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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북망산(北邙山): 4명의 망국지군이 묻혀 있는 산

by 중은우시 2019. 6. 1.

글: 사취(史趣)


중국역사상 제왕이 가장 많이 묻혀 있고, 가장 집중된 곳을 얘기하자면 당연히 낙양, 맹진, 언사의 세 곳에 걸쳐 있는 망산(邙山)이다. 망산은 동서로 약 50킬로미터이고 남북으로 너비는 거의 20킬로미터이다. 크고 작은 무덤이 10만개가 넘고, 위로는 제왕부터 아래로는 황족, 대신까지 수량이 많기로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이다.


망산의 무덤 중에서 4개의 무덤이 비교적 특이하다. 그들의 주인은 모두 망국지군이다. 모두 후인들에 의해 '후주(後主)'로 불린다. 그들의 처지는 거의 비슷하다.


그 4명은 바로 촉후주(蜀後主) 유선(劉禪), 남조진후주(南朝陳後主) 진숙보(陳叔寶), 후촉후주(後蜀後主) 맹창(孟昶), 남당후주(南唐後主) 이욱(李煜).


유선은 삼국시기 촉한의 두번째 황제이고 41년간 재위했다. 촉한이 멸망한 후, 유선은 위나라의 수도인 낙양으로 옮겨서 거주하며 사마소의 환대를 받고, 안락현공(安樂縣公)에 봉해진다. 유선은 낙양에서 비교적 즐거운 시절을 보내다가, 서진 태시7년(271년) 낙양에서 사망하니, 향년 64세이다.


진숙보는 진나라 즉 남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그는 재위기간동안 조정을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졌다. 그리고 시문과 음악에 심취한다. 수나라군대가 대거 남하하여, 광릉, 경구가 연이어 점령당하고, 도성인 건강도 위기일발이었다. 진숙보는 그래도 향락만 생각하다가 결국은 멸망한다. 진숙보는 장안으로 끌려가서, 저택을 하사받고 잘 예우받는다. 그리고 장성현공(長城縣公)에 봉해진다. 진숙보는 낙양에서 밤마다 음악과 노래에 심취하여, 취생몽사하다 결국 낙양에서 병사한다. 향년 52세이다.


맹창은 오대십국시기 후촉의 마지막 황제이다. 맹창은 재위기간동안 간신을 가까이 하고 현신을 멀리하며, 대형사업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관료사회를 정비하고, 농업과 교육을 장려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다. 후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괜찮은 편이다. 왕전빈등이 촉을 토벌할 때, 맹창은 거의 저항없이 투항한다. 맹창은 송나라에서 검교대사 겸 중서령이 되고 진국공(秦國公)에 봉해진다. 겨우 7일후에 맹창은 서거하는데, 향년 47세였다.


이욱은 남당의 마지막 국군이다. 이욱은 서예와 음률에 정톡했고, 금기서화 특시 음시작사(吟詩作詞)에 능했다. 개보8년(975년) 송나라가 남당을 멸망시킨다. 이욱은 변량에 포로로 잡혀가고, 우천우위상장군을 받고, 위명후(違命侯)에 봉해진다. 이욱은 "왕의 예로 낙경(낙양)의 북망산에 매장된다" 당연히 이욱의 묘가 어느 것인지는 이견이 있다. 다만 북망산에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선은 할거정권의 군주로서 '낙불사촉(樂不思蜀)'으로 유명하다. 역사적 평가는 반반이다. 진숙보, 맹창, 이욱의 인생처지와 국가패망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래서 후인들이 그들을 '후주'라 부르는 것이다. 이 4명의 후주는 오나라의 말제(末帝) 손호(孫皓)등 기타 마지막 제왕과 함께, 망산에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