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두문자(杜文子)
원나라말기의 난세에 여기저기서 한 지방을 차지하고 왕을 칭하고 있었다. 많은 반란군세력이 신속히 일어났다. 그러나, 한 사람은 계속 관망만 하고 있었다. 주원장이 저주(滁州)를 공격하려 할 때, 이 자신만만한 문화인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주원장을 찾아간다. 몸에 유복(儒服)을 입고, 주원장을 뵙기를 청한다. 그가 바로 이선장이다. 그러나 이때의 주원장은 이제 막 정원(定遠)을 차지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정원이라는 자그마한 지역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중장자(里中長者)"인 그가 왜 주원장을 선택하여 따르게 되었을까? 유백온(劉伯溫)은 주원장이 여러번 나와주기를 청하여 비로소 출산했는데, 이선장은 너무 쉽게 그를 따른 것이 아닌가?
이선장은 일찌기 안휘 영금산 일대에서 생활하며 글을 읽었다. 그는 당시에 매우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글을 잘 읽어서 나중에 국가를 위해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점점 자라면서 이 나라는 그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원왕조를 사랑했지만, 원왕조는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대원제국은 한인을 멸시하고, 유학자를 멸시했다. 몽골무인들은 과거조차도 몇번 열지 않았다. 이선장을 깨닫게 된다: 유학서적을 읽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 차라리 병서(兵書)나 법술(法術)을 배우는게 낫겠다. 그렇게 하면 권모술수를 알 수 있고, 다시 관계를 통하여, 몽골왕야나 혹은 몽골고관을 알게 되면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는 몽골인들이 흥하니 글을 아무리 많이 읽고 학문이 아무리 높아도 배경이 없으면 고관이 될 수 없다. 관리가 되려면 하급아전부터 시작하거나 가마꾼, 요리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고관의 인정을 받아서 잘 나갈 수 있다. 이선장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자신의 미래를 기획한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이선장의 이런 인생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원왕조는 아예 그와 같은 소인물을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해를 관찰하고 활동한 다음 빈손의 이선장은 마침내 결정을 내린다. 고향을 떠나서 한번 돌아보자.
이선장은 정원(定遠)으로 간다. 거기서 술수를 써서 예측같은 것을 하고, 글을 가르친다. 혼자서 생활하는데는 괜찮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체내의 호르몬은 마누라를 찾았다. 관찰을 거친 다음에 현지의 왕씨성의 대가족이 괜찮은 집안인 것을 알아내고, 매파를 보내어 이선장은 마침내 왕씨집안의 부잣집딸을 부인으로 얻는다. 이때부터는 중산층으로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선장은 자신의 장기를 잊지 않았다. 사정을 예측하고, "책사다종(策事多種)"했다. 그러면서 이선장의 명성은 점차 퍼져간다.
사람이 일단 유명해지면,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는 법이다. 이선장은 극도로 자신감에 넘치는 인간이다. 원나라말기의 대란때, 그의 일가는 동산에 숨어서 정세를 관망한다. 1351년 영주(潁州)의거가 일어나고, 이선장의 외숙 왕렴(王濂)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참가한다. 그러나 이선장은 총은 머리를 내미는 새를 쏜다는 생각이었다. 너무 빨리 나서봐야 좋은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152년에는 이웃의 곽자흥(郭子興)이 호주(濠州)의거를 일으킨다. 그러나 이선장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여긴 것이다. 주원장이 홍건군의거의 불길을 그가 살고 있는 정원으로 몰고 올 때가 되어서야 이선장은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한다. 기회는 잃으면 다시 오지 않는다. 이선장은 결정한다. 반드시 스스로 찾아나서야겠다고.
1354년 칠월, 홍건군의 행군방향과 노선을 알아낸 후, 몸에 유복을 입은 41세의 이선장은 일찌감치 길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봉에 섰던 위병으로부터 이선장이 만나뵙기를 청한다는 말을 듣자 주원장은 즉시 명을 내려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온 정원의 명사를 맞이한다.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이선장은 주원장을 쳐다보기만 하면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놀라운 말을 내뱉는다: "이제 되었습니다. 하늘에 해가 있고, 백성들에게는 주인이 생겼습니다!" 주원장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도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기뻤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의기투합해서 더욱 길게 얘기를 나누었다. 정원의 형세부터 호주의 군사까지, 빈민의 의군참여부터 의군의 개편까지, 모든 얘기를 나누었다. 주원장이 보기에, 이런 인재야말로 자신이 찾던 바로 그런 인재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를 "장서기(掌書記)"로 임명해서 군대내의 문서와 물자조달업무를 맡긴다.
주원장은 의미심장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현재 천하는 대란에 빠져 있는데, 무기만 가지면 초두왕(草頭王)이 될 수 있다. 선생이 보기에, 이런 혼란이 언제 끝날 것같은가?" 이선장은 상대방이 묻는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답한다: "진나라말기의 대란은 평민출신이 유방이 통이 크게 행동하면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잘 써서 5년의 시간을 들여 제왕지업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원나라조정의 기강이 문란하여 진나라말기와 비슷하니 주공께서는 비록 호주에 있지만, 당신의 조상은 패현에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유방과 고향이 같습니다. 그 일대의 산천은 왕기를 품고 당신을 길렀으니, 당신이 잘 이용한다면, 천하는 금방 평정될 것입니다." 이선장의 말은 그가 원하는 그대로였다. 주원장은 그의 말에 크게 감동한다.
그때이후 이선장은 주원장집단의 오른팔이 된다. 물자공급과 군사참모의 중임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선장의 경력으로 보면, 그는 확실히 큰 일을 해낼 사람이다. 그는 목표가 있는 사람이고, 일처리에도 모두 목적성이 분명했다. 처음에 그가 글을 읽어서 관리가 되려고 했으나 그것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그는 가장 실무적으로 '귀인을 찾는'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도 실현되지 않아서 아무런 관직도 얻을 수 없게 되자, 그는 노선을 바꾼다. 부잣집 딸과 결혼해서 먼저 생활을 안정시킨다. 생활이 안정되자 그는 방향을 원나라조정의 반대편으로 향한다. 의거군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의거군들 가운데, 이선장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회를 기다린다.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주원장의 잠재력을 발견한 후에 이선장은 아부와 계책을 내면서 주원장의 신임을 얻는다. 그리고 중용된다. 이처럼 주도면밀하고 세심하게 일을 해낸 것을 보면 정말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기실 이선장의 일생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다. 그의 죽음도 그의 지나치게 강성한 진취심과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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