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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올해의 공자평화상은 왜 무가베에게 주었는가?

by 중은우시 2015. 10. 28.

글: 채진곤(蔡鎭坤)

 

인민망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도 제6회 공자평화상은 모두 9명의 후보자와 1명의 기구가 있었다, 각각: 중국도교협회, 반기문(유엔사무총장), 후쿠다 야스오(전 일본수상), 무가베(짐바브웨 대통령, 아프리카연합 의장), 나자르바예프(카자흐스탄 대통령), 빌 게이츠(MS 창업자), 천샹메이(陳香梅, 중미민간대사), 무라야마 도미이치(전 일본수상), 박근혜(한국 대통령), 성운법사(星雲法師, 국제불광회세계총회 회장)이다.

 

제6기 공자평화상 심사위원회 전체위원(76명)이 민주적인 투표를 한 결과 무가베(짐바브웨 대통령, AU 의장)이 36표를 얻었고, 다시 공자평화상최종평가위위원회 전체 위원(13인)의 토론을 거쳐 2015년 제6기 공자평화상은 무가베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에 무가베가 공자평화상 수상하게 된 이유는 "무가베가 1980년대부터 짐바브웨 대통령이 된 이래, 여러가지 곤란을 극복하고 시종 국가정치경제질서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짐바브웨 인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으며, 범아프리카주의와 아프리카독립을 적극 지지하여, 오래되고 찬란했던 아프리카문명을 부흥시키는데 탁월한 공헌을 했다; 특히 그는 2015년 2월 AU의장을 맡은 후 지금까지 91세의 고령임에도 세계각지를 다니며 아프리카 평화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21세기 인류평화의 역사발전에 서사시와 같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에 2015년 제6기 공자평화상을 수여한다."

 

공자평화상은 이전에 롄잔(連戰), 푸틴, 코피 아난, 카스트로, 위안룽핑(袁隆平) 등에게 수여했은데, 기괴한 일은 수상자중 아무도 정식으로 나타나서 이 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공식기구에서도 여러번 이 상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2015년 제6기 공자평화상을 짐바브웨 대통령 무가베에게 수여하자, 인터넷에서는 소란이 일어난다.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비꼬았다: "무가베가 수상한 이유는 당연히 그가 짐바브웨 국민들을 모두 억만장자로 만든 데 있다. 이는 역사상 보기 드문 놀라운 일이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이전에 '화폐교환'조치를 선언한다. 2015년 6월 15일부터 2015년 9월 30일까지, 175조 짐바브웨화폐를 5달러로 바꿀 수 있고, 매 짐바브웨화폐계좌는 최소한 5달러를 교환할 수 있다. 2009년이전에 발행한 짐바브웨화폐는 250조짐바브웨화폐를 1달러로 교환할 수 있다.

 

2009년 1월, 짐바브웨는 통화팽창이 심하여 통제가 되지 않았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100조짜리 액면의 짐바브웨지폐를 발행한다. 2009년 4월, 짐바브웨정부는 더 이상 본국화폐를 유통시키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미화, 남아공랜드, 보츠와나화폐, 영국파운드와 유로를 법정화폐로 선언한다. 그후 몇넌동안 정부는 또 다시 호주달러, 인민폐, 일본엔화, 인도루피를 법정화폐로 추가한다. 정부는 더 이상 환율을 설정하지 않았고, 이 아프리카내륙국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9종의 화폐가 공존하고, 유일하게 자신의 본국화폐를 가지지 않은 국가가 된다.

 

2015년 6월, 짐바브웨 정부는 선언한다. 민중은 짐바브웨화폐를 은행으로 가져가면 미화로 바꿀 수 있다고. 공식환율에 따르면, 2008년이후에 발행한 짐바브웨화폐는 10조를 2센트로 바꿀 수 있다. 20조짐바브웨화폐는 4센트로 바꿀 수 있다. 50조짐바브웨화폐는 20센트로 바꿀 수 있다. 지폐의 왕중왕인 100조짐바브웨화폐는 40센트로 바꿀 수 있는데, 이는 수퍼마켓에서 2개의 동그란 빵 가격에 상당한다.

 

짐바브웨의 재무장관 치나나사는 이렇게 토로한다. 중앙은행은 '화폐교환'조치를 위하여 2100만달러를 준비했고, 1개월내에 완성할 계획이라고. 민중은 지정한 금융기관에 가서 화폐를 교환할 수 있다. 다만 은행은 주민이 원래 가지고 있는 짐바브웨화폐계좌를 자동으로 미화계좌로 바꿔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짐바브웨는 133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GDP총액은 100억달러를 넘지 않는다. 2100만달러로 전국의 지폐를 다 바꿔줄 수 있다니, 이 국가는 이미 무가베에 의하여 빈털털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국가의 재난도 무가베에서 시작한다. 현재 91세의 고령인 무가베는 1960년 짐바브웨민족해방운동에 참가한다. 1963년 짐바브웨아프리가킨족연맹을 결성하여 총서기에 오른다. 1977년부터 지금까지 민족연맹(1989년에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연맹-애국전선으로 개명하여, 주석겸, 제1서기를 맡아오고 있다.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한 후, 무가베는 총리가 된다. 1987년 짐바브웨는 대통령제로 바꾼 후 계속하여 대통령을 맡아왔다. 그리고 1990년, 1996년, 2002년, 2008년, 2013년에 연속하여 당선되어 연임한다. 권력을 30여년간 쥐고 있다. 세계에서 거의 모든 통치자들은 무가베를 부러워할 것이고, 모두 무가베처럼 장기간 정권을 쥐고 싶어할 것이다. 다만 진정 91세가 되도록 정권을 장악하고 심지어 여러나라를 주유하는 사람은 오직 그 한 사람 뿐일 것이다.

 

무가베는 30여년에 이르는 임기동안, 1981년, 1985년, 1993년, 2005년과 2014년 5번에 걸쳐 정식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1999년에는 쿤밍세계원예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하고, 2006년에는 중국-아프리카합작포럼 북경서미트에 참석한다. 2010년에는 상해세계박람회 짐바브웨관의 일일행사에도 참석한다. 그리고 모택동이 세상을 떠난 후 모든 중국지도자들과 심후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2010년, 미국 <포린어페어즈>잡지는 현세계의 독재자 23명을 공표하였는데, 무가베가 2위에 올랐다. 2003년, 무가베는 반대파가 공격할 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바로 이 시대의 히틀러이다. 히틀러가 헌신한 것은 그의 인민이다. 만일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히틀러라고 한다면, 나는 히틀러로 열번은 변신했을 것이다."

 

2000년, 무가베는 백인이 소유한 토지는 흑인원주민에게서 불법으로 구매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새로운 토지개혁운동을 대거 추진하고, 강제로 백인농장토지를 몰수한다. 그리고 퇴역군인과 흑인빈민에게 나누어준다. 이 조치로 짐바브웨의 많은 백인농민은 나라를 떠난다. 경제는 이로 인하여 장기간 혼란과 쇠퇴를 겪게 된다.

 

2005년, 무가베는 다시 '도시정화운동'을 벌인다. 도시빈민을 강제로 축출하고, 그들의 주택을 철거한다; 동시에 여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강화한다. 이런 급진적인 조치는 서방각국의 아프리카국가에 대한 제재조치를 부른다. 영연방은 2002년 짐바브웨에 대하여 1년간 권리정지를 선언한다. 무가베는 바로 영연방에서 퇴출한다고 선언한다.

 

짐바브웨는 장기간 외채를 갚지 못하고 있는데, 무가베는 안정조치를 취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IMF는 짐바브웨에 대한 모든 경제원조를 중단한다. 2008년, 무가베는 미친듯이 돈을 찍어내어 재정적자를 메꾼다. 그 결과 심각한 화폐평가절하가 일어난다. 정부가 그때 공표한 최고통화팽창율은 2,200,000%이다. 이 '전세계에서 가장 나쁜 성적의 경제체"(2010년 미국 포브스 잡지에서 선정됨)는 한대 세계최고액면가의 화폐를 보유했다. 2.5조짐바브웨화폐. 사람들의 급여는 억이 넘었다. 짐바브웨는 한 때 사람들마다 거액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억만장자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두 알거지였다.

 

2008년, 무가베의 통치는 '대지진'을 맞이한다. 당시 대통령선거의 제1차투표에서, 반대당의 지도자인 츠바지라이가 47.9%를 득표하고, 무가베는 겨우 43.2%만 득표한다. 그러나 제2차투표에서 츠바지라이는 경선에서 사퇴하고, 무가베는 8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다. 반대파에 다르면, 선거는 심각한 폭력위협, 조작등 검은 내막이 있다고 한다.

 

반대당은 무가베의 폭력통치에 대한 고발은 1980년의 대도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소 20만명의 무가베의 종족청소로 죽어나갔다. 이 대도살이 처음 시작할 때는 "첫 봄비가 내리기 전에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없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가베는 도살의 '죄행'을 인정하길 거절한다.

 

최근 10년, 옵저버들은 무가베가 곧 하야할 것으로 보았다. 국민선거를 통해서이건, 정치적 항의를 통하여서건. 다만 무가베는 매번 순조롭게 대통령에 당선된다. 미국학자 메스퀴타는 <독재자수첩>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가베는 짐바브웨를 엉망으로 통치하지만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은 그가 '승리연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지도자의 진퇴를 결정하는 핵심그룹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가베는 24시간 선전소를 유지한 바 있다. 서방의 '마이너스선전'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가 통제하는 매체는 계속하여 서방패권주의를 공격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 반서방의 투사가 서방의 생활양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는 양복을 입고, 정기적으로 외국잡지를 구독한다. 현지의 신문은 거의 읽지 않는다. 제국주의를 비난하지만, 영국의 전통에 대하여는 '무릎을 꿇고 존중한다. 모든 손님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어린 증손자뻘에게는 영국왕실의 예의 지식을 전수한다. 크리켓 게임을 좋아한다. 영국이 제재하기 전에 무가베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런던으로 여행가는 것이었다.

 

짐바브웨 인민의 생활은 아주 힘들고 가난하다. 그러나 무가베와 그의 부인 그레이스의 호화사치생활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국제사회가 무가베에 대하여 전면적인 제재를 할 때도 무가베부부는 홍콩에서 흥청망청 썼다. 4,000만홍콩달러를 들여 홍콩의 호화주택을 구매했을 뿐아니라, 그레이스는 짐바브웨 중앙은행의 자금으로 중국에서 다이아몬드거래에 투자하기도 했다.

 

2015년 공자평화상을 무가베에게 수여한 것은 세계평화와 국제질서에 대하여 확실히 절묘한 풍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