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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산업

백신사건: 두 명이 신비한 보통사람, 여전히 소요법외(逍遙法外)...

by 중은우시 2018. 7. 24.

글: 흘과적만소도(吃瓜的萬小刀)


1


7월 15일부터 장생생물(長生生物)은 1주일내에 2건의 백신문제가 폭로되었다. 1차는 광견병백신 생산기록을 위조한 것이고, 2차는 100%자회사인 장춘장생(長春長生)이 PDT(백일해, 디프테리아, 파상풍백신)검사에서 불합격하여 벌금을 받았다.


이어서 <백신왕>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여론이 엄청나게 들끓었다.


7월 22일, 리커창 총리는 이번 백신사건이 인간의 도덕성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면서 반드시 전국인민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지시한다.


이제 장생생물은 철저히 맛이 갔다.


그런데, 여러해 전에, 산서(山西)와 산동(山東)에서 더욱 심각한 백신사건이 벌어진 바 있는데, 그중 두 명이 신비한 보통사람은 지금까지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2005년 7월, 산서성질병통제센터에는 의미심장한 인사이동이 있었다. 많은 업무핵심인원이 계속하여 주임인 리원위안(栗文元)에 의하여 면직되었다. 거기에는 당시 산서성질병통제센터 정보과 과장을 맡고 있던 천타오안(陳濤安)도 포함되어 있었다.


2005년 12월 26일, 베이징에서온 산서사람 텐젠궈(田建國)이 센터주임 리원위안에 의하여 바이오제품배송센터의 주임으로 임명된다. 이날부터 시작하여, 3500만 산서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백신의 사용관리권은 텐젠궈가 장악하게 된다.


그때 텐젠궈는 35살이었다. 진상을 모르는 군중들이 그의 명함을 본다면, 그가 배경이 상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서장이면서 총경리도 겸하고 있었다. 그리고 산서의 백신을 독점하는 북경화웨이스다이(華衛時代)회사의 법인대표도 바로 그였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텐젠궈가 시한폭탄이라는 것이다. 산서의 문제백신은 바로 그로 인해 나오게 된다.


2006년 6월, 텐젠궈는 "산서질병통제전용"이라는 라벨을 만든다. 그리고 배송되는 모든 백신박스에 붙인다. 이는 산서성질병통제센터, 산서성위생청이 하달한 문건에도 나온다. 즉, 이 라벨이 없으면, 다른 기업의 백신은 산서시장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텐젠궈는 바로 이 라벨을 통하여 산서백신시장을 독점한다.


그의 백신에 이 라벨을 붙이기 위하여, 텐젠궈는 자주 임시노동자, 시간제노동자를 모아서 박스째 백신을 냉장고에서 끄집어내어 질병통제빌딩의 1층 로비에서 포장박스를 뜯어서 백신을 한 곳에 쌓아둔다. 마치 작은 산처럼 높이 쌓였다.


텐젠궈는 이들을 무더운 로비에서 지휘하여 백신박스위에 '산서질병통제전용'이라는 라벨을 붙이게 했다.


비전문가인 텐젠궈가 보기에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전문가라면 모두 알고 있다. 백신저장은 냉장보관에 햇볕을 피해야 한다. 만일 고온환경에 백신이 노출된다면, 백신이 효과가 떨어지거나 효과를 잃거나 심지어 알레르기까지 일으킬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성의 각지로 백신을 운송하는 냉장차량의 제냉기가 게속 고장나 있었고, 수리하지 않았다. 여름에 어느 한 지방을 다녀오면 사우나같이 된다. 이렇게 고온에 노출된 백신은 당연히 절차에 따라 폐기처분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다.


텐젠궈가 어찌 이것을 폐기한단 말인가. 그 후에 산서에서 근 백명에 이르는 무고한 아이들이 문제백신으로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텐젠궈는 비전문가인데 어떻게 의약회사의 법인대표가 되었을까? 무슨 수단으로 산서백신시장을 독점했을까? 그는 북경에 있는 산서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가 산서관료중 어느 사람을 통하여 산서백신시장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배후에는 어떤 큰 물고기가 있을까?


텐젠궈를 둘러싼 여러가지 의문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06년, 사내아이인 창창(强强)은 B형뇌염백신을 맞은 후 발열현상이 나타났다. 의사는 B형뇌염으로 진단한다. 병워니 몇 차례 위독통지를 보냈지만, 그래도 목숨은 겨우 구했다. 다만 후유증이 남아서, 지능이 떨어셔서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2006년 12월, 여자아이 링링(玲玲)은 유행성뇌염백신을 맞았다. 얼마후 멍하고 혼절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나중에 '급성파종성뇌척수염'으로 진단받고 후유증을 남긴다.


이런 참혹한 사례가 연이어 발생한다. 이때의 천타오안 과장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2007년 5월, 그는 고발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관련기관에 고발하고, 이의신청하고, 백신문제로 항의방문했다. 그는 여러 건의 고발자료를 써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텐젠궈는 민감하게 위험한 기색을 느꼈다. 2007년 9월, 그는 산서질병통제센터에 계약종료를 요청한다. 10월 12일, 산서질병통제센터는 그의 배송센터주임의 직위를 해제한다.


2007년 12월 3일, 중국청년보 기자인 류완용(劉萬永)이 <한 작은 회사가 어떻게 산서백신시장을 독점하게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서, 앞장서서 산서백신시장의 완벽한 이익체인을 폭로하여, 거대한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글에서 지적한 이 작은회사가 바로 북경화웨이스다이회사이다.


등록자본금이 겨우 50만위안인 작은 회사가 2006년-2007년의 22개월동안 근 1억위안의 이윤을 얻었다. 일시에 여론은 들끓는다.


그리하여, 텐젠궈는 2007년 10월 15일 '실종'된다.


그때의 텐젠궈는 그저 '책임을 대신 뒤집어쓸 인물'일 뿐이다. 당연히 실종되지 않았었다.


10년후, 산동백신사건에 다시 텐젠궈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또 다른 당사자인 리원위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만일 텐젠궈가 첫번째 방화벽이라면, 리원위안은 두번째 방화벽이다. 만부득이한 경우에는 그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한다.


3.


2008년 5월 12일, 원촨대지진이 일어나고, 리원위안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원촨재난구조에 지원한다. 첫째는 문제백신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함이고, 둘째는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쌓아서 문제백신의 과오를 경감시키기 위함이다.


다만 문제백신이 산서아동에게 끼친 심가한 결과는 도저히 덮어둘 수가 없었다. 2008년 8월, 7명의 문제백신피해자가장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정의를 세워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타이위안시 잉저구 인민법원의 앞에서 북을 치며 '입건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2008년 11월, 위생부는 전문가를 조직하여 산서로 가서 문제백신을 조사한다. 그리고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이 일부 백신에 대한 샘플조사를 진행하는데 합격으로 나온다.


이 결과를 가지고 산서백성을 다독인다. "앞으로 맞을 백신은 안전하다" 그리고 문제백신이 산서에서 일으킨 죄악은 해결하지 않았다. 근 백명의 아동들이 죽거나 병신이 되었음에도.


이 해에 '산루(三鹿)멜라민분유'사건이 터진다. 그리하여 전국매체의 화력이 멜라민분유에 집중된다. 산서의 문제백신에 대한 매체의 관심은 점점 식어갔다.


2009년, 산루멜라민분유사건으로 당시 국가식품약품감독국 식품안전협조사 사장인 쑨센저(孫咸澤)이 행정과오처분을 받는다.


재수없는 쑨센저는 한동안 칩거하다가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총국의 부국장, 약품안전총감의 직위를 맡고 있을 때, 다시 산동백신사건이 터진다. 2018년 2월 그는 면직된다.


4


2009년 12월 산서성질병통제센터 주임 리원위안이 면직된다.


이때는 더 이상 종이로 불을 덮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리원위안은 제2의 방화벽으로 몸을 드러낸다. 그후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제1 방화벽인 텐젠궈는 소리소문없이 회사의 명칭과 법인대표를 변경한다.


2010년 2월 8일, 북경화웨이스다이회사는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회사명칭을 북경화샤더중(華夏德衆)생물기술유한공사로 바꾸고, 텐젠궈는 39%지분을 자오바오강(趙保剛)에게 양도하고, 31%지분을 차오슈펀(曹秀芬)에게 양도한다. 법정대표인과 총경리는 차오샤오강(曹曉剛)이 맡는다.


주주인 자오바오강은 나중에 산동백신사건과 관련이 된다.


이제 두 개의 방화벽을 모두 조치하였으므로, 배후의 큰 물고기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한 당사자는 실종되고, 또 다른 당사자는 면직되었다. 문제백신으로 해를 입은 가장들이 아무리 덤벼들고 싶어도 무슨 방법이 더 있단 말인가.


2010년 3월 17일, 당시 중국경제시보의 기자로 있던 왕커친(王克勤)은 반년간의 조사를 거쳐, 근 2만자의 장편기사 <근 백명의 아이들이 원인불명의 병으로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 산서백신난상조사>를 보도한다.


산서백신사건이 다시 한번 여론의 관심을 끈다.


2010년 3월 19일, 산서의 여러명 가장들이 뤼량(呂梁), 린펀(臨汾)등 여러 지방에서 타이위안으로 온다. 자신들의 죽거나 병신이 된 아이들을 위해 정의를 세워달라고 요구하기 위함이다. 한 가장은 그날 오후에 아직 타이위안시 잉저구인민법원에 도착해서, 산서성질병통제센터와 북경화웨이스다이의약생물기술유한공사를 제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법원이 사건을 수리해주지 ㅇ낳았다. 왜냐하면 그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법인대표 텐젠궈도 '실종'되었다.


2010년 3월 19일 고발인 천타오안은 화웨이스다이회사의 불법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조사팀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천타오안은 압력이 겁나지 않는다고 했고, 반드시 사건의 진상을 천하에 까발리겠다고 했다. 이전에, 그는 일찌기 블로그에서 두 관리를 고발한다. 하나는 리슈카이(李書凱)로 당시 산서성 위생청 부청장이었다. 다른 한명은 리원위안으로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전 주임이며, 이미 면직된 인물이다.


2010년 3월 21일, 위생부는 8명이 전문가를 산서로 파견한다. 현지에서 조사업무를 전개하는 것을 협조하게 한다. 그리고 보도에 나온 모든 아동을 하나하나 조사한다.


동시에, 고발인 천타오안과 3명의 피해아동이ㅡ 가장이 협박메세지를 받는다. 메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만일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그들에게 5만 혹은 10만위안을 주겠지만, 만일 계속 말썽을 피우면 돈으로 사람을 사서 다리 한짝씩을 잘라버리겠다.


이날, 기자는 전 산서성 질병통제센터의 주임 리원위안을 인터뷰하고자 했으나, 리원위안이 일가족 3명을 데리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떠났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당사자 1명은 실종되고, 다른 당사자 1명은 관광을 떠났다.


3월 22일, 산서성정부는 발표회를 갖는다. 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리원위안은 북경화웨이스다이회사와 합작하여 산서백신시장에 진입하는 문제에서, 엄격한 입찰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성질병통제센터에서 판매회사대표 텐젠궈를 성질병통제센터 바이오제품배송센터 주임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관련인사규정을 위반했다. 계약에 따라 북경화웨이스다이회사는 50만위안의 리스크보증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리원위안은 그중 27만위안으로 승용차를 사서 자신이 사용했다. 조사팀이 개입했을 때는 이미 시정한 상태였다. 작년말, 리원위안은 이미 더 이상 성 질병통제센터 주임의 직무를 맡고 있지 않았다. 현재, 리원위안의 다른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다. 북경화웨이스다이회사와 성질병통제센터합작과 관련한 문제는 관련부서에서 조사후 처리할 것이다.


2010년 4월 6일, 다시 발표회를 열고 이번 문제백신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첫째, 2006-2008년의 기간동안 산서성의 주요한 백신이 예방가능한 전염병발병수준은 전체적으로 전국평균수준보다 높지 않았다.


둘째, 2006-2008년의 기간동안, 산서성에서 예방접종에서 이상반응보고율은 특별히 높지 않았다. 시간, 지역, 백신종류분포에서 집중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백신이상반응보고발생율도 국내외감측보고수준을 초과하지 않았다.


.....


결론은 "산서의 백신 내지 전국의 백신은 안전하다. 안심하고 접종을 받아도 된다. 이것이 우리와 많은 민중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결론내린다. 아무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


2010년 5월 12일, 왕커친의 조사보고서 <산서백신난상조사>가 나오자, 중국경제시보 총편집 빠오웨양(包月陽)은 면직된다.


2010년 6월 9일, 산서백신사건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중요당사자 일가족을 이끌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떠난 전 산서성 질병통제센터 주임 리원위안이 다시 몸을 드러낸다.


그는 산서에서 청급 간부가 탈 수 있는 관용차량을 몰고, 타이위안의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는 득의양양하여 말했다. 산서성 위생청이 그에게 새로 업무를 부여해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이 차는 바로 산서성 위생청이 그에게 제공한 것이라고.


확실히 리원위안은 아무런 처분도 받지 않는다.


2011년 7월 18일, <중국경제시보> 조사부는 해체된다. 왕커친은 해직된다.


이제 일찌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산서백신사건은 이렇게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져갔다.


5.


표주박은 눌러도 다시 떠오른다. 산서백신사건이 일단락될 때, 산동백신에서 문제가 터진다. 산동의 문제는 산서백신사건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


2013년 6월에서 2015년 4월가지, 약제사 팡홍웨이(龐紅衛)는 전후로 산동성 랴오청시, 지난시 텐챠오구등지에서 인원을 고용하고 창고를 빌려서, 국내 각지에서 구매해온 광견병백신, B형유핵성독감,헤모필루스결합백신, B형뇌염백신, 로타바이러스백신 및 B형간염면역구단백등 여러 약품을 보관한다. 백신등 약품을 냉장보관해야하는 창고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산동성 및 국내외 여러 곳에 판매한다. '보건품'등의 명의로 냉장요구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운수방식으로 백신등 약품을 배달한다. 판매금액은 7,497만위안에 달한다.


2014년 9월에서 2015년 4월 사이에, 팡홍웨이의 딸 쑨치(孫琪)는 모친이 불법으로 백신등 약품을 경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기장, 약품수발, 은행업무처리등 경영활동에 참여한다. 그녀가 참여한 판매금액은 4,266만위안에 달한다.


2015년 4월, 팡홍웨이와 쑨치는 체포된다.


2016년 3월 22일, 산동백신사건에 대하여, 국가식품약품감독총국에서는 9개의 약품도매기업이 허구백신판매채널에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사건 백신의 불법채널유입의 주요책임자일 것이다." 하북성 위방바이오제품공급센터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북성위방바이오제품공급센터의 법인대표는 1개월전까지 자오바오강이었다. 그는 조사받을 지경에 처하자 순조롭게 법인대표의 신분을 벗어난다.


이 자오바오강이 바로 북경화샤더중생물기술유한공사의 최대주주이다. 북경화샤더중생물기술유한공사는 바로 이전의 북경화웨이스다이회사가 명칭변경한 것이다. 맞다. 텐젠궈의 이전 회사이다. 즉 산서백신사건에 관련된 그 회사이다.


2017년 1월 24일, 이 모녀는 각각 19년과 16년의 형을 받고 개인재산을 전부 몰수당한다.


6.


비록 산서, 산동백신사건이 종결되었지만, 그중의 두 명 신비한 보통사람, 텐젠궈와 자오바오강은 다치지 않고 법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괴이한 일은 바로 이렇게 일어났다. 산서백신사건이 발발하기 전에 텐젠궈는 순조롭게 몸을 빼냈고, 그의 회사도 계속 경영한다. 나중에는 회사명칭을 바꾼다. 그런데 왜 정부에서는 '실종'되었다고 했을까? 그리고 아무도 그를 조사하지 않았을까?


자오바오강은 또 어떤 신분인가. 그가 텐젠궈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고, 39%의 지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산동백신사건이 발생하기 1개월전에, 텐젠궈와 마찬가지로 순조롭게 몸을 빼낸다. 왜 아무도 그를 조사하지 않는 것일까?


지금까지 텐젠궈와 자오바오강은 여전히 북경화샤더중생물기술유한회사의 주주이고, 그들은 각각 여러 회사를 보유하고 경영하고 있다.


이 두 명의 신비한 보통사람은 그렇게 큰 사건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명철보신하고 전신이퇴할 수 있었을까? 그들 대후의 큰 물고기는 그물로 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