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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중기)

프랑스 선교사가 기록한 "강희제의 황태자폐위사건"

by 중은우시 2018. 11. 26.

글: 관첩(關捷)


강희제의 황태자폐위사건에 대하여는 300여년동안 전설도 많고 판본도 많다. 궁중버전이 있는가 하면 민간버전도 있고, 만주족버전이 있는가 하면 한족버전도 있다.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중국인이 스스로 쓴 역사는 왕왕 명을 받들어 쓴 것이거나 감정에 따라 쓴 것이다. 그래서 노신의 말처럼 중국역사는 오직 두 글자로 개괄할 수 있다: "만(瞞)"과 "편(騙)". 아래에서는 외국인이 쓴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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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가 사랑하는 비의 어린아들이 불행히 요절했다. 황제는 만주지역에서 금방 돌아왔고, 아직도 마음 속의 슬픔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북경의 궁중에 변고가 발생하여, 그가 이것을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부 간신들이 강희제의 의심많은 성격을 잘 알아, 그를 자극하여, 황태자에 대한 의심을 갖도록 만든다. 항제는 즉시 서지를 내려 불행한 황태자를 가둔다. 태자는 하룻밤만에 사슬을 차게 된다. 그 광경은 실로 비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자녀와 처첩, 주요 막료는 모두 연루된다. 그 외에 점을 치는 점쟁이 한 명은 극형을 받고, 시신이 만조각으로 갈린다. 왜냐하면 이 점쟁이가 항상 황태자에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어느 해까지 황위를 승계받지 못하면, 그는 영원히 황제가 될 수 없다고.


중국에서 황태자를 폐위시키는 조서만큼 놀라운 조서가 없다. 강희황제는 천하에 포고령을 내려, 그가 이런 엄청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길거리에는 황태자를 견책하는 포고문이 붙는다. 그의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 황제가 계속하여 그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아서, 황제는 마침내 결심을 내려 황태자를 폐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조서가 반포된 후, 강희제의 황장자는 모든 황자들 중에서 황태자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였다. 포고에서도 그에 대하여 칭찬하는 말이 있었다. 그리하여, 황장자는 기뻐하며 그가 다른 형제들을 누르고 황태자의 보좌에 오를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사정은 돌연 급전직하한다. 금방 새로운 조사결과가 나오는데, 황제는 폐위된 황태자가 실은 무고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 음모를 꾸며서 그가 폐위된 것이었다. 황제는 황장자가 귀신을 부리는 라마의 교사하에 그들로 하여금 법술을 펼쳐 사람을 시켜서 목각인형을 묻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황제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라마 몇명을 잡아들이고, 목각인형을 흙속에서 파낸다. 황장자는 즉시 처벌을 받고, 구금된다. 이때 황제는 대노한다.


이 황실내부의 권력투쟁은 황제를 깊은 고통에 빠지게 만든다. 그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건강에도 영향을 받는다. 황제는 폐위된 황태자를 보고 싶었고, 그를 감옥에서 불러낸다. 이 불행한 황태자는 강희제의 앞으로 불려왔을 때도 죄수의 사슬에 매어 있었다. 그는 부황에게 울부짖으며 호소하고, 황제는 마음이 움직여 눈물까지 흘린다. 그는 여러번 대신들에게 붇는다. 모두 알다시피 무고하고 억울한 황태자를 풀어줄 권한이 있는지. 대다수의 대신들은 차갑게 대답했다. 그가 일국지주이니 그는 당연히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면 된다고. 그러나 일부대신은 그에게 다른 황태자를 세울 것을 권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야 국가의 평안이 보장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황팔자(皇八子)를 추천한다. 이는 그들이 황태자 폐위시에 그 결정에 찬동하였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없이 황태자가 복위되면 보복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건의를 내놓은 대신들은 댓가를 치러야 했다. 황제는 그들이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여겨 화를 낸다. 그는 반대의견을 내는 대신들을 무시하고, 황태자의 복위를 극력반대한 몇몇 총신은 멀리한다.


이들 대신들이 하야한 것에 대하여 백성들은 그다지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고위관료들 사이에는 공황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앞다투어 황제의 결정을 칭송한다. 황태자는 복위되고, 조정의 상하는 모두 기뻐하는 광경이 연출된다. 현재 이 희극은 계속 연출되고 있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금방 발생한 이야기와 과거의 역사는 항상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하여 황제는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백성들의 인두세를 감면해준다. 그리고 죄수들은 감형해주고 일부 경범죄자들은 석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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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온 선교사 은굉서(殷宏緖, Lepère d’Entrecolles)가 1707년 중국인도선교총회장에게 보낸 서신이다.

은굉서는 중국에 무슨 이익이나 감정이 연루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가 묘사한 것은 분명 진실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황제의 인간적인 면이다. "눈물을 흘렸다"라든지, "백성들의 인두세를 감면해주고, 죄수를 감형하고, 일부 경범죄자들을 석방한다"는 것을 보면, 잔혹한 궁중투쟁 가운데 보기 드문 인간성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