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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내선득위패(內禪得位牌) 당현종편외

by 중은우시 2015. 10. 11.

 

무측천을 몰아내고 당중종이 복위한 후, 황후 위씨(韋氏)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가 조정을 좌지우지한다. 위후는 성격이 음탕하여 부도(婦道)를 지키지 않아 당시에도 말들이 많았고, 안락공주는 스스로 제2의 무측천이 되고자 황태녀(皇太女)에 오르고자 했다. 안락공주는 황태녀가 되지 못하자 부친에 원한을 품고 모친 위후와 함께 당중종을 독살한 후, 위후는 여황제에 오르고 안락공주는 황태녀가 되어 차기 여황제가 되고자 계획한다. 그러나, 당중종을 독살한 후 형세의 추이는 그녀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득이 원래의 계획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당중종 이현의 넷째아들로 나이 겨우 16살의 온왕(溫王) 이중무(李重茂)를 황제에 앉힌다. 역사에서는 그를 당상제(唐殤帝) 혹은 당소제(唐少帝)로 부른다. 그러나, 그는 허수아비였고, 실제권력은 위후가 장악한다.

 

그러나, 이중무가... 즉위한지 한달도 괴지 않아 위후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무측천의 딸인 태평공주(太平公主)와 임치왕 이융기(李隆基) 두 사람은 서로 연합하여 무력으로 황궁을 장악하고, 위후, 안락공주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이제 병권은 이융기 부자와 형제의 손에 들어왔다.

 

유월 계묘일 태평공주는 이중온에게 상왕(相王) 이단(李旦)에게 양위하도록 강요한다. 이단은 무측천의 아들이자, 이융기의 부친이다. 비록 이단이 이를 사양하지만, 이미 조정의 대권은 이융기 부자가 완벽하게 장악한다. 그 후 유유구(劉幽求)등이 재삼 청하자 갑진일에 태극전에서 당중종은 다시 선양의 쇼를 다시 한번 상연한다:

 

갑진일에 태평공주는 당소제(唐少帝) 이중온을 이끌고 조회에 나간다. 당중종이 붕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국상기간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어좌는 동쪽에 있었고 서쪽을 향하여 앉았다. 서쪽은 당중종 이현의 재궁(梓宮, 황제의 관)이 있었다. 그 곁에는 상왕 이단이 서 있었다. 신하들의 우두머리는 태평공주였다. 태평공주는 신하들이 모두 자리한 것을 확인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불안하여, 황제는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황위를 상왕에게 양위하려 한다.” 그러자, 당륭정변의 모사인 유유구가 무릎을 꿇고 미리 준비한 전위조서를 읽어내려간다. 이중무는 자신이 황위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멍하니 있었다. 전위조서를 다 읽었으면 신황제게 등극해야 하는데, 이중무는 넋을 잃고 그냥 앉아만 있어서 난감한 국면이 벌어진다. 태평공주는 바로 어좌 앞으로 걸어나가 이중무에게 말한다. “천하의 인심이 이미 모두 상왕에게 돌아갔다. 아이야, 이 자리는 네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중무를 붙잡아 끌어내린 다음 한켠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이단의 손을 붙잡아서 어좌로 데려간다. 곧이어 신하들이 만세를 외친다.

 

여기에서는 무슨 인후한 선양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세력으로 핍박하여 불쌍한 어린 아이를 몰아부치는 장면만 있다. 그러나, 황제에 오른 이단도 얼마 가지 못한다. 얼마 후 증조부 이연이 이세민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에 올랐던 것처럼, 태자 이융기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이 된다.

 

당순종 이송(李誦)은 즉위후 부친 당덕종의 여러 적폐들을 일소하여 민심을 크게 얻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잘못 기용한다. 그가 기용한 왕숙문(王叔文), 왕비(王伾)의 개혁은 환관으로부터 금병(禁兵)의 지휘권을 빼앗아오고, 지방절도사로부터 병권을 빼앗아옴으로써 중앙정부의 황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환관들과 지방절도사의 기득권을 건드리게 되니 여기저기서 반발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난 자는 검남서천절도사 위고(韋皋)였다. 그는 황제에게는 이렇게 고한다: “황제께서는 건강이 좋지않으시고 정무를 돌보느라 몸이 피로해졌으니, 황태자에게 정무를 위임하고 물러나 계시다가 황상의 몸이 좋아지면 다시 황태자를 동궁으로 보내십시오. 신은 장군과 재상을 겸하고 있으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직분에 속합니다.” 그리고 황태자에게는 이렇게 고한다: “성상은 당고종을 본받아 정무를 신하에게 위임하였는데, 제대로 된 사람들을 고르지 못했다. 왕숙문, 왕비, 이충언(李忠言)같은 자들은 상벌이 분명하게 하지 않아 기강이 문란해졌다. 창고의 재물을 나눠주어 권세있는 자들을 회유한다. 심복을 중요한 자리에 앉혀 당태종이 닦은 기업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원컨데 태자전하께서는 즉시 황제에게 아뢰어, 소인배들을 물리치고, 정무를 군주가 직접 처리하면, 사방이 안정될 것입니다.” 이어서 형남절도사 배균, 하동절도사 엄수가 연이어 위고와 같은 내용의 글을 올린다.

 

태자는 왕숙문등이 밖으로는 절도사들의 반발에 부닥치고, 안으로는 환관들의 반대에 부닥쳐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황위탈취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한다. 칠월 이미 병석에 누워 말도 하지 못하는 당순종은 “고질병이 낫지를 않아, 군국대사를 잠시 황태자 이순(李純)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라고 하여 대권을 황태자 이순에게 넘겨준다. 팔월에는 다시 당순종의 입을 빌려 “태자가 황제에 즉위하라. 짐은 태상황이 되겠다”라고 선포함으로써 황위를 완전히 빼앗는데 성공한다.

 

황위의 내선(內禪, 황실내에서 황위를 물려주는 것)은 경우에 따라 일정한 기만성을 지니고 있다. 그 원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창검을 쓰지 않고 평화롭게 이루어진 것같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평화롭게 보이는 선양의 배후에는 엄청난 위기가 숨어 있고, 부득이하게 기세를 따른 것이라는 점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히 말해야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찌되었건 내선식의 궁중정변은 다른 적나라한 무력충돌과 비교하자면, 어느 정도 인간적이고, 도덕적이며, 중국고대에 그렇게 내세우던 효의(孝義)와 예제(禮制)에도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