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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링지화(令計劃)는 보시라이(薄熙來), 저우용캉(周永康)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by 중은우시 2016. 7. 9.

글: 사달(史達)


2016년 7월 4일, 후진타오(胡錦濤)의 비서실장인 전 중앙판공청 주임 링지화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이 판결의 정도는 장쩌민(江澤民)파의 주요인물인 보시라이, 저우용캉과 같다. 이는 링지화가 장쩌민파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말해준다. 혹은 그가 시진핑을 끌어내려는 쿠데타음모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도 알 수 있게 해준다.


링지화가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주로 2012년 3월 18일 아들 링구(令谷)의 기이한 교통사고로 집중된다. 2012년 3월 15일 보시라이가 낙마하고, 3월 19일 장쩌민파는 실패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다. 교통사고는 바로 보시라이가 낙마한 삼일째 되는 날, 쿠데타가 실패하기 하루 전날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히 "3.15", "3.18", "3.19"의 3건의 사건간에 내재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15" 보시라이의 낙마는 의미가 크다. 이는 장쩌민파의 선봉장인 보시라이가 저격을 당하고, 장쩌민파의 역량으로는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3.19" 실패한 군사쿠데타는 장쩌민파가 후진타오 시진핑진영과의 힘겨루기에서 참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는 장쩌민파의 당시 지휘자인 저우용캉의 낙마를 직접 초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건의 사건은 장쩌민파가 퇴락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고, 짧은 며칠의 시간내에 기본적으로 시진핑과 장쩌민간의 투쟁의 역사적 흐름이 결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3.18" 교통사고사건은 그중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짧은 4일내에 이렇게 큰 변고가 일어나다니, 만일 "3.15", "3.18", "3.19" 세 사건 사이에 관련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억지스러울 것이다. 이 세개의 사건이 링지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에 맞을 것이다. 이번에 링지화에 대하여 무기징역의 형을 내린 것은 그 점을 추가로 증명해주는 셈이다.


먼저, 링지화는 절대로 후진타오의 사람이 아니다. 이점은 이전에 후진타오 본인이 링지화는 "근본적으로 내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는 보도가 설명해준다. 링지화가 후진타오의 비서실장이 된 것은 장쩌민파의 안배이다. 후진타오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링지화는 장쩌민파가 후진타오의 곁에 심어놓은 눈귀이자 권력감시자였던 것이다.


그뿐아니라, "저우용캉,링지화 연맹"은 "3.18" 링구 교통사고이전에 건립되어 있었다. 이 연맹의 의미는 저우용캉과 링지화 두 사람간의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장쩌민파 내부의 일종의 연합가교일 뿐이다. 링지화의 "서산회(西山會)"도 장쩌민이 허가하에 만들어진 소집단이다. 왜냐하면 장쩌민파는 절대로 장쩌민파를 위협하는 독립적인 세력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링구의 교통사고를 숨기기 위하여 링지화가 장쩌민파에 투신하여 "저우,링 연맹"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아주 억지스럽다. 혹은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링지화는 시진핑을 교체하는 쿠데타음모에 참여하였을 뿐아니라, 주모자의 일인이다. 그는 시종일관 장쩌민파의 핵심인물이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그의 원래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다. 다만 아들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실패한 "3.19" 쿠데타의 참여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런 장면을 한번 그려보자. 우리는 2012년으로 되돌아가서, 3월 15일 보시라이가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공표되었고, 장쩌민파는 상하가 모두 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후진타오 시진핑진영이 이렇게 대담하게 시진핑을 대체시키려고 장쩌민파에서 쿠데타음모를 꾸몄던 주인공 보시라이를 낙마시킬 줄 몰랐던 것이다. 그때 베이징의 정치적 분위기는 상당히 궤이했다. 시진핑, 장쩌민 양파는 위기일발이었고,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아주 작은 파동도 거대한 파란을 몰고 올 수 있었다!


바로 이 때, 3월 18일 새벽 4시, 링지화의 24살난 아들 링구가 몰던 페라리 스포츠카가 교각을 들이받아 해체된다. 차에 타고 있던 3명은 차 밖으로 튕겨져 나왔는데, 링구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두 여자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간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페라리458에 3명이 타고 있었떤 것이다. 아마도 안전벨트없이 중간에 앉아있던 여자가 길이 미끄럽고 차량이 급히 방향을 틀자, 운전석에 있던 링구를 덥친 것같다. 그리하여 차량운전대를 놓쳐서 큰 사고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링구의 교통사고는 아마도 정말 우연한 참극이었던 것일 것이다.


교통사고후, 소문으로 전해지는 "저우링밀회"는 아마도 정말 일어났을 것이다. 다만, 이 밀회의 목적은 교통사고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링지화가 장쩌민파로 넘어가는 시작도 아니다. 당시, 장쩌민파는 암중의 지휘자인 링지화와 드러난 지휘자인 저우용캉은 긴급히 만나서 회의를 한다. 링지화는 아마도 비통하여 제 정신이 아니어서, 아들의 죽음을 장쩌민반대파들의 음모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저우링밀회"는 아마도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있을 것이다. 첫째는 저우, 링은 협의하여 만일 교통사고가 상대방의 음모라면, 링지화의 배신자신분이 이미 밝혀진 것인가 아닌가, 시진핑을 교체하려는 쿠데타의 비밀이 이미 밝혀진 것인가 아닌가. 둘째는 저우,링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교통사고의 증거물을 보호가고, 교통사고를 감추고 또한 교통사고에 대한 조사를 주도하였다. 만일 상대방이 손을 쓴 것이 발견되면 반격과 복수의 증거로 삼고자 했다. 셋째는 저우와 링은 협의하여, 거사일을 앞당길지를 논의했다. 저우용캉의 장악하고 있는 무경과 링지화의 중앙경위국의 심복을 동원하여 공동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우와 링은 아마도 결정했을 것이다. 만일 링지화의 신분과 쿠데타의 음모가 들통났다면 먼저 손을 쓰는 것이 낫다. 사전에 쿠데타를 일으켜 버리자. 그렇게 하여 구속된 보시라이를 구해내고 정치적 적수를 철저히 처리한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장쩌민파가 쿠데타를 일으킬 동기와 시기는 모두 맞았다. 다만 준비가 아주 부족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량은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급박하게 "3.19"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무경이 주도하여 중남해를 포위공격하고, 링지화는 중앙경위국의 심복들을 동원하여 내부에서 호응하며, 적당한 시기를 봐서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기실 당시의 장쩌민파는 저우와 링이 성공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다만, 사람의 계산은 하늘의 계산을 따르지 못한다. 성공할 것같은 순간에 자동차로 1시간이 걸리는 바오딩(保定)의 38군이 적시에 도착한다. 쿠데타에 참여했던 무경부대는 무기를 내려놓고, 링지화와 그의 중앙경위국에 있는 심복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쿠데타는 이렇게 실패하고 만다. 보도에 따르면, 만일 장쩌민파의 핵심인물이 배신을 하여 사전에 후진타오에게 밀고하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38군이 적시에 도착하지 못했더라면 역사는 아마도 달리 쓰여졌을 거라고 한다.


그후 38군은 직접 중남해의 주요경비업무를 맡는다. 나중에 중앙경위국은 대거 인원을 교체하고, 링지화와 관련있는 차오칭(曹淸)과 왕칭(王慶)등 고위직들은 직접 해직된다; 지금 링지화도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것은 모두 뒷얘기들이다. 링지화가 중형을 받은 결과를 보면, 링지화는 임시로 배신한 인물이 아니다. 만일 그가 장쩌민파가 시진핑을 교체하려는 쿠데타음모에 참가한 것뿐이라면, 링지화는 아마도 왕리쥔(王立軍)처럼 기껏해야 20년징역형을 받고 끝났을 것이다.


탄식이 절로나오는 일은 왕리쥔이 2012년 2월 6일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미국영사관으로 뛰어들면서 보시라이가 낙마했고, "3.18" 링구의 교통사고는 저우용캉과 링지화의 낙마를 초래했다. 전자는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분명하다. 왜냐하면 보시라이가 왕리쥔에게 독수를 쓰려다가 당한 것이니 자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겉으로 보기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다만, 아들의 참사는 링지화로 하여금 비통함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졌고, 결국 링지화가 위험한 일을 벌이게 만들었고, 장쩌민파가 참패하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시진핑이 "2.06" 왕리쥔사건, "3.18" 링구교통사건, 및 "3.19" 쿠데타에서 하늘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정말 어떻게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는지를 해석하기가 어렵다.


당연히 이상의 분석은 그저 추측이다. 아마도 사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링지화가 중형을 받은 것은 그 본인이 장쩌민파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 저우용캉, 보시라이, 쉬차이허우와 동등한 급의 장쩌민파 고위인물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만일 시진핑을 교체하는 쿠데타음모가 성공했다면, 보시라이가 앞장서고, 저우용캉과 쉬차이허우는 군사와 사법을 맡고, 링지화는 행정부를 주관하는 안배가 말이 될 것이다. 링지화가 장쩌민파의 새로운 4인방의 수령이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런 주장은 모두 알고 있다. '링지화를 버려서 장쩌민을 보호하겠다'는 연막탄이다. 링지화가 이번에 판결을 받았으니, 장쩌민의 마지막도 멀지 않은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