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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장쩌민과 북한정권과의 관계연원

by 중은우시 2017. 9. 24.

글: 진사민(陳思敏)


시진핑이 "18대"에서 최고지도자에 오른 후, 처음으로 관영매체에서 "일찌기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전임 및 현임 당과 국가지도자"를 정리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2년전이다.


그것은 신경보(新京報)가 2015년 10월 5일 발표한 것으로 제목은 <25년간 최소한 17명의 중공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했다. 장쩌민츤 첫 방문국으로 북한을 선택했다>였다.


이 글에 따르면, 1990년 3월 장쩌민은 북한을 방문한다. 이는 그가 총서기에 취임한 후 첫번째 외국방문이다. 그는 김일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국제풍운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북한을 지지하겠다. 2001년 9월, 장쩌민은 다시 북한을 방문한다. 김정일은 그를 모시고 평양 금수산기념궁으로 갔고, 장쩌민은 김일성의 유상(遺像)을 참배한다. 


후진타오는 임기중 북한을 2005년에 딱 1번 방문한다. 시진핑이 2008년 북한을 방문할 때는 국가부주석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장쩌민은 임기중에 2번이나 북한을 방문했다. 그중 1번은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이다. 다른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이는 이미 '공전절후'라고 말할 수 있다.


임기내에 북한을 방문하여 1세 김일성이 친히 비행기까지 나와서 영접한 것을 제외하고도, 장쩌민은 2세 김정일과 관련하여 후진타오나 시진핑이 깰 수 없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2004년 4월, 최고지도자의 자리는 넘겨주었지만 군권은 넘겨주지 않았던 장쩌민은 군사위원회 주석의 신분으로 베이징에서 북경을 방문한 김정일을 맞이한다. 그리고 나중에 매체가 시도때도없이 끄집어내어 "외교예의는 모조리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역겨워할 만한" 뉴스사진을 남긴다. 장쩌민과 김정일은 "목을 끌어안고 허리를 감고, 하마터면 입술과 입술이 부딛칠뻔한 격정적인 포옹"을 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2005년 5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과 포옹을 하긴 하지만 장쩌민과 했던 것처럼 체면이고 뭣이고 다 니버린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시진핑이 2008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김정일과 포옹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여론에서는 "주인이 홀대한 것인지, 손님이 거절한 거인지"를 가지고 논란을 벌였다.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문회독서주보>가 2006년 8월에 실은 원제목 <장쩌민해외방문다큐멘터리>에서 공개한 바에 따르면, 1990년 장쩌민이 처음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모두 공항에 나와서 영접했다. 그리고 장쩌민이 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김일성을 친히 지시를 내려, "당내에 문건을 내려보내 모두 알도록 하라"고 했다. 이런 접대의 세부사항만 보더라도, 장쩌민과 김일성 부자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아주 "견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키토피아에 따르면 2010년 10월 8일 북한은 공식적으로 처음 확인해준다. 김정은이 북한의 제3대 최고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같은 날 매체에 이렇게 확인해준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아들이고, 김일성의 손자라고.


이와 동시에 2010년 10월 9일, 저우용캉(周永康)이 북한을 방문하고, 이어서 10월 23일 궈보슝(郭伯雄)이 북한을 방문한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저우용캉과 궈보슝 두 사람은 모두 장쩌민의 심복이다.


3대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초기에, 매체에서는 이렇게 보도한다.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김정은은 미친 듯이 김일성따라하기를 한다. 고의로 조부 김일성의 이미지와 통치방식을 모방하는 것 외에, 전해지는 바로는 오관을 더욱 깅일성과 닮게 하기 위하여, 김정은은 전후로 6차례에 걸쳐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이처럼 조부 김일성을 숭배하는데,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가장 잘 지낸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바로 장쩌민이다. 다만 장쩌민은 현재 시진핑의 부패일소의 최종목표가 되어 있다. 바로 "19대"이전에 북한은 "핵으로 장난을 친다" 그리하여 국제적으로 체면을 잃은 것은 중국공산당이 아니라 시진핑이다. 이는 김정은과 김씨3대정권과 관계가 좋았던 장쩌민의 남다른 깊은 관계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