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직하서생(稷下書生)
기원전203년, 초한지쟁의 관건적인 해이다. 이 해에 한신은 한군(漢軍)을 이끌고 유수(濰水)를 건너 초군(楚軍)의 일부를 격패시키고, 초군대장 용차(龍且)를 죽인다.
당시 한왕(漢王) 유방과 초왕(楚王) 항우는 양하(陽夏)의 남쪽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유방은 한실을 제왕(齊王)으로 봉하고, 그의 군대로 하여금 초군으 공격하게 할 계획을 세운다. 일단 한신이 전쟁이 가담하면, 쌍방의 역량에 큰 변화가 발생한다. 항우는 두려웠고, 무섭(武涉)을 보내 한신에게 유방으로부터 독립하여 삼분천하하도록 설득하나, 한신이 거절한다.
수하의 모사인 괴통(蒯通)도 한신을 설득한다. 공고진주(功高震主)이니 초,한이 모두 시기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면 차라리 스스로 독립하여 왕에 오르는 것이 났다. 그렇게 하여 삼분천하하자고 한다. 그러나 한신은 듣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유방과 해하에서 만나, 항우를 공격하고, 대한왕조를 건립한다.
인생은 연극과 같고, 세상은 무상하다. 삼국연의는 식사때 여담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만일..."을 얘기하곤 한다.
만일, 한신이 두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여, 독립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더라면, 당시의 역사조건하에서 삼국연의의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한신이 자립한 후, 아마도 짧은 기간의 삼국정립은 이룰 수 있겠지만, 그다지 오래가긴 힘들었을 것이다. 항우가 가장 먼저 멸망하고, 삼분정립은 양웅쟁패로 바뀔 것이며, 최종적으로 유방이 승리하여 천하통일을 이룰 것이다.
항우가 왜 가장 먼저 망할까/
삼웅 중에서 초군의 군사력이 가장 강하다. 초군은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전투를 통해 강인한 전투력을 가졌다. 해하전투에서도, 한군은 유방, 한신, 영포, 팽월, 공장군희, 비장군진하등 몇로의 대군을 모아서 겨우 항우를 격패시킬 수 있었다.
제군(齊軍, 한신)의 군사력이 그 다음이다. 제군은 조, 제등을 평정했고, 득승지군(得勝之軍)이다. 사기가 한창 올라 있고, 국사무쌍의 한신이 총사령관으로 있다. 실력을 얕볼 수 없을 것이다.
한군은 군사력이 가장 약하다. 한군은 초군과 싸우면서, 기본적으로 연전연패했다. 아주 드물게 승전을 거둔다. 군대는 자주 패한 뒤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다시 패하고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항우가 삼웅중에서 가장 먼저 망할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때문이다.
첫째, 한신과 유방은 결맹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 셋 중에서 가장 역량이 강한 족이 가장 위험한 쪽이다. 왜냐하면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소한 두 곳이 스스로를 지키려면 서로 결맹을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섭, 괴통의 유세를 들을 때, 한신의 언사에서 추단해 볼 수 있다. 한신은 유방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쌍방은 결맹을 맺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신이 항왕을 모실 때는 관직이 낭중에 불과했고, 지위는 집극에 불과했다.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계획을 내놓아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초를 버리고 한으로 간 것이다. 한왕은 나에게 상장군인을 주었고, 수만의 병사를 주었다. 옷을 벗어서 나를 입혀주었고, 음식을 나눠주어 나를 먹게 했다. 내가 말하면 다 들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추단하면, 한신은 항우에 대하여 무슨 정이랄 것이 없고, 심지어 언사에서는 약간의 원한까지 나타난다. 그러나 유방에 대하여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한신과 유방이 결맹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도 있고, 결맹할 수 있는 감정적인 기초도 있다.
둘째, 항우는 무략에서 유방과 한신에 미치지 못한다. 삼웅정립은 높은 IQ와 심원한 모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복잡하고 다기한 국면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도를 정하는 일에서 보더라도 항우는 계모가 없다. 관중은 전략적 지위가 중요하고, 물산이 풍부하며, 인재도 많이 배출된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이 관중에 도읍으 정하자고 하지만, 항우는 도성을 팽성으로 정한다. 그것은 팽성이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공명을 얻은 후 반드시 금의환향해서 한바탕 자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항우는 인재를 기용할 줄 몰랐고, 인심을 정점 잃어갔다. 장수들 중 공로가 있으면 상을 내려야 한다. 항우는 인장을 파서 손안에 들고 있으면서도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모서리가 닳을 때까지 아까워서 남에게 주지를 못한다.
진평이 간단한 이간계를 쓰자 항우는 계책에 걸려, 초군의 가장 중요한 모사인 범증을 멀리한다. 그리하여 범증은 떠나서 병사한다. 그리고 수하대장 종리매등과 소원해진다. 더 이상 그들을 신임하지 않는다.
항우의 장수임면은 완전히 그 개인의 호불호와 은원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인심을 잃는다. 사마흔(司馬欣)은 그다지 공로가 없지만,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게 은혜가 있어서 새왕(塞王)에 봉해진다. 초회왕과 그 신하는 몰래 항우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는데, 항우는 사람을 보내 이들을 죽여서 강에 던져버린다.
유방이 한신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였을 것이다.
항우가 멸망한 후에는 유방과 한신의 쌍웅쟁패국면이다. 비록 군사력에서는 한신에 비하여 차이가 있지만, 유방의 종합실력은 한신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한신을 이켜 찬하를 빼앗을 것이다. 쌍방의 역량을 대비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방은 정치적 호소력이 있었다. 약법삼장은 유방이 인심을 얻게 만들어 준다. 유방이 가장 먼저 함양에 들어갔는데, 항우가 도살한 것과 달리, 유방은 제왕의 풍모와 안목이 있었다. 그는 진나라의 재물과 창고를 봉쇄하고, 성밖으로 물러나 주둔했다. 백성들과는 약법삼장을 내걸고 추호도 범하지 않았다 .진나라사람들은 기뻐하며 앞다투어 군사들을 위분했다. 유방은 사양하고 받지 않으니 백성들은 그를 더욱 좋아한다.
각종 전설도 유방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 유방이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몸 위에 용이 출현한다. 그래서 술집에서는 유방에게 밀린 술값을 받지 않았다. 유방은 일찌기 백사를 참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적제의 아들이 백제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점점 그를 떠받들기 시작한다. 유방이 거주한 곳에는 자주 구름이 둘러싸고 있었다. 패현의 청년은 이를 듣고 그에게 투신한다. 고인들은 미신을 많이 믿었다. 이런 범상치 않은 기이한 일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방이 분명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리하여 유방의 호소력을 제고시킨다.
둘째, 유방은 완벽한 팀이 있었다. 문관으로는 소하가 있어, 후방의 물자조달을 책임진다. 그는 유방을 강력하게 지원해준다. 무관으로는 팽월, 영포, 유가, 하후영등이 선봉에 선다. 모사로는 장량, 진평등이 있다. 모두 운주유악, 결승천리의 인재들이다. 변사로는 역생, 육가등이 있다. 이들은 유방을 위하여 유세하고 선전한다.
한신의 팀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신의 수하장수인 주발, 번쾌, 조참, 관영, 왕릉등은 모두 유방과 거사하기 전부터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함께 유방을 패공으로 옹립했고, 진나라에 항거하여 거사를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은 유방에 대하여 아주 충성심이 강했다.
만일 정말 독립하여 왕이 되면, 한신은 이들을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 이들 몇몇 장군들은 진심으로 한신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한신의 군대에 또 다른 장수인 장이(張耳) 역시 유방과 잘 아는 사이이다. 유방이 평민이었을 때, 여러번 장이와 교류했고, 그의 집에서 몇달씩 손님으로 머물곤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보통이 아닌 것이다. 나중에는 사돈이 된다. 장이의 아들 장오는 유방의 딸 노원공주를 취한다. 만일 한신이 유방을 배신하고 자립한다면, 장이는 한신에게 있어서 불안정요소이다.
셋째, 유방은 한신을 대체할 군사인재가 있다. 실제 역사에서 한신의 군사천재는 유방이 항우에게 최종승리를 거두는데 큰 힘이 되었다. 만일 한신이 자립한다면, 유방의 진영에 한신을 대체할 군사인재가 있었을까?
있다. 장량이다.
장량은 <태공병법>을 배웠고, 장수인재이다. 유방의 장량에 대한 평가는 "운주유악지중, 결승천리지외"이다. 그는 병이 많은 몸이어서, 단독으로 지휘관이 되어 출정하지는 않았다. 계속 모사로 한왕을 따른다. 만일 한신이 자립한다면, 장량은 아마도 유악에서 나와 한군을 지휘했을지도 모른다.
넷째, 쌍방의 장수를 분석해보자. 한신은 전술방면의 천재이다. 그는 전술을 임리진치(淋漓盡致)하게 운용했다. 전투에서 '강공 대 강공'으로 맞서지 않고, 항상 궤계(詭計)를 썼다. 한신의 일부 전술은 성인들이 잘 아는 고사성어로 남아 있다: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임전설의(臨戰設疑), 목앵도군(木罌渡軍)", "배수일전(背水一戰), 발기역치(拔旗易幟)"; "진사결수(陳沙決水), 반도이격(半渡而擊)", "십면매복(十面埋伏), 사면초가(四面楚歌)"
장량은 전략방면의 천재이다. 전략은 전술과 비교하면, 간단히 말해서 더 높은 곳에 서서, 더 멀리 보며, 더 깊이 계책을 만들기 때문에, 살상력이 더욱 크다.
초한지쟁이 막 시작되었을 때, 장량은 유방을 위하여 좋은 전략을 만들어낸다: 영포, 팽월과 연합하여 항우를 상대한다. 한신으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독자적으로 부대를 이끌게 한다. 유방은 결국 항우를 이겼고, 군사적으로 이 세 사람에 의지한다. 그중 한신은 정면으로 공격했고, 팽월, 영포는 적의 후방을 교란시켰다. 그리하여 항우가 피곤하게 뛰어다니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초군의 전투력은 약화된다. 항우의 식량공급선과 후방지원을 끊음으로써, 서서히 초군을 무너뜨렸다.
장량은 한신과의 대결에서 분명히 열세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사령관이외에, 조참, 주발, 번쾌, 관영등이 모두 한신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한다고 하더라도, 유방수하의 영포, 팽월, 한왕신, 하후영등도 용맹하고 전투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유방에게는 안정적인 근거지가 있었다. 유방은 항우에 의해 한왕에 봉해진 후, 점차 관중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안정적인 근거지를 확보했다. 초한지쟁의 전장은 관중이 아니었고, 전화는 유방의 근거지까지 번져가지 않았다.
유방은 또한 뛰어난 근거지의 대총독 소하가 있었다. 한군이 여러번 실패해도, 소하가 적시에 양초를 모으고, 병력을 전방으로 보내주었기 떄문에 한군은 버틸 수 있었다.
한신은 제나라를 금방 평정했으므로, 제나라에는 전담(田儋), 전영(田榮), 전횡(田橫)등의 호걸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진나라에 항거한 바 있고, 다른 제후국에 항거한 바 있다. 항우에 항거하고, 한신을 공격했다. 심지어 내분도 있었다. 한신도 제나라사람들은 교활하고, 반복무상하다고 말했다. 제나라땅은 안정적인 근거지가 될 수 없었다.
여섯째, 한신의 정치력은 소아과였다. 한신은 군사인재이지만, 정치노략은 상당히 졸렬했다. 3가지 일을 보면 그의 정치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다.
한신이 제나라를 평정한 후, 양양득의하여, 사람을 보내어 유방에게 제나라사람들은 교활하고 변심을 잘 하니, 국면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가왕(假王)에 봉해달라고 말한다. 사서에는 한신이 시정잡배의 기가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한신의 이런 행동은 유방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만들었고, 결국 그를 죽이는 원인이 된다.
한신은 유방에게 유인되어 체포된 바 있다. 항우 수하의 장수인 종리매는 한신과 사이가 좋았다. 유방이 황제에 오른 후, 종리매는 지명수배당하는데, 종리매는 한신의 집에 숨는다. 누군가 한신이 반란을 꾀한다고 고발했는데, 유방은 감히 병력을 일으켜 한신을 공격하지 못하고, 진평의 건의를 받아들여, 거짓으로 순시한다고 하고, 제후들에게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자고 한다. 종리매는 한신에게 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한신은 종리매를 죽이고, 그의 수급을 가지고 유방에게 간다. 한신은 도착한 후 체포되고, 회음후로 강등된다.
한시은 여후에게 유인되어 체포된 바 있다. 한신은 가짜조서를 내려 노예와 죄수를 석방한 후 황궁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진희가 호응하기로 했는데, 집안사람이 계획을 폭로한다. 여후는 감히 직접 한신을 공격하지 못하고, 장량의 계책을 다라, 거짓으로 유방이 진희를 이겼다고 대신들에게 입궁하여 축하하라고 요구한다. 한신은 가볍게 믿고 사람드을 따라 입궁했다가 결국 피살된다.
결론적으로, 만일 한신이 자립하여 왕이 되었더라도, 삼분찬하에서 항우가 가장 먼저 멸망했을 것이고, 한신도 유방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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