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를 세우는데 있어서, 적장자원칙의 신조룰 역대제왕들이 신봉해왔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제왕들은 황태자를 세우기 이전이나 세운 이후나 태자의 재능이 “대임을 맡을 만한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바꿀지말지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런 때가 되면, 조정신하들과 황실종친들은 두 파로 나뉘게 된다. 한 파는 <춘추>의 대의를 고수하면서 역사상 폐적입서(廢嫡立庶, 적자를 폐위시키고 서자를 세움) 혹은 폐장입유(廢長立幼, 나이든 아들을 폐위시키고 나이어린 아들을 세움)하였다가 나라가 망한 사례를 들며, “천하에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바꾸어서는 안됩니다(非有大惡於天下, 不可移也)”라고 간언하여 태자의 자리를 보전하도록 주장한다. 다른 파는 황제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아니면 누군가에게 매수되어서 혹은 태자에게 밉보여서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해서 황제에게 “태자는 천하의 근본...이며, 폐하가 후사를 맡길 사람”이라는 것을 들어 태자를 고를 때는 재주와 학문이 중임을 맡을만한지를 살펴야한다고 주장하며, 태자를 폐위시키려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황제의 뜻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와 왕공대신들 중 어느 파의 세력이 큰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중에는 적장자가 승리한 사례가 더 많기는 하지만, 재능이 뛰어나서 적자를 물리치고 태자의 자리를 빼앗은 사례도 없지는 않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은주왕(殷紂王)이 왕위를 승계한데는 적자(嫡子)라는 신분상의 이점도 있었지만, 그의 재능과 실력을 부친인 제을(帝乙)과 여러 신하들에게 인정받은 덕분이기도 하다. <사기. 은본기>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제을의 큰아들은 미자계(微子啓)이다. 계의 모친은 미천해서 후계자가 되지 못했고, 작은아들 신(辛)의 모친이 정비였기 때문에, 후계자가 된다. 제을이 죽자 아들 신이 즉위한다. 그가 제신(帝辛)이고, 천하는 그를 주(紂)라 불렀다.” “제신은 자질이 총명하고, 말을 잘하고, 행동이 재빨랐으며, 받아들이는 능력이 아주 강했다. 힘도 남들보다 세어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수 있을 정도였다. 지식은 충고를 물리치고도 남을 정도였고, 말재주는 스스로의 잘못을 감추고도 남을 정도였다. 신하들 앞에서 재능을 과시하기를 즐겼고, 자신의 위세와 명성으로 스스로를 높이길 좋아하여 천하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아래라고 여겼다.” <제왕세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제신은 도예구우(倒曳九牛, 아홉마리의 소와 힘겨루기를 해서 끌어당기다)하고 무량역주(撫梁易柱, 대들보를 들어서 기둥을 교체하다)했다.” 즉, 별다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미자계에 비하여 제신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그것 때문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씨춘추>에는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삼형제중 막내였다. 장남은 미자계이고, 차남은 중연(中衍), 막내가 수덕(受德, 제신의 이름)이다. 주왕을 낳은 어머니는 둘째를 낳을 때까지는 첩이었다가, 막내를 낳을 때는 정실부인이 되었다. 주왕의 부모는 원칙에 따라 장남인 미자계를 태자로 세우려 했으나, 똑똑하고 성품이 바른 미자계가 왕위에 오르면 모든 국사를 원칙대로 처리하고, 그럴 경우 자신들의 세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 때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이러했다: 정실부인의 아들인 수덕이 있는데, 첩의 아들인 미자계를 후계자로 삼을 수 없다.
역사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제신이 왕위에 오른 것은 가장 큰 이유가 적자라는 것이지만, 그의 재능이 월등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인 것같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적장자를 우선하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자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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