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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관우)

관우의 과오관참육장(過五關斬六將)의 노선도

by 중은우시 2019. 1. 7.

글: 동리채국(東籬採菊)





삼국연의에서, 관우가 조조에 투항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록 조조가 관우를 후대했지만, 그 군웅혼전의 시기에 관우는 여전히 유비에게 마음이 향해 있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관우는 조조를 떠난다. 이어서 오관을 지나면서, 여섯장수를 벤다. 오관은 어디인가? 동령관(東嶺關), 낙양(洛陽), 사수관(汜水關), 형양(滎陽), 활주황하도구(滑州黃河渡口)이다. 만일 소설의 지점을 선으로 그리게 되면, 이어지는 직선거리는 개략 400여리에 이른다. 다만 오관의 위치는 위로갔다 아래로 갔다. 남으로 갔다 북으로 갔다한다. 관우가 정말 이렇게 갔다면 그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광우의 과오관참육장,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는 사람들이 즐겨 얘기하는 주제이다. 이 이야기는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진수이건 배송지이건, 모두 이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나관중은 소설에서 이를 크게 썼다. 관우는 감부인과 미부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허창에서 출발하여, 하북으로 유비를 찾아간다. 가는 길에 동령관, 낙양, 사수관, 형양, 황하를 건넌다. 전후로 그들을 막는 위나라 장수를 6명 참한다: 공수(孔秀), 한복(韓福), 맹탄(孟坦), 변희(卞喜), 왕식(王植), 진기(秦琪). 모두 관우의 칼 아래 목숨을 잃는다. 이는 천하무적의 모습이다.


관우의 천리주단기의목적은 하북(황하이북)으로 가서 원소(袁紹)에 의탁해 있는 큰형 유비와 만나기 위함이다. 그는 허주의 패릉교에서 조조와 작별한 후, 한바퀴를 크게 돈다. 지리의식이 강한 독자라면, 왜 그렇게 돌아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 관문은 동령관이다. 이곳에서 그는 낙양으로 방향을 잡는다. 동령관은 과오관참육장의 제일관이다.


허창의 패릉교를 떠나서 지금의 백사(白沙)댐인 동령관으로 갔다. 이곳은 우주(禹州)에서 서북으로 30킬로미터 지점이다. 허창에서는 70여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동령관은 괴이한 곳이다. 원나라때의 <삼국지평화>에 따르면, 관우의 천리주단기때 그가 지나간 관의 이름 중에 동령관은 없었다. 그런데 나관중이 그 이야기를 가져다 쓰면서 관우가 장안에서 출발한 사실(史實)을 허창에서 출발한 것으로 고쳤다. 그러다보니 허창과 낙양 사이에 동령관을 추가하게 된 것이다.


동령관을 지나면 제2관은 낙양이다. 낙양을 지나서 다시 되돌아온다. 제3관에 도착하는데 사수관이다. 이곳은 낙양의 동쪽이다.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 서북부 16킬로미터지점의 사수진 경내이다. 동쪽에서 낙양으로 가더니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어진 제4관은 형양이다. 형양은 정주에서 서쪽으로 15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하남성의 성회인 정주와 가장 가까운 현급시이다.


활주는 지금의 하남성 활현이다.


소설가 나관중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미기 위하여, 이야기가 발생한 지리적 위치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듯하다. 동시에 나관중이 삼국연의를 쓸 시대에는 비교적 정확한 지도도 없었다. 지리시직도 지금처럼 보급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책에는 지리적인 오차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소동파도 적벽대전의 지리적 위치를 잘못 알았지 않았던가


지리지식이 박약한 독자이라면, 관우의 천리주단기에서 지난 오관이 곧장 북으로 뻗어있을 것이라 여긴다.


기실 허창 - 동령관 - 낙양 - 사수관 - 형양 - 활주황하도구를 선으로 연결시키면 미궁같은 곡선이다.


이 점을 삼국지팬들은 발견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