을 누군가 감독한다면 나는 분명 가지고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진정으로 감독하지 않고 모두가 가져간다. 소위 우리를 감독하는 사람도 우리와 같다. 그들도 가져간다. 그런데 네가 가져가지 않겠는가? 내가 말하는 것은 탐관오리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그건 소용이 없다. 똥무더기를 지키면서 파리를 쫓아내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내가 없애려는 것은 탐관오리를 만들어 내는 토양이다. 내가 없애려는 것은 파리가 자생하는 똥무더기이다.

 

탐관은 매일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부측의 매체는 자랑하기에 바쁘다: "이는 당중앙의 부패방지의 거대한 결심을 반영한다." 그리고 탐관의 사적을 부패방지의 성과로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어지럽다. 너네 집에서 매일 많은 파리를 잡고 있는데, 우리 집에는 파리가 한 마리도 없다. 그런데도 너는 말한다: "너희 집이 얼마나 위생적인지" 너는 말한다. 저우용캉의 낙마는 당중앙의 부패방지 결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저우용캉이 수십년간 탐관으로 있었는데 아무도 감독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당중앙이 부패를 종용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