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제 사마충은 백치로 황위에 오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방에서 병력을 지니고 있는 숙부, 백부, 형제들은 그를 눈아래 두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같이 세력을 키워서 암중으로 유사시를 대비하지만, 구실을 잡지 못하여 함부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함부로 행동에 나섰다가는 불충 반역의 죄명을 뒤집어 쓰게 될 터였다. 나중에 팔왕의 난의 혼란한 다툼이 진행될 때도 항상 자신의 행동에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이유를 찾았다. 어떤 경우는 진혜제의 허가를 받았다는 핑계를 대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조왕 사마륜은 비록 나중에 진혜제를 핍박하여 선양을 받음으로써 오명을 후세에 남겼지만, 그가 최초에 경성으로 들어갔을 때는 확실히 사마씨들이 통쾌하게 생각할 시원한 일을 해냈다. 모살태자(謀殺太子), 산멸진조(鏟滅晋祚)의 죄를 물어 사마씨정권을 위기에 몰아넣은 진혜제의 황후 가남풍을 주살한 것이다.
이 가남풍은 심계가 있는 인물이었다. 진혜제 즉위초기에 사마량등의 힘을 빌어 양준(楊駿)을 주살하고, 양태후를 폐위시키고 권력을 장악했다. 비록 아주 깔끔하게 일을 진행했지만, 이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일이었다. 왜냐하면 역사상 일찍이 황제의 모친인 태후를 폐위시킨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남풍은 태자 사마휼이 자신의 소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싫어했다. 원래 사마휼은 심계가 있고 재능이 뛰어나서, 진무제가 매우 아꼈다. 사마휼을 좋게 본 것이 바로 그의 부친 사마충에게 황위를 넘겨준 이유 중 하나였다. 진무제는 사마충에게 나중에 황위를 사마휼에게 넘겨주라고까지 유언했다. 그런데, 사마휼은 가남풍과 가까이 지내려 하질 않았고, 그녀도 사마휼과 가까이 지낼 수 없었다. 가남풍과 사마휼은 서로 마음 속에 앙금이 남아 있었고, 둘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결국은 서로 빙탄불상용의 지경에 이른다. 가남풍은 태자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게 되고, 여러가지 악독한 수단을 써서 태자를 모해한다. 그리하여 조야는 모두 가남풍이 태자를 해치려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국 영강원년(300년) 그녀의 음모는 성공을 거두어 태자를 폐위시켜 서인(庶人)으로 끌어내린다. 그리고, 가남풍은 태자를 죽여버리고자 한다.
사람들 사이에 명망있는 태자 사마휼이 폐위되니,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우위독 사마아(司馬雅), 상종독 허초(許超), 전중중랑 사의(士猗)등은 가남풍을 폐위시키고, 다시 사마휼을 태자에 복위시키려 한다. 이들은 당시 병권을 쥐고 있던 사마륜에게 지지를 요청한다. 사마륜은 탐욕스러운데다 딴 뜻을 품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요청을 받아들여 가남풍을 제거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손수(孫秀)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손수는 그에게 이렇게 권했다: “태자는 총명하며 강맹합니다. 만일 태자가 살아있으면,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제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께서는 원래 가남풍의 편에 섰기 때문에, 길가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제와서 태자를 구하는게 큰 공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태자는 공께서 여론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고, 지은 죄를 면하려 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원한을 꾹 참고 있지, 공에게 감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공께서 조그만치의 잘못만 저지르면 그것을 핑계로 주살하려 할 것입니다. 차라리, 시간을 끌어서 가남풍이 태자를 죽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후에 태자의 복수를 한다는 명목으로 가남풍을 폐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죄를 면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뜻을 펼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륜은 가남풍과 태자의 사이에서 반간계를 써서 가남풍에게 궁안의 누군가가 황후를 폐위시키고 태자를 다시 세우려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가남풍은 함정에 빠져 사람을 보내 항간의 얘기를 들어보는데, 과연 그런 말이 들리고, 가남풍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자 마음 속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이때 사마륜, 손수는 가남풍에게 태자를 죽여서 사람들이 헛된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한다. 가남풍도 그들의 말이 옳다고 여겨, 영강원년 삼월 계미일, 가남풍은 태의령(太醫令) 정거(程據)로 하여금 독약을 만들게 가져가게 하고, 조서를 위조하여 황문(黃門) 손려(孫慮)를 시켜 허창(許昌)에 있는 태자를 독살하려 한다. 그러나, 태자가 독약을 마시는 것을 거부하자, 손려는 약절구로 태자를 때려서 죽여버린다.
같은 해 사월 신묘일, 사마륜은 계책에 따라 가남풍을 제거하는 행동을 개시한다. 조서를 위조하여 삼부사마에게 칙령을 내린다: “중궁(가황후)과 가밀(賈謐, 가남풍 여동생의 아들)등은 우리 태자를 죽였다. 이제 거기(車騎)를 보내 중궁을 폐위시키니, 너희는 명을 따르라. 명에 따라 임무를 마치면 관중후(關中侯)에 봉할 것이고, 명을 따르지 않으면 삼족을 주살하겠다.”
사마륜은 궁으로 들어가 가밀을 먼저 죽인다. 그리고 사마경(司馬冏)을 보내 가남풍을 체포하도록 한다. 가남풍은 사마경이 한밤중에 입궁한 것을 보자, 상황이 좋지 않다고 여기고 놀라서 묻는다: “너는 무슨 일로 여기를 왔느냐?” “조서를 받들어 황후를 체포하러 왔습니다”. 가남풍이 말한다: “조서는 내 손에서 나가는데, 네가 무슨 조서를 받든단 말이냐.” 사마경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녀를 체포하여 후전을 나선다. 대전앞을 지날 때 흐릿하게 진혜제 사마충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러나, 가남풍은 멀리서 소리친다: “폐하는 제 지아비입니다. 남들이 나를 폐위시킨다면, 결국 폐하를 폐위시키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백치황제 진혜제가 어떻게 그녀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겠는가. 소리는 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가남풍은 다시 사마경에게 묻는다: “거사한 자는 어떤 자인가?” 사마경은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다: “조왕과 양왕입니다.” 가남풍은 그 말을 듣고 후회막급했다. “개를 묶으려면 목을 묶었어야 하는데, 나는 꼬리를 묶었구나. 당해도 싸다. 예전에 두 마리 늙은 개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살려뒀더니 거꾸로 내가 물리는구나.” 그후 그녀는 금용성(金鏞城)에 연금당하고, 황후에서 폐위되어 서인이 된다.
이어서 가남풍의 일당인 조찬(趙粲, 充華 즉 후궁으로 사마휼을 모함하는데 가담함), 가오(賈午, 가남풍의 여동생, 가밀의 모친), 정거등을 체포한다. 동시에 사마륜은 명망있는 대신인 사공 장화, 상서복야 배외등도 체포하여 처형한다. 사마륜은 이들을 모조리 죽인 후 스스로 상국의 자리에 올라 대권을 독점한다. 얼마후 금설주(金屑酒)로 가남풍을 독살하는데, 그녀가 죽을 때 나이 45살이었다. 결국 대권은 모조리 사마륜의 손에 들어간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진혜제로부터 선양받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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