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춘추전국시대(기원전770년-기원전221년), 천하는 대란에 빠지고, 전국칠웅이 나타난다. 이 칠웅을 나누면 내삼강, 외삼패로 나눌 수 있고, 나머지 한 나라는 꿈속을 헤맨 것같다.
기원전453년, 한(韓), 조(趙), 위(魏)의 3가(三家)가 진(晋)나라를 나눈다. 이때부터 역사는 전국시대로 접어든다. 한위조의 국가건립초기에는 군사동맹을 형성하여, 진제초(秦齊楚)를 휩쓸며 근 백년간 칭패한다. 한위조 동맹이 형성된 원인은 원래 관련이 밀접했고, 각자의 국토가 서로 맞물려 있고, 심지어 영토가 상대방의 영토내에 떨어져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삼국이 건립된 초기에는 역량이 비교적 약해서 협력하여야함 진, 제, 초의 대국을 상대할 수 있었다.
삼가동맹은 실력이 두드러져 전국시대 초기에 칭패한다. 조나라는 중산국을 병합하고, 한나라는 정(鄭)나라를 병합하고, 위나라는 서쪽으로 진(秦)의 서하(西河)땅을 차지하고, 위(衛)를 자신의 속국으로 만든다. 나중에 조나라는 수도를 한단(邯鄲)으로 이전하고, 한나라는 신정(新鄭)으로 천도하며, 위나라는 대량(大梁)으로 천도하여 각각 외부로 발전한다.
위나라가 전국시대 초기에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원인때문이다:
첫째, 위문후(魏文侯), 위무후(魏武侯) 시기에 법가의 이회(李悝), 병가의 오기(吳起), 정치가 서문표(西門豹), 공손좌(公孫座), 대장 악양(樂洋), 방연(龐涓), 서수(犀首)등 일련의 인재를 기용했다.
둘째, 위나라가 위치한 중원지구는 모두 평원으로 인구가 많고, 토지가 비옥했으며, 물산이 풍부했고, 상업이 번성하며, 제조업이 발달했다.
셋째, 위나라는 전국중 처음으로 변법을 시행하여 강성해진 제후국이다.
넷째, 군사적인 면에서, 위나라는 비교적 일찌기 군사변혁을 시작하여, 정예병사를 핵심으로 하는 상비군을 건설했다.
기원전354년, 위나라와 조나라가 반목하면서, 한위조 삼국동맹이 와해되고, 내삼강의 우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에는 각자 발전하였고, 후기에 조나라의 실력이 강해진다.
내삼강을 제외하고, 원래부터 대국인 진, 제, 초는 전국시대에 모두 한때 패주가 된다.
제나라는 원래부터 강국이었다. 전국시대에 전씨대제(田氏代齊)가 일어나서, 주로 국내 일로 바빴다. 국내에서 기원전353년 제나라는 위나라를 계릉(지금의 산동 하택경내)에서 대패시키고, 기원전341년에는 제나라가 다시 위나라군대를 마릉에서 대패시킨다. 기원전 334년에는 제위왕(齊威王)이 위혜왕(魏惠王)을 만나 '회서주상왕(會徐州相王)'하여 정식으로 칭왕한다.
초나라는 별명이 '탐흘사(貪吃蛇)"일 정도로 춘추시기부터 계속하여 소국을 집어삼켰다. 그리하여 영토가 날로 커진다. 전국시기 초나라는 다시 채(蔡), 기(杞), 허(許), 소주(小邾, 郳), 주(邾)등의 나라를 병합한다. 기원전306년, 월왕은 영토가 없어지며 북상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다가 패배하고 죽는다. 이후 월나라는 초나라에 멸망당한다. 초나라는 거의 천하의 절반을 차지한다.
진나라고 춘추시기의 강국이다. 한때 진(晋)과 천하를 두고 쟁패했다. 전국시기 기원전316년, 진나라는 파(巴), 촉(蜀)을 멸망시켜 충분한 양식과 병력자원을 확보한다. 기원전272년, 선태후(宣太后)는 의거왕(義渠王)을 감천궁(甘泉宮)으로 유인하여 살해한다. 그리고 진나라는 병력을 일으켜 의거국을 멸망시킨다. 이리하여 철저히 후환을 없애고, 실력이 급상승한다.
전국시대에 연(燕)나라는 꿈속을 헤매는 것같았다. 전국시대의 주요 국가중에서 연나라의 실력은 겨우 한나라보다 약간 강한 정도였다.
연나라가 얼굴을 드러낸 한번은 조, 초, 한, 위의 군대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한 때이다. 거의 제나라를 멸망시킬 뻔했다. 결국 제나라는 비록 복국하기는 했지만, 원기가 크게 상하여 다시는 칭패하지 못하게 된다. 전국시대의 최후에 연나라는 다시 진나라에 이용당하여, 계속하여 조나라를 교란시킨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들이 반진전선의 훼방꾼이 된다.
진나라가 계속 확장하여, 멸망당할 지경에 이르자, 연나라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형가자진왕(荊軻刺秦王)의 장렬한 장면을 보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전체 전국시기에 연나라는 마치 꿈 속을 헤메는 것처럼, 자신이 뭘하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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