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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농민

천하제일촌 화서촌(華西村)은 몰락하는가?

by 중은우시 2018. 1. 11.

글: 오구(吳鉤)


최근 들어, <중국의 최부촌의 부채가 389억위안. 천하제일촌 화서촌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나돌았다. 이 글에 따르면, 옛날의 천하제일촌은 지금 변신이 필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2016년 1분기까지 화시집단(華西集團)의 총부채는 389.07억위안에 이르고, 자산부채율은 68.8%이며 이자가 붙은 부채가 245.7억위안이다. 중국청년보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이 글에 나온 부채현황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부합한다.




화서촌은 중국국내외에 유명한 강남의 작은 촌이다. 북에는 다츄장(大邱莊)이 있고, 남에는 화시촌(華西村)이 있다. 화서촌을 얘기하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촌은 강소성 강음시(江陰市) 화사진(華士鎭)에 속해 있다. 2012년, 화서촌의 총수입은 524.5억위안이다. 화서촌은 "전국문명촌진", "전국문화전범시범점", "전국향진기업사상정치공작선진단위", "전국향진기업선진기업"등의 영예칭호를 받았고, "천하제일촌"이라고 불리웠다.


집집마다 빌라에 거주하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1인당 평균예금이 100만위안이 넘고, 교육과 의료는 모두 무상이다...화서촌의 부유함은 천하에 유명하다. 2004년, 화서촌의 1인단 급여수입은 12.26만위안이었고, 같은 해 전국농민의 평균수입은 2,936위안이고, 도시주민의 1인당 가처분소득은 9,422위안이었다. 화서촌의 농민은 전국농민의 41.76배를 벌었다. 도시주민의 13.01배를 벌었다. 2010년, 화서촌의 매출은 300억위안을 돌파했고, 호당 촌민의 예금은 600만위안 내지 2,000만위안에 달하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가의 몇대 최고지도자들은 모두 화서촌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 화서촌은 전국농촌이 공동부유의 도로로 가는 전형이었다. 2009년, 셰계기록협회에서 중국제일촌에 뽑힌다. 2010년, 중국당교의 "삼농(三農)"연구센터는 화서촌에 전국"삼농"실천기지로 삼는다. 화서촌에는 '산채'버전의 장성과 천안문이 있다. 그외에 화서촌에는 복제한 "오정교(五亭橋)", "자금성", "미국국회의사당", "프랑스개선문"등이 있다.


2011년 10월, 화서촌의 촌민은 호당 1,000만위안을 출자하여 30억위안으로 높이 328미터의 "황금호텔" 용희국제대주점(龍希國際大酒店)을 건설한다. 이 호텔은 중국국내에서 면적이 최대인 호텔이다. 호텔을 개업한 후에는 더욱 호화스러웠다. 꼭대기 61층에는 공중화조원, 공중수영장이 있고, 호텔2층에는 2,000평방미터의 쇼핑몰도 만든다. 60층에는 진루지보(鎭樓之寶)인 3억위안 인민폐의 가치를 지닌 1톤 무게의 황금소가 있다.





화서촌이 천하제일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전설적인 인물 우런바오(吳仁寶)때문이다. 우런바오는 안목이 넓고 사고가 영민하며 화서촌의 발전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공헌을 한다. 그러나, 공로가 크면 권력도 그만큼 크고 실수도 그만큼 크다. 우런바오는 화서촌에서 일언구정(一言九鼎). 그의 말이 법이었다. 수십억위안을 들여서 300여미터 높이의 "황금호텔"을 만들었는데, 매일의 관리비용도 화서촌의 큰 부담이다. 그 외에 우런바오는 9,000만위안을 들여서 헬리콥터를 구매했고, 1,000여만위안을 들여 헬리콥터 착륙장을 만들었다. 하늘에서 화서촌을 내려다보는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그러나, 헬리콥터를 타고 호텔에 투숙하는 손님은 대댜수가 화서촌의 촌민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우런바오가 화서촌에서 "근친번식"을 했다는 것이다. 화서집단의 요직은 모조리 우런바오의 가족이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우씨집안의 22명이 중요한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 복단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저우이(周怡)의 연구에 따르면, 우런바오의 4명 아들이 지배하는 가용자금은 화서촌 총량의 90.7%에 달한다.


가장 괴이한 일은 2003년 화서촌 당위 선거때 화서촌촌 당위의 51명 명단 중에서 11명이 우런바오의 가족이었다. 만일 가족의 직접부하까지 계산하면, 우씨집안을 핵심으로 하는 인원이 36명에 달하여 당위 총인원수의 72%를 점한다. 바로 이 해에 76세의 우런바오는 자신이 42년간 장악해온 화시촌의 최고권력을 넷째아들 우세언(吳協恩)에게 넘겨주었다. 화시촌은 여전히 우씨들의 말한마디로 결정된다. 누군가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하다. 우런바오는 "가천하(家天下)"를 도모한다고.


2013년 85세의 우런바오가 사망한다. 화시촌 부서기 쑨하이얜(孫海燕)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시촌이 가족기업식으로 경영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변한다: 우런바오의 넷째아들이 당위서기를 맡고 있고, 장남 우셰동(吳協東), 차남 우세더(吳協德)은 부서기를 맡고 있으며, 삼남 우세핑(吳協平)은 당위상위를 맡고 있다. 우셰더의 아들 우하오(吳昊)는 부서기에서 물러나 당위 상위를 맡고 있고, 며느리 저우리(周麗)는 촌위회 상무주임, 부서기를 맡고 있다. 우셰언의 장남은 당위위원이고, 우런바오의 유일한 딸 우펑잉(吳鳳英), 사위 먀오홍다(繆洪達)는 당위당위이다. 우펑잉의  딸 먀오화(繆華)는 당위ㅜ서기이고, 사위 뤼쑤쥔(呂蘇君)은 당위 부서기이다. 아들 뮤롄화(繆連華)는 당위위원이다. 우셰동의 큰딸 우팡(吳芳)은 현지 강음시 시위상위, 부시장이다.


화시촌의 신화가 나온 것은 우런바오등 우씨가족이 화시촌민을 데리고 기회를 잡아 땀흘려 노력한 공로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화시촌을 중국신농촌을 부로 이끄는 '모범촌'이 되게 한 것은 강음시정부, 내지 소주시정부의 편애와 돌봄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시촌은 그리하여 다른 촌에서보다 훨씬 나은 사회적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화시촌의 발전은 자신의 독특한 조건과 원인이 있으므로 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시촌의 흥쇠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위줘민(禹作敏)이 이끈 다츄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구장의 성공도 그의 장문인 위줘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다츄장의 쇠락에는 위줘민의 독단과 전횡과 관련이 있다. 우런바오가 이끄는 '화시촌'의 쇠락도 그가 이미 다츄장 위줘민이 갔던 길을 다시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북의 다츄장, 남의 화시촌 중국의 두 곳 일찌기 가장 휘황했던 마을은 이제 더 이상 휘황함이 남아있지 않다. 이것이 우연일까? "천하제일촌"인 화시촌의 재부신화는 반세기를 지속하며 이미 역사가 되기 시작했다. 왜 다츄장과 화시촌은 이렇게 단명했을까? 설마 정말 "성야소하(成也蕭何), 패야소하(敗也蕭何)"란 말인가?


"가천하"가 오래가는 걸 본 사람이 있는가? 기실 지금 되돌아보면, 화시촌의 몰락은 거의 필연이다. "가천하"의 기업은 그 자체로 커다란 불확정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능력있는 사람에 의존하고, 권력에 의존하고, 독재에 의존하고, 근친번식에 의존하는 방식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오래가지 못한다. 인민은 자유, 민주를 필요로 하고, 경제도 자유를 필요로 한다. 어느 대단한 인물에 의지하는 것은 안된다. 현대적인 제도만이 하나의 기업, 하나의 마을, 하나의 조직 내지 하나의 국가를 오랫동안 흥성하도록 만드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