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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여인노선술(女人路線術) 화기소장패(禍起蕭墻牌) 조식편외

by 중은우시 2015. 8. 25.

 

동한말기, 조조는 군웅들 중에서 굴기한 후, 자신의 사업을 후대만세에 전해주고자 했다. 그리하여 조조는 아들중에서 완벽한 후계자를 뽑기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그중 조식은 조조의 넷째아들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과 업무처리능력으로 가장 앞서갔다. 그러나, 그와 동모형인 조비와의 후계다툼이 치열해질 때 연이어 발생한 몇 가지 사건으로 그는 후계자의 반열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 중의 한 사건을 보면, 어느 날, 조조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서 아들, 신하, 장군들을 모두 동작대에 불러모은 다음, 업성의 거리를 내려다 보면서, 멀리 장하(漳河)의 풍광도 구경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호기방장하여 한나라황실을 대신하여 천하를 차지하고 팔황을 집어삼키겠다는 기세를 드러냈다. 이때 조식은 자신의 문장실력을 있는 껏 발휘하여 조조를 비롯한 참석자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때 조조의 얼굴이 흐려지면서 표정이 굳어진다. 멀리 아주 화려한 차림의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조조는 분노하여 그 여인을 노려보며 말한다: “도대체 어떤 년이기에 내가 여러 번 근검절약하라고 명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나돌아다니다니. 이는 내 명을 공공연히 무시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수하에게 명을 내려 누구인지 알아오라고 한다. 얼마후 수하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바로 조식의 애첩이었다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조조는 바로 그녀를 사사한 후 목을 베어 업성의 거리에 걸도록 명한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조식에게 욕을 퍼붓는다: “내가 이미 명을 내렸는데, 너는 감히 내 명을 신경쓰지도 않고 네 하고 싶은대로 하는구나. 내가 내린 근검절약하라는 명을 내버리고, 네 처첩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장하게 하다니, 자기 마누라조차 단속하지 못하는 자에게 어찌 대사를 맡길 수 있겠느냐!” 조조는 말을 마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며 소매를 떨치고 떠나버린다. 조식은 그 자리에 목석처럼 굳은 채 꼼짝하지도 못한다. 그가 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동안 해온 모든 노력은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고, 태자의 자리는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수문제 양견의 태자 양용(楊勇)은 원래 후계자로 확정되어 있었으며, 수나라강산은 곧 그의 손에 들어올 것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낙극생비(樂極生悲), 화수복래(禍隨福來)인 것을. 그는 정실부인인 원비(元妃)는 그의 모후인 독고황후가 그를 위해 골라준 여인이었는데, 평소에 양용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고 첩인 운소훈(雲昭訓)을 총애했고, 어느 날 원비가 급사하고 만다. 그러자 독고황후는 태자 양용과 운소훈이 원비를 독살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독고황후는 양용을 싫어하게 된다. 이리하여 양용은 모친의 사랑도 잃고, 결국 태자의 자리도 잃게 된다.

 

수나라말기의 양간(楊暕)은 수양제 양광의 둘째아들로 수양제와 소황후 사이에 태어난 적자(嫡子) 이다. 그의 형(兄) 원덕태자 양소(楊昭)가 죽은 후에는 수양제의 유일한 적자가 되어, 자연스럽게 가장 강력한 태자후보가 된다. 게다가 수양제도 그를 총애하여 스승들을 붙여주었다. 또한, 조정대신들도 모두 하나같이 장래 황제가 될 그에게 잘 보이려 했고, 양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면서 하늘높은 줄 모르고 득의망형(得意忘形)하게 되는데, 그가 드러낸 가장 큰 특징은 호색한다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교령칙(喬令則), 고적중기(庫狄仲錡), 진지위(陳智偉)등으로 하여금 사방을 뒤져서 미인을 찾아오게 했다. 만일 어느 집안의 처나 딸이 예쁘다는 소식이 이들 중 하나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바로 동궁에서 입궁하라는 명이 내려오고, 입궁시켜 음욕을 채운 후에 돌려보낸다. 이 점에서는 그의 부친 양광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용은 용을 낳고, 봉황은 봉황을 낳고, 쥐가 낳은 새끼는 구멍을 판다는 격이다.

 

하루는 양견의 딸로 양간에게 고모가 되며 북주선제(北周宣帝)에게 시집간 낙평공주(樂平公主)가 양간에게 유(柳)씨성의 미녀를 소개하고, 양간은 이 유씨녀의 내력에 대하여는 묻지도 않고 거둔다. 원래 이 유씨녀는 낙평공주가 수양제 양광에게 먼저 바쳤던 여인이다. 그런데, 평상시같으면 바로 거두어 후궁으로 삼을 수양제가 이때는 그러하지 않았다. 실망한 낙평공주는 다시 유씨녀를 양간에게 넘겨주어 그의 호의를 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양광은 이 일을 잊지 않고 있었고, 얼마 후 낙평공주를 불러 “유씨녀는 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낙평공주는 “지금 제왕부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양광의 눈에 양간은 감히 자신에게 바친 여인까지 중간에 가로채는 불효자가 되어 있었다. 양광 자신도 서모를 취하고, 부친을 죽이고 황위를 차지한 바 있으므로 양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양광은 양간에 대하여 조사를 시켜보니, 원래 양간의 비 위씨(韋氏)는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양간은 위씨의 언니인 원씨부(元氏婦, 그녀는 원씨에게 시집갔기 때문에 원씨부라 부름)와 사통하여 딸을 하나 낳았다. 양간은 집안에서 연회를 열 때 관상을 보는 사람을 불러서 집안사람들의 관상을 보도록 한다. 그런데, 그 관상쟁이는 원씨부를 가리켜 나중에 황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수양제는 아직 태자를 세우지 않고 있었는데, 양간은 순서대로라면 자신이 황태자에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형 양소의 아들이 3명 있어 항상 불안해 했다. 그리하여 암중으로 염승술(厭勝術)까지 쓴다. 나중이 이런 일들이 들통나면서, 양광은 원씨부를 사사하고, 이후 수양제는 양간을 멀리하며, 그가 정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제왕부의 인원을 모두 노약자로 바꾸게 한다. 양간은 유씨녀와 원씨부 때문에 결국 후계자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