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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서진(西晋) 팔왕지란(八王之亂)의 팔왕은 무슨 관계들일까?

by 중은우시 2018. 11. 13.

글: 동리채국(東籬採菊)


역사서를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서진에 '팔왕지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역사를 읽으면, 일반적인 독자들은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너무 복잡하다. 사마X, 사마Y, 사마Z..... 도대체 여덟명의 왕은 무슨 관계일까? 모두 사마의(司馬懿)와 무슨 관계일가. 그들은 백치황제 사마충(司馬衷)과는 또 무슨 관계일까?


먼저 팔왕지란의 개요를 살펴보자. 먼저 여덞명의 왕의 이름부터 기억해야 한다:


1.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

2.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

3.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4.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5.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

6.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潁)

7.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

8.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


277년,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이 전국을 통일한 후 사마씨의 천하를 지키기 위하여, 조위의 황권이 너무 약했던 교훈을 본보기로 삼아 자신의 아들 조카, 형제, 숙부를 왕에 봉하고, 그들로 하여금 중성공월(衆星拱月)처럼 황실을 호위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진무제 사마염이 셍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바로 모두 황권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왕의 야심이 점점 자라나고 있었고, 점점 더 커져버리자, 골육상쟁이 일어나 결국 큰 화를 불러온다.


백치황제 사마충이 즉위한 후, 군정대권은 양태후(楊太后)의 부친인 양준(楊駿)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양준은 음모와 권모술수를 써서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한다. 그리하여 못생긴 황후 가남풍(賈南風)과 진나라종실의 큰 불만을 산다.


가황후는 양준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않고, 암중으로 종실의 여러 왕들과 연락하여, 그들로 하여금 도성으로 들어와 양준을 제거하게 한다. 여러 왕들은 일찌감치 딴 마음을 품고 있었고, 도성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초왕 사마위는 조서를 받자마자, 즉시 경성으로 진군한다. 가황후는 진혜제의 명의로 조서를 내려 양준이 모반했다고 선포하고, 황궁호위대의 도움을 받아, 사마위가 양준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의 삼족을 멸한다. 그리고 양씨집안에 빌붙었던 관리들까지 모조리 목을 벤다.


가황후는 양씨세력을 몰아낸 후, 대국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여남왕 사마량에게 조정에 들어와 보정하게 한다. 사마량도 일찌감치 권력에 침을 흘리고 있던 인물이다. 사마량은 경성에 들어온 후 암중으로 초왕 사마위의 병권을 빼앗으려 한다. 가황후는 두 왕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두 사람을 제거해버릴 생각을 한다. 그녀는 먼저 진혜제로 하여금 조서를 내려 사마위를 보내 사마량의 전가족을 몰살시킨다. 이어서 가황후는 사마위가 조정중신을 함부로 죽였다는 죄명을 뒤집어 씌워 사마위를 처형한다. 이렇게 하여 가황후는 서진의 모든 대권을 장악한다. 이 추녀는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가황후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 그녀는 대권이 장래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것을 우려했고, 회임한 것처럼 가장한 후, 몰래 매부인 한수(韓壽)의 아들을 데려온다. 그리고 자기가 낳았다고 말한다. 아들을 가지게 되자, 가황후는 태자를 폐위시키고자 한다.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 태자를 독살시킨다. 그리고 데려온 자식을 태자에 앉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마종실은 격분한다. 가황후가 사마씨의 천하를 빼앗으려 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거병하여 가황후를 토벌하러 나선다. 조왕 사마륜은 당시 병력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간다. 제왕 사마경을 보내어 가황후를 폐휘시키고, 이어서 그녀를 독살한다. 그후 사마륜은 진혜제 사마충을 페위시키고, 자신이 황제에 오른다.


허창을 지키고 있던 제왕 사마경은 조왕 사마륜이 황제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불만을 갖는다. 그는 각지에 사마륜을 토벌해야한다는 격문을 보내고, 모두 함께 거병하자고 한다.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도 정권을 탈취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그들은 제왕 사마경과 연합하여, 사마륜을 공격하여 죽이고, 진혜제 사마충의 황제위를 복위시킨다. 제왕 사마경은 낙양에 진입한 후, 대권을 독점하고, 음주와 여색에 빠진다. 장사왕 사마예는 그 기회를 틈타 거병한다. 사마영, 사마옹은 서로 성원한다. 사마경과 사마예는 몇년간 싸우고, 결국 사마경이 패배하여 피살된다. 사마예는 그 기회를 틈타 조정에 들어가 보정이 되고, 조정대권을 장악한다. 사마옹은 사마예가 조정대권을 독점하는 것을 보자, 분노한다. 곡이어 대거 병력을 이끌고 사마예를 공격한다. 사마영과 연합하여 낙양으로 대거 진격한다. 그들이 한창 싸우고 있을 때, 낙양성안의 동해왕 사마월은 기회를 잡아 사마예를 기습한다. 그리고 그를 화공으로 불태워죽인다. 사마영도 기회를 틈타 낙양으로 들어가서 승상이 되어 대권을 장악한다.


동해왕 사마월은 자신이 사마예를 죽인데 공로가 있는데,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여 불만을 가진다. 그리하여 진혜제의 명의를 빌어 거병하여 사마영을 토벌하러 나선다. 사마영은 진혜제를 데리고 장안으로 간다. 장안은 하간왕 사마옹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그는 사마영의 세력이 약화되어 있는 것을 보고, 사마영을 몰아내고, 진혜제를 자신이 통제하며, 조정대권을 장악한다.


사마영에게 패배해 도주했던 동해왕 사마월은 왕준(王浚)의 세력이 큰 것을 보자, 왕준과 연합하여 관중을 공격한다. 그는 사마영을 격패시키고, 장안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사마월은 진혜제 사마충, 사마영, 사마옹을 모조리 낙양으로 데려와서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그 후에 사마치(司馬熾)를 세워서 황제에 앉힌다. 그가 바로 진회제(晋懷帝)이다. 진회제는 즉위한 해에 연호를 영가(永嘉)원년(307년)으로 바꾼다. 이렇게 하여 8명의 왕이 돌아가며 벌인 피비린내나는 권력쟁탈전이 일단락된다.


"팔왕지란"의 시간은 16년간 지속되고, 8명의 왕중에서 7명이 죽었다. 서진의 역량은 이를 통하여 크게 약화되고, 북방과 서부의 소수민족이 그 기회를 틈타 중원으로 들어온다. 그리하여 서진왕조는 위태로운 상황이 된다.


이 여덟명의 왕의 관계는 아주 복잡하다. 그들은 어던 관계일까? 분명히 말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좌표를 정해야 한다. 당연히 이 좌표의 기준점은 바로 사마의이다.


사마의는 형제가 8명이나 있었고, 그는 둘째였다. 위로는 형이 한 명 있고, 아래로는 7명의 동생이 있었다.


사마의 자신은 9명의 아들을 둔다. 큰아들 사마사(司馬師), 둘째아들 사마소(司馬昭). 서진의 개국황제인 사마염은 바로 사마소의 적장자이다. 이들 사마씨집안은 정말 자식을 많이 두었다. 


아래에서는 8명의 왕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여남왕 사마량. 사마의의 넷째아들이다.

2. 초왕 사마위. 사마염의 다섯째아들이다. 백치황제 사마충의 이모동생이고, 사마의의 중손자이다.

3. 조왕 사마륜. 사마의의 아홉째아들이다.

4. 제왕 사마경. 사마소의 손자이다. 사마염의 조카이고, 사마의의 중손자이다.

5. 장사왕 사마예. 사마염의 여섯째 아들이다. 사마충의 이모형제이다.

6. 성도왕 사마영. 사마염의 열여섯째 아들이다. 사마충의 이모동생이다.

7. 하간왕 사마옹. 사마의의 셋째동생 안평헌왕 사마부(司馬孚)의 손자이다.

8. 동해왕 사마월. 사마의의 넷째동생 동무성후 사마규(司馬馗)의 손자이다.


이 여덟명의 왕 중에서,

2명은 사마의의 아들이다(사마량, 사마륜)

3명은 사마염의 아들이다(사마위, 사마예, 사마영)

1명은 사마염의 친조카이다(사마경)

2명은 사마의의 셋째동생, 넷째동생의 손자이다(사마월, 사마옹)


이들 가족을 보라. 권력쟁탈을 위하여, 형제간에, 숙질간에, 할아버지와 손자간에 너죽고 나살기식의 싸움을 벌여 피가 강을 이룬다. 이 내란은 16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이제 막 건립한 진나라에게는 치명적 타격을 준다.


얘기하자면, 근원은 바로 진무제 사마염의 잘못이다. 멍청한 아들 사마충을 후계자로 삼으면서 사마충에게 키작고 시커멓고 못생긴 며느리 가남풍을 들인다. 가남풍은 마음이 악독한 여인이다. 그리하여 큰 화가 벌어지고, 팔왕지란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