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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황자쟁위술

[황자쟁위술] 부저추신술(釜底推薪術) 여적교통패(與敵交通牌)

by 중은우시 2015. 8. 25.

 

황자들이 후계경쟁을 할 때, 경쟁상대를 제거하기 위하여 후궁과 사통하였다고 황제에게 밀고하는 것과 효과에 있어서 고하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인 것으로는 적국과 내통했다거나, 반신(叛臣)과 결탁했다거나, 황제시해와 황위찬탈을 도모했다는 것이 있다. 어느 황자든지 이런 유형의 죄를 지은 혐의를 받게 되면, 결국 황제의 대노하에 높은 담장 안에 갇히거나, 유배를 가거나, 죽임을 당할 운명에 처할 수 있다.

 

이세민은 당고조 이연에게 이건성, 이원길이 서모인 장첩여, 윤덕비와 사통했다고 모함하면서 동시에 이건성과 이원길이 숙적과 내통했다는 혐의도 뒤집어 씌운다. 즉, 이건성, 이원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왕세충(王世充), 두건덕(竇建德)을 위하여 복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 왕세충과 두건덕은 이연과 마찬가지로 수왕조에 반기를 든 낙양, 하북을 근거지로 하는 지방할거세력으로, 태원에서 반기를 든 이연과 천하를 놓고 다투던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왕세충, 두건덕은 이연의 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세민의 이런 모함은 사실 전혀 근거가 없다. 이세민이 왕세충, 두건덕을 이기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원길의 공로도 이세민에 못지않았다. 특히 두건덕이 왕세충에게 원군을 보냈을 때, 낙양의 포위를 푸는 임무를 해낸 사람이 이원길이었다. 그리하여, 왕세충과 두건덕을 궤멸시킨 후, 개선할 때 이세민과 이원길은 나란히 장병을 이끌고 황제를 알현하고, 그  공로로 이세민은 사도(司徒)의 관직을, 이원길은 사공(司空)의 관직을 받는다. 사도와 사공은 사마(司馬)와 더불어 삼공(三公)의 반열에 드는 관직이다. 이를 보더라도 왕세충, 두건덕을 토벌하는데 있어서 이원길의 공로는 상당히 커서 이세민과 비교하여도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왕세충, 두건덕의 복수를 위하여 이세민을 죽이려 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성과 이원길이 만의 하나 왕세충, 두건덕과 내통했다면, 이세민이 그것을 5년이나 지나서 비로소 당고조 이연에게 밀고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세민이 이렇게 이건성, 이원길을 모함한 것은 그저 무중생유(無中生有)라고 할 수밖에 없고, 포풍착영(捕風捉影)이라고 할 만한 것도 못된다.

 

더욱 우스운 것은 이세민이 이전에도 여러 번 이건성, 이원길을 모함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건성, 이세민, 이원길 형제가 동궁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이세민이 심장이 아프다며 피를 몇 되나 토했다. 숙부인 이신통이 그를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목숨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서에는 이건성, 이원길이 짐독(鴆毒)을 써서 이세민을 죽이려 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짐독을 마셔 피를 몇 되나 쏟았다면 그가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고조 이연은 이 사태가 벌어진 후, 이건성에 대하여는 “진왕(이세민)이 술을 원래 잘 마시지 못하는데, 하물며 밤에 모여서 술을 마셨느냐”고 질책하고, 이세민은 “낙양으로 가서 섬서동쪽을 모조리 주재하도록” 명한다. 이는 이세민이 원하던 바였다. 이세민이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모함했지만, 그 효과는 상당히 좋았다.

 

이세민과 비교하면 이건성, 이원길이 이세민을 모함하는 수완은 더욱 고명했다. 이세민이 독주를 마셨다고 쇼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낙양으로 간다. “진왕의 심복들은 그가 낙양으로 간다는 말을 듣자 기뻐날뛰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 아마도 다시 장안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같았다.”이연은 이 소식을 전해듣고는 이세민에 불쾌한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이원길이 이세민을 주살해야한다고 주청하자, 이연은 “그가 천하를 평정하는데 공이 있고, 죄상은 아직 드러난 것도 아닌데, 어찌 주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이를 보면, 이연도 이미 이세민이 딴 뜻을 품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죄상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그 후, 이연은 이세민과 이원길로 하여금 돌궐의 침략을 막도록 보내기로 하면서, 이연은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세 아들과 대신들을 데리고 남교로 사냥을 떠난다. 이때 이건성은 고의로 “살찌고 날뛰는” 야생마를 이세민에게 배정한다. 이세민은 말을 보자 이건성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심복 우문사급(宇文士及)에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이렇게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살고 죽는 것은 운명에 달렸는데(死生有命), 겁날 게 뭐 있겠는가.” 이건성은 이세민의 이 말을 듣고는 즉시, 자신의 편이 된 이연의 후궁을 통하여 이연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진왕(이세민)이 말하기를, 나는 천명(天命)을 받았다. 그래서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런 내가 어찌 헛되이 죽겠는가.” 여기에 숨은 뜻은 이세민이 황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과연 이연은 이 말을 듣고 대노한다. “천자는 천명이 있어야지, 머리를 쓴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역자(逆子) 이세민을 크게 질책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연이 이 말을 듣고 대노한 이유는 바로 역대 황제들이 모두 황제의 보좌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연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가 그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 당왕조를 창건했겠는가. 비록 “사생유명”이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이 왜곡되여, “나는 천명을 받았다. 그래서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런 내가 어찌 헛되이 죽겠는가”라고 변형된 것이지만, 역대제왕의 신조는 “모반을 꾀하는 자는 천 명을 잘못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도 그물을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반역을 꾀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황제로서는 그를 없애고 나서야 비로소 베개를 높이 베고 잠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