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송)

진박(陳搏):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진 그가 진교병변(陳橋兵變)의 기획자인가?

중은우시 2018. 8. 10. 23:00

글: 취역사(趣歷史)


(진박은 무협지에서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져 있다)





사료에서 아주 재미있는 기록을 보았다. <소씨견문록>에 따르면, 진박은 일찌기 흰색나귀(白騾)를 타고 수백명의 떠돌이소년을 데리고 변량성(汴梁城)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도중에 돌연 놀라운 소식이 전해져 온다. 조광윤이 이미 천자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진박은 웃으면서 나귀에서 내려와서 말했다: "조점검(趙點檢, 조광윤의 당시 관직이 전전도점검이었다)이 관가(官家, 황제를 가리킴)가 되었구나. 천하는 이제 안정되었다." 진박은 이때부터 화려한 변신을 한다. 화산으로 들어가 도사가 되고, 당나라때 지었던 운대관(雲臺觀)을 수리하여, 자신이 수양하는 도량으로 삼는다. 송태조가 이후에 여러번 불렀으나 그는 가질 않는다.


득도한 고인이며 세외의 방가(方家)로서, 진박은 왜 수백명의 도도(道徒)를 데리고 보무당당하게 변량성으로 향했을까? 왜 싸울 필요도 없는데 혼자서 조용히 들어가지 않은 것일까? 후주 말기에 천하가 어지러웠고, 유언비어가 사방에서 돌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진박은 도교의 지도자로서, 천하에서 한 몫을 확보하려고 한 것일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조금 늦었다. 혹은 그가 세심하게 분석하고 실력을 대비해본 다음에 자신에게는 전혀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한 것일 것이다. 당연히 그가 조광윤과 어떤 합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조용히 은퇴한 것이다.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진박은 조광윤과 화산의 꼭대기에서 천하를 놓고 세판의 바둑을 두었다. 그 결과 조광윤이 세 판을 모두 진다. 그래서 화산을 진박에게 넘겨주었다. 이것이 은연중에 모종 권력다툼이 있었다가 모종의 타협을 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확실히 이런 전설은 아무런 근거없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진박은 역대왕조의 황제와 모종의 신비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그 자신이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통치자들이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무슨 힘을 가지고 있었을까? 초자연적인 능력이었을까? 아니면 민간의 보편적인 무지로 그에게 광환을 주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저 그가 선남선녀들을 동원할 수 있는 호소력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전해지는 바로는 당희종(唐僖宗)이 진박을 "청허거사(淸虛居士)"로 봉한다. 그리고, 그에게 절색의 궁녀 3명을 준다. 아쉽게도 진박은 육근이 청정하고, 풍정을 몰라서, 시를 바치며 사영한다.


설위기체옥위시(雪爲肌體玉爲腮)

심사군왕송도래(深謝君王送到來)

처사부지무협몽(處士不知巫峽夢)

허로운우하양대(虛勞雲雨下陽臺)


피부는 눈과 같고, 뺨은 옥과 같아라

군왕께서 보내준 것은 깊이 고맙구나

처사는 남녀간의 사랑을 몰라

헛되이 양대 아래로 비구름이 흘러가네


진박이 100여살까지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진박은 그의 사조이거나 혹은 또 다른 득도고인일 것이다.


북송이 건립된 후, 원래 속세를 떠난 진박은 계속하여 최고통치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송태조, 송태종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송나라사람들의 필기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송태조가 이전에 여러번 불러도 오지 않자, 그는 특별히 수조(手詔, 직접 손으로 쓴 것)를 내린다. 그리고 사자에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진박을 설득하여 관직을 맡게 하거나 혹은 양생술을 전하도록 하라고 명한다. 진박은 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업지군은 체모를 존중하여 천하에 보여야 합니다. 나는 산야의 폐인으로 천자께서 부르는데 만일 사양하지 않으면 나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고, 만일 사양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니, 감히 부름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서의 뒤에 이렇게 글을 써서 올린다. "구중천조(九重天詔), 휴교단봉함래(休敎丹鳳銜來), 일편야심(一片野心), 이피백운유주(以被白雲留住)"(하늘에서 내리는 조서를 더 이상 붉은 봉황에게 물고 오지 못하게 해달라. 들판에 머무르겠다는 마음은 이미 흰구름에게 붙잡혀 있다.) 사자가 송태조에게 보고하자, 태조는 한번 웃고는 넘긴다.


필자는 사정이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고 본다. 송태조는 정말 진신으로 진박이 하산하기를 바랐을까? 진박이 정말 예전 진교병변의 기획자 혹은 참여자일까? 아쉽게도 사료에는 자세한 내용이 없다. 진박과 조광윤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전설을 있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광윤의 부친인 조홍은(趙弘殷)이 후주의 하급군관으로 있을 때, 한번은 그의 모친  즉 나중의 두태후(杜太后)가 난을 피해서 멜대(擔子)를 매었는데, 멜대 안에 들어있던 두 아들이 바로 조광윤과 조광의였다. 진박은 일찌기 이 두 아들이 대부대귀(大富大貴)할 거라고 예언한다. 진박과 조광윤이 어떻게 알게 되었건 최소한 조공윤은 오래전부터 큰 뜻을 품고 있었고, 천하영웅호걸은 모두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미 유명했던 진박을 놓쳤을 리가 없다. 서로 잘 알거나 혹은 한편이 되었거나 심지어 진박에게 천하정세에 관한 조언을 구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내심의 생각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박이 조광윤의 정변이 성공하였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제 천하는 안정되었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정말 진박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조광윤이 여러번 진박에게 하산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시험한 것일 수 있다. 진박이 절대로 하산하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밝히는 것은 조광윤으로 하여금 안심하라는 표시일 것이다. 내가 너의 일을 망치지 않겠다. 나의 제자들로 하여금 음모궤계를 꾸며서 너의 반대편을 돕도록 하지 않겠다. 두 사람은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서로 이해한 것이다. 송태조가 죽은 후, 조광의가 황제에 오른다. 여전히 진박에게 하산하도록 조서를 보낸다. 그런데, 진박이 이번에는 하산했다. 몸에는 새로 만든 우의(羽衣)를 입고, 연영전(延英殿)에서 조광의를 만난다. 송태종은 그에게 치국방략을 물었고, 진박은 그에게 "원근경중(遠近輕重)"이라는 말을 남긴다. 송태종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자, 진박이 이렇게 설명하다: "멀리서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모으고, 가까이는 간신과 소인을 피하고, 가볍게 해야할 것은 조세부담히고, 무겁게 해야할 것은 삼군에게 내리는 상이다." 송태종은 그의 말이 맞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진박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내리려 하는데, 진박은 수도에 전념하겠다면서 극구 사양한다. 그래서 송태종은 그에게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화산으로 돌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