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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진시황릉의 허실

진시황릉의 허실(8): 비불발상(秘不發喪)은 조건이 필요하다.

by 중은우시 2018. 2. 7.

글: 진경원(陳景元)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진시황응 여산에 묻었다(葬始皇驪山)"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황제가 붕어하니, 교산에 묻었다(黃帝崩, 葬橋山)"이라는 기록도 있다. 섬서성의 황제릉은 비록 매년 대형제사활동을 벌이지만, 사람들은 그 무덤의 진실성에 대하여 계속하여 의문을 품어왔다. 왜냐하면 하북성 평곡현, 감숙성 정녕현, 하남성 영보현에도 마찬가지로 황제릉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황제릉중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일까? 사람들은 이제 알 길이 없다. <사기.효무제본기>에는 "병사 십여만을 이끌고(勒兵十餘萬), 돌아와서 교산에서 황제에 제사를 지냈다(還祭黃帝塚橋山), 황상이 묻기를, '황제는 죽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무덤이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황제는 이미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그의 의관(衣冠)을 묻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녕현지>에는 "황제릉은 현의 동남쪽 추두진의 교산에 있다. 골짜기의 한 봉우리가 솟아 있고, 위에는 황량한 무덤이 있는데 곁에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황제장의관처(黃帝葬衣冠處)"라는 기록이 있다. 하북, 감숙, 하남등지의 황제릉의 유래도 마찬가지로 매우 모호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황제릉은 그저 하나의 오래된 전설일 뿐이다. 각지의 황제릉은 기껏해야 의관총일 뿐이다.


사마천은 확인할 수 없는 황제릉에 대하여 당당하게 <사기>에 써놓았다. 각지역에서는 겨우 의관을 묻어놓은 무덤만을 가지고, 대외적으로 황제가 매장된 곳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원래는 사학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유사한 사료의 기재가 얼마나 더 많을 것인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현재 확실한 자료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섬서성 임동의 소위 진시황릉은 황제릉에 유사한 의관촉이라는 것이다. 그저 과거에 아무도 이 비밀을 밝히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몇년전에 많은 하북의 학자들이 진용관에 참관하러 갔을 때, 거기의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그들의 가지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진시황의 진정한 무덤은 하북성내의 어느 큰 산에 있다고. 손님들의 이런 기괴한 주장에 대하여 주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몇년 후, <하북경제일보>의 두 기자가 남경으로 와서 그들이 알고 있는 상황을 수십년동안 진한 고건축연구를 해온 방산인(方山人) 선생에게 말한다. 그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그로부터 이 새로운 견해를 완전히 인정받고 지지받았다.


비록 <사기>에서는 명확하게 진시황이 "여산에 묻혔다"고 적었지만,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 곳에 매장했는지, 시장(屍葬)인지, 해장(骸葬)인지, 아니면 의관장(衣冠葬)인지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시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직접 분묘에 묻는 것이다. 이때의 사람과 묘는 불가분이 된다; 해장이라는 것은 묘에 묻힌 것이 사자의 시신이 아니라, 사자의 해골이라는 것이다. 비록 뼈도 사람의 구성부분이기는 하지만, 이때는 사람과 뼈가 이미 분리되었고, 묘에 묻힌 것은 그저 뼈의 형태만 있지 사람의 형태는 아닌 것이다; 의관총이라는 것은 당연히 관에 넣어서 묘에 넣는 것이 죽은 사람이 생전에 입고 있던 의관이다. 죽은 사람 본인이 아니다. 죽은 사람이 입었던 의관은 아주 많으므로 사후에 여러 개의 의관총이 나타나는 것도 통상적인 일이다. 이렇게 보면 해장이건 의관총이건 죽은 사람의 진정한 시신은 그 곳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해장은 천장(遷葬)의 성격이 있다. 그리고 본인의 묘장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의관총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그저 죽은 사람의 이름만 썼을 뿐, 죽은 사람의 진정한 묘라고 할 수는 없다.


고대의 많은 제후, 국군, 제왕이 만일 경성이나 부근지역에서 정상적으로 사망하고 사전에 능묘를 '예수'헤놓지 않았다면, 준비한 능묘에 그냥 들어갈 수 있다. 만일 사전에 능묘를 '예수'해놓지 않았다면, 먼저 시신을 궁중에 특별히 만든 '빙실(氷室)'내에 보존하여 저온냉장처리를 한 다음, 능묘지궁공사가 완료된 후에 예의에 따라 안장을 진행하게 된다. 만일 제후, 국군, 제왕이 아주 먼 곳에서 사망하였다면, 즉시 경성으로 옮겨와서 정상적으로 매장하기가 불가능하다. 할 수없이 그곳에 매장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만일 반드시 고향으로 혼을 불러와야겠다면, 기껏해야 시골(屍骨)을 운반해와서 해장을 한다. 만일 먼 타향에서 죽었는데 ,경성으로 옮겨와서 매장되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반드시 가장 엄격하고, 가장 과학적인 방부처리를 해야 한다. 만일 적시에 운반해오지 않고 현지에 묻지도 않으면서, 게다가 효과적인 시체방부처리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시간을 끌게 되면 시신을 보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경성에 돌아왔을 때 어떤 모양일지는 알 수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문제는 북방에 "하불과삼(夏不過三), 동불과칠(冬不過七)"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적시에 안장하여여야 한다. 유체를 관에 넣는 것을 대렴(大殮)이라고 하다. 입엽(入殮)이라고도 한다. 통상적으로 사후에 3일만에 대염례를 진행한다. 남방지구에는 "춘삼(春三), 하일(夏一), 추오(秋五), 동칠(冬七)"이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봄에는 시신을 최장 3일간 놔두고, 여름에는 하루, 가을에는 닷새, 겨울에는 칠일만에 반드시 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관목은 당연히 사전에 준비해야 하고, 거기에 쓰는 재료는 상등남목(楠木)이 최고이고, 주홍색으로 칠을 해야 한다. 고대에는 영구에 시신을 넣고 매장을 기다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관목은 회반죽을 바르고 기름칠을 한다. 그렇게 하여 모든 틈을 봉쇄하는 것이다. 설사 관안의 시신이 부패하더라도 바깥으로 악취가 흘러나오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황제건 보통백성이건 고귀한 사람이건 비천한 사람이건 모두 이런 객관적인 규율의 무정한 지배를 받는다. 만일 자신이나 후인들이 장례를 안배할 때 이와 다르게 한다면 그 결과는 분명히 실망적일 것이다.


왜 사람이 죽은 후에 반드시 적시에 각종 방부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얘기하는가? 만일 적시에 각종 방부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어떤 난감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은 후의 시체는 채네에 잔류하고 있는 수분, 공기와 세균의 작용으로 신속히 부패하여 일종의 독성이 강한 염기성물질 즉 프토마인(Ptomain)으로 바뀐다. 이는 육류가 질소를 함유한 유기물(예를 들어 단백질)이 부패인자의 작용으로 생성되는 유독한 알칼로이드이다. 일반적인 경우에 사람이 죽으면 24-28시간만에 부패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극독의 neurine이 나오고 5-6일이 지나면, 독성이 점점 약해진다. 이 물질에 독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주위의 살아있는 생물에 극렬한 생리반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신경계통을 마비시키거나 심장악화를 불러온다. 그 병세는 어지럼증, 구토, 설사, 동공확대, 맥박미약, 사지한랭으로 나타나고 심각한 경우에는 전신마비, 지각상실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런 무서운 프로마인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외부에 계속 발산전파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질식하거나 맡기 역겹게 만든다. 심지어 지각을 잃어버리는 괴이항 증상까지 불러온다. 실제로 이것은 일종의 아주 특수하고, 오래가며 없어지지 않는 악성냄새이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시취(屍臭, odor putrefaction)라고 부른다. 시취는 원래 부패한 세균이고, 신속히 시체의 장기내의 단백질을 분해하여, 황화수소와 암모니아를 위주로 하는 기체를 내뿜는다. 그리고 입, 코, 항문으로 배출한다. 이런 부패한 냄새는 통상적으로 사후 다음 날부터 나오고, 어떤 때는 사람이 죽기 직전에도 소량 배출된다. 이런 악취는 후각이 영민한 조류를 불러모은다. 얕게 묻힌 분묘에서 시신의 악취가 나게 되면 여우같은 류가 찾아오게 된다. 그래서, 설사 병원의 영안실내에 시신이 보존되어 있더라도, 반드시 적시에 죽은 사람의 입과 코 그리고 항문든 구멍은 위생면으로 막아야 한다. 그래야 시신의 악취가 바깥으로 나오는 현상을 막거나.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시신이 부패되는 냄새는 모든 동물의 시체중에서 가장 지독하다고. 모든 동물의 대변중에서 사람의 대변이 가장 악취를 낸다. 모든 사람에 있어서 시신의 격렬한 썩는 냄새는 대변의 악취보다 백배는 더욱 심할 것이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향화(香花)가 "구리향(九里香)"이라고 했는데, 사람의 시체냄새는 완전히 뒤집어서 "구리취(九里臭)"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아주 먼 곳에서도 한번에 이 악성의 공포스러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기실 대다수의 사람은 시체냄새를 맡기 전에, 모두 이런 기이한 경력이 없다. 이렇게 보통사람이 오랫동안 접촉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는 일반적인 경미한 부패악취정도가 아니다. 일종의 사람으로 하여금 격렬하고 코를 찌르고 비린내가 나는 부식하는 악취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일부 대량의 시신악취를 맡아본 사람은 그후 몇개월동안, 어떤 경우는 심지어 1년이상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꿈에서도 악취를 맡고 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시신악취를 맡은 후,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생겼다고 말한다.


진시황은 제5차전국 출순을 나섰다가 돌연 타향에서 죽는다. 어떤 사람은 그가 병사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피살되었다고 말한다. 다만 만일 조고(趙高)등의 일련의 궤이한 행동을 보면, 그의 죽음은 전체 정변음모의 일부분일 것이다. 많은 정변은 모두 군주가 외출했을 때 일어난다. 왜냐하면 타향에서 객사하고 군주가 직접 진나라수도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조고등이 정권찬탈하는데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죽은 장소에 대하여는 역사상 논쟁이 없다. 사람들의 인식은 일치한다. <사기>에는 명확하게 "시황이 사구평대(沙丘平臺')에서 붕어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사구평대는 도대체 어디를 가리키는가? <사기.정의>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사구대는 형대(邢臺) 평원향현 동북이십리에 있다"고 적었다. <사기.집해>에서는 "사구는 장안에서 이천여리 떨어져 있다. 조나라는 사구궁(沙丘宮)을 만들었고, 거록(鉅鹿)에 조무령왕이 죽은 곳이다." 사구궁은 전국시대 조무령왕이 연금되어 죽은 호화로운 궁전이다. 이곳에서는 일지기 참혹한 "시취(屍臭), 시충(屍蟲)"사건이 벌어졌었다.


기원전299년, 조나라에서는 내란이 일어난다. 한때 잘나가던 조무령왕은 사구궁에 혼자 갇히게 된다. 모든 궁안의 사람들은 쫓겨난다. 그리하여 먹을 것도 전혀 공급받지 못한다. 3개월이 지나서 궁문을 열었더니, 국군은 이미 죽어 있었다. 죽은 후 3개월동안 매장하지 않다보니 어떤 참상이 일어났겠는가? <사기.제태공세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환공(桓公)의 시신이 육십칠일간 침상 위에 놓여 있었다. 시충이 방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여씨춘추.지접>에도 환공이 "옷소매로 가리고 수궁에서 죽었다. 시충이 시신에서 흘러나왔고, 양문의 문짝으로 덮어놓고 3개월간 안장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비자.이병>에서는 "환공의 시충이 시신에서 나오는데도 매장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시충이 흘러나온다(蟲流)는 것이 무슨 뜻인가? 충이라는 것은 부패한 고기를 먹고 생성된 구더기를 말한다. <한서.진만년전>에는 "목졸려 죽고 오래된 자에게서는 구더기가 썩은 몸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충류는 부식하기 전에 흘러나오는 시수(屍水)이다. 조무령왕은 사구궁에서 참혹하게 죽고서도 3개월간 안장되지 못했다. 당연히 "시수가 온 바닥에 흘러나오고, 시충이 집밖으로 나오고, 시신냄새가 구리에 흩어진다"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기획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성공한 궁중정변은 절대로 우연하고 고립된 정권교체사건이 아니다. 진시황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 정변음모의 주축과 핵심이다.  그렇다면, 진시황의 죽음을 둘러싸고, 정변자는 반드시 충분하게 글을 남길 수 있다. 정변자는 이 사건을 아주 진짜처럼 연기했을 것이다. 정변과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지만, 배후에는 살기가 충만할 것이다; 정변과정의 허실은 왕왕 반대로 보아야 그 단서를 잡을 수 있다. <사기.진시황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가 외지에서 죽으니, 여러 공자 및 천하에 변고가 있을 것이 겁나서 이를 비밀로 하고, 장례절차를 치르지 않는다. 관을 온량거에 싣고, 행환자(幸宦者)는 같이 타고, 백관은 일을 아뢰는 것을 평소와 같이 했다...5,6명은 황제가 죽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정형(井陘)에서 구원(九原)에 도착한다...직도로 함양으로 가서 장례절차를 시작한다." 무엇이 '비불발상'인가> '발상'이라는 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 부고를 내고, 친척과 친구들 혹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것이다. '비불발상'이라는 것은 바로 사람이 죽은 후에 죽었다는 소식을 공개하지 않고, 일종의 허구의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이 현지에서 죽는다면, 여러가지 원인으로 대외에 비밀리에 하고 '발상'을 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시신만 모처에 은닉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적절히 각종 방부조치를 적절히 취할 수 있다면,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시기가 성숙된 후에 금방 비밀을 풀고, 정상상태로 회복시키면 된다. 최종적으로 죽은 사람에 대하여 안장절차를 시작하면 된다. 일반적인 경우에, "비불발상"은 임시적이고 부득이한 응급조치이다. 그저 특수한 이익을 고려하여, 죽은 사람의 사망소식을 감춤으로서 미리 설정한 중요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취하는 변통수단이다. 중국역사상 '비불발상'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한고조 유방, 송태조 조광윤, 강희제 현엽, 천왕 홍수전등이 정권을 안정시킬 필요때문에, 붕어한 후 일정한 기간동안 "비불발상"하고 사망소식을 대외에 공표하지 않은 경력이 있다. 다만 시신은 여하한 손상도 당하지 않고 최후에 완벽하게 각자의 분묘에 안장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래도 행운아들이다.


만일 누군가 외지에서 죽었다면, 거기에 움직이는 도중에 가릴 것도 없고, 무더운 계절이라면 진정으로 '비불발상'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다. 만일 이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절대적으로 정보를 봉쇄하기 위하여, 그리고 여하한 공개적인 장례절차도 취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소위 '비불발상'은 실제로 '기시야외(棄屍野外)"한 것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제환공의 "진시상상(陳屍床上)"이나 조무령왕의 "아사사구(餓死沙丘)"의 아무도 장례절차를 취하지 않는 참혹한 모습의 반복인 것이다. 시체는 오랫동안 놔둘 수가 없다. 만일 적시에 처리하지 않으면, 냉장, 방부, 소독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금방 변색되고 부패된다. 악취가 나온 후에는 시신이 신속히 썩어버린다. 제환공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금방 시수와 시충이 나오고, 공기중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오게 될 것이다. 황막한 들짐승들이 노리고 쫓아오게 될 것이며 여우같은 무리들이 계속 주변을 맴돌 것이고, 심지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까지도 앞다투어 날아오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사기에서는 전복같은 류를 놓아서 진시황의 시신에서 나는 악취를 막지 않았느냐고. 이것은 아아들이나 속일 수 있는 장난일 뿐이다. 왜냐하면 진시황의 동순기간동안, 매일 전복을 먹은 것도 아니고, 전복은 산동지방의 특산이다. 영양가치도 높고, 맛도 신선하다. 산동을 떠나면 더 이상 신선하지가 않다. 죽은 전복은 악취를 낸다. 무슨 이유로 이런 전복을 진시황의 행렬에 가지고 가겠는가? 그래도 버리지 않고, 산서, 내몽고로 갈 때까지도 멀리 바닷가에서 온 전복의 악취를 계속 맡을 것인가. 그저 백치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상황에 의심을 품을 것이다. 만일 정말 '전복'의 악취를 나게 했다면, 그것은 "이곳에 은 삼백냥을 묻지 않았다"는 푯말을 꽂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진시황의 사망소식은 일찌감치 퍼져 나갔다. 시신의 악취가 나므로 하늘을 나는 새, 지상을 달리는 야수도 모두 냄새를 맡고 달려온다. 이렇게 특수한 시체추종족들이 생기게 된다. 이들은 쫓아내도 흩어지지 않고 몰아내도 가지 않는다. 만일 수레를 몰고가는 동안에 계속하여 악취가 난다면 진시황이 사구에서 병사했다는 소식이 일찌감치 연도를 지키는 몽명의 부대에 전해졌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든 후에, 대규모의 전쟁과 군사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걸핏하면 수만, 수십만명이 전쟁터에서 죽는다. 그렇게 곳곳에 시신이 널려 있고, 시신의 악취가 나는 참상은 전쟁터에 가본 사람이라면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순자.권학>에서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고기가 썩으면 구더기가 나오고, 물고기가 마르면 좀이 생긴다" 전쟁터에서는 썩은 시신과 썩은 살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시신의 악취가 하늘을 찌른다. 만일 적시에 처리하지 않으면 전염병이 돈다. '비불발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렇게 극렬한 시신악취가 나는 상황하에서, 수행원이 악취를 3개월동안 맡게 하면서, 대오를 질서정연하게 온전한 정신으로  전진하게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