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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풍속

"치파오(旗袍)"의 역사

by 중은우시 2018. 11. 22.

글: 고건중국(古建中國)







치파오는 중국과 세계의 화인여성(華人女性)의 전통복장이다. 중국의 국수(國粹)이며 여성의 국복(國服)이라고 불린다. 비록 무엇이 치파오인지와 그것의 기원에 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남아 있지만, 여전히 중국의 유구한 복식문화에서 가장 찬란한 현상과 형식중 하나이다.


치파오는 1920년대에 형성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그 기원을 선진, 양한시대의 심의(深衣)로 거슬러 올라가기조 한다. 중화민국 1920년대이후에는 가장 보편적인 여성의 복장이 되었고, 중화민국정부는 1929년에 치파오를 국가예복(禮服)중 하나로 지정한다.


치파오 양식의 기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주석보(周錫保) 선생의 <중국고대복식사>를 대표로 하는 것으로 치파오는 청나라때 기녀(旗女)의 포복(袍服)에서 직접 발전해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민국시대의 치파오는 비록 팔기여자의 포와 형식이 유사하지만, 더 이상 팔기여자의 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만일 민국 치파오가 직접 팔기여자의 포에서 발전해 온 것이라고 한다면 편파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말한다.


둘째는 원걸영(袁傑英) 선생의 <중국치파오> 및 포명신(包銘新) 교수의 <중국치파오>, <근대여성복장실록>을 대표로 하는 것으로, 치파오와 기장포(旗裝袍)는 일정한 계승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동시에 치파오의 기원은 서주(西周 마포착형통장(麻布窄形筒裝) 혹은 선진양한시대의 심의(深衣)라고 본다. 강남대학 최영영(崔榮榮) 교수도 저작 <근대한족민간복식전집>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치파오가 만주족의 복식이라고 생각하는데....필자의 생각으로 이런 인식은 편면적이고 표면적인 것이다. 한족의 포복(袍服)은 이미 2천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만주족의 포(袍)와 괘(褂)의 역사연원은 또 어디에서 왔겠는가? 답은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학대사인 장태염(章太炎)도 이렇게 말한다: "옛날 제갈량이 통소개(筒袖鎧)를 만들었다. 만주의 복장은 통수개를 잇는 것이다." 만주족 복식의 근원을 삼국시기 촉한의 복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셋째는 왕우청(王宇淸)의 <역대여자포복고실>을 대표로 하는 것으로, 중국부녀가 입는 포는 멀리 주, 진, 한, 당, 송, 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단지 청나라때 기녀(旗女)들만이 포복을 입은 것은 아니다. 그는 팔기여자의 포가 민국시대 치파오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러나 양자간에 직접적인 계승관계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민국시대 치파오를 "旗袍"라고 적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보아, 그는 치파오를 "祺袍"라고 적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타이페이치파오연구회'의 한자명칭을 '臺北祺袍硏究會"로 하였다. 여러해동안 대만의 복장계인사들은 이렇게 치파오를 적었다.


넷째는 변향양(卞向陽) 교수의 <치파오의 유행기원을 논하다>를 대표로 하는 것으로, 치파오는 중국복장전통의 서양화 변이라고 본다. 치파오마갑(旗袍馬甲)과 문명신식복장을 결합하고, 동시에 서양 치마의 형식을 결합하여, 서방에서 유행하는 그림자도 있으면서 중국전통의 포복과도 다른 것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명한 중국특색과 시대상징을 지닌 새로운 유행패션과 복장심미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중국과 서양의 복식이 융합한 설계의 대표적인 결과물로 본다.


그는 동시에 '치파오'라는 명칭의 기원은 일종의 '오칭(誤稱)'으로 본다. 초기에 치파오를 입은 집단은 서양학문의 영향을 비교적 깊게 받고, 남녀평등을 추구하고 봉건예교에 반대하는 신여성, 학생등 사회집단이었다. 그녀들의 절대다수는 한족이고, 그녀들의 조상은 청나라초기에 유혈항쟁을 거쳐 비로소 한족부녀들은 만주식복장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권리를 쟁취해냈었다. 그녀들이 황제시대의 복식, 이민족 압제자의 복식으로 되돌아갈 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장포(旗裝袍)가 민국때 되살아날 여건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민국시대의 '치파오'라는 칭호가 유행하게 된 것은 전체 청나라때 한족여성의 복장은 여전히 한족여성의 전통적인 "상의하상(上衣下裳, 윗옷과 치마)"이었기 때문이다. 귀족여성의 예복을 제외하고 보통여자들은 포복을 입지 않았다. 팔기여자들은 귀족이건 평민이건 모두 일상적으로 포복을 입었다.


그러므로 300여년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여자가 입는 포(袍)는 팔기여자의 포이다"라는 역사기억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민국시대 치파오가 출현할 때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치파오'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