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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세금을 거두지 않았던 태평천국이 14년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by 중은우시 2019. 5. 4.

글: 우인연화(愚人煙火)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다. 이는 자고이래 불변의 철칙이다. 자고이래로 폭군의 혹정이나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면, 하층의 백성들이 깃발을 들고 일어났다. 그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청나라말기에도 마찬가지로 반란이 일어난다. 이는 중국역사상 최대의 농민반란이다. 즉 태평천국운동이다. 심지어 청정부를 거의 무너뜨릴 뻔했다.


그러나, 태평천국에는 적합한 지도자가 없었다. 그저 오합지중같았다.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는 단체를 갖추지 못했다. 비록 눈앞의 상황이 아주 좋았지만, 결국은 오래갈 수가 없었다. 멸망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지 못하게 태평천국은 14년을 버틴다. 세금도 거두지 않았던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태평천국운동때 여러 곳의 농민들이 속속 가입한다. 여자들도 가입해 들어온다. 그리하여 전문적으로 여영(女營)을 만든다. 이를 보면 여자들의 규모를 알 수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여자는 여재상 부선상(傅善祥)이다. 바로 이 여자가 태평천국의 재정을 유지시킬 방법을 고안해 낸다. 모두 '여자'에 의존하여 돈을 버는 방법이다.


첫째 방법은 토호의 재물을 빼앗는 것이다. 홍수전은 한 지방을 점령할 때마다, 처음 하는 일이 현지의 부호를 붙잡고, 그들의 재물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데에는 폐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호들이 재물을 들고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런 여병들이 필요했다.


이들 여병은 홍수전보다 한발 앞서, 미리 점령하고자 하는 지방에 도착한다. 그리고 변장을 하고서 부호를 알아낸다. 아예 자신의 몸을 팔아 노비로 부호의 집에 들어간다. 그렇게 한 후에 시기가 도래하면 안팎에서 호응하여 재물을 차지한다. 이 방법을 통하여 홍수전은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었고, 심지어 자신의 황궁내에 은산을 하나 만들 수 있었다.


둘째 방법은 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당시의 남경은 수공업이 아주 발달해 있었고, 비단사업은 더욱 그러했다. 현지의 주민은 모두 이런 것에 의존하여 생활했다. 홍수전은 자신이 관할하는 공장을 모조리 모아서, 대형 방직공장을 연다. 그 안의 노동자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유기업직원이다


공장의 효율을 높여 방직품의 생산량을 늘이기 위하여, 홍수전은 일부 여병을 공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게 한다. 공장안의 노동자들도 우대를 받았다. 병역에 종사하지 않아도 될 뿐아니라, 필요한 모든 세수는 감면되었다.


마지막은 수출거래의 길이다. 중국의 비단, 차 그리고 자기는 세계를 풍미했다. 귀족의 상징이다. 홍수전이 점령한 지방은 바로 차와 비단의 주산지이다. 그래서 현지의 차를 가지고 서양총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태평천국의 돈은 양식보다 많았다. 수중에 좋은 카드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마지막에는 엉망진창이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