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소담야사(笑談夜史)
관우는 삼국시대 가장 유명한 무장이고, 무공이 비록 천하제일은 아니었지만, 그의 전력은 확실히 일류였다. 비록 그보다 무공이 약간 나은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관우를 이기기는 힘들었다. 관우의 전력이 얼마나 강했을까? 온주참화움(溫酒斬華雄), 과오관참육장(過五關斬六將), 이것은 모두 관우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전적이다. 관우는 비록 강했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자신하지는 않았다.관우가 일생동안 탄복한 사람이 4명이 있다. 유비는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장비. 관우의 좋은 형제이다. 관우는 일찌가 자신의 동생을 칭찬한 바 있다. 백만대군 가운데에서 장수의 수급을 취할 수 있다고. 비록 약간의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장비의 무공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장비는 이를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장판파대전에서, 조조가 조운을 포위공격하며 이 호장을 얻으려 할 때, 그리고 조운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장비가 적시에 도착하여, 사납게 소리친다. 그리하여 조조의 군중의 한 장수는 놀라서 죽었고, 수만의 조조 병사들도 감히 앞으로 한걸음 내딛지 못한다. 이를 보면 장비가 매우 용맹하였고, 무공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장료. 비록 위나라의 장수이지만, 관우와 그의 교분은 괜찮은 편이었다. 유비가 여포와 교전할 때, 장료는 여포의 부하였다. 관우가 장료를 물리친 후, 장비가 계속 추격하려고 하자, 관우가 가로막는다. 그의 이유는 이러했다. 이 사람은 무예가 너와 나보다 아래가 아니다. 그가 아주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하다고 하더라도 관우, 장비 두 사람을 막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저 장료가 자신의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방덕. 그가 명성을 얻었을 때 관우, 장비는 이미 나이가 들었다. 방덕은 젊은 장수였다. 양번(襄樊)전투에서 방덕은 아직 우금(于禁)의 부장(副將)이었다. 그는 관을 들고 관우와 결전을 벌인다. 백여회합을 겨룬다. 관우는 영지로 돌아온 후, 진짜 나의 적수를 만났다고 칭찬한다. 관우에게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방덕은 아주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여포. 기실 관우가 가장 탄복한 인물은 여포이다. 관우가 가장 탄복한 사람은 삼국제일명장 여봉선 여포이다. 여포의 무력은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에서 엿볼 수 있다. 이번을 제외하고 그 어느 전투에서 관우가 다른 사람과 힘을 합쳐서 한 사람을 상대했던가? 그래서 관우는 여포에게는 진정으로 탄복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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