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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봉화희제후(烽火戱諸侯): 아들이 모친과 손잡고 부친을 죽이고, 부친의 첩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사건

by 중은우시 2018. 7. 18.

글: 연비(燕飛)


오늘 할 얘기는 "아들이 모친과 함께, 부칙을 죽여버리고, 부친의 첩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 이야기이다.


중국역사상, "봉화희제후"라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서주(西周)의 주유왕(周幽王)은 미녀 포사(褒姒)를 한번 웃게 하기 위하여, 봉화를 올리고, 제후들이 황급히 달려와서는 괜히 왔다고 여기고 당황해 하는 것을 보면서 포사가 웃었다는 것이다. 주유왕은 포사가 웃는 것을 보자,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다고 여기고, 여러번 이렇게 했다. 나중에 견융(犬戎)이 정말 쳐들어왔는데, 주유왕이 급히 봉화를 올렸지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 전형적인 늑대소년의 이야기이다. 결국 주유왕은 외적에게 여산(驪山)에서 죽임을 당하고 서주는 멸망한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어쨌든 본인은 믿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헛점이 너무 많다. 조금만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전목(錢穆) 선생은 그의 <국사대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사공(사마천)이 말하기를 주유왕은 포사를 총애하였는데, 포사가 잘 웃지 않았다. 주유왕이 봉화를 올리니 제후가 모두 달려오고, 달려와서 적이 없음을 알고 당황했다. 포사가 크게 웃었다. 주유왕은 그 후에도 몇번 봉화를 올렸다. 나중에 견융이 왔고, 봉화를 올렸는데, 제후들이 구하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주유왕이 죽었다. 이것은 항간에서나 들을 이야기이다. 제후병은 봉화가 올라도 동시에 도착하지 않고, 도착해서도 적이 없다는 것을 알면 그냥 다행이라고 여겨 병사를 돌려서 돌아갈 것이다. 이게 뭐가 우스운 일인가. 봉화를 올려 경고하는 것은 한나라때 흉노를 대비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여산의 전투는 주유왕이 병력을 일으켜 신(申)을 친 것이니, 더더구나 봉화를 들 필요도 없다. 태사공이 이 부분에 대하여는 어물쩡 지나갔다."


전목 선생의 분석은 아주 합리적이다.


첫째, 봉화를 올려도 제후들이 동시에 도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즉시 도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고대에는 카톡이 없다. 소식을 전파하는 것 자체가 느리다. 가장 멀리 있는 제나라같은 경우에는 신호를 받는데만도 4,5일이 걸렸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거리가 있다. 고대에는 비행기도 고속철도 없었다. 아무리 빠른 말로 달려도, 가장 가까운 제후국까지 1,2일은 걸린다. 가장 먼 제나라는 가고 오자면 최소한 10여일에서 20일까지 걸릴 것이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주유왕과 포사는 봉화를 올려놓고 뭘 한단 말인가. 그저 먹고 놀면서 제후들이 달려오기만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둘째, 제후의 군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적이 없다는 것을 알면, 아마도 이미 적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고, 좋아할 것이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더욱 중요한 것은 봉화로 신호하는 것은 수백년후인 한나라때 생겨난 것이다.


진실된 역사는 도대체 어떠했을까? 주유왕은 도대체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일까?


서주때 주유왕은 등극하고나서 왕후와 태자 소희(小姬)를 폐위시킨다. 그리고 첩인 포사를 왕후에 앉히고, 포사가 낳은 아들인 백복(伯服)을 태자로 앉힌다. 이에 왕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급히 태자에서 폐위된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서 호소한다.


그녀의 친정은 대단하다. 아주 강한 신(申)나라이다. 이전에 계속하여 주유왕의 부친을 공격했고, 주유왕의 부친은 도저히 막기 힘들게 되니까 당시의 태자인 주유왕으로 하여금 신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했다.


그래서 주유왕은 이 신나라공주인 왕후는 정략결혼으로 그가 억지로 한 것이므로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부친이 죽자, 그가 왕위를 승계하고나서 한 첫번째 일이 바로 그녀를 왕후에서 폐위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된다.


신후(申侯)는 여동생과 조카의 억울한 일ㅇ르 보자, 한편으로 주유왕이 너무 사람을 심하게 괴롭힌다고 여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여긴다. 그는 한편으로 조카 소희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자신의 부친 주유왕을 공격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주변의 증국(鄫國), 견융(犬戎)이 지원을 받는다.


이 몇 세력은 목표를 주유왕으로 삼는다. 그들은 소리치며 쳐들어갔다. 결국 주유왕은 여산에서 죽는다.


바깥의 적은 막기 쉬워노 안의 적은 막기 어렵다. 주유왕은 꿈에도 자신이 아들의 손에 죽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서주가 멸망한 후, 부친이자 왕을 죽인 소희는 외삼촌 신후등의 추대를 받아, 주평왕(周平王)에 오른다.


당시의 정치분위기하에서, 소희는 외적과 결탁하여 부친을 피로 씻었다. 이것은 동포들에게 용납받기 어려운 일이다.


소희는 비록 대왕이 되었지만, 도성에서는 모두 그가 부친을 죽이고 왕이 된 변태라고 손가락질 했다. 이 흑역사는 어찌되었던 입에 담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세탁을 해야 한다.


군중을 대하는데는 방법이 있다. 위기공관이 가장 중요하다. 역사를 고쳐서 여론을 다른 방향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소희의 방법은 이러했다: 먼저 주유왕이 얼마나 혼용무도한지 말한다. 그리고나서 포사가 얼마나 후안무치한지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봉화희제후라는 터무니없는 짓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니, 주유왕과 포사는 정말 오명이란 오명은 다 뒤집어 쓰게 되었다. 특히 포사는 사상 최강의 요녀가 된다. 그녀는 서주를 멸망시킨 홍안화수(紅顔禍水)가 된다.


더욱 과장해서 말하는 경우에는 그녀가 다른 나라에서 파견한 간첩이라는 것이다. 주유왕의 곁에 있었던 것은 간첩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연히 더욱 기이한 주장은 그녀를 직접 요녀로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악룡(惡龍)의 타액이 변해서 만들어졌고,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요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두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아주 특별한 문화전통이 있는데, 그것은 구선불구진(求善不求眞)이라는 것이다.


"어떤 가치관을 주입시키기 위하여 역사를 고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선전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극력 미화, 신격화, 신성화시킨다. 비판해야할 것은 극력 추화시킨다. 심지어 어떤 이데올로기의 필요에 따라, 일체를 고려하지 않고 어떤 역사인물에게 오명을 뒤집어 씌운다. 혹은 고의로 어느 역사사건을 포장하여 시비와 흑백을 뒤집어 버린다."


특히, 왕조교체이후, 전왕조의 역사기재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하는 것의 좋은 점이라면, 어떤 때는 확실히 어떤 가치이념을 세상 사럼들에게 전달하는 작용을 한다.


다만, 동시에 아주 심각한 결과도 초래한다. 즉 중국인들은 보편적으로 입장을 중시하고, 시비는 중시하지 않는다. 왕왕 엉덩이가 머리를 결정하고, 진상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정말 좋지 않은 일이다. IQ에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도덕도 타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