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대만상인(臺商)의 중국몽(中國夢)

중은우시 2018. 11. 14. 11:25

글: 위녕(魏寗)


최근 들어 중국의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대만상인의 '중국몽'도 깨지게 되어, 속속 철수하고 있다. 동관, 심천을 예로 들면, 일찌감치 야반도주붐이 일어났고, 그 다음으로는 상해, 곤산이다. 자본철수규모가 1년에 500억위안에 이른다. 특히 최근 들어 중미간의 무역전이 격화되면서, 대만상인은 더욱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제조업자들의 중국철수가 가속화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한 대만상인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의 회사는 "가장 많을 때는 200여명의 대만인간부가 있었는데, 지금은 겨우 50여명만 남았다." 모 대만기게공장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중소기업인 대만상인은 중국대륙에서 사업하다가 실패한 사람이 80%에 이른다고.


대만중국투자피해자협회의 이사장인 가오웨이방(高爲邦)은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강조한다. 대만상인을 약탈하는 것은 중국의 정책이다. 대만상인의 실패율이 높은 이유는 대부분 투자후에 운영이 정상궤도에 올라 돈을 벌기 시작하면, 항상 중국관리와 지방인사들의 노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각종 방법으로 빼앗아간다. 가벼우면 대만상인의 권익을 빼앗지만, 심하면 대만상인의 기업자체를 빼앗는다. 대만상인은 본전도 못건지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돈을 손해보는 것이 가장 심한 경우는 아니다. 더욱 심한 경우는 많은 대만상인들이 자신의 인신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수많은 대만상인, 대만간부들은 폭력위협, 불법재판, 구금에 시달렸고, 이렇게 하여 어떤 사람은 '대류(臺流)"로 전락하여, 돌아갈 집이 없어서 대륙의 각 도시를 유랑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살인멸구(殺人滅口)를 당하기도 한다.


해기회(海基會)의 통계에 따르면, 107년(2018년) 7월말까지, 대만상인의 진정을 받은 사건이 누계 7,819건에 이른다. 그 중 인신안전에 대한 진정사건이 3,864건이고, 재산권익에 관한 진정사건이 3,955건이다. 이것은 감히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이고, 대만상인의 실제패해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다.


가오웨이방은 이렇게 말한다. 106년(2017년)까지, 25년동안 대만상인이 국대판(國臺辦)에 진정한 사건이 7만건에 달하고, 피해금액은 1조NT달러에 달한다. 그리고 어떤 사건도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사건은 소송에서 이겼지만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만상인들이 대륙에서 활동하는 과정에 쉽게 만나는 경우는 다음의 몇 가지이다.


첫째, 대륙이 핵심 상업기술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중국의 외국투자자에 대한 약탈적정책의 지도하에, 대륙공장의 주요목표는 아주 명확하다. 즉 대만회사의 핵심기술이다. 대만상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문화의 교육하에 대부분 대륙상인들은 '낭성(狼性)'을 갖고 있고, 경쟁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률이나 도덕, 양심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없다.


대만상인이 대륙에 투자하면서 보편적으로 부닥치는 것은 핵심기술이 절취당하고, 제품이 모방당하는 것이다. 일부 대만공장은 그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경영상황이 악화되어 결국은 문을 닫고 만다.


홍하이(鴻海)집단의 동사장도 유사한 경우를 당했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2003년, 비야디(BYD)의 창업자인 왕촨푸(王傳福)은 궈타이밍(郭臺銘)을 찾아온다. 홍하이에게 그의 배터리케이스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당시 비야디는 그저 핸드폰배터리를 생산하는 소규모회사였다. 홍하이는 이미 수십억달러의 오더를 가지고 있는 OEM의 최대기업이었다.


궈타이밍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그를 데리고 폭스콘 공장을 참관하게 했다. 그 결과 그는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을 보더니, 나의 400여명 간부를 빼가고, 만건이상의 서류를 훔쳐갔다." 그 후 왕촨푸는 궈타이밍의 비지니스모델을 복제하여, 홍하이의 핸드폰OEM공장산업체인을 그대로 만들고, 신속히 성장하여 라이벌이 된다.


이에 대하여, 궈타이밍은 흥분하여 말한다: "모방품은 그저 베끼기만 하고, 외관만 모방한다. 누가 와서 조사하면 숨기기에 급급하다. 비야디는 표절했을 뿐아니라, 심지어 산업스파이까지 보내어 우리 자료를 훔쳐갔고 나중에는 증거를 인멸했다." 나중에 궈타이밍은 2006년 비야디를 법원에 제소한다. 그런데 궈타이밍이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은 원래 당연히 이겨야할 소송이 질질끌기만하고 승소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야기는 중요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모두 빠져나갔고, 기밀을 훔친 자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다.


2. 대륙과 대만의 합자후 대만상인을 압박하여 회사소유권을 내놓게 하다.


두번째 상황은 경영권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다. 대만상인이 대륙에서 공장을 지어 합자경영을 하게 되면, 대륙측의 목표는 전체회사의 경영권이 된다. '합작'과정에서, 대륙측은 점점 그 진실한 의도를 드러낸다. 각종 정치적 상업적 수단을 이용하여 대만상인에게 회사경영권을 내놓도록 압박한다.


가장 보편적인 경우는 바로 대만상인이 세금, 재무측면에서 헛점을 이용하여 정부와 공안과 협력한다. 낯선 곳에서 대만상인은 아무데도 호소할 곳이 없다. 정부의 '세금조사, 장부조사'를 당하면 그저 그대로 얻어맞는 수밖에 없다. 불법적인 세금포탈로 처벌받는다. 다른 수단으로는 현지법원과 협력하여, 뇌물등 각종 죄명으로 대만상인을 기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대륙측이 회사경영권을 장악하면 대만상인은 돈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지고, 원금까지 날리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일부 대만상인들은 감옥에 갇힌다. 심한 경우는 행방불명이 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신광천지(新光天地)백화점과 북경화련(華聯)집단간의 경영권분쟁이다. 신광은 결국 화련에 먹혀버린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신광의 오너 우신다(吳昕達)은 한 때 북경당국에 의하여 출국금지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화련은 많은 보안요원을 동원하여 대만간부의 행동을 제한했고, 이 뉴스는 양안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또 다른 사례는 광라이파(廣來發)기업유한공사의 책임자 선바이성(沈柏勝)이 1992년 천진시정부 농장국의 초청으로 쌍방이 합자하여 천진시정부 농장국 산하의 국영농장인 "쐉린(雙林)회사"를 경영하게 되었고, 선바이성은 43%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00만인민폐를 중국측 합자기업에 대출해주는데 동의했다.


1년이 지난 후, 설비가설이 완료되고, 대출금100만위안이 입금되어,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중국측은 안면을 바꿔버린다. 상대방은 선바이성을 고고한다. 합자한 중국기업은 이미 자금이 없었다. 선바이성에게 투자비율에 따라 다시 700만위안을 투자하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천진시정부가 합법적으로 출자검증보고를 해준 국영기업이 어찌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돈이 없단 말인가? 선바이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관부서인 천진시 대외경제무역위원회에 장부조사를 의뢰한다. 그러나 거절당한다. 어쩔 수 없이, 국대판에 진정한다. 국대판은 천진시 농장국을 불러서 조정했고, 선바이성에게 증명서 하나를 끊어준다. 국대판이 요청한 바에 따라 협조해주고 있다는. 그러나 사건은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중국측 합자기업은 선바이성에게 100만위안의 차입금도 지고 있어서, 할 수 없이 1998년 선바이성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 소송을 제기하자 일이 커진다. 중국측 합자기업은 암중으로 법원과 결탁하여, 선바이성의 명의를 도용하여, 선바이성의 자산을 법원절차를 통해 중국측 합자기업의 명의로 돌려놓은 것이다.


1998년말 법원은 선바이성의 승소를 판결한다. 그는 법원에 판결집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이미 상소했다는 말만 듣는다. 이 상소는 6년이 걸린다. 2004년 친히 법원으로 가서 판결내용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란다. 그가 비록 승소했지만, 재산은 일찌감치 중국측 합자기업으로 넘억가버렸던 것이다. 그는 그때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선바이성은 분개하여 말한다: "너의 재산을 어떻게 빼앗겼는지 너 자신도 모른다. 그들은 몰래 내 재산을 다 가져가 버렸다."


3. 중국관리에게 밉보이면 감옥에 갇힌다.


대만상인은 중국관료사회 당문화의 운영방식을 잘 모른다. 중국관리도 기본적인 법률, 도덕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 경제권과의 관계가 좋으면 대륙에서 사업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치하에서 법률은 '정치'에 복종한다. 법률조문과 게약은 그저 형식일 뿐이다. 언제든지 중국공산당의 뜻에 따라 바뀔 수 있다.


1989년, 미국국적을 지닌 대만상인 우웨이궈(吳緯國)은 '중국과기'의 꿈을 안고 신죽(新竹)과학원구에서 대륙 주하이(珠海)로 옮겨 웨이퍼공장을 만들어, 주하이난커(南科)전자회사, 주하이난커단결정실리콘회사와 주하이난커종합전자회사를 창업한다. 광동에서 가장 환영받는 대만상인중 한 명이 된다. 회사는 한때 규모가 커져서 직원이 2천명에 달하게 된다. 그의 형은 IOC의 집행위원인 우징궈(吳經國)이다. 정치권 및 경제권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 못한다. 2009년, 현지정부가 토지를 회수하여 학교를 짓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건설업체에 팔아서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다. 우웨이궈는 합리적인 보상을 받지 못하자 법에 따라 진정하고 호소한다. 이 사건은 비록 매체에까지 알려졌지만, 나중에 1800만위안의 보상금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이 합법적인 진정과 호소로 주하이의 중국관리들에게 밉보이게 된다.


2012년 12월 25일, 광저우뤄강대만상인협회 성탄절 저녁연회때 가족을 데리고 참석한 우웨이궈는 성탄절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첫번째 요리가 아직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수명의 주하이 공안국 경제법죄수사팀의 경찰이 세금포탈의 명목으로 그자리에서 체포해서 구금시킨다. 사건발생후, 주하이의 정부에서 요구한 포탈세금과 체납금 1천여만위안을 우웨이궈의 집안에서는 2달안에 마련하여 전부 납부한다. 공안국은 그래도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국세국과 공안국경제수사팀의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들어올 때는 걸어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누워서나간다."


우웨이궈의 일가형제들은 사건발생후 즉시 각자 구원활동을 펼친다. 큰형 우징궈는 현지의 정협주석 자칭린(賈慶林)에게 편지를 보냈고, 당시 국대판 주임인 왕이(王毅)는 2명의 부국장을 주하이로 보내어 협의하게 했지만, 아무런 성과없이 끝난다. 동생 우젠궈(吳建國)도 양안의 관료와 당파를 찾아다니며, 대륙의 꽌시를 이용하여 공안, 군대계통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우웨이궈는 지금도 감옥에 있다.


4. 중국파트너의 배신으로 명의도용에 의한 대출, 예금무단인출을 당하다.


현지매체에서 "망고의 대부"라고 불리던 홍자오밍(洪肇銘)은 1991년부터, 고급망고품종을 가지고 산야(三亞)로 가서 심었다. 수천무의 면적에서 망고를 생산하고, 제품은 현지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장사가 잘되어 직원을 백명이상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하이난(海南)에 과일을 도입하여 성공을 거두나 누군가 노리기 시작한다. 중국파트너는 몰래 과수원을 하이난도 러동현 농업은행에서 400만위안을 대출받는다. 대출사건에는 현지현정부고위층이 연루되어 있었다. 홍자오밍이 위법대출사건을 현지공안에 고발한 후, 공안국은 유력인사의 지시에 따라 오히려 '사기'를 이유로 홍자오밍을 체포한다. 그리고 고문을 통해 그가 과수원을 이미 중국파트너에게 팔았다고 자백하게 만든다.


또 다른 대만상인 황시총(黃錫聰)은 명의를 도용하여 대륙의 자산을 저당잡히고 1,030만위안의 대출을 받는다. 그리하여 췐저우(泉州)시법원은 그의 재산을 경매한다. 황시총은 이 대출사기사건을 깨닫고 법원에 공안기관에서 수사한 후에 다시 심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의외로 거절해버린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공안국에 가서 고발하였으나, 이미 누군가 공안국에 '인사를 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공안도 사건을 접수해주지 않았다.


또 다른 쩡(曾)씨성을 가진 대만상인의 사건은 더욱 심하다. 동관에 공장을 만들기 위하여, 그는 800만위안을 현지은행에 예금한다. 그가 계좌를 확인하러 다시 갔을 때는 통장의 돈이 사라져 버렸다. 조사를 해보니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의 인감을 위조하여 빼내간 것이다. 쩡씨성의 대만상인은 은행을 법원에 제소한다. 그러나 법원은 2년후에야 심리를 열고, 재판결과는 은행ㅇ로 하여금 모든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이 강제집행하기 전에, 쩡씨성의 대만상인은 심야에 3명의 무장경찰에게 산으로 끌려간다. 더 이상 은행과 싸우지 말라고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매장해버리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는 기민하게 차고 있던 롤렉스시계를 감시하던 무경에게 뇌물로 주고서, 한밤중에 대만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대다수의 대만상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당국의 '당천하'의 통치하에, 중국대륙에 민주와 법제의 기초가 없다는 것을. 법률과 도덕은 그저 참고용이라는 것을.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그것은 항상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은 생각한다. 비록 인치사회라고 하더라도, 최고위층관리의 인맥만 잘 뚫으면 만사형통일 것이라고.


정말 그럴까? 아니다. 대만상인이 만일 이익분쟁에 휘말리면, 무슨 인정도 다 소용없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당국이야말로 대만상인을 약취하는 막후주모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빼앗은 이익은 층층이 나누어가지게 된다. 만일 중국당국이 필요하면, 법률, 계약, 인정관계는 모조리 슬모없어진다. 그리고 중국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천하는 모두 공산당의 것이다. 나는 모든 인민을 대표한다. 그래서 인민은 바로 나의 것이다. 이러한 당문화논리하에, 소위 자본주의의 사유재산제는 존중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당이 필요로 하면, 대만상인의 토지, 자본를 강제로 빼앗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에 이미 투자한 대만상인들에 대하여, 대만중국투자피해자협회의 이사장인 가오웨이방은 이렇게 건의한다: 첫째는 절대로 합자경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합자는 바로 '늑대를 집안에 들이는 것(引狼入室)'과 같다. 상대방이 국영기업이건, 향진기업이건 개인기업이건 누가 경영자이건 같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네가 패배한다.'


둘째, 가오웨이방은 건의한다. 중요한 직무, 재무, 회계, 생산기술, 시장마케팅등은 반드시 믿을만한 대만출신간부가 장악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중국직원이 이들 정보를 아는 순간 아마도 기업은 끝장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오웨이방은 지적한다. 대만상인은 일부를 남겨두어서 자신에게 퇴로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만일 중대한 '분쟁'이 발생하면 삼십육계가 최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