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장개석)

장개석의 사무실에는 왜 책이 한권도 놓여 있지 않았을가?

중은우시 2019. 3. 21. 15:53

글: 진관임(陳冠任)


지도자로서 장개석의 사무실은 세계각국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 책 한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 책을 한권도 놓아둔 적이 없다.


3,4십년대 중경(重慶)에 있을 때, 장개석은 두 개의 사무실이 있었다. 하나는 군사위원회(軍事委員會), 다른 하나는 중앙훈련단(中央訓練團). 그는 매일 먼저 군사위원회레 간다. 9시에 도착하여, 군사분야의 사정을 거기서 얘기한다; 군사위원회에서 1시간여를 머물렀다가 그는 다시 중앙훈련단으로 갔다. 다른 일은 중앙훈련단에서 처리했다.


항전승리후, 그는 남경으로 돌아왔고, 국민정부 주석(총통에 당선된 후에는 총통)이 된다. 그리고 군사위원회에서 군사문제를 처리하고, 국민정부(총통부) 사무실에서 다른 행정문제를 처리했다.


그는 한번고 관저(官邸)에서 공무를 논한 적이 없고, 누구를 그의 관저로 불러서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


다만, 특별히 중대한 사정이 있거나, 혹은 임시로 긴급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장개석이 마침 관저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는 시종무관에게 "내일 누구누구를 찾아서 불러와라."라고 말한다.


그가 관저에서는 공무를 논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무관은 총통부 교제과에 통지하고, 교제과에서 그 사람에게 통지하여 다음 날 장개석을 면담하게 한다.


다만, 다음 날 누구를 만나는 시간과 장소는, 장개석의 관저가 아니다. 장개석의 일정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그가 당중앙당부에서 회의를 개최하면, 바로 중앙당부에서 접견하고; 만일 총통부에서 업무를 보면, 총통부에서 회의를 개최하기 전후에 시간을 내서 만난다. 어떤 때는 사정이 아주 급하면, 무관 혹은 시위장이 직접 당사자에게 통지한다. 반드시 총통부 교제과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가 통지하든 한 가지는 명확하다: 관저에서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


장개석은 휴식과 업무시간을 아주 명확히 구분했다. 그래서 전방의 적지 않은 긴급한 군사업무도 이로 인하여 미루어지곤 했었다.


그렇기는 해도, 장개석의 이 습관은 엄격히 지켜졌고, 전혀 바뀌지 않는다.


장개석을 따라 여러 해동안 일했던 시종관 전수석(錢漱石) 선샌의 회고에 따르면: 대륙에서건 대만에서건, 장개석의 사무실에는 책을 놓아둔 적이 없다. 책은 한권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독서는 사적인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저에서만 책을 읽었다. 그래서 사무실에는 책을 놓아두지 않은 것이다.


장개석이 사무실에 책을 놓아두지 않는데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평상시에 3권의 책만 읽었다: <성경>, <사고전서> 그리고 왕양명의 <전습록> 시종인원은 하나의 작은 가방에 넣어다녔다. 그러내 미일 거기에 놓아둘 필요도 없었다.


그의 사무실에 책을 놓아둔 것은 딱 한번이다.





그의 말년에, 외부에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아 출근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미국기자가 그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어서, 미국의 신문에 실어 유언비어를 막겠다고 제안한다.


그가 자리에 앉은 후, 시종관들은 뒤의 장이 너무 허전하여 보기 좋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임시로 책들을 옮겨서 그 안을 채운다.


사진을 다찌고 난 후에 이들 책들은 즉시 옮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