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태평천국)

태평천국의 미친듯한 개명운동(改名運動)

by 중은우시 2019. 1. 22.

글: 도단방(陶短房)


명나라말기 섬서의 농민반란때, 최초의 반란수령은 거의 모두 가명을 썼다. 무슨 점등자(點燈子), 부점니(不沾泥), 사탑천(射塌天), 혁리안(革裏眼) 등등 가양각색이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이들이 비록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들의 처자식은 여전히 고향에서 대명의 백성으로 살고 있었다. 성과 이름을 감춘 것은 가족들이 연루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태평천국은 일가족을 이끌고 군영을 따른다. 그리고 천부, 천형이 그들을 도와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히 선배들처럼 그렇게 이름을 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이름을 바꾸지 않으려 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태평천국은 위로는 천왕 홍수전부터, 아래로는 보통병사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고치는 것이 유행할 지경에 이르렀다.


홍수전(洪秀全) 자신의 이름은 그의 아들에 따르면, "천안적(天安的)"이다. 그의 족보이름은 홍인곤(洪仁坤)이다. 소자(小字)는 화수(火秀)이다. 전도를 시작한 초기에 그는 천부(天父)의 뜻을 빌려서 했다. 그러기 위해 이름은 "홍수전"으로 고친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 "여호와(한자로 爺火華)"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에 '화(火)'를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뿐아니라, 홍수전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나누어서 활용하기도 했다. 나중에 금전(金田)의거때, 상제회(上帝會)는 탁자유희(拆字遊戱)를 즐겼다. 그래서 "삼성고조일출천(三星高照日出天)", "삼십입일(三十廿一), 화내옥식(禾乃玉食), 인좌일토(人坐一土), 작이민극(作爾民極)" 모으면 홍수전이 제왕이 된다는 말이다. 이 방식은 효과가 컸다. 홍수전과 태평천국의 마지막 몇년까지 그는 계속 하여 글자장난을 계속하여 놀았다.


그러나, 홍수전은 하나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그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상제가 그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할 때, "요 몇년간 인간세상에 내려가 있으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홍수(洪秀)라고 하고 어떤 때는 홍전(洪全)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아마도 청나라측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가 천왕에 오른 후에는 스스로에게 "홍일(洪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마도 그 자신이 태양이라는 뜻일 것이다.


홍수전의 중신(重臣), 대장(大將)중에서도 이름을 고친 사람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어, 북왕 위창휘(韋昌輝)와 동생 위지준(韋志俊)은 원래 이름이 위정(韋正), 위준(韋俊)이었다. 대장 이래방(李來芳)은 원래 이름이 이개방(李開芳)이었다. 명의 이준량(李俊良)은 원래 이름이 이준창(李俊昌)이었다. 영왕 진옥성(陳玉成)은 원래 이름이 진비성(陳丕成)이었다. 답천예(答天豫) 설지언(薛之元)은 원래 이름이 설소(薛小)였다.


그 중 어떤 사람은 한번만 이름을 바꾼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충왕(忠王) 이수성(李秀成)은 본명이 이이문(李以文)이다. 이름을 이수성(李壽成)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이수성(李秀成)으로 바꾼 것이다. 찬왕(贊王) 몽득은(蒙得恩)은 원래 이름이 몽상승(蒙上昇)인데, 몽득천(蒙得天)으로 개명했다가 다시 몽득은으로 개명한 것이다. 주왕(奏王) 뇌세취(賴世就)는 본명이 뇌구(賴九)인데, 뇌세국(賴世國)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뇌세취로 바꾼다.


왜 태평천국에 개명한 사람이 특별히 많았을까?


봉건시대 각 왕조에는 모두 "피휘(避諱)'가 있었다. 제왕의 이름은 마음대로 다른 경우에 쓸 수가 없다. 만일 쌍명(雙名)이면 일반적으로 연달아 쓸 수 없다.


태평천국의 피휘에 대한 사랑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천부, 천형의 이름, 홍수전 부자와 동서남북익 오왕의 이름은 모두 피휘해야 한다. 일부 듣기 좋지 않은 글자 예를 들어 축(丑, 醜와 동음), 해(亥, 害와 동음)등은 피휘해야 한다. 심지어 일부 상용자들 예를 들어 사(師, 이는 軍師. 先師, 後師등에만 쓸 수 있다), 용(龍, 그저 '보배룡'이라고 할 때만 쓰고 이름으로 쓸 수는 없다)등도 쓸 수 없다. '왕(王)', '주(主)'등 보기에 위풍있는 글자도 마찬가지로 쓸 수가 없다.


이렇게 되니 많은 성(姓)도 부득이하게 고쳐야 했다. 왕(王)은 중국에서 랭킹3위내에 드는 대성이다. 홍수전의 사촌형님도 성이 왕씨이다. 그러나 왕이라는 글자를 쓸 수 없다보니, 왕씨는 모두 왕(汪)이나 황(黃)으로 성을 바꾸게 했다. 태평천국 경내에는 이로 인하여 왕씨는 하나도 없게 된다. 홍수전은 일반인들이 홍(洪)씨성을 쓰지도 못하게 했다. 안휘사람인 홍용해(洪容海)는 태평천국에 가입한 후 처음 해야한 일이 바로 성을 '동(童)"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는 나중에 청군에 투항했는데, 그후 처음 한 일도 바로 성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뇌세국이 뇌세취로 고친 것이나, 몽득천이 몽득은으로 고친 것도 피휘를 위해서이다. 이준창이 이준량으로 고친 것은 북왕의 이름이 위창휘로 '창'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개방이 이래방으로 고친 것은 익왕이 석달개(石達開)로 '개'자가 있기 때문이다.


몽득은이 여러번 개명한 것은 상제(上帝)의 '상(上)'자 때문에 득천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황천(皇天)의 '천(天)'자를 피휘하여 몽득은으로 바꾸었다. 태평천국에서는 피휘가 점점 강화되는 추세였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후기에 천경지변과 석달개의 이탈등으로 창, 개와 같이 원래 피휘했던 글자는 전혀 피휘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준창, 이개창도 그리하여 원래 이름으로 회복한다. 홍수전의 아들 홍천증(洪天曾)이 태어나면서, 부득이 성을 "영(永)"으로 바꾸어야 했던 ,태평군의 장령 증천호(曾天浩), 증천양(曾天養), 증수원(曾水源)등도 원래 성을 되찾는다.


태평천국은 풀뿌리에서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은 그저 원명(諢名, 장난으로 부르는 이름)만이 있었다. 천지회 출신의 나아왕(羅亞旺), 철장(鐵匠) 출신의 뇌구, 좀도둑 출신의 설소, 소금판매업자 출신의 손취(孫臭, 나중에 孫魁文으로 이름을 바꿈)는 원래 아명만이 있었다. 그러나 관직을 얻은 후에, 어쨌든 그럴 듯한 이름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은 원래 이름이 있었지만, 이름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보아, 고쳐버린다. 예를 들어 이이문이 이수성으로 바꾼 것같은 경우이다.


많은 왕조의 황제는 모두 이름을 내리고, 성을 내리는 것을 좋아했다. 홍수전도 이것을 좋아했다. 진비성을 진옥성으로 고친 것이나, 이수성(李壽成)을 이수성(李秀成)으로 고친 것은 모두 그의 걸작이다. 특별이 이수성의 '수(秀)'는 홍수전 자신의 이름에 있는 글자이다. 원래 양수청을 제외하고 아무도 쓸 수 없는 글자였다. 그런데 이걸 특별히 이수성에게 내렸다. 이는 천하인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는 이수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태평천국은 초기에 결혼을 금지했다. 기혼남녀도 각각 떨어져 거주해야 했다. 외로움을 느낀 많은 장병들은 각지에서 아동을 데려다가 자신의 의동생이나 양자로 삼는다. 자손이 많지 않은 일부 장령들 예를 들어 양수청 같은 경우에는 이런 방식으로 세력을 확충했다. 이렇게 하여 개명하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보왕(輔王) 양보청(楊輔淸)등 10여명은 '동왕종(東王宗)'으로 명목상으로 동왕 양수청의 동생이다. 기실 그들은 그저 양씨성의 핵심장수이다. 양보청의 원래 이름은 양금생(楊金生)인데, 양수청을 형으로 모시면서 이름도 자연히 대표적인 '양X청'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양자나 의동생은 성이 같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비왕(比王) 전계인(錢桂仁)의 의동생 전수인(錢壽仁)은 본명이 주수창(周壽昌)인데, 성과 이름을 다 바꾸어버린 경우이다.


왕망(王莽)은 쌍명(雙名)이 우아하지 못하다고 여겨서, 전국에 모두 단명(單名)으로 바꾸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천년이 흐른 후에 태평천국은 쌍명이 바른 것이라고 생각하여, 삼원리 항영(抗英)에 참여했던 천지회의 노장 주춘(周春)은 태평천국에 귀순한 후에 '주춘지(周春之)'로 개명한다. 염군의 대두령 공득(龔得), 장룡(張龍)은 태평천국에서 '공득수(龔得樹)', '장원륭(張元隆)'으로 바꾸어 불린다.


고위장수들도 이러하니, 말단병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때는 이름을 바꾸었는데 본인이 모르는 경우도 있다. 상주 태평군의 하급병사중에 원래 이름이 용각(龍角)인데, '용'자는 쓸 수 없는 이름이다보니, 이 병사는 명부에 '융곽(隆廓)'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태평군의 병사중에 '이세현(李世賢)'이 있는데, 바로 시왕(侍王) 이세현과 같은 이름 같은 성이다. 비록 이세현의 이름은 법정 피휘대상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전하가 기분나빠할까봐' 그 병사의 직속상사는 이름을 고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병사가 죽어도 바꿀 수 없다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결국 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