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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강희제)

강희제의 불행한 동년시절

by 중은우시 2016. 2. 11.

글: 사소우(史小雨)


강희제는 일찌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짐은 어렸을 때, 하늘에서 받은 몸이 건장하여, 질병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짐은 어려서부터 강건하고, 근력이 아주 좋았다. 15력의 활을 당길 수 있었고, 13악의 화살을 쏠 수 있었다. 용병이나 전투에 관한 일은 모두 우수했었다."(<청성조실록> 권275). 이렇게 보면, 그는 제왕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생활조건이나 교육조건이 우월했고, 어려서부터 몸이 건강하여, 보통의 백성과 비교하면 실로 천양지차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게, 강희제의 동년생활은 여러가지 불행을 맞이했다.


강희제는 태어나면서부터 황자의 귀한 몸이었다. 그의 동년생활은 금의옥식(錦衣玉食)하여 보통백성과 비교하면 큰 행복, 크나큰 행복해야 했다. 그러나 강희제는 8년간의 황자생활동안, 보통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8가지 불행을 당한다.


첫번째 불행. 어려서 모친의 품을 떠났다. 청나라의 제도에 따르면, 황자, 황녀는 출생이후, 생모와 떨어져서, 유모, 보모에 의하여 길러진다. 현엽이 출생한 후, 부모와 같은 방에서 살지 못할 뿐아니라, 모친과 같이 살지도 못한다. 현엽은 혼자서 보모, 유모에 의하여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궁녀, 환관등이 같이 있었다. 그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뿐아니라, 모친과 부친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보통 백성집안의 아이처엄 부모와 같은 집에 살면서 가정의 따스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두번째 불행. 궁밖에서 혼자서 천연두를 피했다. 현엽이 2,3살 되었을 때, 궁을 떠나 천연두를 피한다. 그는 왜 궁밖에서 천연두를 피했는가? 원래 대대로 산림과 초원에서 살아온 만주족, 몽골족은 중원에 온 후 쉽게 천연두에 걸렸다. 당시에는 천연두에 특효약이 없었고, 전염성이 강하고 사망율도 높았다. 그래서 궁안에서는 천연두의 두자만 나와도 얼굴색이 변할 정도였다. 천연두를 피하기 위하여, 현엽은 황궁에서 나와, 황궁의 서쪽담장밖에 있는 한 집안에 거처한다. 이 집은 지금의 북장가 북구로 동쪽에 동자하와 황궁을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서화문에서 나와 북으로 가거나, 신무문에서 나와 서쪽으로 가면 금방 이곳에 이를 수 있다. 이 시기에 현엽은 나이도 어리고 곁에는 단지 유모, 보모, 궁녀, 환관이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부모와 만나지도 못한다. 4,5살이 되어 마마자국이 생긴 후에 비로소 황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엽이 어릴 때 천연두를 피해서 살았던 집은 옹정원년(1723년) 이후에 다시 개축하고 복우궁(福佑宮)이라고 명명한다. 나중에 보친왕(홍력)의 저택으로 삼는다. 홍력이 건륭제로 즉위한 후, 복우사로 이름을 바꾸고 라마교사원이 된다.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복우사에는 강희제신패가 모셔져 있다. 정전에는 청성조인조황제대성공덕불패가 모셔져 있고, 동안에는 어제문집을 놓아두고, 서쪽에는 보좌를 두었다. 전액은 '자용엄재(慈容儼在)'라고 썼다. 대문의 바깥에는 동,서 이방이 있는데, 동쪽은 "불광보조(佛光普照), "성덕영수(聖德永垂)"라고 쓰여 있고, 서쪽에는 "택류구유(澤流九有)"(길거리에서도 보임), "자육군생(慈育群生)"이라고 적혀 있는데, 모두 옹정제의 친필이다.


세번째 불행. 가정관계가 복잡하다. 현엽의 황부인 순치제는 전후로 19명의 후비를 두었다. 그중에는 만주족, 한족, 몽골족이 섞여 있어, 가정관계가 아주 복잡했다. 황조모 효장황태후는 순치제를 위하여 전후로 5명의 몽골족 보얼지지터씨를 후비로 삼게 해주었다. 순치제는 그녀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먼저 첫번째 황후를 폐위시킨다(효장황태후의 친조카녀), 그리고 두번째 황후인 효예장황후도 멀리한다(효장황태후의 친조카손녀), 그리고 몽골후비 나머지 3명도 멀리한다. 그리하여 조모와 부친은 관계까 좋지 못했다. 이런 것들을 현엽은 모두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자랐다.


네번째 불행. 부친 순치제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현엽은 2살때부터 7살때까지 6년동안, 황부 순치제는 동악씨와의 애정희비극을 벌였다. 현엽이 2살때, 순치제는 동악씨와 열애에 빠진다. 3살때, 동악씨가 입궁하고, 얼마후 황귀비가 된다. 4살때, 동악비는 아들 하나를 낳는데, 바로 황4자인데, 부친 순치제는 '짐의 첫째아들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이 황4자가 황위계승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5살때, 황4자가 요절하고 영친왕으로 추봉된다. 순치제와 동악비는 엄청나게 비통해 한다. 7살때, 동악비가 병사하고, 순치제도 슬픔이 지나쳐서 죽네사네하면서 먼저 자살을 시도한다. 조모는 사람을 보내어 주야로 감시하고 나중에는 머리를 깍고 출가하는데, 곧이어 중병에 걸린다. 현엽이 성장하는 6년동안 부친은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를 돌볼 틈도 없었으며, 관심과 교육을 주지도 못했다.


다섯째 불행. 천연두에 걸려 구사일생한다. 현엽이 2,3살때 궁밖으로 천연두를 피해서 나간다. 4,5살 때 천연두에 걸린다. 특효약이 없이 열이 나고 고통스러웠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저항능력에 의존하여 견뎌낸다. 보모, 환관이 정성스럽게 보살펴주어 겨우 구사일생한다. 어린 나이에 죽음의 문턲까지 갔다 온다. 얼마나 가련한 어린 시절인가.


여섯째 불행. 얼굴에 마마자국을 남긴다. 현엽이 2.3살때 궁을 나와 천연두를 피한다. 명목은 '천연두를 피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과학적인 예방조치가 없었다. 효과적인 치료조치도 없었다. 만일 천연두에 일단 걸리면 자신의 저항능력이 절반을 의지하고, 운명에 절반을 의지해야 한다. 개략 4,5살때 현엽은 천연두에 걸린다. 이 병은 현엽의 '얼굴에 마마자국을 남긴다" 보통사람에게 있어서 얼굴에 마마자국이 있는 것은 그저 약간의 유감이고, 약간의 고통이겠지만, 강희제에 있어서는 평생의 생리적인 유감이 된다. 평생의 심령의 고통이 된다.


일곱째 불행. 8살때 부친을 잃는다. 현엽은 비록 부친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부친의 비호는 받고 있었다. 그러나 8살때(만7살), 지금으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2학년때 나이 겨우 24살의 부친이 사망한다. 부친이 죽자, 하늘이 무너진다. 조모와 생모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전체 황궁에 비애의 분위기가 퍼진다. 현엽은 건청궁에서 부친의 관을 지키고, 절을 하며, 곡을 했다. 이는 나이어린 현엽에게 거대한 심리적 타격과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여덟째 불행. 10살에 모친을 잃는다. 현엽이 즉위한 다음 해, 생모인 퉁씨가 병사한다. 이때 강희제는 겨우 10살(만9살)이었다. 현재로 따지면 초등학교 4학년 나이이다. 퉁씨가 사망한 후, 현엽은 주야로 관을 지킨다.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하고, 물과 죽도 먹지 않으며,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궁정의 근시와 황실친척들도 모두 이런 광경을 목도하고는 감동하지 않은 자가 없었따. 나이 겨우 만9살된 어린아이가 2년만에 부친과 모친을 모두 잃은 것이다. 가련하기 그지없다. 어린 나이에 겪을 수 있는 최대의 불행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종합적으로, 현엽은 궁정비극의 우환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린시절은 가정의 정이나 따스함은 거의 느끼지 못하면서 보낸다. 이는 평생의 유감이다. 그는 부모의 슬하에서 효도를 다할 수도 없었고, 부모에게 즐거움을 주지도 못했다. 말년이 되어서도 이 때의 일에 대하여는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조장황제(순치제 푸린)는 짐이 어렸을 때, 천연두를 겪지 않아서, 보모가 돌봐서 자금성 밖에 나가 있었다. 부모의 슬하에서 하루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는 짐의 육십평생에 한스러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