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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삼국연의

삼국연의의 7대 신비고수

by 중은우시 2018. 12. 10.

글: 삼국역사화제(三國歷史話題)


자고이래로 난세에 호걸이 나왔다. 삼국시대라는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시기에 시시때때로 환소와 비가가 울렸다. 어떤 영웅은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찬란하게 빛을 내지만, 어떤 영웅은 신비하기 그지없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오ㄴㄹ은 삼국연의에 나오는 7대신비고수를 소개하기로 한다.


7위: 호거아(胡車兒)


장수(張繡)와 조조(曹操)가 싸울 때, 그의 편장(偏將) 호거아는 조조의 신변호위인 맹장 전위(典韋)를 취하게 한 후 그의 쌍극(雙㦸)을 훔쳐 전위로 하여금 완성전투에서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전해지는 바로는 호거아가 "힘이 세서 오백근을 들 수 있고, 하루에 칠백리를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힘이 셌을 뿐아니라, 발도 빨랐다. 그는 이렇게 대단한 장수였던 것이다.


6위: 염행(閻行)


삼국연의에서 마초(馬超)의 무공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포제이(呂布第二)라 할 수 있고, 장비(張飛)가 투구를 벗고, 허저(許褚)가 갑옷을 벗어가며 젖먹던 힘까지 냈지만, 마초를 이길 수 없었다. 아마도 관우(關羽), 조운(趙雲)등이 올라가서 붙어도 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초는 하마터면 금성(金城)사람인 염해의 손에 죽을 뻔했ㄷ. 염행은 자가 언명(彦明)이고, 한약(韓約)의 부하장수이다. 건안초년, 한약과 마등(馬騰)간에 전쟁이 벌어지는데, 염행이 마초와 싸우게 된다. 장모(長矛)로 가슴을 찔러갔는데, 힘을 너무 많이 주어 모가 부러진다. 염행은 당황하지 않고, 부러진 모를 가지고 다시 마초의 목을 찔러간다. 마초는 전혀 반격할 힘이 없어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다. 악몽과 다름이 없다. 아쉽게도 염행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서인지 항상 얼굴을 드러내어 당시의 인물들과 다투는데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뛰어난 무예를 썩히고 만다. 건안14년에 이르러, 조조는 그에게 태수의 관직을 내린다.


5위: 올돌골(兀突骨)


제갈량이 남방을 평정할 때, 일찌기 이인(異人)을 만난다. 바로 오과국(烏戈國)의 국왕 올돌골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키가 장이(丈二)이고, 오곡을 먹지 않으며, 생사(生蛇), 악수(惡獸)를 먹는다. 몸에는 비늘이 있어, 칼과 화살도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코끼리를 타고 선봉에 서며, 머리에는 일월낭수모(日月狼鬚帽)를 쓰고, 몸에는 금주영락(金珠纓絡)을 입었으며, 양쪽 옆구리에는 인갑(鱗甲)이 나왔고, 눈에서는 광망(光芒)이 약간 나왔다. 전성기의 위연(魏延)도 그의 앞에서는 어린아이같았다. 먼저 대패하고, 다시 거짓으로 15번을 패배하여 체면이 바닥에 떨어진다. 조운, 마대(馬垈)등도 감히 그와 직접 겨루지 못했다. 이 삼국의 수퍼 이인을 없애기 위하여 제갈량은 할 수 없이 '화공'을 써서 효과를 거둘 수 밖에 없었다.


4위: 왕월(王越)


왕월은 요동 연산(燕山) 사람이다. 동한말기의 저명한 무술가이다. 검술에 뛰어났고, 사아(史阿)의 사부이다. 한환제(漢桓帝), 한영제(漢靈帝)의 재위기간에 호분장군(虎賁將軍) 왕월은 검술에 뛰어나 경성내에서 제사(帝師)로 불리웠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힘은 여포에 비견할 만하고, 1:1로 싸워서는 적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공명심이 너무 커서, 조정에서 관리를 하려는 야심이 강했다. 그리하여 한헌제 유협의 검술교사가 된다. 나중에 조조의 명을 받아 다시 조비(曹丕)의 스승이 되어, 검술을 가르친다. 일생동안 궁을 거의 나가지 않아서, 이름을 떨칠 기회가 없었다. 십상시의 난때 한헌제를 보호하여 마차를 몰아 추격병을 무수히 죽인다. 한헌제를 동탁이 데려간 후에는 왕월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가, 다시 나중에 조비의 스승으로 나타났다.


3위: 동연(童淵)


동연은 자가 웅부(雄付)이고 무술명가이다. 병주(幷州)의 이언(李彦)과는 결의형제이다. 두 사람은 모두 의부(義父) 옥진자(玉眞子)에게서 무술을 배운다. 두 사람은 각각 하북 안가(顔家)의 아가씨 안운(顔雲)과 안우(顔雨)를 취한다. 동연은 제자를 2명 거두는데, 한 명은 북지창왕(北地槍王) 장수(張繡)이고, 다른 한명은 서천(西川)의 대도독인 익주의 서천창왕(西川槍王) 장임(張任)이다. 두 사람은 모두 그의 "백조조봉창(百鳥朝鳳槍)"을 사사받아 높은 명망을 얻는다. 나중에 동연은 다시 조운(趙雲)을 관문제자(關門弟子)로 받아서, 그의 필생의 무술을 가르친다. 조운은 '백조조봉창'의 기초 위에 그의 유명한 절기 '칠탐반사창(七探盤蛇槍)'을 만들어낸다. 나중에 그의 사형인 장수와 장판파대저에서 300회합을 겨루는데, 칠탐반사창으로 백조조봉창을 이기고, 그의 사형 장수를 참살한다.


2위: 좌자(左慈)


유비가 참여한 '옥대조(玉帶詔)' 암살계획에 몸이 장애인 추가 참여자가 한 명 있다. 그의 이름은 오각선생(烏角先生) 좌사이다. 그는 한 쪽 눈이 먼 절름발이이다. 머리에는 백등관(白藤冠)을 쓰고, 몸에는 청라의(靑懶衣)를 입었다. <삼국연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명한 대역사 허저가 삼백 철갑군을 가지고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고. 이를 보면 좌사는 방어전에 능숙한 기인이사이다. 비록 이번 암살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조조는 그날 밤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1위: 마충(馬忠)


반장(潘璋)의 부장(部將) 마충은 동오(東吳) 진영에서 일류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관우의 주맥성(走麥城)이후, 그는 연이어 '신비살수'의 역할을 맡는다. 신비로운 인물로 촉한의 장수들이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했다. 관우는 역대이래로 힘이 센 것으로 유명했는데, 마충과 만나자마자 생포당한다; 황충(黃忠)은 '신전수(神箭手)'인데, 마충의 화살 하나에 맞아죽는다;  징포(張苞)등 촉한의 후기지수는 모조리 마충의 손에 패배한다. 그의 대단한 전적은 삼국에서 따를 자가 없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